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천국' 복합기 제조업체 '캐논코리아'
의무고용률 훨씬 넘어 정부 장려금까지 받아…
맞춤교육 효과로 석달만에 생산성 비장애인 수준으로
사내경연대회서 준우승도…
'아이 캔(I Can)'.
국내 최대 사무복합기(복사기+프린터기+팩스기) 생산업체인 캐논코리아 비즈니스솔루션의 안산공장에 들어서면 이 문구부터 눈에 들어온다. 22개의 셀(컨베이어 벨트 방식 대신 소그룹 단위 생산방식) 중 6개가 '아이 캔' 작업대인데, 장애인들로 구성된 셀이란 표지다.
최첨단 정밀제품인 사무복합기를 8초당 한 대씩 쏟아내면서 미국 등 20여개국에 수출하는 이 공장의 주역 10% 이상이 장애인이다. 김정현 생산혁신팀장은 "생산직 450여명 중 56명이 장애인이고, 그 중 52명은 청각장애인"이라며 "'아이 캔' 셀에서는 청각장애인들이 생산공정 대부분을 맡고 비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들은 소리를 듣고 판단해야 하는 기능 테스트 등을 도와준다"고 말했다.
캐논코리아가 처음부터 '장애인 천국'은 아니었다. 지난 2008년 이곳의 장애인 직원은 6명으로, 법정 장애인 의무고용률(2.3%)에 미달해 연간 1억2600만원의 벌금(부담금)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의무고용률을 훨씬 넘어서 연간 6000만원 이상의 고용장려금을 받고 있다.
"부담금 내면 되는데, 괜히 장애인 고용하면 더 큰 문제가 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누구도 반론을 달지 않았죠."(김천주 사장)
- ▲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의 ‘아이캔’ 1번과 2번 셀에서는 각각 장애인 9명이 생산공정 전반을 맡고, 비장애인 3명이 청력이 필요한 기능 테스트를 도우면서 한 팀으로 일하고 있다. 간판에 새겨진 엄지·검지·새끼 손가락을 편 로고는 조선일보의 캠페인 로고와 마찬가지로, 수화(手話)로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 무렵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맞춤 교육'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기업이 원하는 스펙(조건)을 제시하면, 거기에 맞는 장애인을 찾아 '맞춤교육'까지 시켜준다는 것이다. 당장 의뢰했더니 고용공단 산하 일산장애인능력개발원의 정병우씨가 직무 분석요원으로 공장에 파견돼 장애인에게 맞는 일자리를 분석해주었다.
그 결과 조립라인에 청각장애인이 가능하다고 보고, 회사와 공동으로 모집에 들어가 청각 장애인 13명을 포함, 모두 16명의 장애인을 뽑았다. 6주 동안 일산장애인능력개발원에서 '캐논 특별반'을 만들어 생산용어나 전기·전자 기초 교육 등을 시켰다.
작년 10월 1일, 마침내 16명의 장애인이 캐논코리아 생산라인에 투입됐다. 연봉 2000만원대의 정규직 신분이었다. 공단의 지원을 받아 엄정옥(50)씨 등 수화 통역사를 생산라인에 배치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직원과의 초기 의사소통을 도왔다.
윤중원 생산부본부장은 "장애인을 뽑기는 하지만 애초엔 비장애인의 80%쯤 일해주면 된다고 기대했다"면서 "그래서 비장애인 12명이 정원인 셀에 16명을 배치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석 달도 안 돼 '예상'이 빗나갔다. 장애인의 생산능력이 석 달 새 비장애인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 결과 4명의 장애인은 유휴 인력이 됐다. 그래서 올해 1월 초 8명을 더 뽑아 유휴인력 4명과 조를 맞춰 또 하나의 셀을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지금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60명을 뽑았고, 56명이 생산라인을 지키고 있다.
장애인 동료를 꺼리던 직원들도 금세 바뀌었다. 8년차 고참인 정다운(27)씨는 "요즘은 비장애인 직원들이 수화를 배워 이들과 함께 친해지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캐논코리아 직원들은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으로 작년 10월 7일을 꼽았다. 16명의 장애인 신입사원과 그의 가족 등 50여명을 초청해 입사 환영식을 열었다. 김 사장이 "이제 걱정 끝내고 우리를 믿으라"고 말하는 순간, 곳곳에서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장애인 신입사원의 부모들이었다. "쟤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나 생각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캐논코리아의 장애인 직원들은 비장애인들과 '멋진' 경쟁을 해내고 있다. 지난 3월과 5월엔 사내 생산성 경연대회에서 '아이 캔'이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난 청각장애인 정재우(26)씨는 요즘 매달 50만원의 용돈을 부모님께 드린다는 사실이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 역시 청각장애인 김진영(25)씨는 손(수화)으로 "나의 꿈은 고생하신 엄마를 행복하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눈으로는 눈물을 쏟아냈다.
김천주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도 장애인의 능력을 전혀 몰랐지만 지금은 비장애인과 차이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