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오늘의 묵상 - 막 11:1~10
오늘의 찬송 - 37장/주 예수 이름 높이어
제목 : 나귀 새끼를 타신 겸손과 평화의 왕
예수님이 예루살렘 가까이에서 제자 둘을 보내시며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어오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주가 쓰시겠다.’하고 나귀 새끼를 끌고 옵니다. 그 위에 제자들이 겉옷을 얹고 예수님이 타시자, 무리가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호산나’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의 왕적 권위
막 1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막 11: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막 11:3 만일 누가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막 11: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막 11: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막 11: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사명을 이루실 때가 이르자 예수님은 그분의 왕적 권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이 제자 둘을 보내시며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어오라고 명하십니다(2절). 당시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는 신성한 목적에 사용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라고 묻자 나귀 주인에게 “주님이 쓰시려 하십니다.” 라고 당당하게 대답하게 하십니다(3절). 예수님은 이 일을 왕적 권한으로 명하십니다.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자요 주인시기에 어떤 것이라도 그분이 필요로 하시는 때에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나귀 새끼를 끌어오는 과정에서 나귀 주인의 온전한 순종이 돋보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만물의 창조자로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재능과 물질과 시간을 기꺼이 그분께 바칩니다.
나귀 새끼를 끌어온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왕적 권위가 어떻게 드러났나요? 지금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주님께 기꺼이 드릴 것은 무엇인가요?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
막 11: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막 11: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막 1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막 11: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예언의 성취입니다(슥 9:9). 고대에 왕은 즉위식 때 노새를 탔고(왕상 1:38), 승전 후 개선 할 때는 말을 탔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것은 그분의 나라가 로마 황제가 추구하는 ‘압제와 전쟁의 나라’가 아닌 겸손으로 세우는 ‘섬김과 평화의 나라’임을 나타냅니다.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길 위에 겉옷을 펴는 행동은 충성과 존경을 뜻하고, 손에 든 종려 가지는 승리와 번영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이 외쳐 부르는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시 118:25~26). 나귀를 타신 평화의 왕은 죄로 인해 고통당하는 인류의 구원자이십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이 말이 아닌 나귀를 타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평화의 왕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존경을 어떻게 표현하나요?
오늘의 기도
겸손의 왕이신 주님,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인생을 구원하시는 크신 은혜를 찬송합니다. 오늘도 제 삶의 중심에 주님이 임하시도록 충성의 겉옷을 펼치고 기쁨의 가지를 흔들게 하소서. ‘주님이 쓰시겠다.’라고 하시면 어떤 것이라도 내어 드리며 왕이신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