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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2024 희망과 절망
김인기
이제 겨우 두어 달 전이다. 2024년 12월 3일 이날 밤잠을 잊게 한 비상계엄의 선포와 해제가 마치 오랜 일인 듯 아득하다. 이후 몇몇 난관들이 있었으나, 대체로 법질서에 맞춰 일련의 사태가 진행 중인데, 그렇다고 지금이 방심할 때도 아니다.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다고는 하나, 내란은 끝나지 않았어. 위헌세력이 여전하다. 그러므로 곧 있을 거라 기대하는 대통령 선거에서 반드시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민주제 국가도 폭력을 독점한다는 점에서 여타 국가들과 다를 게 없다. 그리고 이 폭력을 두고 ‘강제력’이라 하든 ‘공권력’이라 하든 그 표현이야 어떻든 속성은 같다. 그러면 이번과 같이 국헌을 짓밟은 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함부로 입에 올리기 사위스럽지만, 저들의 행위나 의도는 물론 후환까지 숙고하면, 이게 고민스럽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저들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너희들은 이미 망했다. 언제까지 추태를 부릴 거냐?”
죄상이 명백하다. 누구라도 바랄 걸 바라야지. 이러고도 어찌 살기를 바라랴. 자기들이 한 행위가 뭔지도 몰라? 누가 타협과 중립을 들먹일 수도 없다. 방법이 없다. 아예 없었던 일로 하거나 그냥 처벌하는 시늉만 하자고? 그러나 이것도 가당치가 않다.
‘잘 알지 않느냐? 이럴 수가 없어.’
지난 1월 15일에 수괴는 구치소로 갔다. 경찰이 사건 발생 43일이나 지나서야 겨우 체포할 수 있었다. 탄식이 절로 나온다. 대통령의 처신도 참 구지레하다. 패거리들의 헛소리도 시끄럽고. 이들한테는 상식도 염치도 없다. 누가 이렇게나 명백한 내란죄를 어떻게 가리나? 그러거나 말거나 윤석열은 1월 26일 기소를 당했다.
세상에는 똑똑한 이들이 많다. 물론 멍청한 이들도 많고. 나야 그리 똑똑하지도 않고 아주 멍청하지도 않아 식견도 그저 그런 수준인데, 이런 작자도 이번 사태를 두고 뭐라고 따져는 봐야 할 듯하다. 무엇보다 요설들이 워낙 많아 정신이 혼미하다. 혹자의 주장대로라면 내란을 일으킨 주범이 야당인 민주당이고 수괴는 그 대표인 이재명이다. 더러는 헌법과 무관하게 대통령의 행위는 그 무엇이든 내란일 수 없고 다만 통치행위일 뿐이라 떠들기도 한다.
‘저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저러다 말겠지!’
평소와 같이 이럴 수가 없어. 나는 실수가 잦은 인물인지라 함부로 나서기 조심스럽다. 에이, 내가 뭐라고! 어차피 세상만사 사필귀정이라니까, 너무 조급하게 여기지 말고, 그저 그러려니 하자. 그러나 너무나 안이하지 않나? 이런 태도야말로 악의 편이 아닐까? 혹여 이 방관이 헛소리를 키우지 않을까? 의심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만약에 1997년의 환란사태가 없었더라면, 한국인들 대다수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뭔지도 몰랐을 것이다. 김영삼 정권의 실정이 있었다. 고인이 된 분을 두고 여기서 또 뭐라고 하랴만, 이 양반은 공과가 분명하다. 그래서 덕분이라 여길 것들도 있고, 흔적으로 남은 것들도 있고, 망각에 빠진 것들도 있다. 세월이 제법 지났다. 그런데도 나는 황당했던 그 시절의 경험이 자꾸만 떠오른다.
“이게 다 김대중이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일부 지역이라고는 하나, 어떻게 이런 몰상식이 통할 수가 있었나? 마치 환란사태가 김대중 정권에서 일어난 듯했다. 이게 요즘과 닮았다. 내란수괴가 이재명이라며? 최근 계산오거리에는 거짓말이 적힌 펼침막이 국회의원 명의로 걸려 있었다. 민주당의 내란 선동에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나. 정작 민주공화국을 무너뜨리는 비상계엄령을 해제할 표결에는 끝끝내 불참한 그 국회의원이 이랬다. 과거에 그랬듯이 혹여 이런 자들이 또 총선에 나가 당선되려나. 정말 나도 대구를 떠나고 싶다.
나는 내란수괴가 직접 발표한 「비상계엄선포문」을 다시 읽어본다. 자기는 대통령으로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했다는데, 이게 다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 했다. 자기는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이고, 이를 위해 자신이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노라 했다.
이참에 계엄사령관 박안수의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도 일부나마 따져보자. 이것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는데, 과연 이 조항들이 자유와 민주에 어떻게 어울리는지 알 수가 없다. 비상계엄은 곧 군정(軍政)인데, 이게 실현되었더라면, 이 나라는 아마 피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그다지 고분고분하지 않다. 설령 그 의도가 좋았다 해도 총칼로 저지른 숱한 죄악들이 자신들을 옥죌 것이다. 이러고도 어떻게 다시 민정(民政)으로 돌아가나?
그런데도 이런 포고령이라니!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2.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 선동을 금한다.
3.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결국은 논리가 아니라 물리력으로 강제하겠다는 협박인 포고령이 제2호 제3호 제4호 이렇게 잇달아 나왔더라면, 여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거리거리마다 ‘반역의 노래’인지 ‘혁명의 노래’인지 모를 노래들이 울렸으려나. 곳곳에서 신격화도 이루어지고. ‘위대한 지도자 덕분에 이 강토마저 흥겨워한다.’ 이렇게 아부하는 작자들도 설쳤으려나. 이게 크게 놀랍지도 않다. 근래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으니까. 뭐, ‘하늘이 내려주신 대통령’이라며? 그런들 저들이 성공이야 했으랴만.
“저게 미쳤구나, 미쳤어!”
비상계엄 소식에 어이가 없었다. 작금의 한국인들이 얼마나 자부심이 높은데, 대통령이 이를 비웃고 군대를 동원해 뭘 어떻게 한다고? 내란범들이 획책한 바를 헤아려보니, 흉악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이게 유권자들이 선택한 정권의 모습이라니. 지지자들은 지금도 자기들의 뜻에 거슬리는 자들은 마구 죽여도 그만이라고 여기나? 그래서 법원마저 습격했나? 나는 이런 무리에 환멸을 느낀다.
비상계엄도 해제했고, 우두머리도 체포했다. 잔당들은 그대로 남았다. 이 내란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이게 현안이다. 나는 앞날을 낙관하지만, 곳곳에 난관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가 동화의 나라도 아니거니와 인간도 천사가 아니므로 환상은 버려야지. 또 각오도 해야 하고. 우리에게는 폭군의 모가지를 자르는 결단도 필요하다. 오로지 말만 그럴싸한 이유로 화근을 남긴 채 어설프게 봉합했다가는 필연코 참혹한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광화문 앞 세종로에 나가보라. 여기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다. 장군은 불세출의 영웅이라 할 만하고, 이를 부인하는 한국인도 거의 없다. 그러나 막상『난중일기』의 행간에 어른거리는 모습은 웅장하다기보다 참담하다. 그리고 그지없이 혹독하다. 장군은 적장의 머리를 서슴없이 잘라내 장대에 매달았다. 때로는 수하의 목도 쳤다. 군율은 지엄한 것이었다. 장군이 수시로 점을 치기도 했고, 육신의 고통으로 몸부림도 쳤다. 그렇다고 그 승리들이 우연이었더냐. 우리도 단호해야 한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자 관련법에 따라 한덕수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했다. 그러나 이 작자 또한 탄핵을 당했다. 그러자 경제부총리가 절차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했는데, 이 작자 또한 수상하다. 요즘 울화통이 치미는 이들에게 통찰력으로 신경안정제 노릇을 톡톡히 하는 유시민 작가의 말마따나 최상목 이 양반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게 아니라 내란수괴의 권한을 대행한다.
윤석열의 내란은 실패했다. 이날 실시간으로 전국의 시민들이 현장을 똑똑히 지켜봤다. 수괴는 살길이 없다. 인간이 이 지경에 이르면 대개 도망을 치거나 목숨을 끊는다. 나는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기려니 했다. 그러나 그 작자는 이럴 인물도 아니었다. 그러자 나는 또 이게 궁금해졌다.
‘저것은 왜 저러고 있나?’
공범자들과 부역자들도 많다. 이들의 개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누구는 그게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었다 한다. 국회의사당에 군인들을 보내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했으면서, 그게 ‘의원’이 아니라 ‘요원’이었다고, 누가 또 맥락에도 맞지 않는 거짓말을 한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언제 죽어도 억울할 게 없을 자들이다. 자업자득이니까.
아무도 앞날을 모른다. 잘 될 거야. 아니야, 매우 걱정스러워. 이렇게 희망과 절망이 공존한다. 나름의 근거는 다 있다. 그리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다 당대인의 선택에 따르리라. 나는 이번 ‘윤석열의 난’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것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피땀의 소산일 것이다. 나 또한 여기에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고자 이렇게 글을 쓴다.
나는 지난 2022년 8월에 「세설 2022 얄라차」라는 수필을 써서 어디에 발표한 적이 있다. 비록 윤석열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으나, 대통령이 하루라도 빨리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썼다. 이런 판단에 혜안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나만의 의견도 아니었고. 이게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그런데 이 작자가 진작에 하야하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내란을 일으켰다.
틈만 나면 자유와 애국의 화신인 듯 나대던 자들이 요즘은 내란을 선동하는 걸로도 모자라 내전을 부추기나. 사람이 사노라면 종종 착각과 오해도 일어난다. 그러나 흉물들은 자기들도 믿지 않는 헛소리로 세상을 어지럽힌다. 이들은 사리사욕을 위해서라면 마다할 짓이 없다.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사례가 있다.
“여기는 민주국가이다. 우리는 자정작용을 신뢰한다.”
과거에 독일이 이랬다. 심지어는 ‘자유를 없앨 자유’를 떠벌려도 ‘저러다가 말겠지. 망발에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 하물며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랴.’ 하며 지나쳤다. 이러다가 맞이한 현실이 바로 히틀러의 등장이었다.
“우리는 다르다!”
사람이 이렇게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괜찮아. 특히나 이번 윤석열의 내란에 맞선 시민들과 야당 의원들의 행위는 길이길이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부심이 곧바로 자만심이 되면 곤란하다. 외부세력이 이 나라를 침공한 게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아직도 이들을 정리하지도 못했다.
“재판장님! 저에게 온정을 베풀어주십시오. 저는 고아입니다!”
자기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가 법정에서 이러는데, 어느 누가 ‘그래, 너는 고아인 게 분명하니, 정상참작을 하마.’ 하나. 이렇게 법정을 모독하고 인륜을 능멸하는 자를 그냥 두고 보랴. 그래도 형식과 절차를 둔 건 심심해서가 아니었다. 각자가 임의로 해결하기로 하면 사회가 온통 아수라장이 될 테니까. 바로 이걸 경계했다.
나는 귀를 기울여 들어본다. 자기들에게 거슬리는 사람들을 마구 붙잡아 어쩌겠다고 한 내란범들과 이를 변호하는 이들은 지금 뭐라고 떠벌리는가? 과연 법정의 그 패륜아보다 나은 면모가 있기나 한가? 그러므로 나는 강력히 요구한다.
“즉각 내란당을 해체하라.”
우리는 이미 법절차에 따른 정당의 해산을 경험한 바 있다. 어, 갑자기 궁금하네. 어쩌다 통합진보당이 사라졌을까? 아무렴, 작금의 내란당보다 더 나쁠까? 그런데도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반박하려나.
“지금 ‘내란동조당’ 또는 ‘내란옹호당’이라 할 이 정당을 해산해도 다시 이런 정당이 출현할 거야. 그러니 그게 다 공연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격이지. 부질없다!”
그러나 나는 의견이 다르다. 설령 그게 그렇더라도 책임은 물어야 한다. 누구한테도 이 공동체를 파괴할 자유와 권리는 없다. 지금 여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들을 향해 ‘의회 독재’를 운운한다. 이들이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들을 의원의 특권에 기대어 마구마구 쏟아낸다. 끝끝내 이렇게 모두 한통속임을 과시한다. 이러니 어찌 묵과할 수 있으랴.
어제 불어온 바람이 오늘 다시 불어오지는 않는다. 설령 어제의 그 바람이 오늘 또 불어온다 한들 ‘오늘의 나’는 이미 ‘어제의 나’가 아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그러나 과거의 것들이라고 다 무의미하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국회의사당으로 몰려든 시민들을 생각하노라면, 두어 달이나 지났음에도, 나는 격정이 복받친다. 특히나 동년배들의 그 언동에 오롯이 공명한다.
“청년들은 비켜라. 계엄군의 총에 죽더라도 나이 든 내가 먼저 죽겠다!”
이들이 결코 위인전에나 나올 법한 인물들이 아니다. 1980년대 그 시절의 청년들이라고 다 운동권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거리로 나가본 이들은 온몸으로 안다. 하, 성품 자체가 워낙 조용해서 뭘 해도 티가 나지 않았던 나도 이랬다니까.
‘설마 내가 죽기야 하랴만, 이러다 죽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아, 안 죽고 살면 다행이고.’
동년배들한테도 바로 이 정서가 수십 년이 지나도록 남았나 보다. 어쩌면 이들 가운데 더러는 나와 함께 구호도 외쳤을지 몰라. 물론 모두 두려움은 느낀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도착하면 만사가 그러려니 싶다. 그런데 이 나이에 이르러 청년들을 앞세우랴. 언제 죽어도 이제는 요절도 아닌 터에? 이러니까 이들이 ‘청년들은 비켜라.’ 하는 것이다.
윤석열의 말로는 뻔하다. 그러나 이번 내란의 정리가 어떨지는 아무도 몰라. 나는 대체로 낙관하지만, 여기에도 상대가 있는 만큼, 아마도 상당 기간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명색이 작가라면서 이 난국에 어찌 나 몰라라 하랴. 그래서 이렇게 외친다.
“나는 저들을 용납할 수 없다!”
아마도 이번 사태가 잘 마무리되더라도 각계에서 다시 검토가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가 동학혁명이나 남북분단 등을 내내 곱씹어보듯이 이번 쿠데타 역시 거듭거듭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참극은 서둘러 막았다. 그래도 자괴감이 든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 지경에 이르렀나? 반성이 필요하다.
그런가 하면 나와 같은 부류들이 크게 안도할 만한 현상도 나타났다. 젊은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대거 거리에 나타난 것이다. 곳곳에서 희망의 불꽃이 피어났다. 이건 뜻밖이었다. 특히나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방한용 담요로 온몸을 두르고 한파를 견딘 ‘키세스 시위대’의 모습은 이 시대의 명장면이었다. 내게도 감동과 자신감을 줬다. 아울러 청년세대에 신뢰감도 줬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나중에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내란수괴 윤석열이가 그날 기획재정부 장관을 겸하고 있는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 전달한 그 문건을 여기에 갈무리해둔다. 이것도 꼼꼼하게 살펴보자. 이게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다.
ㅇ 예비비를 조속한 시일 내 충분히 확보하여 보고할 것.
ㅇ 국회 관련 각종 보조금, 지원금, 각종 임금 등 현재 운용 중인 자금 포함 완전 차단할 것.
ㅇ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
혹자는 여기에 언급한 ‘국가비상입법기구’라는 게 과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와 같은 거냐며 흥분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지적이 아주 그르지는 않으나 꼭 바르지도 않다. 전 아무개야 행정부도 장악할 필요가 있었지만, 윤 아무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 명칭에 국회를 대체할 ‘입법기구’가 들어간 거지. 재론의 여지 없이 이건 용서할 수 없는 변란이다.
경제부총리도 함의를 아는지 이걸 ‘문건’이나 ‘지시서’라 하지 않고 ‘쪽지’라 한다. 자기는 비상계엄상황에서 받은 이 ‘쪽지’를 아예 펼쳐보지도 않고 차관에게 전했노라 발뺌한다. 그러면서 그날 즉시 소집한 회의에서 뭘 다루었는지는 함구한다. 이런 자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어 내란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다. 하기야 부하들에게 출동을 명령한 장성들마저 비상계엄 소식을 텔레비전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진술하는 판이다.
아마도 작년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느닷없이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동해에 엄청난 양의 석유가 있다나. 대통령이 이런 걸 격에도 맞지 않게 직접 발표하더니, 이게 ‘대왕구라 프로젝트’로 판명이 났다. 나는 놀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직도 이게 그런 게 아니고 바닥에 시추공을 더 뚫어봐야 안다는 이들이 있다. 으악! 내 가슴에도 구멍이 뚫렸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급기야 이런 우스갯소리도 마치 환청처럼 들린다.
“혹시 윤석열이도 비상계엄 소식을 텔레비전 보고 안 게 아닐까?”
[202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