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9일(현지시간) 남북 고위급회담 합의 내용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모든 최첨단 전략무기는 철두철미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북측 단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발언에는 촉각을 세웠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에 이어 한·미 간 분열을 노린 이간책이 아니냐는 등의 관측 때문이다. 남북대화의 궁극적 목표는 비핵화가 돼야 한다는 입장도 거듭 내놨다.
워싱턴포스트(WP)는 리 위원장 발언에 대해 "정신이 번쩍 들게 한 말"이라며 "북한은 여전히 핵무기를 통해 미국의 공격을 막아낼 권리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북한이 앞으로도 진정성 있는 대화를 계속 추구해 나갈지가 전문가들이 가진 의문점으로, 북한의 장기 전략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부분이 최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최대의 압박' 전략을 주도해온 트럼프 정부가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분쟁 전문 '국제위기그룹'(ICG)의 선임자문역 크리스토퍼 그린은 WP에 "북한이 한미 동맹을 이간질하려고 하는 의도라면 이는 단지 '첫 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AP통신도 리 위원장의 발언을 전하면서 "김정은이 대북 압박과 제재를 약화하려는 차원에서 한미를 분열시키려고 할지 모른다는 게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우려"라고 보도했다.
CNBC 방송은 "북측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무기를 의제로 삼는 것은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며 "핵무기 프로그램은 남북 간 대화 의제가 아니라고 분명히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로이터 통신은 "남북 간 해빙 무드에도 불구하고 미 정보기관은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를 바꾸지 않은 상태다. 김정은은 미국이 자신을 전복시킬 것이라는 확신 하에 미국을 위협할 핵무기만이 이를 막아줄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 관계자는 로이터 통신에 "남북대화가 북한이 식량을 비롯한 추가 원조 혜택을 받고 무기에서는 양보하지 않아 온 과거의 패턴을 답습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고, 다른 관계자는 "북한이 이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며 한미 간 틈을 벌릴 수 있다는 것이 추가적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한미경제연구소(KEI) 도널드 만줄로 소장은 성명을 내고 "스포츠와 예술은 개인, 국가 간 관계 진전을 위한 훌륭한 매개체로, 오판과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는 어떠한 것도 긍정적"이라며 "북한이 올림픽을 넘어 어느 부분까지 헌신할 태도가 돼 있는지가 불확실한 가운데 '어떠한' 북한의 도발도 회담 기간 형성된 선의를 약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미는 물론 비핵화라는 궁극적 목표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제재를 통해 북한 정권을 계속 압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돌파구 마련으로 인해 자칫 북한 인권 문제 등 다른 중요한 이슈가 간과돼서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조너선 폴락 선임연구원은 "이번 회담의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정도의 수준으로, 북한이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 한국 측이 상관할 게 아니라고 하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포함한 실질적 이슈가 앞으로 깊게 다뤄질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향후 한미 동맹을 약화하거나 해체하기 위한 요구를 노골적으로 해올 경우 한국이 '노'(No)할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