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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 1장
예수 그리스도의 죄수 된 바울과, 우리 형제 디모데는 우리가 참으로 사랑하는 동역자 빌레몬과
우리의 사랑하는 압피아와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포와 너의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나의 기도에 항상 너를 말하며,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바울은 기도에 믿음의 동역자들을 말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먼저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바탕으로 기도하면서 우리의 동역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문제들만을 나열하는 것은 좋은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려움을 알지 못해서 도와주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닥친 고난에 대해서는 매달리는 기도를 하면서 이웃의 어려움은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악한 본성은 이기적인 자신의 만족만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공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 자신과 같이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이웃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와 모든 성도를 향한 너의 사랑과 믿음을 들음이니
이는 너희 믿음의 교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을 인식함으로 인하여 효과가 있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너희 사랑으로 큰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형제여, 이는 너로 인하여 성도들의 마음이 새 힘을 얻었기 때문이라.
교회라는 믿음안에 있는 성도들의 공동체의 목적이 큰 기쁨과 위로를 나누는 것이며, 그 나눔을 통하여 성도들의 마음에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힘이란 곧 인내하는 힘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움으로 살지만 형제들의 이러한 위로로 힘을 얻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곧 고난과 환난이 필연적으로 닥쳐오는 이 세상에서 그것을 이겨내는 힘을 형제들을 통하여 얻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중요함은 성령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 저의 경험으로 환난과 고난이 닥치면 미처 생각하지 못하지만 눈에 보이는 형제들은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도 사람이므로 완전하지 않음은 생각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한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완전하지 않으며 죄에 찌든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문제가 없으면 오히려 더 안믿게 되어 자기의 의로 살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비교적 능력이 뛰어나 자신의 지혜로 세상을 잘헤쳐나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결국은 좌절하며, 쓰러지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요즘에 유행하는 각종 건강관리 비법들을 마스터하고 정말 제대로 실천한다고 해도 사람은 나이들어 병들어 죽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노력은 그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결책은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것뿐입니다. 그외에는 모두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큰 담력을 가지고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네게 명령할 수도 있지만
사랑으로 인하여 나 바울은 나이 많은 자로서 이제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죄수로서 오히려 네게 간청하노라.
같은 내용의 의사전달이라고 하더라도 명령과 간청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해야 하므로 간청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바울은 나이가 많고 그가 율법사였고 거기에 은혜를 받았으므로 그가 다른 사람에게 명령하여도 그 사람들은 복종할 것이지만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이라고 보여집니다. 우리가 군림할 수 있어도 군림하지 않음과 권리가 있어도 권리가 없는 것처럼 이웃에게 내세우지 않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분의 성품을 바울이 닮아있는 모습니다.
내가 갇힌 중에 낳은 내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청하노니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너와 나에게 유익하므로
오네시모는 무익하다가 유익하게 바뀐사람입니다. 그와 비슷한 경우가 조혜련씨로 보입니다. 그녀가 남묘호란교를 신봉하여 일본 방송에 출연하여 기미가요를 부르고 할때는 그녀는 무익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랬던 그녀가 바뀌어
이제는 한국교회의 성도들의 문제점인 성도들이 성경을 읽지 않음을 권면하는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성경바람잡이로 자신의 지칭하며 성경을 읽을 것을 외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사역이라고 보여집니다.
그것을 위하여 그녀가 준비되었다고도 보여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시간개념과 달리 몇십년을 준비시킨 것이 당사자나 제 3자가 봐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분의 뜻이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변에 무익한 사람들이 언제 유익하게 바뀔지 모르므로 그들을 버리지 말고 기다려 주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내가 그를 다시 보내노니 그러므로 너는 그를 받아들이라. 그는 내 마음 같은 자라.
내가 그를 나와 함께 있게 하여 복음을 위하여 갇혀 있는 나를 네 대신 섬기게 하고 싶었으나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로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이러한 마음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지시와 복종만 있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지시만 하고 복종을 강요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형제들에게 의견을 묻고 일을 진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아무리 우리가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함께 진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들이라 부르지 아니하리라.
이는 종은 자기 주인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내가 너희를 친구들이라고 불렀으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부터 들은 모든 것들을 너희에게 알게 하였기 때문이라.
요한복음 15장 15절
복음을 들어서 믿음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본질이기에 조금만 훼손이 되어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적은 믿음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적은 믿음은 곧 본질로 믿음없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드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오 너 믿음이 적은 자야, 어찌하여 의심하였느냐?"고 하시니라.
And immediately Jesus stretched forth his hand, and caught him, and said unto him,
O thou of little faith, wherefore didst thou doubt?
한글 / KJV마태복음 14장 31절
영어로 a little 이 아닌 little는 적다라는 뜻이 아니라 없다라는 뜻입니다.
(a little) (긍정적) 조금은 있는, 소량의; 적은, 약간의 cf. NO² 1, SOME 『형용사』 3
참고더보기1. a little(양·정도) / a few(수) : (긍정적) 조금....
I have a little money left. 듣기
돈이 조금은 남아 있다
반의어 much
(little)(관사 없이 부정적) 거의 없는
어법더보기관사 a가 little 앞에 붙는 여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지만, 실제적...
I have little money left. 듣기
남아 있는 돈이 거의 없다(※강세는 little과 money의 양쪽에 둠)
저는 영어를 못하지만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a little이 적은 이라는 의미이고 little는 거의 없는, 없는 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본질의 개념으로 조금만 훼손되어도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물에 빠진 것입니다.
즉 적은 믿음이 아니라 믿음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함으로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에게 불가능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붙잡아 주심으로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믿음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고 본질의 믿음이 훼손이 되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간구하여 그의 크신 팔로 베드로처럼 우리를 붙잡아 주시기를 기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잠시 떠나 있게 된 것은 아마 이로 인하여 네가 그를 영원히 얻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르니
여기서 그가 잠시 떠나 있게 된 것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오네시모가 믿음을 이제 갖게 되어 이제야 무익함에서 벗어나 유익함으로 돌아온 것에 대한 표현이라고 보여집니다. 조혜련씨가 45년 이상을 남묘호란교에 있다가 지금에 돌아온것은 그저 늦어진 것이 아니라 그녀가 온전히 주의 사람으로서 우리의 진정한 형제 자매로써 그녀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한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의 사랑하는 형제로서 내게 특별히 그러한데, 하물며 너에게는 육신과 주 안에서 더욱 그러하지 않겠느냐?
아마도 오네시모와 빌레몬은 육신으로도 가까운 것으로 보아 친척이거나 같은 지역의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그녀는 저를 모르겠지만 조혜련씨를 응원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여긴다면 그를 나와 같이 영접하라.
만일 그가 네게 잘못을 저질렀거나, 갚아야 할 빚이 있으면 내게로 넘기라.
나 바울은 친필로 썼노니 내가 그것을 갚으리라. 그러나 나는 네가 비록 나에게 빚진 것이 있다 해도 말하지 않겠노라.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낸 것으로 보이며, 그를 보증하는 서신을 친필로 작성하여 확인을 해주고 있습니다.
정녕 형제여, 내가 주 안에서 너로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주 안에서 내 마음이 새 힘을 얻게 하라.
내가 너의 순종을 확신하고 너에게 썼노니, 이는 또한 내가 말하는 것 이상으로 네가 행할 줄 앎이라.
이외에도 내가 머물 곳을 마련하라. 이는 너희의 기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될 것을 믿기 때문이라.
바울은 오네시모를 보내서 부탁하고 후에 자신도 갈것이므로 준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명자들의 편의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것이 금전적이든 혹은 다른 종류이건 그들을 위해 함께 일해야합니다. 그들은 말씀대로 라면 복종만을 강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과 의견을 같이하고 우리의 자원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교회라는 공동체가 힘을 내는 방법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가 해야할 의무는 어찌보면 가볍고 쉬운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돈이 넘칩니다.
그러나 그런 돈이 어떻게 어디에 쓰이는 지 조금이라도 느껴져야 하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오른 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대로 감춰서 그런지 모르지만 익명으로 드러나는 교회의 선행이 드러나야 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많은 돈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독이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명자들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에는 많은 돈이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돈을 내것이 아닌 것처럼 쓰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내가 벌어서 내돈이 아니라 잠시 위탁을 받아 사용권한이 내게 주어진 돈인 것입니다.
잘못쓰면 진짜 주이신 하나님께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에파프라가 문안하고,
나의 동역자 마르코와 아리스타코, 데마, 루카도 문안하느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의 영과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빌레몬서 1장
아마도 바울이 고소당하여 감옥게 갇혀있을 때 작성한 서신이며, 그때 바울 일행이 모두 감옥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위 말씀을 읽으면 로마시대의 감옥에 어둔 촛불이 영화장면처럼 떠오릅니다.
요즘 제가 마음에 상처가 왠지 크게 느껴져서 힘든 와중에 있습니다. 별거 아닌 것인데 더 마음에 힘듬이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성경나눔은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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