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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성장(1) : 지속가능한 '발전'과 '성장']
ㅡ 서진석
지속가능한 발전, 비판적 논의 필요
오늘날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은 환경, 경제, 사회 정책 전반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정부 정책, 기업의 경영 전략, 시민사회의 실천에 이르기까지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은 이제 하나의 시대적 기준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널리 사용되는 개념일수록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경우 단순한 구호나 수사적 표현으로 전락할 위험도 함께 존재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자는 선언이 아니라, 현재 세대의 삶과 미래 세대의 삶이 충돌하지 않도록 사회의 발전 방향 자체를 성찰하게 만드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기존의 성장 방식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우리 사회의 발전 방식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만드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은 그 자체로 완성된 해답이라기보다,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하나의 사회적 합의의 틀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개념을 피상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사회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기준으로 사용할 것인지는 우리 사회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의 정의와 그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은 단순한 이론적 논의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의 의미와 그 한계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브룬틀란 위원회 정의와 한계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개념은 1987년 UN이 지원한 브룬틀란 위원회의 보고서 『인류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보고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미래 세대가 그들 자신의 필요(needs)를 충족시킬 능력(ability)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을 의미한다.”[i] 이 정의는 이후 환경정책과 국제개발 담론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개념이 되었으며, 세대 간 형평성(intergenerational equity)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 정의는 동시에 중요한 한계를 지닌다. 브룬틀란 보고서의 개념 정의를 보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미래 세대의 선택지를 가능한 한 제한하지 않도록 할 것을 요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지속가능한(sustainable)’이라는 조건이 무엇인지는 설명하고 있지만, 정작 ‘발전(development)’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의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어떤 발전이 바람직한 발전인지, 발전의 목표가 경제 성장인지, 삶의 질 향상인지, 또는 생태적 균형인지에 대한 개념적 논의는 부족한 것이다.
생태경제학자 허먼 데일리(Herman Daly)는 일찍이 “브룬틀란 보고서의 개념 정의를 보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미래를 빈곤하게 만들지 않는 발전이라고만 되어 있다. 이러한 서술은 ‘지속가능한’이라는 단어의 뜻만을 규정하고 있다. ‘발전’의 개념 정의는 전혀 시도되지 않은 것이다”[ii]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러한 모호성은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예를 들어 기존의 경제 성장 중심 발전 모델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단지 환경 훼손만 관리하면 지속가능한 발전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고, 반대로 발전 자체의 방향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생태주의적 해석도 가능하다. 결국 발전 개념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발전은 기존 성장 중심 정책을 정당화하는 수사로 사용될 위험도 존재한다.
지속가능성과 성장 양립 가능하다는 주장
실제 브룬틀란 위원회의 『우리 공동의 미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설명하면서 한편으로는 생태적 한계를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 성장과 지속가능한 발전이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고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은 생태적으로 가능한 범위 안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합리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소비 수준을 장려하는 가치의 확산을 요구한다”고 하여, 인간의 소비가 생태적 한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는 지구의 자원과 환경 수용능력이 무한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보고서는 인간의 필요 충족을 위해 ‘공정하다’는 전제 아래 경제 성장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필수적인 필요의 충족은 부분적으로 성장 잠재력의 완전한 실현에 달려 있으며, 이러한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분명 경제 성장을 필요로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성장의 내용이 지속가능성과 타인에 대한 비착취라는 폭넓은 원칙을 반영하는 한, 경제 성장과 지속가능한 발전이 양립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높은 생산 활동 수준과 광범위한 빈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며, 이는 환경을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발전은 생산 잠재력을 높이는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요구한다.”
보고서는 성장의 내용이 지속가능성과 비착취의 원칙을 반영한다면 경제 성장과 지속가능한 발전은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서술은 현실적으로 상당한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경제 성장은 자원 사용 증가와 에너지 소비 확대를 동반해 왔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환경 부담 증가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자원 효율성을 높이고 환경 부담을 줄이면서도 경제 성장을 달성하는 이른바 ‘탈동조화(decoupling)’가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볼 때 경제 규모의 지속적인 확대와 생태적 한계의 준수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논쟁이 존재한다. 특히 모든 국가가 동시에 성장을 추구할 경우, 총체적인 자원 사용량과 환경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정책적 타협에 가까운 브룬틀란 보고서
이러한 점에서 보면 브룬틀란 보고서의 논리는 하나의 규범적 이상 또는 정책적 타협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즉 환경보호의 필요성과 경제 성장의 요구를 동시에 포괄하려는 시도이지만, 두 목표 사이의 구조적 충돌 가능성까지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생태적 한계 안에서 소비해야 한다는 주장과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는 조화될 수 있다고 제시되지만, 현실에서는 상당한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가능한 매우 제한적인 경우일 수도 있다.
결국 이러한 논의는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이 가진 근본적인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든다. 즉 과연 지속가능한 발전이 기존의 성장 중심 발전 패러다임을 수정하는 개념인지, 아니면 그것을 유지하면서 환경적 제약을 부분적으로 반영하려는 개념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만약 생태적 한계가 절대적인 조건이라면, 성장 자체의 속도와 규모를 조정하는 논의까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현실적 전략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키려는 선언적 구호에 머물 위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은 중요한 정책적 방향을 제시했다는 의의가 있지만, 동시에 성장과 생태적 한계가 과연 동시에 충족될 수 있는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남긴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미래세대에 대한 고려를 넘어서 발전 자체의 내용과 방향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즉 발전을 단순한 경제적 성장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형평성, 생태적 한계, 삶의 질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은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동시에 발전의 의미 자체를 다시 묻도록 만드는 비판적 논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허먼 데일리의 ‘지속가능한 발전’ 정의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이 현실에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미래세대에 대한 배려를 선언하는 수준을 넘어, 발전의 물질적 조건과 생태적 한계를 보다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생태경제학자 허먼 데일리(Herman Daly)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보다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기준에서 재정의하려고 했다.
생태경제학자 허먼 데일리(Herman Daly, 1938~2022)
데일리에 따르면 지속가능한 발전의 핵심 조건은 경제활동의 규모 자체가 생태계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는 경제활동에 대한 요구가 생태계가 원재료라는 ‘투입(input)’을 재생하고, 경제활동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이라는 ‘산출(output)’을 흡수할 수 있는 수준, 즉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제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단순한 성장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규모 자체가 생태적 한계 안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주장이다.[iii]
이러한 맥락에서 데일리는 경제의 ‘처리량(throughput)’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에 접근한다. 처리량이란 원자재의 투입에서 시작하여 생산과 소비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폐기물로 배출되는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 전체를 의미한다. 그는 이 처리량을 생태계가 가진 재생력과 폐기물 흡수능력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경제 규모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보았다. 즉 지속가능성의 문제는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가 자연에 대해 요구하는 총량의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데일리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핵심 질문을 선진국의 책임 문제로까지 확장한다. 그는 선진국들이 현재의 높은 자원 사용 수준을 그대로 유지한 채 지속가능성을 달성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자원의 사용 수준을 시민들의 좋은 삶을 유지하는 데 충분하면서도 동시에 환경의 수용력 이내로 제한할 수 있는지가 지속가능한 발전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단순히 기술 혁신이나 효율성 개선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 수준과 경제 규모에 대한 사회적 선택의 문제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데일리의 논의는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을 보다 엄격하게 만든다. 즉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단순히 성장과 환경을 조화시키는 선언적 개념이 아니라, 경제활동의 물질적 규모를 생태적 한계 안으로 제한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성장의 방식만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성장의 속도나 규모 자체를 재검토하는 문제까지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경제성장과 환경보호가 양립할 수 있다는 추상적 선언을 넘어, 경제의 물질적 처리량을 어떻게 생태적 한계 안으로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허먼 데일리의 논의는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을 보다 현실적이고 측정 가능한 기준 위에 올려놓으려는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으며, 동시에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성을 진지하게 추구하기 위해 반드시 검토해야 할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경제-환경 관계에 대한 사고의 전환
허먼 데일리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경제의 처리량을 생태계의 재생력과 흡수력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고 정의하는 이유는, 그가 경제와 환경의 관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세계관에서 출발한다. 그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경제를 생태계의 일부로 보는 관점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데일리에 따르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단순한 정책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의 전환을 전제로 한다. 즉 경제가 생태계와 분리된 독립적인 체계가 아니라, 생태계 안에 포함된 하위 시스템이라는 인식이 없다면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를 생태계 내부의 부분 체계로 보는 순간, 경제활동은 더 이상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위 체계인 생태계의 한계에 의해 제약받는 활동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iv]
이러한 관점에서 데일리는 경제 바깥에 환경이라는 경계선을 긋는 것이 갖는 의미를 강조한다. 환경이라는 경계를 설정하는 순간, 경제가 영원히 팽창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동시에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 경제학이 전제해 왔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라는 암묵적 가정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관점은 경제활동을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물리적 현실 속에서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즉 경제적 생산에 필요한 자원은 어디선가 반드시 들어와야 하며,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 역시 어디론가 배출될 수밖에 없다. 데일리는 이를 통해 우리가 무한한 자원과 무한한 폐기물 처리 능력을 가진 것처럼 경제를 이해하던 세계에서 벗어나, 유한한 환경 속에서 자원의 고갈과 환경 오염이라는 현실적 제약 속에 놓인 경제를 인식하는 세계로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생태계를 경제에 저엔트로피(low entropy)의 유용한 자원과 에너지를 제공하는 공급자이면서 동시에 경제활동이 만들어내는 고엔트로피(high entropy)의 폐기물을 흡수하는 수용체로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경제의 성장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숙주와 같은 상위 체계인 생태계의 크기와 수용능력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경제가 성장할수록 그것이 의존하고 있는 생태계의 부담 역시 함께 증가하게 되며, 결국 생태계의 한계는 경제성장의 궁극적인 한계로 작용하게 된다.
이처럼 허먼 데일리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경제 규모의 생태적 제한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이유는, 지속가능성 문제를 단순한 효율성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자연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인식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단순히 환경 친화적인 성장 전략으로 이해하기보다, 경제를 생태계의 일부로 재위치시키는 사고의 전환으로 이해해야 함을 보여준다.
결국 데일리의 논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경제를 더 효율적으로 성장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의존하고 있는 생태적 기반 안에서 그 규모와 방향을 조정하는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외부성’에 깃든 오도된 세계관
이러한 세계관은 허먼 데일리만의 주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최근 탈성장(degrowth) 논의를 이끌고 있는 제이슨 히켈(Jason Hickel) 역시 같은 맥락에서 현대 경제가 환경 문제를 어떻게 인식해 왔는지를 비판한다. 그는 주류 경제학이 환경 문제를 ‘외부성(external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 자체가 이미 경제와 자연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세계관을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히켈에 따르면 우리는 폐기물, 오염,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들을 외부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이 인간의 경제활동과는 본질적으로 분리된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경제가 실제로는 자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 파괴를 경제 시스템 바깥의 문제처럼 취급하게 만든다. 이는 결국 경제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비용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v]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히켈 역시 생태경제학의 관점을 따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제활동에 대한 명확한 한계 설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원과 에너지 사용에 대해 ‘강한 한계(hard limit)’를 설정하고,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 한계선 안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 기준을 점진적으로 낮춰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경제가 생태적 한계 안에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데일리의 주장과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특히 히켈은 이러한 한계 설정이 결코 비현실적이거나 급진적인 발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미 우리는 최저임금제도, 아동노동 금지, 노동시간 제한과 같은 다양한 제도를 통해 시장과 자본의 활동에 사회적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이는 시장이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들이다. 이러한 논리를 확장한다면, 자본이 자연을 무제한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환경적 한계를 설정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필요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히켈의 주장은 지속가능한 발전 논의를 더욱 분명한 방향으로 이끈다. 즉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친환경 기술을 도입하거나 효율성을 높이는 것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활동 자체가 넘지 말아야 할 생태적 경계선을 설정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결국 지속가능한 발전이 성장의 방식만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규모와 자원 사용 수준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허먼 데일리와 제이슨 히켈의 논의는 공통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 경제를 생태계 안에 위치시키는 세계관의 전환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경제성장과 환경보호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추상적 목표가 아니라, 경제를 지구 생태계의 물리적 한계 안에 위치시키려는 구체적인 사회적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발전’과 ‘성장’에 대한 구분부터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과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을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는 경향이다. 일상적인 정책 담론이나 기업의 ESG 전략, 심지어 학술적 논의에서도 이 두 용어는 종종 같은 의미처럼 사용된다. 그러나 생태경제학자 허먼 데일리는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지속가능성 논의 자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데일리에 따르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환경의 수용력을 넘어서는 성장을 하지 않으면서 이루어지는 발전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발전과 성장이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는 성장을 물질과 에너지의 동화 또는 축적을 통한 양적인 증가로 정의하는 반면, 발전은 잠재력을 실현하고 질적으로 향상되는 과정으로 구분한다. 즉 성장은 경제의 물리적 규모가 커지는 것을 의미하고, 발전은 경제의 질적 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분은 지속가능성 논의에서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만약 발전을 단순히 성장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한다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결국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모순적인 표현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유한한 생태계 안에서 물질적 규모의 지속적인 확대는 결국 환경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무한한 양적 성장이 가능하다는 가정보다는 성장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질적 발전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경제 규모의 무제한적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질적 성장에는 일정한 한계를 설정하면서도 인간의 삶의 질, 기술의 효율성, 사회적 형평성, 제도의 성숙과 같은 질적 요소들을 향상시키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식으로 생산하고 더 나은 삶을 실현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발전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지속가능성 논의의 출발점은 성장과 발전을 구분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성장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생태적 한계 안에서 제한되어야 하며, 그 대신 발전은 성장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는 질적 변화의 과정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구분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발전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현실적인 방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성장’과 ‘발전’의 관계
허먼 데일리는 이러한 성장과 발전의 차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일상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컴퓨터 산업을 생각해 보면, 컴퓨터의 성능이 향상되고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은 질적인 향상이라는 점에서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사회 전체에서 사용되는 컴퓨터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은 물리적 규모의 확대라는 점에서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같은 경제 영역에서도 질적 향상과 양적 확대는 서로 다른 차원의 변화이며, 지속가능성 논의에서는 이 둘을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vi]
데일리는 특히 성장을 경제의 물질적 처리량(throughput)의 증가라는 점에서 설명한다. 즉 성장이란 단순히 GDP와 같은 화폐적 지표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 자체가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처리량은 저엔트로피 상태의 유용한 자원이 생산과 소비 과정을 거쳐 결국 고엔트로피 상태의 폐기물로 전환되는 일방향적인 흐름을 가진다. 다시 말해 경제의 물질적 처리량은 자원의 소모로 시작하여 환경 오염이라는 결과로 끝나는 물리적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성장은 결국 자연으로부터 더 많은 자원을 가져오고, 동시에 더 많은 폐기물을 자연으로 되돌려보내는 과정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장이 계속될수록 생태계에 가해지는 부담 역시 증가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생태계의 재생 능력과 환경 수용 능력이라는 한계에 의해 제약될 수밖에 없다.
반면 데일리가 말하는 발전은 이러한 물질적 처리량이 무한히 증가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어진 생태적 한도 안에서 자원과 에너지를 사용하면서도 기술, 제도, 조직, 삶의 질 측면에서 질적인 개선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같은 양의 자원으로 더 높은 삶의 질을 달성하거나, 더 적은 자원으로 같은 수준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변화 역시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데일리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성장 없는 발전(development without growth)’이라는 표현으로 간결하게 설명한다. 이는 환경의 재생 능력과 폐기물 흡수 능력을 넘어서는 처리량의 증가 없이도 이루어지는 발전을 의미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물질적 규모의 확대를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 한계 안에서 경제의 질적 성숙을 추구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우리가 지속가능성을 논의할 때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늘려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해준다. 즉 줄여야 할 것은 무한한 물질적 성장에 대한 의존이며, 늘려야 할 것은 삶의 질, 사회적 형평성, 기술의 효율성, 그리고 제도의 성숙과 같은 질적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은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발전을 구분하고 발전의 의미를 질적 향상으로 재정의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구분하지 않을 경우 혼란만 야기
허먼 데일리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이미 성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적·사회적 비용이 성장으로 얻는 생산의 편익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렇다면, 더 이상의 성장이 반드시 더 큰 사회적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기존의 전제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정치인과 경제학자들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경제성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당연한 목표로 간주해 왔다. 그 결과 ‘지속가능한 성장’과 같은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는 성장과 발전이라는 서로 다른 개념을 명확한 구분 없이 혼합하면서 지속가능성 논의를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데일리가 강조하듯이 성장과 발전은 서로 다른 과정이다. 성장은 물질적 규모의 양적 증가를 의미하는 반면, 발전은 질적인 변화와 잠재력의 실현, 그리고 더 나은 상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두 과정은 때로 함께 나타날 수도 있지만, 반드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생태적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는 성장이 없이도 발전은 가능하며, 오히려 그러한 방향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결국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아니라, 성장에는 생태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질적 발전은 계속 추구할 수 있다는 보다 명확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발전은 선언적 구호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방향을 제시하는 실질적인 원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에서의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이러한 논의를 기업의 경영 현실로 가져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특히 기업의 영역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보다는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이라는 표현이 훨씬 더 빈번하게 사용되어 왔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매출과 이익의 확대, 즉 성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지속가능성 개념은 중요한 긴장에 직면하게 된다.
만약 성장이 물질적 처리량의 증가를 의미한다면, 기업이 말하는 지속가능한 성장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그것은 단순히 환경 영향을 줄이면서도 계속해서 매출과 생산을 확대하겠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성장의 방식 자체를 재정의하겠다는 의미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지속가능한 발전과 지속가능한 성장의 구분 문제를 기업 경영의 맥락으로 가져오는 순간, 이론적 논의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어려운 질문들이 등장하게 된다.
특히 기업은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성장을 포기하거나 제한하는 선택이 실제로 가능한가라는 질문도 함께 제기된다. 동시에 지속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무한한 양적 확대를 당연한 목표로 삼는 기존의 경영 논리 역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일부 기업들은 성장의 의미 자체를 다시 정의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다음에서는 파타고니아가 성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파타고니아는 “우리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선언하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성장 논리와는 다소 다른 관점을 제시해 온 기업으로 자주 언급된다. 이 기업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기업이 말하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좀 더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계속)
[i] 『Our Common Future』 (UN, 1987) 37p
[ii] 『성장을 넘어서 : 지속가능한 발전의 경제학』 (허먼 데일리, 2016, 열린책들) 14p
[iii] 『성장을 넘어서 : 지속가능한 발전의 경제학』 11p, 15p, 56p
[iv] 『성장을 넘어서 : 지속가능한 발전의 경제학』 23p, 24p, 67p
[v] 『적을수록 풍요롭다 : 지구를 구하는 탈성장』 (제이슨 히켈, 2021, 창비) 119p, 292p
[vi] 『성장을 넘어서 : 지속가능한 발전의 경제학』 57p, 64p, 134p
#지속가능한발전 #지속가능한성장 #생태경제학 #허먼데일리 #브룬틀란보고서 #인류공동의미래
□ 필자 소개: 서진석
이노소셜랩 근무, 비랩코리아 이사,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이사,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행동주의 기업』,『Next CSR Patagonia』(공저),『착한 기업을 넘어』,『전환의 시대, 사회공헌을 다시 묻다』(공저)
□ 출처:
https://m.blog.naver.com/campsis/224242113846?fbclid=IwdGRjcAQ_z5BjbGNrBD_PjGV4dG4DYWVtAzEwMABzcnRjBmFwcF9pZAwzNTA2ODU1MzE3MjgAAR4ZLSh574u-tk_n-tq0QQb_OpZhrqIwqvhLh_kZXDN-4qrkgiad9eGpB_F1cQ_aem_epXQmHnAWUqvr0MkfVKyhQ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