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분열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룩한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은 사상 최강의 국력을 자랑했다. 열도 전체가
일본이라는 깃발 아래 단결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 뿐 아니라, 당시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걸출한 영웅까지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당시 세계 최고 화력의 조총을 앞세우고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고, 나가 중국대륙을 차지하고 유럽까지 진출하겠다는 야심찬
침략주의를 꿈꾸고 있었다. 현재 아베집단도 그러한 망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문제는 선조 당시나 지금의 우리 모두 일본을 너무 얕보다가 큰 코 다친다는 사실이다. 독도는 우리땅하면서 실제 해군력에서는 일본에 뒤진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선조 당시도 평소 해군력을 강화하여 일본침략에 대비한 충무공 이순신과 전국적인 의병활동이 없었다면 이미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우리말과 글을 잊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평소에 철저하게 준비하는 유비무환의 정신과 자세가 안되어 있다면 식민지는 언제든지 당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에 비해 구한말의 한일전은 너무 싱겁게 종결되었다. 일본이 조선보다
먼저 개방하고 과학기술이 앞세워 근대화와 제국주의을 앞세운 점에 비해
당시 조선은 쇄국주의 정책으로 지금의 북한처럼 개방개혁이 늦어 버려
일본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일본이 청나라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하자, 근대화를 이루고 있던 조선은 그냥 먹히고 말았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우리는 서민대중과 특권층의 관계를 꼽을 수 있다. 임란이 벌어진 16세기에는 조선의 서민대중과 특권층이 상호 화합한 데 반해, 구한말 즉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임란이 벌어지기 25년 전인 1567년, 조선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선조 임금의 즉위를 계기로 조선의 지배층이 질적으로 바뀐 것이다.
훈구파라 불린 종래의 지배층은 각종 정변에서 승리를 거둔 공신세력으로 구성되었다. 그에 비해 사림파라 불린 새로운 지배층은 정상적인 정치
시스템을 밟고 정권을 장악한 선비세력으로 구성되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잘 나타나듯이, 정변이나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세력은
원칙보다는 힘을, 공정성보다는 부정부패에 기울기 쉽다. 훈구파는 그런
특성을 띠었기 때문에, 16세기에 이르러 보다 건강하고 진보적인 사림파의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훈구파에 비해 건강하고 진보적인 세력이었기에, 사림파는 무엇보다 지역
사회를 보다 더 확실히 장악할 수 있었다.
16세기의 서민대중이 사림파를 신뢰했다는 점은, 사림파가 주도한 범국민 캠페인인 향약운동이 널리 파급된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서민대중의 신뢰를 받는 사림파가 정권을 장악한 뒤로부터 25년 뒤에 임란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그나마 전쟁에서 조선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설명해준다. 그만큼 개방개혁을 주도하는 정치세력이 권력을 장악해야 나라가 부강해지고
외침을 통한 식민지를 당하지 않고 자기집단과 자기지역의 기득권만 차지하겠다는 쓰레기같은 반동분열정치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외침과 식민지의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에 망국의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대칸이 영남편중.영남독재 정치를 증오하고 거기에 동조하는 영패세력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 정치집단이 호남편중 호남독재세력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사림파가 그보다 훨씬 먼저 정권을 장악해서 일찌감치 부패해 버렸거나
아니면 훈구파가 임란 당시까지도 계속 권력을 잡았다면, 전쟁이 어느 방향으로 전개되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행히도 서민대중과 호흡하는 젊은 지배층이 충무공 이순신같은 군사전문가를 기용하여 전쟁을 주도했기에, 조선은 조총을 앞세운 일본군을 몰아낼 수 있었다. 특히, 사림파가 서민대중을 의병투쟁으로 끌어들인 것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 요인이었다.
조선은 정부군의 열세를 의병투쟁으로 보완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고인 물이 부패하는 것 처럼 사림파도 부패하고 보수적이 되었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꽤 혁신적인 세력이었다. 서민대중이 그들을 믿고 의병투쟁에 나선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논어(論語)자로편에 이르기를 급히 서둘지 말고 작은 이득(利得)을 보려다가
큰 일을 이루지 못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년 4월 13일(음력). 임진란이 발생했다. 우리는 그간 일본이
‘느닷없이 습격했다’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선조 23년(1590) 조선에서 통신사 황윤길(黃允吉)과 부사(副使)
김성일(金誠一)을 일본으로 보낸 것 자체가 일본이 실제 침략할 것인지 알아 보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 통신사는 이듬해 봄 귀국하는데, 유성룡(柳成龍)은 『징비록(懲毖錄)』에서
“황윤길은 부산으로 돌아오자 시급히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다”고
전한다.
황윤길은 선조에게 복명(復命)할 때도 마찬가지로 보고했다.
그러나 조선의 군신(君臣)들은 “그러한 정세가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라는 김성일의 보고를 더 믿고 싶었다. 조사단장의 보고는 무시하고 부단장의 보고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장유(張維)가 쓴 『오억령(吳億齡) 묘지명』에 따르면 전쟁 발발 1년 전인 선조 24년(1591) 부산에 온 일본 사신 현소(玄蘇)를 접대했던 선위사(宣慰使) 오억령은 “일본이 내년에 쳐들어올 것”이라고 보고 했다가 해임되었다.
『연려실기술』은 ‘이 때 국사를 담당하는 자들은 왜병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한쪽 말만 주장했기 때문에 오억령을 교체시켰다’고 전하고 있다. 있는 현실은 외면하고 보고 싶은 허상을 현실로 믿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 경보가 계속되자 불안해진 조정은 신립(申砬)과 이일(李鎰)에게 지방
군기 검열을 맡겼다.
임란 발발 13일 전인 4월 초하루 신립은 왜군이 쳐들어올 경우의 대책을 묻는 유성룡의 질문에 “그것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간단하게 대답했으나, 결국 왜군에 무참히 패하고 말았다.
구한말에도 일본에 맞선 의병투쟁이 있었지만, 나라를 구하는 데는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구한말 전쟁에는에는 서민대중과 특권층의 화합이 없었던 탓에 의병투쟁에 대한 서민들의 호응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전면전도 없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19세기에는 전정·군정·환곡 즉 삼정의 문란, 다시 말해 조세 수취체제의문란이 가속화되었다. 서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데도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각종 세금을 뜯어 갔던 것이다.민심위반으로 동학농민봉기가 일어 났던 것이다.
그런데도 특권층은 이를 외면하고 부를 축적하는 데만 골몰했다. 사정이 이러 했으니, 서민대중이 독자적 생존을 위해 전국 곳곳에서 민란을 일으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서민 중심의 사회개혁운동인 동학농민전쟁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동학농민군이 정부군+일본군+민병대(양반 중심)의 연합작전에 의해 짓밟힘에 따라 서민과 특권층의 상호 반목은 한층 더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군과 양반 민병대가 일본군과 손잡고 동족을 진압하는 양상까지 벌어 졌으니, 나라가 안 망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멸망은 사실상 자살골 때문이었다.
첫댓글 맞다. 하나 더 추가해라 신라.이씨조선 그리고 대한민국....
민족의 역사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꼴통나라이다.
병신도 육갑하면 지랄할수 있다는데 꼭! 너를 두고 하는 말임을 명심해라..
국가라는 건 하늘의 흐름이 주어져야 계속되는데, 그게 끊기면 상하가 모두 부패해서 저절로 망하게 된다는 이치이지요. 중국이 1~200년마다 부침하는 건 이 천기가 없기 때문이지요.
신라야 고려로 이어지는 종교중심으로 보면 별 무리없고 새로운 방향이 조선으로 나타났는데 세종의 바램이 우리에게서 사라지자 저멀리 서양에서 르네상스로 나타나 빛을 발하게 됩니다.
세종이 한 일과 르네상스 전체의 방향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합니다.
왜곡.굴절된 역사만 알고 있네요~ 임란당시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와 서세동점의 역사를 좀 알필요가 있네요!!
현대사 또한 님이 말하는 조선의 멸망이 아니라~ 기실 중국의 멸망이라 보시면 정확할듯요
신라왕조는 골품제로 흉노집단만 다 해 쳐 머겠다는 집단적 탐욕구조와 부패때문에 민심을 상실하여 망한 것이고, 조선왕조는 4색 당쟁의 증오.반대정치로 국론이 분열되고, 서양의 과학기술을 뒤늦게 수용하였고,내부개혁이 일본보다 늦어서다..그래서 국가공동체와 민생을 중시하는 개방개혁집단이 국가운영을 주도해야지. 영패정치세력처럼 집단-지역의 탐욕에 혈안이 된 수구꼴통들이 국가를 운영하면 나라망하는 건 시간문제다.
니말대로라면 우리나라도 곧 망하겠네 이제 누구를 빨고살래?
하루 일기를 보면 우산이 필요하고, 비를 피할 수 있고
계절 시계를 보면 담장을 수선하여 태풍을 막는 힘이 생기지요
허나 하루날씨와 계절이 묶여서 년이 되고 시절되 세월 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