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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름다운 등대 여행
대진등대
대진은 고려시대에 여산현(驪山縣), 그후에는 열산현(烈山縣)에 속해 황금리(皇琴里 황구리)라고 불러왔고, 1910년 한일합방 이후에는 한나루(大津里)라 개칭하였다. 그후 1920년에는 고성군 현내면 소재리로 승격하였으며, 한나루(포구)에 항을 쌓아 조그마한 어항으로 축조되었다. 1954년 10월 21일 대한민국 행정권이 수복되어 전국 각지에서 이곳에 피난민이 일시에 많이 몰려, 대진리 일원만 9,000여명으로 늘어 대진 1,2,3리로 분할 관할하였고, 1973년에는 행정 구역 조정상 2개리를 늘려 대진 4,5리로 분할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대진등대는 등탑이 팔각형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고, 불빛은 12초 간격으로 깜빡이며, 약 37km 떨어진 해상에서 식별이 가능하다. 또한 등탑 위 전망대에 올라서면 동해바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망할 수 있으며 환상적인 일출과 석양을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특히, 시야가 좋은 날에는 멀리 해금강은 물론이고 북한지역까지 바라볼 수 있다. 대진등대는 설치당시 1개의 유인등대와 또 다른 보조등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대진등대가 설치된 목적이 어로한계선을 표시하는 도등(2개의 등대를 연결하는 선이 어로한계선)의 역할을 하기위해 1973년 1월 불빛을 밝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991년 어로한계선을 북쪽으로 5.5㎞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도등의 역할을 마치고 1993년 4월 1일 일반 등대로 전환되었다. 대진등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동해안 최북단의 무인등대인 저진도등을 원격으로 관리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저진도등은 2개의 등대를 연결한 선이 어로한계선임을 표시하면서 어선들이 월북 조업하지 않도록 안전한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저진도등의 전도등은 35m, 후도등은 20m의 높이로서 홍백 사각의 콘크리트 등대이다.
묵호등대
묵호는 옛날에 오이진이라 했는데 한일 합방 이후 이곳을 통해 연탄이 취급되자 맑았던 오이진이 먹물처럼 검어져 그 당시 누구인지 기록이 없으나 먹물 같은 나룻가라 해서 묵호진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묵호항은 1941년 8월 11일 개항(開港)되어 무연탄 중심의 무역항의 역할과 함께 어항으로 발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묵호등대는 1963년6월8일 건립 되어 항해하는 선박들의 안전운항에 기여하게 되었다. 해발고도 67m에 자리 잡은 묵호등대는 백원형 철근콘크리트조이고, 높이는 12m의 내부 2층형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봄이면 개나리가 화사하게 피고,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작은 해양수산홍보관은 해양수산 변천사를 알려주고 있으며, 소공원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과 지역주민들에게 볼거리와 편안한 휴식처를 제송한다. 특히, 묵호등대 소공원에는 1968년 정소영 감독 作 영화 「미원도 다시 한번」의 주요촬영지임을 기념하기 위해 2003년 5월「영화의 고향」기념비가 세워졌다. 묵호등대는 묵호지역 해변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바다에서 등대 식별이 용이토록 되어 있으며, 2003년 10월 설치한 국내기술로 개발한 프리즘렌즈 회전식 대형등명기의 불빛은 42km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
도동등대
도동등대에서는 북쪽으로는 저동항의 아름다운 모습과 촛대바위가 한눈에 조망되며, 울릉도의 상징인 성인봉 의 정상을 볼 수가 있다. 울릉8경 중 도동모범(道洞慕帆 : 도동항 석양 무렵 오징어배 출어 모습), 저동어화(苧洞漁火 : 저동 야간 오징어잡이 불빛)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울릉도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도동과 저동 사이의 해안을 끼고 있는 촌락으로 울릉도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겨울에도 살구꽃을 볼 수 있는 따뜻한 마을 어귀에 큰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하여 행남(杏南)으로 전래되고 있으며, 지형이 뱀의 입처럼 되었다고 하여 살구남(口南) 이라고도 한다. 청명한 날에는 등탑에서 정동쪽으로 독도를 볼 수 있으며, 북쪽으로는 저동항의 아름다운 모습과 촛대바위를 눈 아래로 볼 수가 있고, 울릉도의 상징인 성인봉의 정상을 볼 수 있다. 도동등대는 울릉도의 동쪽 끝 행남말(杏南末) 끝단 (등고 116m)에 위치하며, 1954년 12월 무인등대를 설치하여 운영하여 오다가 독도 근해 조업 선박이 증가하여 연안표지시설의 필요성이 있어 현재의 위치에 광력을 증강하여 1979년 6월 유인등대화 하였으며, 신비의 섬 울릉도 뱃길의 길잡이로서 도동등대 새단장이 2006년말 마무리되면 소규모 공원과 전시실을 갖춘 자연친화적인 해양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인근에는 도동약수터가 있는데 이곳의 물은 독특한 청량 음료의 맛으로 소화를 도우고 신경통과 피부병에 효과가 크다고 한다. 등대에서 한눈에 바라보이는 저동항은 국가어항으로 울릉도의 유일한 어업전진기지로서 새벽에는 울릉도 근해에서 밤새 낚은 오징어의 참맛을 볼 수 있으며 수평선 너머 떠오르는 일출광경을 볼 수 있어 좋다.
울릉도등대
옛날 삼척의 한 사또일행이 바다로 선유놀이를 갔다가 갑작스런 돌풍을 만나 울릉도에 표류하여 배고픔에 지쳐 있었는데 황토 흙을 발견하고 이 흙을 먹고 연명하였는데 흙을 먹어본 사람마다 흙 맛이 다르다고 하여 대풍감 끝자락의 흙 이름을 황토구미(黃土口味)라 불리었다고 한다. 울릉도등대는 이 곳에 위치한다.
울릉도는 512년(신라 지증왕 13년) 신라의 이사부가 독립국인 우산국을 점령한 뒤 우릉도(羽陵島)▶무릉도(武陵島) 등으로 불리다가 1915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섬 전체가 화산작용에 의해 형성된 종상화산(鐘狀火山)이다. 섬의 중앙부에는 최고봉인 성인봉(984m)이 있고, 그 북쪽 비탈면에는 칼데라 화구가 무너져 내려 생긴 나리분지가 있으며, 평지는 거의 없고 해안은 대부분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각형 모양으로 면적은 72.56㎢이다. 울릉도 동쪽 끝 대풍감 끝자락에 태하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태하는 김(해태)이 많아서 불리었다는 설과 안개가 자욱하다고 불리었다는 설이 있다. 1958년 최초로 점등 되어 울릉도 인근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파수꾼 역할을 해오고 있다. 등탑은 백색 원형콘크리트 구조로 높이는 20m이며, 2003년 10월 국내기술로 개발한 프리즘렌즈 회전식 대형등명기로 교체하여 50km까지 불빛이 나아간다. 울릉도등대로 오르는 등산로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오솔길과 푸른 숲으로 되어 있으며, 경사가 완만하고 기암절벽과 풍광이 아름다워서 관광객들의 등산코스로 많이 사랑받고 있다.
죽변등대
죽변등대가 위치한 곳은 용의 꼬리라 하여 용추곶이라 부르기도 하며 지역주민들은 용태미라 부르며, 죽변등대가 있는 육지에서 바다까지는 암초가 깔려 있고 암초의 중간부분에 용소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데 용이 하늘로 승천 하였던 곳이라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이곳에서 기우재를 지내면 비가 내린다고 한다.
호미곶을 제외하고 동해안에서 바다로 가장 많이 뻗어 있는곳이 죽변곶이다. 파도소리와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둘러쌓인 이 곳에 죽변등대가 우뚝 솟아있다. 죽변은 대나무가 많이 자생한다고 붙여진 지명이다. 특히 이 곳에 자생하는 小竹은 화살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어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보호하였다고 전한다. 이 등대는 1910년 11월 24일 건립되었으며, 구내에는 1911년 일본국 수로부에서 설치한 수로측량 원표가 남아있다. 죽변은 우리나라 동해안 항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울릉도와는 직선거리상 가장 가까운 곳이다. 등탑의 높이는 16m로 백색의 8각형 콘크리트구조로 되어 있으며, 불빛은 20초에 한번 반짝이며 약 37㎞까지 불빛이 전달된다. 등탑은 2005년 9월 경상북도 지방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되어있다. 현재 등탑내부 천정에는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원래는 대한제국황실의 상징인 오얏꽃문양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한다. 등대 주변풍광 또한 무척이나 아름다워 2004년에는 이곳을 배경으로 SBS에서 ‘폭풍 속으로라는 드라마를 촬영하기도 하였다.
후포등대
후포항에는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어선들이 경북 동해안의 대표적인 수산물인 대게잡이를 나선다. 어획량만 비교하면 울진군이 영덕군보다 많다. 이는 후포항에서 25㎞ 떨어진 왕돌초에서 대게잡이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동해의 푸른바다와 산야를 끼고 아름다운 해변의 풍광을 자랑하는 후포항은 울진군의 가장 남쪽에 자리한 항구로서 동해안 항로중간에 위치하여 동해중부해역에서 조업하는 선박의 어업전진기지이다. 후포항 끝자락에서 북동쪽 해안선을 따라가면 해발 64m의 풍광이 아름다운 등기산 꼭대기에 올라 등대로 들어서는 입구가 바로 후포등대이다. 등대가 위치한 등기산은 옛날부터 부근을 지나는 선박의 지표역할을 하기 위하여 주간에는 흰 깃발을 꽂아 위치를 알리고 야간에는 봉화 불을 피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후포등대는 1968년 1월 최초점등을 하였으며, 불빛은 48Km에 이르러 후포앞바다를 운항하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후포항과 동해바다를 관망하는 전망대 역할도 한다. 후포항 방파제는 동해에서 이름난 낚시터로써 사철 낚시꾼들이 몰려 들어 감생어, 흑도미, 학꽁치 등을 잡을 수 있으며, 후포등대 정상에는 어린이 놀이시설과 점 전망대가 있어서 관광객들이 쉬어가기에 좋은 곳이다.
송대말등대
연인들의 은밀한 공간으로 제격인 송대말등대는 감포항이 한눈에 들어오며 달빛서린 밤바다는 온몸이 저리도록 강한 성정을 내뿜는다. 신라문무대왕의 혼이 깃든 신비로운 대왕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봉길해수욕장이 송대말등대에서 10km 거리에 있다.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죽어서도 龍이 되어 동해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긴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경관이 수려한 감포항이 있다. 항구 북단에는 끝없이 펼쳐지는 동해 망망대해를 지키는 송대말(松臺末)등대가 자리잡고 있다. 송대말에는 수령 300년∼400년 정도의 소나무숲이 무성하다. 감포항 인근 해역에는 암초들이 길게 뻗어 있어 작은 선박들의 해난사고가 빈번하자 암초들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1933년 2월 감포어업협동조합에서 등간(燈竿)을 설치하였다. 그러다 감포항 이용선박이 점차 늘어나게 되면서 감포항 북쪽 송대말(松臺末)에 1955년 6월30일 무인등대를 설치했다. 그후 육지표시 기능의 필요성이 제기돼 1964년 12월20일 기존 등탑에 대형 등명기를 설치해 광력을 증강하고 유인등대로 전환했다. 원래 등탑은 백색의 원형이었으나 지난 2001년 12월 등대를 종합정비하면서 신라시대를 대표하면서 문무왕의 은혜를 기리는 의미를 지닌 ‘감은사지 3층 석탑’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건립하였다. 또한 전시실을 마련하고 등대 및 바다와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해 두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화암추등대
방어진 서쪽 해안마을의 바다에 돌출된 검회색 바위 위에는 이상하리 만큼 하얗게 꽃문양을 연상시키는 무늬가 박혀 있다고 하여 “꽃바위(花岩)”라 불렀고, 주변 마을을 “꽃방마을”이라 불렀다.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바닷물이 만조를 이루었을 때, 출렁이는 물결에 드리워진 꽃무늬는 더할 나위 없이 절경을 이루었고, 저녁 무렵 바닷물이 썰물로 빠져 나가면서 바다 속에 잠겨 있던 천태만상의 바위형상들이 만물상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는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시인묵객들은 “화암만조”(花岩晩潮)라 부르며 방어진 12경중 제1경으로 꼽기도 하였.으나, 1989년 항만축조 및 매립사업으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
1961년 이후 울산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부터 산업의 대동맥인 석유화학제품들이 쏟아졌고, 울산항에는 이를 실어 나르는 배들의 왕래가 잦아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해양오염사고 방지 및 선박의 안전항해를 위한 항로표지 설치가 절실히 요구되어졌고, 울산항 관문에 위치한 꽃방마을 끝단에는 천년동안 안전하게 항해하기를 기원하는 거북이 모양의 등대가 세워졌다. 이후 조선산업의 발달로 항만 축조 및 매립이 이루어져 바다쪽으로 등대를 옮겨야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낮아진 등고를 보완하고 울산항을 출입하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높은 등대 설치가 요구되었다. 마침내 1994년 12월 동양최대 규모의 등대가 건립되어, 머나먼 여정을 헤쳐온 선박들을 안전하게 울산항으로 인도하게 되었다. 특히, 해상교통의 요충지인 이곳 화암추등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전망대에 오르면 생동감 넘치는 울산항과 24시간 불빛을 내뿜는 산업단지의 역동성을 한 몸에 느낄 수 있으며, 등대 앞 방파제의 강태공들이 계절에 따라 색다른 손맛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덕도등대
옛등대 시설은 사무실과 숙소, 등탑이 연결된 복합건물 형태로써 중앙에 높이 9.2m의 등탑이 세워져 있으며, 붉은 벽돌과 미송을 사용했고 출입구 천정에는 그 당시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 모양의 문장이 새겨져 있으며, 함석으로 된 지붕은 부식방지를 위해 함석 위에 피치타르가 덮혀져 있다.
가덕도는 한반도의 동남단에 자리잡아 동으로는 사하구 다대포, 서남북은 거제도 동북바다, 북으로는 유라시아와 환태평양의 관문이면서 동북아 허브항만으로 건설한 부산항신항(2006.1.19)과 접하며 진해시 용원동과 접하며 진해시 용원과의 거리는 4㎞, 인근의 거제도와의 거리는 10㎞ 정도이다. 가덕도가 해상교류 및 군사적으로 중요시 된 것은 조선 중종 39년(1544년) 가덕진과 천성진을 설치하여 임진왜란 때는 치열한 격전장이기도 했던 곳 이었으며, 현재 진해만으로 들어가는 중요 요충지로서 가덕도등대는 대한제국의 말기인 1909년 12월에 건립되었으며 옛 가덕도등대건물은 서구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의 하나로 2003년 9월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으며 해양수산부에서도 영구보존 시설로 지정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2002년 새로 지어진 지금의 등대는 팔각으로 된 돌출형이며 등탑높이는 40.5m로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높은 등대이다.
서이말등대
서이말’이란 지명은 땅끝의 형국이 마치 쥐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 ‘쥐귀끝’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우리나라 남해안에서 제주도에 이어 가장 큰 섬 거제도 ! 그 동남쪽 끝단에 천연해식동굴과 기암괴석의 절경을 자랑하는 서이말등대가 있다. 경상남도 남해안에 위치한 거제도는 10개의 유인도와 52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거제군의 본도로서, 전체 면적이 378.795㎢의 우리나라 섬 중에서 제주도에 이어 두번째로 큰 섬이다. 거제도는 모래밭, 몽돌 해수욕장, 동백숲과 소나무숲, 기암괴석해안 등 섬이 갖출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다 갖추고 있는 무한한 관광자원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서이말등대는 1944년 1월에 설치되었으며, 총 3명의 등대원이 근무하는 유인등대로서 백색원형 콘크리트구조물(10.2m)로 세워졌다. 이 등대에서는 20초마다 1번씩 20마일(37km)밖에서 불빛을 볼 수 있도록 비추고 있어 거제도지역을 항해하는 선박에 항로를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서이말등대는 장승포항에서 유람선을 타고 한려해상국립공원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해금강으로 가는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소리도등대
연도는 여수권 최고의 감성돔 낚시터로 꼽히는 곳이다. 기암절벽의 경관과 더불어 다양한 어종과 다양한 포인트 등 모든 갯바위 낚시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낚시 포인트는 소룡단, 역포, 철탑아래 등이다. 주요어종은 감성돔, 돌봄, 볼락, 참돔, 농어, 학꽁치, 흑돔 등이 있다.
1910년 10월 4일 건립된 소리도등대는 백6각형의 콘크리트 구조이며, 등대 내부에는 나선형의 철재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금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등탑 높이는 9.2m에 불과하지만 평균 해수면으로 부터 82m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먼 바다에서도 잘 보이며, 12초 간격으로 반짝이는 등대 불빛은 42㎞ 떨어진 곳까지 도달한다. 지금은 여수, 광양항을 드나들거나 서해안에서 부산쪽으로 운항하는 선박들이 이 등대를 주로 이용한다. 섬의 모형이 솔개같이 생겼다하여 소리도로 불리다 솔개 연(鳶)자를 써 연도라 부르게 되었다. 연도는 등대와 인근의 코끼리 바위, 솔팽이 동굴 등이 해안의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천혜의 관광지이다. 특히 옛날 네덜란드 상선의 보물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와 세인들이 흥미를 갖는 곳이기도 하다.
거문도등대
거문도는 엣날에 삼도, 삼산도, 거마도 등으로 불리어 졌으나 영국의 거문도 점령에 항의하기 위해 중국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거문도를 방문하여 이 섬에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문장가들이 많다는 의미인 ‘거문(巨文)’으로 개칭하도록 우리나라에 권유해 그때부터 ‘거문도’로 이름지어졌다 한다.
거문도등대는 남해안 최초의 등대로써 1905년 4월 12일 세워진 뒤 지난 100년 동안 남해안의 뱃길을 밝혀왔다. 거문도 등탑은 높이 6.4m의 원형백색으로 연와, 석 및 콘크리트 혼합구조물이다. 등명기는 3등대형으로 유리를 가공한 프리즘렌즈를 사용하였으며, 수은통에 등명기를 띄우고 중추로 회전시켜 15초 간격으로 불빛을 밝혀 약42km 거리에서도 볼 수 있게 설치되었다. 노후 된 시설을 대신하여 33m 높이의 새로운 등탑이 신축되면서 2006년 1월부터 선박의 길잡이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100년 동안 사용한 기존 등탑은 등탑 외벽과 중추식 회전장치 등을 보수하여 해양유물로 보존하고 있다. 거문도는 섬 일대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해있는 곳으로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거문도등대는 거문도를 찾는 관광객이 여행하는 필수 코스이다. 여객선 선착장이 있는 거문리에서 등대까지 걸어서 약 1시간 남짓 걸리는데 삼호교를 거쳐 유림해수욕장을 벗어나면 물이 넘나드는 "무넘이"를 지나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바다의 기암절벽을 낀 1.2km 거리의 산책로가 펼쳐지며 길 양쪽으로 길게 들어선 동백나무 숲길을 걷다보면 세상 모든 상념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등대 절벽 끝에는 관광객들이 바다 경치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관백정이 있다.
백야도등대
2005년 4월 14일 백야대교가 설치되어 차량운행이 가능해지면서 관광객과 낚시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수오션리조트 등 화양지구의 개발이 예정되어 있어 앞으로도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백야도(白也島)는 면적 3.08㎢의 비교적 작은 섬으로 멀리서 보면 범이 새끼를 품고 있는 것 같다 해서 백호도라 불리다가 1897년 돌산군 설립 당시 백야도로 개칭하였다. 백야도등대는 1928년 12월 10일 높이 8.8m의 백색4각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최초 건립되었으며, 1983년 11월 26일 현재의 높이 11.1m의 백원형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개량되었다. 현재 백야도등대의 등대 불빛은 35km 외해에서도 볼 수 있도록 국내기술로 개발한 중형등명기를 설치하여 여수⇔나로도 간 이용선박의 안전한 길잡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야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수시 화정면 힛도 선착장에서 도선을 이용하였으나, 2005년 4월 14일 백야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백야대교가 설치되어 차를 타고 쉽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등대에는 푸른잔디와 함께 등대직원이 손수 만든 조각품들이 잘 정돈되어 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당사도등대
조선시대 선조 때에 청주황씨가 처음 입도하였으며 그 후 김해김씨, 전주이씨 등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중구절제의 이야기가 내려오며 뱃노래가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제시대에 소안 항일운동의 시발점인 당사도등대는 1909년 석유를 사용하여 불을 밝혔다. 이 등대는 태평양 전쟁시 일본 군용 통신기지로 사용되어 공습으로 대파되었으나, 1948년 복구하였고 1969년 항공식 등명기로 남해 일대를 항해는 선박들의 뱃길을 안내하고 있다. 당사도 등 대는 주변 자연환경과 해변 경관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김 양식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당사도 동남쪽 당사도등대! 당사도(唐寺島)의 원래 이름은 "항문도"(港門島)였다. 그런데 지명의 어감이 좋지 않아서 바꾼 이름이 공교롭게도 "자지도"(者只島)였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개명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당사도이다. 1982년에 새로 얻은 이 지명은 옛날 당나라를 오가던 배들이 이곳에 기항(寄港)하면서 무사고를 빌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뱃사람들 사이에선 자지도라 불리고 있다. 또한 지도책마다 당사도, 자지도, 자개도 등으로 서로 다르게 표기된 경우도 있다. 당사도에서는 등대가 있어서 색다른 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대체로 등대가 있는 섬은 절해고도의 무인도이거나 바위섬에 불과한 경우가 많지만, 당사도는 30가구에 5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오붓한 등대섬이다. 게다가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당사도등대는 1930년대 우리나라 최초로 전파 표지인 무선방향 탐지기가 설치되어 무선방위 측정업무를 수행하기도 했으며 당시 당사도와 목포간에 고정회선을 유지해 관청용 무선전신의 형태로 선박통보 및 기상정보 전송을 하기도 했다. 현재 남해안의 위성항법 보정시스템(DGPS) 기준국을 감시하는 감시국이 설치되어 있다.
죽도등대
1800년경에 최씨가 처음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대나무가 많다고 하여 "죽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한반도 서남해역의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조도지구에 위치한 50만㎡의 섬으로 거친 파도와 풍파에 씻겨 이루어진 기암괴석과 바다안개에 쌓여 아름다운 자태를 숨기고 있는 병풍도가 근해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도군도의 대표적인 절경의 집산지인 관매도는 빼 놓을 수 없는 주변 관광지이다.
서남해의 끝단에 있는 많은 다도해들 중 가장 외해에 위치한 거차군도를 막지나면 마치 바다속에서 솟아오르는 거북이 등같이 보이는 노출된 암초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진도 일원의 섬들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부산,인천으로 향하는 대형선박들은 거차군도와 맹골군도 사이의 맹골수도로 통항한다. 그리고 목포항에서 만선의 꿈을 실은 어선이 동지나해 및 흑산제도 해역으로 출어하는 길목이기도하다. 이 해역을 통항하는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위한 이정표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죽도(竹島)등대이다. 1907년 12월에 초점등하여 점차 그 규모가 확대되어 무선전신과 방향탐지기등이 설치되어 고유의 업무수행중, 태평양전쟁으로 시설물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해방후 다시 복구되어 현재는 광파표지(회전식등명기), 음파표지(에어싸이렌), 전파표지(RACON)을 운영하고 있다. 맹골군도를 이루고 있는 가장 큰섬은 맹골도이고 북방의 섬이 죽도등대가 위치한 죽도이다.
가거도등대
가거도는 인구 504명이 거주하는 작은 섬으로 해도상에는 소흑산도로 표기되어 있으며, 예전에 목포와 가거도간 직항로가 없고 대흑산도를 거쳐야만 소흑산도까지 오갈수 있었던 것에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는 섬 이름이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嘉佳島, 可佳島)였으나 1896년부터 ‘가히 살만한 섬’이라는 뜻의 가거도(可居島)로 명명되었다.
소흑산도등대는 중국 상하이의 닭울음 소리가 들린다고 할 정도로 중국과 가까이 있는 우리나라 최서남단의 섬 가거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1907년 12월 무인등대로 처음 불을 밝힌 후 주변해역의 통항선박 증가에 따라 등대 기능강화를 위하여 1935년 9월부터등대원이 상주하는 유인등대로 바뀌었다. 소흑산도등대는 동지나해 및 외해에서 우리나라 서남해안으로 들어오는 선박들의 위치를 확인해 주는 육지 초인표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백색의 등탑은 7.6m이며, 야간에 15초마다 반짝거리는 등대불빛은 약 38km 밖에서도 볼 수 있다. 또한 최첨단 항법시스템인 위성항법보정시스템(DGPS)이 2002년 11월에 설치되어 반경 100마일 이내에서 위성항법시스템(GPS)의 위치오차를 1m이내로 줄여주는 위치보정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가거도는 섬 전체가 후박나무 군락지로 전국 후박나무 약재 생산량의 70%가 이곳에서 공급되고 있으며, 주변 해역은 수심이 깊고 해저가 대부분 암초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나라 최고의 감성돔, 돌돔, 볼락의 낚시터로 각광받고 있다.
목포구등대
목포구등대는 대한제국 말기인 1908년 1월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까지 승리한 일본제국주의의 본격적인 대륙진출을 위한 기반시설 확충사업의 일환으로 당시 세관공사부 등대국에서 관세수입으로 설치되었다.
목포구등대는 1897년 10월 개항한 목포항의 관문에 설치되어 화원반도와 달리도의 협수로(폭600m)를 안전하게 통항할 수 있도록등대 불을 밝히고 있다. 목포구등대는 건립당시 무인등대(높이 7.2m, 백원형콘크리트조)로 설치되었으나 1964년 12월등대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등대원이 근무하는 유인등대로 변경하였으며, 2003년 12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목포구등대는 등탑 36.5m(기초상) 높이로 힘차게 항진하는 선박을 형상화하여 목포항을 입▶출항하는 많은 선박들과 여객선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처음으로 구축된 “항로표지 원격감시▶제어시스템”의 운영센터가 목포구등대에 설치됨에 따라 2005년 4월부터 단순한 등대 기능유지 뿐만 아니라 목포권 무인표지의 동작상태를 24시간 감시하고, 이용자들에게 신속한 항로표지 운영정보를 제공하는 업무도 함께 수행하고 있어 해상교통 안전을 위하여 그 역할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목포구등대는 목포권 유인등대 중에서 유일하게 육지에 위치해 있으며, 등대를 가기 위해서는 차량을 이용, 목포에서 금호방조제를 지나 해남군 화원반도를 횡단해야 하며 약 50분가량 소요된다.
하조도등대
하조도는 동서 7km 남북 5km에 이르는 섬으로 36개의 유인도와 142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조도군도(鳥島群島)에 속한다. 조도군도는 북쪽에 있는 섬이 ‘상조도’고 그 아래쪽이 ‘하조도’이며. 작은 섬들이 마치 새떼처럼 많이 산재해 있고 아래에 위치하여 하조도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하조도등대는 남해안과 서해안을 연결하는 항로의 요충수로인 장죽수도의 안전한 뱃길 안내를 책임지고 있으며, 등대의 불빛은 48Km까지 도달한다. 진도와 하조도 사이의 항로는 조류가 빠른 곳으로 이곳을 지나는 선박들의 안전항해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하조도등대는 1909년 2월 건립되어 몇 년후 100주년을 맞이하게 되며, 등탑높이는 14m로 경사가 가파른 48m의 기암절벽 위에 우뚝 서 있어 이 곳을 지나가는 선박 및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하조도의 매력은 바다와 땅의 아름다운 조화에 있다. 푸른바다위에 올망졸망 떠 있는 섬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소리없이 미끄러져 가는 고깃배의 모습을 보다가도 고개만 돌리면 시야에는 금세 한적한 시골 농가의 전원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신전해수욕장과 모라깨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무척 아름다우며 인근 죽항도의 멸치어장과 새떼처럼 몰려있는 새끼섬들을 둘러보는 섬 여행의 즐거움이 각별하다.
가사도등대
최초 입도는 1600년대 중엽에 인동 장씨 장봉산이 해남 우수영에서 가사도에 들어와 먼저 살고 있던 제주 고씨와 결혼하여 정착했다. 1896년 이전에는 진도군 제도면에 속했다가 일제강점기에 가사면으로 독립된 이후 1914년에 조도면에 통합되었다. 옛날 주민들이 돛단배를 이용하여 야간에 고기잡이를 하다 가사도를 바라보면 산 능선쪽에서 불이 켜져있는 것처럼 보여 이를 이상하게 여긴 마을 주민들이 말의 머리쪽 능선에 조상의 묘를 옮기게 되었고, 그 이후 자손들이 번창하여 고위 관리직에 등극하였다고 전한다.
천태만상의 크고 작은 섬들과 기암괴석! 그들을 둘러싼 새파란 하늘과 출렁이는 바다 물결, 파란 융단주위에 진주를 뿌려 놓은 듯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다도해에 둘러싸인 가사도는 지형적으로 말 모양으로 말의 이마에 등대가 설치되어 있는 형상이다. 부산▶제주↔인천▶목포 방면으로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을 위해 광력증강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84년 10월 유인등대로 새롭게 태어나 서남해역 교통로의 이정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등탑은 평균 해수면으로부터 70m에 이르는 고지대에 위치하며 프리즘렌즈 회전식 등명기의 불빛은 50km에 이르고 있다. 지역적으로 짙은 안개가 자주 발생되어 통항선박의 안전항해를 유도하기 위하여 음향신호인 무신호기를 작동하여 음산한 해무와 연중 승부를 겨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첨단 위성항법보정시스템인 DGPS감시국과 연안해상교통관제(VTS)서비스 제공을 위해 레이더를 설치▶운영중으로 우리나라의 특수항로표지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근의 하조도등대가 장죽수도를 관장하는 이정표라면 가사도등대는 목포의 내▶외항의 교차로에서 지정학적으로 해상교통 경찰의 역을 담당하고 있다.
말도등대
말도등대가 자리잡고 있는 고군산군도의 옛 지명은 ‘군산도’다. 해발 150m의 높이가 낮은 구릉성 섬들이 바다에 무리지어 모여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산이 무리지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시대때 최무선이 왜구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진포해전의 기지이며 조선시대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수군진영의 명칭도 ‘군산진’이었다. 조선 세종때 진영을 인근 군산지역으로 옮기면서 지명까지 가져가는 바람에 이 섬들에 대해선 옛고(古)자를 앞에 넣어 고군산(古群山)이라는 새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산으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40㎞ 해역, 그 곳에 수십개의 조그마한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선유도(仙遊島), 신시도(新侍島), 무녀도(巫女島), 방축도(防築島), 관리도(串里島), 장자도(壯子島), 말도(末島) 등 63개의 섬들이 군락을 이루며 점점이 모여있는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다. 고군산군도의 섬들 중 신시도와 야미도는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하여 이미 육지화되었고,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등 일부 섬들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이 고군산군도의 최북서단에 위치한 말도에는 일제강점기인 1909년 11월에 대륙진출의 야망을 가진 일본의 정략적인 목적에 의해 세워졌다. 당초 등대는 백색의 8각형 콘크리트 구조에 내부는 주물로 만들어진 2단 나선형 사다리가 설치된 형태였으나,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 해풍에 부식되어 그 역할을 다하고 1989년 10월 백색의 원형 콘크리트 구조물로 새롭게 태어났다. 등대불빛을 발하는 등명기는 국내에서 개발한 프리즘렌즈 회전식 대형등명기로 37㎞거리에서도 불빛을 볼 수 있어 서해안과 군산항을 오고가는 선박들에게 길잡이가 되고 있다. 말도등대가 위치한 고군산군도의 자랑거리인 고군산 8경(선유팔경)을 섬들간의 연결된 다리를 이용하여 자전거 하이킹으로 둘러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제주도 산지등대
행정구역상 제주시 건입동에 속하는데도 이 곳을 왜 “산지등대”로 부르게 되었는지에 대 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산지란 명칭 은 1702년(조선 숙종 28년) 제주목사 이형 상이 순력중 화공 김남길로 하여금 제작토 록 한 「탐라순력도」에 의하면 산지촌(山 地村)으로 기록되어있다. 그 밖의 문헌 「제 주도 통권 42호 1969년」에 의하면 처음에 는 산저(山低)였던 것이 나중에 산지(山地) 로 되었다 한다. 즉 한라산에서 발원한 “산 지천” 상류의 가락쿳물(오현단 동쪽)이 건 입포를 지나 바다로 흘러들었기 때문에 산 저(山底)라고 하였던 것이 “산지”로 바뀌게 되었다는 설과 한라산 줄기인 사라봉이 북으로 뻗어 내려오다 해안가에 이르러 다시 높이 솟아올라 “산지”라고 불렀다는 이야기 가 전해 오는데 이런 이곳의 옛 지명을 따서 산지등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제주시민의 대표적 공원인 사라봉 중턱 언덕위에 탐라의 관문인 제주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하얀 건물 하나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해안 절벽과 바다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해안선의 모습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 그 곳에“산지등대”가 있다. 1916년 10월 무인등대로 처음 점등된 산지등대는 1917년 3월에 유인등대로 변경되었고, 1999년 12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새롭게 등탑을 신설하였고 기존 등대는 83년간 밝혀오던 희망의 빛을 동생에게 물려주고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형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산지등대의 등탑은 백색 원형콘크리트 구조로 높이는 18m이다. 2002년 12월에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고광력 회전식 대형등명기로 교체되었고 불빛은 15초에 1번씩 반짝이며 그 빛은 48㎞ 떨어진 곳까지 도달한다. 산지등대 주변은 넓은 바다와 사라봉이 펼쳐진 주변광경이 뛰어나고 도심지와 가까운 위치에 있어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등대 탐방을 겸한 체험 학습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등대 역할 뿐만 아니라 관광 자원으로서도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태양이 지쳐 바닷속으로 빠져들어 붉은 빛이 채워질 때 쯤 생활터전으로 향하는 어선들을 반기는 파도의 하얀 포말이 노을을 벗 삼아 만들어내는 옥빛의 향연이 등대 앞쪽 바다에 펼쳐지고 등대의 불빛이 어둠을 향해 길을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바다는 수백 척의 고기잡이배들이 수놓는 환상의 불꽃 잔치가 펼쳐진다.
추자도등대
추자도란 명칭의 유래는 1271년(고려원종 12년)까지는 후풍도(候風島)라고 불렸다. 제주도에서 일어난 ‘목호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파견된 최영장군이 거센 바람을 피해 머물렀던 곳이란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 후 전남 영암군에 소속될 무렵부터 추자도 (秋子島)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이는 크고 작은 섬들이 마치 바다에 가래나무(추자나 무) 열매를 흩뿌려 놓은 듯 해 붙여진 이름이 라고 전해져 온다.
제주도로부터 45㎞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제주도의 다도해 추자도! 상추자도, 하추자도, 횡간도, 추포도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추자도는 ‘추자10경’으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상추자도의 해발 125m 산정상에 추자도등대가 있다. 추자도등대는 제주해협과 부산, 목포 등 내륙을 오가는 여객선과 화물선 그리고 동중국해를 항해하는 선박들의 안전한 밤길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1980년 2월 27일 점등된 추자도등대는 규모가 작고 노후되어 철거하고 그 자리에 사무실과 홍보관 등을 갖춘 현재의 등대를 신설하였다. 등탑의 높이는 24m로 기존(6.7m)보다 높게 지어졌으며 불빛은 20초에 1번씩 반짝이고 그 빛은 48㎞ 떨어진 곳까지 도달한다. 제주도의 다도해라 불릴 만큼 자연경관이 빼어나 우두일출(牛頭日出) 등 추자10경으로 대표되는 빼어난 경치와 더불어 풍성한 어족▶어장을 갖춘 청정 해양자원의 보고이며 흑비둘기 및 슴새의 서식지인 사수도(천연기념물 제333호)와 최영장군 사당, 박씨처사각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행정구역상 제주도에 속하나 언어 등 문화적인 관습은 전라남도에 가까운 특징을 갖고 있다.
부도등대
이곳은 흡사 물오리가 두둥실 떠서 오수를 즐기는 듯 보인다하여 부도(鳧島)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며, 도깨비가 많다고 하여 도깨비 섬이라고도 하며, 많은 도깨비를 쫓기 위해 도깨비가 제일 싫어하는 피(血)와 소금(鹽)을 섞는다는 의미로 피염도라고도 불리운다.
부도는 인천항관문에 위치하고 있어 1904년 다른 지역보다 먼저 이곳 부도에 등대가 설치되었다. 그 위치의 중요성에 걸맞게 항로표지의 주요기능인 광파, 전파, 음파표지를 모두 갖춘 등대이다. 이 등대의 등탑은 높이 15.2m, 지름 3m 규모로 불빛은 15초에 한번 반짝인다. 2001년에는 국내 최초로 국산화한 프리즘 렌즈를 이용한 회전식 대형등명기를 설치하여 약50km의 먼 곳에 있는 선박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도록 광력을 증강하였고 또한 지역적으로 조석간만의 차가 크고, 조류가 강하여 선박운항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 2005년 5월에 조류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할 수 있는 조류신호시스템 설치로 이용자에게 조류정보를 실시간 제공하여 인천항 입출항 선박의 안전운항에 기여하고 있다.
선미도등대
선미도 부근은 풍랑이 심해 많은 어선들이 침몰했던 곳으로 옛날 착하고 아름다워 임금의 총애를 받던 궁녀가 왕비의 질투로 밀려나 외딴섬에 유배된 채 덧없는 세월을 보내다가 벼랑에 떨어져 죽었다. 한을 품은 영혼이 구천을 맴돌며 섬에다 저주를 내려 악독하고 험난하게 만들어 인간을 얼씬도 못하게 하자 궁녀의 영혼만이라도 뭍으로 보내어 그녀가 그리던 임금님 곁으로 가게하기 위해 젊은 총각을 구해 제(祭)를 지내고 선을 베풀어라는 뜻에서 선미도(善尾島)라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 있다. 또, 한을 품은 영혼이 저주를 내려 악독하고 험난하게 만들었다 하여 악험도(堊險島)라고도 불린다.
인천으로부터 37㎞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선미도등대는 인천항과 중국간을 운항하는 선박들과 북한과의 해상교역을 위해 남북한을 오가는 선박들이 이용하고 있다. 선미도 등대는 2003년 12월에 새롭게 태어났다. 오랜 풍상에 낡아 훼손된 기존 등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 등대가 건립되었으며, 등탑은 19.4m로 당초보다 더 높게 지어져 37km 거리에서도 불빛을 볼 수 있다. 등대 불빛을 전달하는 등명기는 우리나라에 몇 대밖에 없는 프리즘렌즈 3등대형 등명기로 12초에 한번씩 반짝인다. 무인도인 선미도에는 가마우지, 까치, 노랑할미새, 흰뺨검둥오리가 살고 특히 겨울철이면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천연기념물 제243호로 지정된 참수리가 겨울나기를 한다. 해안가에는 손으로 휩쓸면 한주먹씩 잡힐 정도로 수많은 고동이 나붙어 있고 게들이 기어 다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부산 야구등대
부산 바다를 지키는 이색등대를 찾아
바다의 수호천사 등대가 변하고 있다. 부산에는 최근 몇 년 전부터 개성 넘치는 조형등대가 하나둘씩 생겨나더니 이제는 등대를 찾아 여행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차원을 넘어 등대가 볼거리가 된 것이다. 이색등대가 모여 있는 부산 기장에는 먹거리도 풍성하니 여행이 더욱 즐겁다.
부산, 70여 개 등대가 밤바다를 비춰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에 /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생략)
시인 고은 선생이 노랫말을 붙인 동요<등대지기>다.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에 한 줄기 빛은 길 잃은 배에게는 생명과 같다. 그 생명의 빛을 밝히는 등대지기의 마음을 시인은 ‘거룩하고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항구도시 부산에는 그 마음을 담은 등대가 유·무인 합쳐 74개에 이른다. 그중에서 젖병·야구·축구·마징가Z 등 특이한 모양의 조형등대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은다. 멸치와 풍장어로 유명한 부산광역시 기장군이 그곳이다.
이처럼 이색적인 조형등대가 세워진 이유는 등대를 이용해서 부산의 도시 이미지를 구축하고 관광자원화 하겠다는 계획에서다. 그중에서 멸치와 풍장어로 유명한 부산광역시 기장군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젖병등대, 닭벼슬등대, 장승등대, 월드컵등대가 한눈에 보이는 대변항
해운대와 광안리에 비해 사람이 적은 송정해수욕장을 뒤로하고 기장해안로를 따라가면 짚불곰장어로 유명한 기장곰장어촌을 지난다. 4km 정도를 더 달리면 오른쪽 어깨너머에 아담한 서암항이 보인다. 갈고리처럼 생긴 방파제 끝에 젖병모양의 귀여운 등대가 눈에 들어온다. 어쩜 저런 등대를 만들었을까? 궁금한 마음에 한달음에 뛰어가서 살펴보니 2009년 부산지방해양항만청이 출산장려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정식 명칭은 귀여운 모습과 달리 무미건조한 ‘서암항 남방파제등대’. 젖병등대 벽면에는 부산에 사는 영유아 144명의 발도장과 손도장이 양각으로 제작되어 붙어 있다. 그 옆에 큰 병보다 더 작은 젖병모양이 있는데 등대기능은 없는 조형물일 뿐이다. 앙증맞은 젖병등대를 제대로 보려면 가까이에서 보는 것보다 10여m 뒤에서 봐야 한다.
젖병등대 벽면에는 부산에 사는 영유아 144명의 발도장과 손도장이 양각으로 제작되어 붙어 있다
젖병등대는 2009년 부산지방해양항만청이 출산장려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다 고요한 바다를 지키고 있는 젖병등대
젖병등대에서 눈을 돌려 왼쪽을 보면 북쪽을 향한 뱃머리 모양의 붉은 등대가 보인다. 차전놀이등대 또는 닭벼슬처럼 보인다고 해서 닭벼슬등대라고 부른다. 정식명칭은 ‘서암항 북방파제등대’다. 가까이 가서 보면 등대라기보다는 전망대처럼 보이는데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다. 난간에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이라도 한 듯 자물쇠가 여러 개 걸려있다. 개중에는 오래전에 맹세를 했는지 녹슨 것도 있다. 긴 시간만큼 사랑도 끊어지지 않고 영원하길 소망하며 발길을 돌린다.
태권V와 마징가Z가 대변항을 지킨다
대변항에 들어서면 마징가Z를 닮은 노란색 등대가 보인다. 그 뒤로 하얀 태권도복을 입은 것 같은 태권V등대가 등을 맞대고 섰다. 육안으로는 가까워 보이지만 대변항으로 들어오는 먼바다의 파도를 막기 위해 인공섬 형태의 ‘뜬 방파제’에 설치되어 있어 배를 타지 않고서는 갈 수 없다. 원래 두 등대는 장승을 본떠 만들었으나 천하대장군은 마징가Z를, 지하여장군은 태권V를 더 닮았다. 장승등대의 정식명칭은 ‘대변외항 남방파제등대’다.
장승등대 옆 긴 방파제 끝 지점에 월드컵기념등대가 서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와 4강 신화를 기념하는 등대다. 미사일 발사대를 닮은 빨간색 등대에 세 개의 다리가 축구공을 감싸고 있다. 이 축구공은 2002년 월드컵 공인구였던 ‘피버노바’다. 아랫부분에 출전국가의 국기와 경기 성적이 기록되어 있다.
대변항은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어촌 100곳’에 선정된 곳이다. 부두 앞에 자연 방파제가 역할을 톡톡히 하는 죽도가 있어 파도가 거센 동해바다를 잠재운다. 부둣가에는 기장 특산품인 미역을 말리는 건조대가 널브러져 있다. 기장멸치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특산품이다. 항구 안으로 고깃배가 들어오면 어부와 상인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특히 3, 4월에는 멸치잡이가 제철이다. 국물다시용이나 마른반찬으로 먹는 멸치가 이곳에서는 훌륭한 횟감으로 대접받는다. 그래서 싱싱한 멸치회와 멸치찌개를 맛보려고 미식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치열한 삶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진가들도 빠른 걸음으로 분주하게 옮겨 다닌다.
부산 사나이하면 갈매기하고 야구아이가!
대변항에서 북쪽으로 11km를 더 달리면 칠암항에서 이색등대의 완결판을 볼 수 있다. 부산사나이들이 열광하는 야구를 형상화한 야구등대와 부산갈매기를 연상시키는 갈매기 등대가 그것이다. 부산의 야구장에 가면 어김없이 목 놓아 부르는 응원가가 ‘파도치는 부둣가에 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 부산갈매기~ 부산갈매기’다.
칠암항 오른쪽 방파제에는 하얀 야구등대가 있고 왼쪽에는 붉은색 갈매기등대가 있다. 야구등대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우승을 기념하고 야구도시 부산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방망이 모양의 등탑을 중심으로 야구공과 글러브 모양이 나란히 세워놓았다. 야구공 조형물 안쪽벽면에는 전설의 투수 최동원과 영원한 맞수 선동열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 경기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빨간색 갈매기등대는 야구공 모양의 원형 조형물과 등대로 이루어졌는데 공 가운데 갈매기가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다이내믹 부산의 모습을 적절히 표현한 멋진 등대다.
야구등대 내부에는 전설의 투수 무쇠팔 최동원 선수의 현역시절의 사진들이 붙어 있다. 야구등대 내부에는 전설의 투수 무쇠팔 최동원 선수의 현역시절의 사진들이 붙어 있다. 부산의 야구 열기를 대변하는 야구등대 야구등대와 부산갈매기 등대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다.
칠암항은 흔히 아나고로 알려진 붕장어가 별미다. 회로 먹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인데 뼈째 먹는 것을 꺼리는 손님을 위해 뼈를 바른 뒤 손님상에 내놓기도 한다. 붕장어 회에 야채를 듬뿍 올린 뒤 콩가루와 초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으면 이만한 별미도 없다. 매년 가을에 기장 붕장어 축제가 개최된다.
출처 :오디오와 컴퓨터 원문보기▶ 글쓴이 : 管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