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의(醫)자를 보면 고대에는 술이 의술이나 병의
치료제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쫌 ! 약 처럼 드시지요 그 ㅡ ...
조조와 구징궁주(古井貢酒): 조조는 자신의 고향인
보저우에서 만들어진 ‘구온춘’이라는 술의 양조법을
동한의 헌제 유협에게 헌상했다고 한다. 구온춘은
얼음이 녹을 때 좋은 쌀로 만든 곡으로 빚은 술을 말한다. 쌀을 3일에 한번 씩 아홉 번에 나누어 넣어 발효시킬
만큼 정성을 들인 술이다. 이 술은 중국 최초의
‘조공 백주’라는 명성을 얻어 명나라와 청나라 400년
동안 황실의 정식 조공품 반열에 올랐다. 구온춘을
나중에 구징궁주라 이름 지었다. 구온춘이 발효주였던
반면 현재의 구징궁주는 증류주다.
시인 도연명과 타오링주(陶令酒): 도연명의 걸작
<귀거래사>는 그의 깊은 고뇌의 정신을 최고의 형식미로 승화했다고 해 극찬을 받는 작품이다. 도연명은 술을
워낙 좋아했다. 때문에 그의 관직명이 붙은 술까지
있다. 평택 현령으로 부임했을 때 즐겨 마신 술이라 하여
타오링주라고 한다. 도연명이 직접 제조해 마신
술의 양조기술을 현지 주민들이 오래도록 보존해
만들어진 백주다.
이백과 타이바이주(太白酒): 중국 역사상 최고의
시선(詩仙)이자 주선(酒仙)답게 이백이 남긴 1000여
수의 시 가운데 170여 수가 술을 소재로 쓴 것이다.
술에 관한 독보적 시가 ‘장진주(將進酒)’ 다.
달빛 아래 금 술잔을 비워두지 마시게… 만났으니
단 숨에 삼백잔은 마셔야지. 그는 술과 달을 즐겨
묘사하는 서정성이 짙었다. 취중선(醉中仙)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그의 호 태백(太白)을 붙인 백주도
상당히 많다. 산시성 메이현의 타이바이주업이 내놓은
타이바이주가 대표적이다. 충칭스시엔타이바이주업의
스시엔타이바이(詩仙太白)은 이백이 창장(長江) 지역을 방문했다가 술 맛에 반한 것을 기념해
이름 붙인 백주다.
구양수와 쟈포주(焦陂酒): 관직 생활에서 부침이
많았던 구양수는 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아들과
손자들도 대를 이어 술에 관련된 관직을 지낸 것으로
유명하다. 구양수는 허난성 활주에서 통판으로 있을 때
빙당주(氷堂酒)를 만들어 당시 재상 한기와 소식 등이
극찬했다는 기록이 있다. 구양수가 극찬했다는 술은
쟈포주다. 그는 쟈포라는 지역을 자주 방문했는데,
그 지역 술과 음식에 반해 <초피를 기억하며>
같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소식과 쑤동포(蘇東坡): 구양수가
“이제 내 시대는 갔구나”라고 찬탄했던 실력의 소식은
맛난 음식과 술을 즐긴 인물로 유명하다.
소식이 쓴 것으로 알려진 시 300여 수 가운데 주(酒)
자가 90여 차례나 등장한다.
그는 평소 부귀와 명예가 술 한잔만 못하다고 여겼고
직접 술을 빚기도 했다. 그에게 술은 백성과의 간격을
좁혀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소동파라는 그의 호를 붙인
술도 많다.
고향인 쓰촨성에 있는 싼수주업의 쑤동포 백주와,
그의 무덤이 있는 허난성 허난동포주업의
동파주(東坡酒) 등이 유명하다.
삼국지와 술: 영웅호걸들의 이야기인 <삼국지>에는 술
이야기가 많다. 유비와 관우 장비가 의형제를 맺는
도원결의를 기념하는 다양한 술이 나와 있다.
백주로는 타오웬싼제이주와 타오웬제이주가 유명하다.
칭다오맥주에서도 도원결의맥주를 내놓아 인기를
끌었다. 중국에서 충(忠) 인(仁) 의(義) 용(勇)을 두루
갖춰 신으로 까지 추앙받는 관우의 경우 고향인 산시성
읜청시 지산현에서 산시관궁주업주식회사가
관궁(關公) 계열의 브랜드를 50년 넘게 생산하고 있다.
관우의 묘가 있는 후베이성에는 관궁방(關公坊)
시리즈의 백주가 명품주로 평가받는다. 술 때문에
부하에게 목숨을 잃은 장비를 기념하는 술로는 후난성
레이양시에서 생산되는 장페이주(張飛酒)가 있다.
술 주(酒)자의 연원: 고대 한자에서 술을 뜻하는 주(酒)자는 원래 삼수변(水)이 없는 유(酉)자였다. 밑이 뾰족한 항아리 모양이다. 당시 술은 항아리에서 발효했는데, 밑이
뾰족해야 발효에서 생기는 침전물을 모으기 편했다고
한다. 이후 술 항아리 옆에 세 개의 선이 추가되었다.
술 항아리에서 술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고대 제사에 쓰였던 술: 중국 고대 경전인 상서(尙書)에
보면 ‘술은 제사 때만 마실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천지와
산천 등에 제사를 올렸는데, 술이 곡식을 몸으로 삼고
맑은 물을 정신으로 해 자연의 보살핌 속에서 탄생했다고 믿었다. 고대 중국에서 술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예법’이었다. 예법을 완성하는 역할을 하며, 고대 관례와 혼례에서도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또 하나의 기능은
약제 역할이다. 음주가 건강을 돕는 역할을 했다.
의원 의(醫)자를 보면 고대에는 술이 의술이나 병의
치료제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술과 관련한 한자들 작(酌) 수(酬) 초(醋):
<설문해자>에 보면 잔치문화와 관련된 대표적 글자로 이 세 글자가 등장한다. 작(酌)은 술잔에 술을 따라
손님에게 권하는 것을 말한다.
대작(對酌) 혹은 자작(自酌)한다는 단어에 쓰이고
짐작(斟酌)에도 쓰인다.
수(酬)는 주인이 손님에게 받고 나서 다시 손님에게
술을 따른다는 뜻이다. 여기서 ‘보답하다’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보수(報酬), 수작(酬酌) 등의 표현으로 사용된다.
수작의 경우 본래는 술을 주고 받는다는 뜻이었는데
지금은 남의 하찮은 말이나 행동으로 의미가 파생되었다. 초(醋)는 손님이 주인에게 술을 올린다는 의미다.
반대로 손님에게 술을 올리는 것을 헌(獻)이라고 했다.
술에서 파생된 한자들: 술취할 취(醉)자는 술(酒)을
과하게 마셔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잃는다(卒)는 의미다. 도취(陶醉) 심취(心醉) 마취(痲醉) 등에 쓰인다. 술 깰 성(醒)자는 술과 별(星)이 합쳐진 말로,
혼미한 상태에서 정신이 든다는 뜻이다.
각성(覺醒)도 이 자를 쓴다.
술 취할 명(酩)자는 술과 저녁(夕), 입(口)이
합쳐진 말로, 해가 질 무렵 농부들이 농사일을 끝내고
한담한다는 뜻이다. 이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술, 즉 좋은 술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중국 백주 브랜드 가운데도
명(酩)자가 들어간 술이 많다.
술에서 파생된 한자들: 술과 발효는 뗄 수 없는 관계다.
효(酵)는 술과 효(孝)가 결합된 말로,
본래는 술을 빚을 때 발효가 되는 주원료인
술밑(酒酵)를 가리켰다.
醱酵(발효)가 대표적인 쓰임새다.
젓갈 장(醬)자는 육장(肉醬)을 의미한다.
술이나 식초를 사용해 고기를 염장하던 방식을 말한다.
고대에는 육장을 만들 때 술을 넣어 발효시켰음을 알 수
있다. 자장면이나 오향장육 등의 단어에도 들어간다.
ㅡ샹파뉴지방은 아주 오랜 옛날 바닷속 이였습니다.
샴페인이라는 말의 어원은 석회질을 의미하는 프랑스
고어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심해 속에 퇴적되어있던
어패류가 지층에 석회질로 녹아들었던 것이지요.
샴페인의 명성은 바로 이런 석회암 토양 덕분입니다.
석회암 토양에서 샴페인의 원료가 되는 샤르도네,
피노 누아, 피노 뮈니에가 자라기에
최적지이기 때문입니다.
① 피노 누아(Pinot Noir)
② 피노 뮈니에(Pinot Meunier)
③ 샤르도네(Chardonnay)
④ 피노 블랑(Pinot Blanc)
⑤ 쁘띠 메슬리에(Petit Meslier)
⑥ 피노 그리(Pinot Gris)
⑦ 아르반느(Arbanne) 입니다.
피노 누아(Pinot noir), 피노 뮈니에(Pinot Meunier),
샤르도네(Chardonnay)로 만들지요. 피노누아,
피노 뮈뉘에는 적포도, 샤르도네는 청포도. 피노 누아는
늦게 익는 품종이라 좀 더 빨리 익는 품종이 필요해져
피노 뮈니에가 등장했습니다. 피노 뮈니에는
피노 누아보다 좀 더 가볍고 과일 풍미가 많이 나지요.
피노 누아는 바디감과 산도,
구조감이 피노 뮈니에 보다 풍부합니다.
서기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프랑크족들을 통합한
클로비스 1세가 샹빠뉴 지역 대도시인
랭스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그 지역 고품질 와인을 축하 만찬에
쓰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718년 발간된 '돔 페리뇽의 지침'에서 피노 누아를
활용한 고급 와인 양조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는 돔 페리뇽은 재발효를 일으키는
(탄산이 생기는) 청포도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다.
1821년 오빌레 수도원에 부임된
돔 그로사르(Dom Grossard)가 수도원의
부흥을 위해 샴페인이 여기에서 창조되었다는 전설을
만든다. 이전까지 돔 페리뇽은 위대한 양조자였지
샴페인의 창조자가 아니었다.
별을 마신다는 말을 했다거나,
유리병이 터지는 걸 막기 위한 특수한 코르크를
고안했다는 등의 말도 이때부터 생긴다.
이후로 돔 페리뇽은 신격화되었고,
덤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즐겼다는 돔 페리뇽이
졸지에 장님이란 풍문이 생긴다.
동 페리뇽은 원래 오빌레 수도원의 상관으로부터 기포를 없애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병 안의 압력으로
인해 지하 저장고에서 많은 병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초창기에는 볏집으로 마개를 만들어 기포를 병에
가두었으나, 기술이 계속 축적되어 현재처럼 철사를 이용하여 기포를 완벽하게 병에 가두는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18세기 초에 스파클링 와인 생산이 증가하면서,
지하 저장고 근로자들은 병이 저절로 터져 부상을 입지
않도록 무거운 철제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한 병이 폭발하여 발생한 혼란은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었고, 지하 저장고에서 이런 식으로 병의 20~90%를 잃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당시 알려지지 않았던 발효 및 탄산 가스 과정을
둘러싼 신비한 상황 때문에 일부 비평가들은
스파클링 와인을 "악마의 와인"이라고 불렀다.
와인병이 깨지는 일은
샹빠뉴의 지리적·기후적 특성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추운 샹빠뉴 지역에서는 겨울이면
와인 발효가 중단됐다가 날씨가
포근해지는 봄에 재차 발효가 진행되면서
병 속에서 탄산가스가 발생하게 된 것이
샴페인 유래입니다.
이렇게 생겨난 탄산가스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팽창압력을 버티지 못한 병이
깨졌던 것입니다.
샹파뉴 지역의 고대 로마가 유럽을 점령하던 시대의
깜빠뉴(완만한 언덕)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현재에도 24km에 달라는 천연의
지하셀러가 존재한다고 한다.
샹파뉴 지역은 추운 날씨에 기인한 포도 및 술의 발효의
악조건 외에도 2차세계대전시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지역인 알사스 지역을 자국에 편입시키위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된 여파로 포도밭은 거의 망가졌다.
전쟁후 다시 포도 농사를 시작하였으며, 과거의 포도 재배 기법을 버리지 않고 유지하여 현재의 샴페인의 대명사라는 이름을 지키게 되었다고 한다.
흔히 샴페인은 와인을 오크통에 잘못 보관하여 기포가
발생한 우연을 통해 세상에 선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귀족들이 프랑스의 샹파뉴지역의 와인을 수입하였고, 샹파뉴지역의 레드와인을 영국으로 이동시키는데는
도버해협을 건너야 하므로 40여일이 소요되었다.
이동에 따른 시간을 고려하여 아직 효소(이스트)가 완전히 발효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출하였고, 영국에 도착한 오크통에서는 작은 변화가 계속되었고, 밀페된 오크통을 밀고 나오려는 기포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레드와인을 수입한 영국귀족은 불만을 표시하였고,
샹퍄뉴의 수출업자는 기포를 와인병에 가둘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이러한 과정이 기포가 병에 숨어 있다가, 병을 오픈하고
산소와 접촉하는 순간 신의 물방울과 같은 은하수가
글래스에 펼쳐지는 샴페인이 세상에 선보이게 된 것이다.
샴페인의 인기상품인 모에샹동사
(MOET & CHANDON)의 돔페리뇽(Dom Perignon)
은 기포를 병에 가두는 방법을 연구하였고,
혁혁한 성과를 낸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도사
피에르 페리뇽의 이름을 따서 만든 샴페인이다.
프랑스어로 Dom은 수도승을 의미한다.
과거 와인은 예배를 위한 재료였기 때문에 수도원에는
와인에 전문가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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