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면 바람나고 싶다'고 한 이가 정해종 시인이었던가.
하루가 다르게 기운이 짙어오는 연록의 숲을 바라보며 나도 바람이 되어 산벚꽃 지기 전에 화행(花行)이라도 한 번 다녀와야 겠다고 마음 속 다짐을 해대던 참이었다. 충북 보은이 고향인 오장환 시인의 시집 '나 사는 곳'이 단양 기행의 텍스트로 정해지면서 책을 구해야겠단 생각을 아니한 건 아니나 막상 서점에 들어서면 책이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는 핑계로 서점을 나설 땐 나의 손엔 새로 나온 식물도감이나 꽃, 나무에 관한 책이 들려 있기 일쑤였다. 기행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다고 타박을 한다해도 달리 할 말은 없지만 굳이 오장환의 시집을 구해 읽지 않은 이유를 대라 하면 첫째는 그 시집이 쉽게 구할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책값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고 셋째는 인터넷 검색으로 만난 몇 편의 시로 미루어 볼 때 영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행이라면 다른 달구지 식구들도 달리 말이 없는 것을 보면 그리 열정적으로 텍스트를 파고 드는 사람이 없는 눈치여서 나의 나태함과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읽어대는 문학적 편식 현상에 대해 굳이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마부는 일찌감치 책을 읽지 못하였음을 게시판에 고백성사를 한 터였고 뒤늦게 올라온 발제문 빼고는 짧은 독후감 한 줄 올라오지 않는 걸로 봐선 모두가 기행을 핑계 삼아 꽃구경이나 가자는 심산인 듯 했다. 우수 경칩 다 지나 거리엔 온갖 기화요초들이 다투어 피는 시절이라 골치 아픈 시편은 슬쩍 미뤄 놓고 꽃빛에 취하는 데에도 봄날은 턱없이 짧을 터였으므로.
오장환의 고향은 단양이 아니라 충북 보은이었지만 굳이 기행지가 단양이 된 것은 모르긴 해도 짐작컨대 아마도 숙박지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하긴 보은과 단양이 그리 멀지 않은 인접한 곳이니 시인이 단양인 들 오가지 않았겠는가. 속리산 관광을 갔던 일을 제하고도 십여 년 전에 보은에 간 적이 있었다. 출장길이었는데 그 곳이 고향인 직원과 동행하였던 터라 밤늦게 도착하여 직원의 고향집에서 하룻밤을 묵었었다. 전날 밤엔 칠흙같은 어둠 탓에 사방을 분간 못했던 터라 아침에 일어나 마당 가에 섰을 때 내 앞을 가로 막던 거대한 산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말 그대로 '앞 산도 첩첩하고...'하던 옛 시조가 뜬금없이 튀어 나올만큼 보은은 중부내륙의 첩첩산중에 위치해 있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내 앞을 가로 막던 그 높은 산은 다름 아닌 속리산이었다.
뒤늦게 도착한 괴변을 태우고 강변역을 출발한 것은 토요일 오후 여섯 시, 우리가 렌트한 12인승 이스타나는 여섯 명이 타고 가기엔 너무 널널하기만 했다. 시내를 빠져 나가기 위해 몇 번인가 길을 잃은 뒤에야 겨우 중부 고속도로 위로 차를 올릴 수 있었다. 대구에서 출발한 산두령은 이미 단양에 도착했다는데 우리는 이제 겨우 고속도로를 올라 탔으니 갈 길이 아득하기만 하다. 하지만 누구 하나 마음 졸이는 법이 없다. 길을 떠났으니 목적지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다소의 시간차는 있을 수 있겠지만 긴 세월을 두고 함께 기행하는 동안 쌓인 내공이 만만치 않은 터라 그것을 탓할 사람도 마음도 없다. 그저 함께 하는 시간이 좋고 가는 동안 이물없이 주고 받는 대화가 목 축이는 맥주의 썩 괜찮은 안주가 되니 그것만으로도 모두가 흡족한 낯빛이다.
한동안 소통하지 못했던 날들의 안부를 주고 받고 서로의 근황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은 봄날처럼 짧다. 기행이 아니라도 마음만 먹으면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누구 하나 먼저 나서서 전화를 넣거나 만남의 약속 같은 것은 쉽게 하지 않는 것이 달구지 식구들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무심해서도 아니고 그립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저 물이 흘러가듯 그리움이 고여넘치면 자연스레 만나지게 되리란 믿음을 저마다 지니고 사는 까닭이다. 일 년에 네 번이면 적은 듯 하지만 부모형제라도 멀리 있으면 일 년에 한 번 얼굴 보는 일도 쉽지 않은 현실을 생각하면 그리 적은 횟수도 아니다. 거기다 가끔씩 치는 번개까지 감안하면 굳이 그리움이 쌓일 시간도 없다. 하여도 우리는 늘 만나면 반갑고 즐겁고 가는 시간이 아쉽다.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영동 고속도로로 옮겨 타고, 다시 남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단양에서 지방도로로 내려 선다. 다시 몇 번인가 길을 놓치고 물어물어 목적지에 닿은 것은 밤 아홉 시 반. 콘도는 입구부터 휘황하다.마부가 시인의 고향인 보은을 제쳐 두고 이 곳으로 기행지를 정한 것이 어느만큼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달구지 기행에서 처음 누리는 호사가 아닌가 싶다. 먼저 도착한 산두령과 경희씨, 빵글이가 준비해 놓은 저녁을 먹고 불판에선 삼겹살이 구워지고 따르는 술잔에 비례하여 이야기도 취하고 분위기도 알맞게 젖어 들었다.
지난 번 부석사 기행 때와는 달리 단양 기행의 발제는 일단 자료가 단촐해서 좋다. 밤을 꼬박 새면서 작성했다는 발제문을 작성했다는 구름모자에겐 지극히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발제 도중 잠이 쏟아져서 깜빡 새우잠을 잤던 것 같다. 충청도 양반 가문에 태어나 제법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서출이라는 출신 성분 때문에 늘 그늘 한자락을 품고 살아야 했던 오장환. 48년에 월북한 문인이어서 한동안 우리에게서 멀어져 있던 시인. 그의 시와 삶에 대해 열띤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잠시 꿈 속에 있었다.
충청도 사람을 일컫는 말 중에 '청풍명월'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이야기 하자면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되겠지만 충청도 사람들에겐 썩 유쾌한 호칭이 아니다. 지방색을 들추는 것 같아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흔히 하는 말로 충청도 사람들은 '의뭉스럽다'고 한다. 좀체로 속내를 드러내는 법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또 하나는 이 곳 사람들은 '느리다'는 것이다. 충청도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느려지게 된 것은 옛날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한 양반들에게서 비롯됐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차별화를 꾀한 셈인데 원주민들과 달라 보이려니 자연히 말 한마디 하는 데도 신중해야 했고 행동 또한 조신하게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청풍명월'이란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오장환 시인의 생애와 문학이 불판 위의 삼겹살처럼 노릇노릇 익어가는 동안 헛개나무 열매로 빚었다는 소주 팻트병이 비어지고 취기가 오른 산두령이 돌 선생 흉내를 내면서 봄밤은 무르 익어갔다. 몇몇은 꾸벅꾸벅 졸고, 몇몇은 꺼졌던 가스렌지를 다시 켜며 이야기에 불을 지폈다. 그대로 잠들기엔 무척이나 아쉬운 밤이었지만 쏟아지는 잠을 주체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 둘씩 몸을 눕히기 위해 방의 어둠 속으로 숨어 들었다. 끝까지 남아 밤의 멱살을 잡고 있었던 건 마부와 산두령이었던 것 같은데 그들의 화두는 엉뚱하게도 씨름이었다. 안다리나 호미걸이, 들배지기 같은 화려한 기술도 아닌 고작 샅바싸움으로 그들은 봄밤을 홀라당 밝히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눈을 떴을 땐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혼자 콘도를 빠져 나와 강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많지 않은 들꽃들과 눈인사를 건네었다. 애기똥풀, 돌단풍, 애기붓꽃, 양지꽃, 튜울립,민들레...... 어느 모퉁이에선가 아침거리를 구하러 나온 청솔모와도 맞닥뜨렸다. 서로 한참을 마주보다가 나는 나대로, 청솔모는 청솔모대로 각자 가던 길을 갔다. 아침 햇살이 맞은 편 산에 닿았고 햇빛을 받은 산벚나무가 환해졌다.
아침 식사 후 첫 여행지는 단양 팔경 중의 하나인 도담삼봉과 석문이었다. 강 중심에 솟아 있는 세 개의 봉우리, 가뭄 탓에 강물은 많이 줄어 있었지만 그 멋스런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석문을 보기 위해 산을 오르면서 만났던 수수꽃다리, 그 꽃의 맑은 향은 얼마 전 정향나무에 대한 시를 보내 준 벗을 생각나게도 했다. 노랑 붓꽃을 만나던 순간은 또 얼마나 황홀했던가. 산을 내려와 우리는 고수동굴을 향해 떠났으나 가는 도중에 동굴을 버리고 우리는 천태종의 본산인 구인사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구인사를 찾아간 것은 이 번 기행 중 가장 뼈 아픈 실수였다고 뒤늦게나마 실토한다.
산사의 고즈넉함도 찾을 수 없고 깊은 산중의 고요도 만날 수 없었다. 발자국 소리마저 불경스럽지 않을까 나도 몰래 뒤꿈치가 들리던 여느 절과 달리 구인사는 무지막지한 콘크리트 기둥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초여름의 따가운 햇볕 같은 봄볕에 한껏 익어 비탈진 산길을 오른 것이 억울한 생각이 들어 사찰을 부지런히 둘러 봤으나 마음 속으론 한시 바삐 절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건축이나 미술엔 문외한이긴 하지만 내 나름의 생각으로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구인사에선 모든 것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들은 눈에 설기만 하다.
산을 내려와 우리는 청국장과 순두부 백반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식당 앞에서 만난 백작약은 한껏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바람에 흔들리는 금낭화는 아이의 복주머닟럼 찰랑거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조팝나무꽃 향기가 코 끝을 스쳐갔다. 커피를 마시고 길을 재촉하여 찾아간 곳은 드라마 왕건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청풍문화단지. 시간에 쫓겨 세세히 살펴보지는 못하였으나 그 엄청난 규모에 한 번 벌어진 입이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느덧 해가 기울고 있었다. 이제 또 작별을 해야 한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산두령과 경희씨, 빵글이와 헤어지고 돌아서려니 아쉬움이 길어진 그림자만큼이나 남는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이미 어둡다. 어둠은 쌓인 여독과 손을 맞잡고 간간히 귀로를 위협한다. 다행히 조수석에 앉은 괴변이 동서고금을 자유분방하게 오가며 나의 졸음을 좇았다. 천호동에서 먼저 괴변을 내려 주고 우리는 처음 출발장소로 돌아와 렌트카를 돌려줌으로써 1박 2일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래도 그냥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여 식당으로 찾아 들어 동태찌개를 시켜 놓고 소주 한 잔을 나누고서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오장환의 족적을 따라 걷지는 못하였으나 단양의 남한강 줄기를 따라 청풍명월의 고장을 돌아보는 동안 우리 안엔 환한 꽃빛이 그득 들어 찼다.
첫댓글 달구지 전속후기작가. 호수의 달님 . 즐거운 후기..눈에 서언한데. 다시 가고 싶다...그 꽃길. 산길, 들길.
창으로 달려들던 꽃잎들이 마치 자살특공대 같았어요. 꽃잎이 떨어지고 비가 내리면 빗물에 쓸려가는 꽃잎의 애잔함을 배웠습니다 .비록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요.
역시 달필입니다.
호수의 달이 쓰면 달필? ㅎㅎ
후기 잘읽었습니다,,,잘다녀오셨군요*^^*
부럽기만합니다. 지난해9월 옥순봉 구담봉둘러보았는데 가히 선경이라 이름붙여도 손색이없었거든요. 달구지식구들의 기행에 불참한 벌 달게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