옹달샘:
성장을 위한 기초는
현실의 인정에 있습니다.
이 얘기에
대부분은 환호하고 수긍합니다.
그러나
과연 무엇을 인정하자는 것인지
곧
모호함이 따라오지요.
구체적 자신을 돌아보면
완벽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쓸만하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미흡한 점은 있으나
누구나 가진 한계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현실 인정의 어려움은
이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한 쪽에선 긍정적 신호를 보내지만
다른 쪽에선
자기 비판과 자기 폄하의 이미지도
떠오르기에
조금 불편합니다.
그래서 현실 인정은
현실 인식이 선행되어야 가능합니다.
무엇을 인정하자는 것인지
그 내용이 주어져야 하지요.
그것은
바로 놓여있는 것과
삐뚤어져 있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제
바로의 기준이 필요하지요.
기준이 없으면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으므로
목표와 방향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자신의 삶에
뚜렷한 방향이 서지 않으면
현실 인식은 모호하고
성장의 동기부여는 어렵습니다.
다소 불편은 있으나
지금도 지낼만 한데
변화의 필요성이 절박하지 않습니다.
변화나 성장은
항상 수고로움이 따르기에 귀찮습니다.
그러나
가야할 방향이 분명할수록
자신의 현실이 명확히 부각되지요.
현실 인정의 두번째 어려움은
회피에 있습니다.
인식이 이루어지고
다음 단계인 수긍인데
이것을 회피합니다.
주관성과 자기애가 강한 이들은
자신의 자그마한 삐뚤어짐을
수긍하기가
무척 고통스럽습니다.
이런 이들의 공통점은
결벽증인데
자신의 작은 부족함을
합리화하지요.
정상적인 범위에선
누구나 자기애를 지녔고
오히려
그래야만 건강한 마음입니다.
나르시시스트라는 과도한 자기애는
결핍과 공허에서 옵니다.
우리는
그들의 성장기와 트라우마를
살피게 되지요.
인간 존재는
성장의 구조면에서
3가지 단계로 도식화하여 살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준비된 인연들이 결합하여
인간현상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단계입니다.
유아기 때를 가리키며
이것은
하나의 씨앗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개인의 정체성 형성으로
세상이라는 환경과의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개인으로서
독립과 자긍심을 갖는 단계입니다.
셋째는
개인의 경계를 넘어
현상이
하나의 관계성이라는 안목에
도달하는 단계입니다.
물론 여기서 안목은
그런 생각이나 지식은 아니지요.
하나의 관계성이
실제화된 상태를 전체성이라 합니다.
강한 자기애를 유발하는
결핍과 공허는
건강한 정체성 형성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이라는 환경에
기본적으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원인은
사람마다 다양하겠지요.
세상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심겨지면
아무리 우호적 환경에도
자신을 개방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으로
자신의 주변에 높은 벽을 쌓고
자신에게 집착하게 되지요.
이것이
나르시시스트의 모습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갇힘입니다.
그들은
초기의 씨앗 상태로 돌아가려 하고
현재의 모습을
왜곡하거나 회피합니다.
그들을 살피면
내면에 어린아이가
항상 발견되는 이유이지요.
씨앗과 정체성과 전체성이라는
인간 성장의 구조에서
우리는
건강한 정체성의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당당함의 과정이 없다면
개인의 해체는 불가능합니다.
무아無我와 영성적 의미의 성장은
없지요.
무아無我를 멀리하고
진아眞我를 찾는 이유는
아직
건강한 정체성이 경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씨앗이
아직 건강한 개체로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목표와 현실과의 차이가
분명히 보일 때
변화와 성장이 있습니다.
검은 대지 당당히 딛고 서
세찬 바람 기꺼이 맞으니
하늘은 빛 바래 숨죽이고
파랑새들 날개짓 따르네.
..241118小野
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덕분에 행복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마하반야바라밀 현산김봉현 합장ㅅㅎㅅ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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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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