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균 아마7단이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수담을 나누고 있다. | 재야바둑역사학자&칼럼니스트 이 청의 아마바둑 신년회 스케치
재야바둑역사학자이자 사이버오로의 칼럼니스트인 이 청 씨가 지난주, 아마바둑인들이 모이는 신년회를 다녀왔다. 전국의 바둑 인들이 모여 활기찬 새해를 맞이하는 자리였다. 지금은 일본 프로기사이지만 한국에 있을 땐 아마추어 최정상이었던 홍맑은샘의 아버지인 홍시범 사범이 마련했다. 홍시범 사범은 바둑행사전문대행업체 A7의 대표이기도 하다.
신년회에선 아마추어 노장과 샛별 기사들이 어울렸고, 아마바둑계의 밝은 청사진이 제시됐다. 무엇보다도 따스한 정이 넘쳤다. 이 청 씨가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그 광경을 스케치했다(이 기사는 본래 사이버오로>이 청 칼럼>史野碁林 난에 있던 것을 가져온 것입니다).
덕불고(德不孤)하다지만…
지난 연말 아마바둑인의 행사장에서 초대장을 받았다. 뿔테안경에 장발머리의 홍시범(53)사범이었다. 서로가 초면임에도 필자와 그는 십년지기나 된 듯 반가웠다. 바둑이 매개체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홍 사범은 신년 바둑인의 모임이 있다며 참석을 권했고 필자도 참석을 했다.
1월 9일 일요일 오후의 서울은 한가했다. 날씨는 추웠고 간혹 눈발도 날렸다. 약속장소인 응암동 A7(박치문 임동균 신병식 홍시범 박성균 유경남 조민수 심우섭 등 아마7단들의 모임) 사무실은 150여 명의 바둑인의 발걸음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였다.
모임의 취지는 바둑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모든 바둑인이 한번 모여 간단한 식사를 하며 신년 덕담으로 활기찬 새해를 맞이하자는 것이었다. 전국의 바둑인들이 모여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며 화이팅 한번 하자는 것이었다.
엄청난 인파(?)였다. 주문진, 부산, 전남의 순천 등 천 리를 마다치 않고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에 필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곳저곳 십시일반으로 공수해온 먹을거리는 참석자의 배를 채우기에 충분했고 30명이 넘는 회원들을 뽑아 장뇌삼을 선물로 주며 올 한해 바둑을 위해 조금 더 노력해 달라는 격려는 모든 참석자들의 박수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주인공이 따로 없었다. 대바협 회장도 기업의 오너도 프로도 아마고수도 바둑기자도 드러나지 않았다. 참석자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바둑 안에서는 모두가 장삼이사였고 모두가 브이아이피였다. 먹고 마시고 인사하고 그리고 한쪽에서는 바둑이 두어지는 장면은 참으로 혼자 보기 아까웠다. 송영석 박영롱 등 샛별 같은 기사들부터 임동균 같은 노장들이 평소 아마바둑을 아낌없이 후원해 오던 인사들과 어우러져 바둑을 두는 모습이 필자의 눈에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 아마바둑 신년회에는 대한바둑협회 조건호 회장이 참석해 신년 아마바둑의 청사진을 밝히고 바둑 인들에게 덕담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대한바둑협회 조건호 회장은 아마바둑의 청사진을 밝히고 바둑 인들에게 덕담을 전하며 내년부터는 대바협에서 단증을 교부하겠다는 휘발성(?) 강한 발언도 하셨다. 분당기우회의 백정훈 회장께서는 그동안 해오던 분당기우회장배 바둑대회를 우승상금 1천만의 바둑대회로 확대하겠다는 발표를 하여 장내의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특히 문경에서 올라온 금동일 문경시협회장의 인사가 인상 깊었다. 바둑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나를 묻기 전 내가 바둑에 무엇을 했나를 곱씹어 보자는 것이었다.
그랬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서산에서 올라오신 도신(서광사 주지) 스님의 노래도 함께했다. 사회를 맛깔나게 보며 장내를 즐겁게 하는 홍 사범의 인도에 팔도에서 모여든 바둑인들은 일사불란했다. 그 모습이 마치 반상에서 대마를 쫓는 말처럼 팔딱거렸다. 살아 있는 생명의 모습이었다.
바둑 안에서는 모두가 친구다
"다른 이유 없습니다. 그저 우리 바둑인들이 한번 모여 얼굴이나 보고 새로운 한해를 기약하자는 뜻입니다."
홍 사범은 모임의 성격을 묻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취지나 목적이 있는 모임은 책임과 의무가 수반되기에 그런 것일까.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소중하기에 행복합니다. 바라는 게 있다면 이 공간이 아마바둑의 자료의 공간이자 휴식의 장소가 되면 그뿐입니다."
홍 사범은 A7의 공간이 아마바둑의 성지(?)가 되기를 꿈꾸는 듯했다. 필자는 한 인간으로 태어나 바둑을 미치도록 사랑했고, 하여 아들까지 일본의 프로로 만든 아버지로 충분히 꿈꿀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쉬움도 있었다. 홍 사범의 아들인 홍맑은샘이 국내에서 프로생활을 했더라면...바둑을 사랑한 죄(?)로 두 부자가 관부연락선(?)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것이 씁쓸했다.
"이거 후지사와 부채입니다."
홍 사범은 필자에게 휘호 부채를 한 벌 선물했다. 필자는 그 부채를 받아 3회 서광사 템플스테이 상품으로 협찬을 했다.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선물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필자는 모임에 참가를 하며 간단한 덕담을 적은 글씨 한점을 선물했다. 한때 미친 듯 바둑사를 탐했던 기록자로 이날의 장면을 친필자료 한점으로 남겨 놓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했다.
백년의 역사 하룻밤 꿈이고 세상만사 한판의 바둑이라지요. 바둑판 하늘의 성품을 닮아 천원지방하고 버리지 못한 인간의 욕심 내원외방이나, 아, 오늘만 같기를 한국바둑이여 날마다 오늘만 같으소서. (百年時間三更夢 世上萬事一局碁 碁盤天性似爲天圓地方 人性逐慾不投 內圓外方 嗚 願寫今日 韓國圍碁呼 日日 願寫今日也)
▶ 프로기사 홍맑은샘 초단의 부친이자 바둑행사전문대행업체 A7의 대표인 홍시범 씨.
늦은 시각 사이버오로의 손종수 이사도 참석했다. 작년 4월 수원에서 뵙고 처음(?)이다. 지방으로 내려가야 할 시간 때문에 겨우 수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믿는 사람들(?)이기에 쉽게 해어질 수 있었다.
내려오는 차에 동승을 한 도신 스님, 박성균 사범, 서산 신철호 사범과 또다시 바둑 이야기를 한다. 만날 때마다 하는 바둑 이야기인데도 조금도 질리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밤 10시. 멀리 서해대교의 불빛이 아스라하다. 시간이 조금 아쉽다. 아직도 덜 여물고 미숙하기만 한 인생, 한 페이지도 남길 것 없는 학식으로 그동안 나는 바둑의 제단에 무엇을 바쳤던가. 하여 다시 침묵을 할 때인가. 떠오르는 글귀가 한 줄 있다. 다산어록이다.
- 나는 스무 살에 이 세상 모든 것을 살피고 따져 정리할 수 있다 믿었다. 이 마음 서른에도 마흔에도 변하지 않았었다. 풍상을 맞은 지금 백성과 국가 정전 군제 등과 같은 일들에 신경을 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직 한 생각이 남았는데 그것은 '경전'의 고석과 의심나는 점을 따져 묻는 그것이다. 지금은 병까지 얻어 몸이 약해지고 마음마저 약해져 큰일이다. 그러나 나는 정신과 몸이 회복되면 다시 많은 생각에 불끈불끈 일어나고 싶다.
다산은 가는 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 놀라 벌떡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할 시간이 없음을 걱정했다는 거다. 나는 자신을 스스로 다그치며 밤길을 달려 당진 바닷가로 돌아와 노트에 일구막릉(日鳩莫陵)을 쓴다. 하룻빛 비둘기는 작은 언덕도 넘을 수 없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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