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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과 故노무현, 그리고 늙은 진보들의 엄숙주의와 계몽주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에 대한 기자회견을 했을 때나 이번에 곽노현 교육감이 기자회견을 하고 나서나, 사실 반응은 비슷하다. 통칭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비난 일색인 반응도 그렇고, 소위 말하는 한국 진보주의자들의 '엄숙주의'와 '계몽주의'에 바탕을 둔 맥 빠지는 반응도 역시 비슷하다. 보수층의 무조건적인 비난이야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리면 그만이지만, 진보주의자들의 허탈한 반응은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나 답답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포스트에서는, 故 노무현과 곽노현의 잘못에 관한 한국 진보주의자들의 반응에 대해서 짧은 생각을 한 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언제나 냉정하지 못했던 한국의 소위 진보주의자들
노무현은 냉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조차 제대로 권력을 사용하지 못했고, 그만 두고 나서도 계속 시달렸으며, 결국 비극적인 이야기로 남았다. 그건 곽노현도 마찬가지다. 보수층과 대결했던 선거에서 경쟁후보였던 사람에게 '선의로' 2억을 건네다니, 눈에 보이는 뻔한 적들이 군침을 흘리며 마구 달려들 수밖에 없는 무모한 짓을 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한국의 소위 진보주의자들은 언제나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친일 세력과의 싸움에서 절호의 기회였던 반민특위 때도 강력하게 처단하지 못했고, 프랑스 68혁명만큼이나 한국 사회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4.19 민주혁명 직후에도 그랬으며,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웠을 때 역시 냉정하게 응징하지 못했다. 결국, 지금도 이승만 동상이 수도 서울 한복판에 세워지고, 전두환과 노태우가 국립묘지에 묻힐지도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011년 8월 6일(좌), 8월 25일(우) 연합뉴스 보도 사진]
이런 상황은 비단 몇몇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전반적으로 좀 그런 면이 있는 듯하다. 바로 오늘만 해도 그렇다. 흔히 말하는 진보 매체나 진보 인사들이 곽노현 교육감의 기자회견 직후에 나타내는 반응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대부분 이런 식이다. '책임을 지고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고, 해명을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바란다' 등등..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같이 계몽주의적이고 엄숙주의에 빠져있는 반응들이다. 그들의 말을 듣다 보면, 현실적인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소위 말하는 진보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스스로 갇혀있는 껍데기의 일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의 족쇄이기도 하지만, 또한 방어막이기도 한 그 무엇을 말이다.
진보와 보수는 본래 선악 개념이 아니다
곽노현 교육감이 책임을 지고 거취를 결정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대가성 자체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지금 무슨 책임을 지라는 건가? 돈을 2억을 줬든 20억을 줬든, 그것 자체가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다. 물론, 심정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 충분히 의심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조사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책임 운운하는 것부터가 넌센스다. 또, 도덕성에 타격을 입었다는 말 역시도 지나치게 감성적인 접근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무슨 성인(聖人)이나 완벽한 인간쯤 되는 걸로 착각하는 거 아닌가? 그는 그저 다수결에 따라 선택된 선출직 공무원일 뿐이다. '진보 교육감'이라는 말이 '옳은 교육감'이라는 말과 동일한 뜻이 절대 아니란 말이다.
[2011년 6월 9일 한국일보 보도 내용]
이 시점에서 한국 사회의 '진보' 관념에 대해 잠깐 짚어보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진보는 (보수와 비교해서) 기존 질서의 유지보다는 상대적으로 사회의 변화를 더 추구하는 성향일 따름이다. 진보는 원래 도덕적이라거나, 보수는 항상 틀렸다거나 하는 게 전혀 아닌 것이다. 진보라고 해서 항상 옳지도 않고, 보수라고 원래 비도덕적이지도 않다. 물론, 식민지 시대를 거쳤고 남북으로 분단된 국가인 한국에서 흔히 보이는 보수의 행태가 절대적으로 잘못된 방향을 향해 있는 건 분명하지만, 기본적으로 진보라고 해서 특별한 잣대를 들이댈 이유도 없고 괜히 위축될 필요도 없다. 보수나 진보나 다 똑같은 인간인데, 뭐가 그리 조심스럽고 두려운가..
엄숙주의와 계몽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늙은' 진보들
결국, 곽노현 교육감은 그냥 관련 조사를 제대로 받으면서 자신의 결백을 자연스럽게 주장하면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현재 대한민국 검찰이 별로 미덥지 못하다. 새로 취임한 검찰총장도 그렇고, 최근의 몇몇 사건에서 보여준 모습도 그다지 신뢰감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더 가관인 것은,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바란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맥 빠지고 허탈한 반응이 있을까? 고양이 앞에 생선을 놔두면서, 먹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곽노현 교육감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았을 때를 다시금 상기해봐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 향후에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곽노현 교육감의 지금 상황은 노무현 대통령의 그 때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 절대로 또다시 농락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고, 좀 더 냉정하게 사태의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2011년 8월 24일 AP/뉴시스 보도: 카다피 동상 짓밟는 리비아 반군]
그리고 제발, '늙은' 진보들은 감상적인 엄숙주의와 철 지난 계몽주의에 빠져서 오바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이가 많아서 늙었다고 표현하는 게 아니다. 여든이 넘어도 '젊은' 사람이 있고, 나이가 고작 마흔밖에 안 됐는데도 '늙은' 사람이 있다. 한국의 늙은 진보들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민주정권 10년을 거쳤고 SNS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2011년에, 도대체 뭐가 그렇게 겁이 나고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지, 왜 그리도 경직된 도덕률과 낡은 사명감에 집착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이나 곽노현 교육감이 무슨 완벽하고 순수한 진보의 화신이라도 되는가?
앞서도 말했지만, 보통 사람 노무현과 곽노현 역시 불완전한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역시 허점이 많은 다수결에 따라 선택된 선출직 공무원일 뿐이다.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그에 따라 잘못한 부분은 법에 따라 적절한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도 없고, 과도하게 비판할 이유도 없다. 괜히 오바해서 소중한 사람을 2009년 5월에 떠나 보낸 걸 벌써 잊었는가? 정말 떳떳하다면 당당하게 맞서고, 상황을 끝까지 정확하게 지켜보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직시하면 된다. 정 안 되면 교육감 선거를 다시 하면 될 일이지, 결과도 나오기 전에 지레 짐작으로 실망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지금은 차가운 마음으로 곽노현 사태를 예의주시할 때
그리 아름다운 언어는 못 되지만, '꼴값 떤다'라는 말이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경직된 엄숙주의와 낡은 계몽주의에 젖어있는 한국의 소위 진보주의자들은 제발 꼴값 떨지 말길 바란다. 늙은 진보들이 굳이 그렇게 엄숙주의나 계몽주의를 설파하지 않아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곽노현 교육감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고, 이것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내년까지 연이어지는 각 선거의 결과에 따라 우리 사회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다만, 흔히 말하는 보수와 진보의 지지층에 따라 그 대응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어차피 25.7%는 곽노현이 그랬거나 안 그랬거나 별반 변화가 없을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트위터만 접속해봐도 대충 사태를 파악할 수 있을 텐데, 뭘 그렇게 가르치려고 드는가? 아직 결과도 나오지 않았고, 이제 겨우 시작 단계인 사안에 대해서 말이다. 한국의 민중은 더 이상 늙은 진보들의 엄숙주의나 계몽주의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온건
- 체 게바라
온건이란 말은
제국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말 중 하나다
온건주의자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
혹은,
어떤 형태의 배신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킬 뿐이다
민중은,
결코 온건하지 않다
출처 : http://v.daum.net/link/19981180?&CT=C_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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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좋은 글이네요. 혼란스러운 제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뉴스를 처음 접할때보다 많이 진정되네요. 바램이 컸나봅니다. 아니 너무 그리워했나 봅니다. 진정성을 가진 청념한 분이.
한사람으로 그분을 냉정히 볼수 있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옮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일로 (자칭) 진보들의 정치감각에 많이 실망했네요..
명쾌하게 정리를 잘 해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