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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주일 후 첫 날을 주셨습니다.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오늘도 무척 더울 것 같습니다.
밤새 더워서 에어컨을 켜고 잠을 잤는데 지금도 많이 덥습니다.
날씨와 환경에도 이렇게 민감하여 반응하건만 성령에 더욱 민감한 자가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옛 사람으로 행하는 자기주장의지는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이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주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항상 성결하여야 함과 같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워주신 주의 자녀들이 성령에 더욱 민감하여 성결함을 잘 유지할 수 있게 장악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6:1-14
제목 : 도끼가 어디에 빠졌느냐?
1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3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하리라 하고
4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5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6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7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8 그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9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10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11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12 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호하나이다 하는지라.
13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 나의 묵상
선지 생도들이 엘리사와 함께 거하는 장소가 좁아서 불편을 호소하면서 요단에서 나무를 취하여 요단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에 엘리사는 그들이 요청을 수락한다.
그리고 엘리사가 함께 동행해 줄 것을 바라는 생도들의 요청도 수락한다.
엘리사와 선지 생도들이 요단에 도착하여 나무를 베기 시작하였다.
한 생도가 나무를 벨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연못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생도가 말하기를 자신의 도끼는 빌려온 것이라며 다급한 상황을 엘리사에게 호소하였다.
엘리사는 도끼가 빠진 곳이 어디인지 물은 후에 나뭇가지를 꺾어 그곳에 던졌다.
그랬더니 빠졌던 도끼가 물 위로 떠올랐다.
이에 그 생도가 엘리사의 말에 따라 떠오른 도끼를 취하였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싸워 정복하기 위하여 전략을 수립한다.
이에 대하여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아람 군의 진출입로를 알려주며 방비하도록 알려준다.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의 말대로 방비하여 아람 왕의 공격을 매번 막아내었다.
이에 대하여 아람 왕은 마음이 불안하여 자신들의 신하들을 불러 그들 중에 이스라엘과 내통하는 첩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신하들 중 하나가 작전 실패의 원인이 첩자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한 말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아뢴다.
이에 아람 왕은 수소문하여 엘리사가 도단에 있다는 것을 알고 엘리사를 체포하기 위하여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 한 밤중에 그 성을 포위한다.
크고 견고한 성 여리고를 정복한 이스라엘의 다음 목표는 아이 성이었다.
그 성은 작고 인구도 많지 않아서 이삼천 명만 보내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전쟁의 결과는 패배였다.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장로들과 함께 증거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날이 저물도록 슬퍼하며 있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기를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려 있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도둑질하여 속였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다음 날 일찍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나오게 하여 유다 지파를 뽑았고, 그들 중에 족속대로 나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으며, 그들 중 각 남자를 나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중 각 남자를 나오게 하였더니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다.
여호수아는 아간과 그가 숨긴 물건들과 그의 아들딸들과 그에게 속한 모든 재산들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돌로 치고 불살랐다.
이처럼 죄의 근원을 찾아내어 그 뿌리를 제거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게 되었다.
문제의 발단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주님은 계시록 2장에서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시는데 그 이유가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계 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어디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그 근본 원인을 생각하고 찾아서 회개하고 다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한 선지 생도가 도끼질을 하다가 빌려온 도끼를 물에 빠트리고 말았다.
지금이야 도끼 한 자루 잃어버린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당시는 도끼를 쉽게 구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 가격이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빌려온 도끼를 잃어버린 사람은 안절부절이었던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도끼가 어디에 빠졌느냐?” 하고 묻는다.
선지생도가 그 빠진 곳을 가리키니까 엘리사가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서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한 것이다.
생도는 기뻐하면서 그 도끼를 집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삶의 여정에는 이처럼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왜 그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아는 것이다.
문제의 근본 원인을 알 때 해결 방안이 나온다.
사람들은 누구나 죄를 짓는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모두 죄를 짓지만 대부분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고 그에 대해서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하지만 믿는 자들은 크든 작든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자각하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문제는 지은 죄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믿는 자라도 대부분 죄를 해결할 때 자기가 지은 목록적인 죄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용서를 구하여 주님의 보혈로 용서를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 못 가서 또 그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결국 죄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죄 짓고 회개하고 용서받고 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죄를 지으면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로 용서받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죄를 끊지 못하면 이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다른 종교에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짓고 회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반복될 때 다른 종교인들과 다를 바가 없으며 무엇보다 삶에서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내가 짓는 죄의 근원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죄를 지으면 그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또 이 몸이 죄를 지었다고 한탄하고 몸을 학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죄를 짓는 죄의 몸에 있지 않다.
그것은 보다 근본적인 곳에 있는 것이다.
죄의 몸은 아직 구속받지 못한 불완전한 상태의 몸이다.
(롬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따라서 이 몸은 가만 놔두면 당연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죄를 짓는 것은 이 몸뚱아리(헬,소마)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이 죄를 짓는 죄의 몸을 지배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옛 사람이다.
이 옛 사람은 눈에 보이는 존재가 아니라 아담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이다.
그래서 이 옛 사람은 죄의 몸을 지배하여 끊임없이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옛 사람은 또한 죄의 세력(SIN)의 지배를 받는다.
죄의 세력(하마르티아)은 권세, 힘을 가지고 있어서 내 안에 있는 죄를 짓고자 하는 본성인 옛 사람을 주장하여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 옛 사람이 죄의 몸을 지배하여 결국 죄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다.
정작 본인은 죄를 짓는 죄의 몸에 집중하지만, 죄를 짓게 하는 근본적 원인은 죄의 몸이 아니라 죄의 세력에 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죄의 세력을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죄의 세력의 지배를 받는 죄를 짓고자 하는 아담 안에 있는 본성인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죄의 세력이 주장할 대상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죄의 세력은 자연스럽게 무력하게 된다.
그리고 죄의 몸은 장애자 선언을 하여 죄의 몸조차도 죄의 세력에 지배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죄의 몸에 장애자 선언을 하는 것은 나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죄의 몸에 장애자 선언을 하는 것은 왕의 명령(케리그마)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선택사항이 아닌 것이다.
왕의 신하가 어명으로 사약을 받으면 그 사약을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어명, 즉 왕의 명령이기 때문에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에 장애자 선언을 하는 것은 나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명령인 주님께서 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순종하고 그에 따르면 된다.
(막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일을 매일 하지 않으면 우리는 매일 죄를 범하는 일과 회개하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나 이 일을 매일 하게 되면 우리에게서 죄를 짓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게 되며, 결국 죄를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죄를 지은 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죄를 짓게 하는지 그 원인을 밝히 알아야 한다.
죄에 대하여 무지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나는 이런 죄에 대하여 무지한 자였다.
그래서 맨날 죄를 짓고 또 그 죄를 회개하기 위하여 울며불며 기도하였다.
그런데 그 죄를 끊기 원하지만 죄는 계속 반복되었다.
내가 이 십자가 복음을 몰랐더라면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죄의 세력을 알고 그 죄의 세력에 지배당하는 옛 사람의 존재를 알고 보니까 내가 그동안 알지 못하여 악순환을 반복하였던 내가 너무도 불쌍하게 보였다.
이제 죄의 세력을 밝히 보고 매일 아침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죄의 몸은 불구자 선언을 하여 불의의 무기로 쓰임받던 몸을 이제는 의의 무기로 주님께 드린다.
(롬 6:12-13)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 묵상 후 기도
주님...
십자가 복음을 알게 하셨음을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십자가 복음에 머물지 않고 장사 복음과 부활 복음으로 나아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고백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죄의 권세 아래 있던 자가 이제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 안에 있음이 복이 되었나이다.
죄의 쳇바퀴에 휘둘려 넘어지고 쓰러져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실존(失存)이 이제는 주의 품안에 거하는 실존(實存)이 되었나이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나의 옛 사람은 죽었고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무덤에 장사됨으로 그 안에서 성소를 짓고 새 생명을 얻게 되었나이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에 연합하여 일으키심을 받아 이제는 새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의 권세가 이제는 나의 권세가 되었기에 그 권세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주님의 품안에서 안식과 평안을 누립니다.
내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는 것은 내가 주님의 품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내 영혼은 주님과 함께 춤을 춥니다.
영원을 잇대어 살아가는 나에게 영생이 임하고 주의 영광을 보나이다.
나는 참으로 자유하며 행복한 자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