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인터넷은 ‘북한 식당의 김태희’로 뜨거웠다. 우리 김태희가 북한 식당에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북한 식당의 여종업원 이야기였다. 김태희를 꼭 닮아 그만큼 예쁜 그녀의 사진이 숱한 클릭을 끌어모았다. 네티즌은 ‘여신 강림’이라고 이름을 달아줬다. 식당은 캄보디아 시엠리아프에 위치한 북한 ‘랭면관’이었다.
다니다 보면, 이곳만이 아니다. 중국 상하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베트남 호찌민, 그리고 또 어느 나라 어느 도시. 북한 식당의 종업원들은 한결같이 미인이다. 개중에는 정말 빼어난 미모도 있다. 김태희뿐 아니라 신민아·송혜교·전지현이 있는 것이다.
평양관, 옥류관, 혹은 청류관. 이름만 보아도 북한 식당임을 알 수 있는 이곳의 종업원들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된다. 물론 예뻐야 하고, 성분도 좋아야 한다. 그래서 대개 평양 출신이고, 북한에선 유력한 집안의 딸들이다. 당연히 애국심도 당성(黨性)도 투철하다. 그 위에 호된 사상교육이 출국 전 한번 더 덧붙여진다.
그래도 북한 당국은 불안하다. 북한에선 볼 수 없었던 온갖 화려한 문명과 꿈도 꾸지 못했던 자유의 문화가 호기심 많은 젊은 처녀들의 눈동자를 붙들어 매고 마음을 설레게 유혹할 것이므로. 그래서 혹시라도 자본주의 바람에 물들까 매일, 그리고 매주 ‘총화’를 한다. 식당 자체가 숙소여서 함께 먹고 자기까지 한다. 비용을 아끼려는 탓도 있겠지만, ‘호상(互相) 감시’의 이유가 더 크다. 그만큼 마음을 놓지 못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미 식당 안은 자본주의 남한으로 가득한 지 오래다. 세계 어느 곳의 북한 식당이든, 어쩔 수 없이 주된 고객은 ‘원쑤 남조선’ 사람들이다. 외화벌이를 나왔지만, 정확히는 ‘원화벌이’인 것이다. 그래서 남한은 단지 돈벌이 대상일 뿐이라고 철저히 교육한다. 얼마 전 들른 동남아의 북한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홀에는 남한 사람이 전부였다.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천장에 달린 대형 모니터는 LG전자였다. 냉장고엔 ‘처음처럼’이 가득했다. 오히려 ‘평양소주’는 몇 개 되지 않았다. 게다가 소주잔엔 ‘참이슬’, 맥주잔엔 ‘카스’ 로고가 선명했다. 북한 식당에서 남한 판촉물이라니, 난 기분이 묘했지만 정작 그녀들은 영업에 바쁠 뿐이었다. 하긴, 매달 정해진 송금액을 채우는 것이 최고 목표인 상태에서 남한 손님이든 남한 물건이든 무슨 상관이랴.
그녀들은 억척같이 주문을 받았다. “일행이 여럿인데 고만큼만 시키십네까? 아무래도 모자랄 텐데, 아예 더 시키시라요.” 이효리를 닮은 종업원이 생글거리며 메뉴를 계속 펼쳐 보였다. 먹어보고 부족하면 더 주문하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다른 종업원까지 다가와 주문을 부추겼다. 최대한 매상을 올리려는 내색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여름철엔 단고기가 최곤데, 한번 드시지 않으시렵네까?” 못 먹는다고 하자, 대뜸 답이 돌아왔다. “단고기도 못 드시면 그게 무슨 남잡네까?” 듣기에 따라선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손님이 싫다는데, 자꾸 주문을 더 하라고 들이대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급기야 우리 중 하나의 안색이 변했다. 그러자 다른 일행이 말렸다. “참아. 효리잖아.” 우린 웃었고, 그렇게 그 순간이 지나갔다.
잠시 후 여느 북한 식당들처럼 그녀들은 공연을 시작했다. 드럼에 건반과 베이스 기타. 조촐한 구성이었다. 예쁜 얼굴만큼 고운 목소리로 우리 옛 가요들을 노래했다. 손님들이 남한 사람뿐인 탓이리라. 심지어 놀랍게도 남한의 현대 가요인 ‘칠갑산’까지 불렀다. 식사가 끝나가자, 그녀들이 다가왔다. “입가심으로 시원한 랭면 하나씩 드시라요.” 배부르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국수 배는 따로 있다지 않습네까?” 기어코 이번에는 추가 주문을 받겠다는 완강함이었다. 남북의 체제도 대결도 없었다. 염치도 없었다. 다만 돈만 있을 뿐이었다. “돈 벌려고 아주 환장을 했군.” 아까 화를 참았던 일행이 드디어 폭발했다. “아예 동냥 그릇을 내놓지 그래.” 우리는 당황해서 그를 앉혔다. 그리고 어차피 다 먹었겠다 서둘러 식당을 나왔다.
마음이 서먹하게 갈라졌다. 그녀들의 무례에 화가 났고, ‘이효리’를 그렇게 만든 북한의 현실이 슬프기도 했다. 정색을 하고 항의했어야 하는 건가, 애써 참은 것이 잘한 것이었나, 아니면 이럴 바엔 애초에 가지 말았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복잡하게 뒤섞였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거시적인 문제에 대한 어지러움이기도 했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