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般若心經)』아제아제 바라아제 / 청화 큰스님
<삼세제불(三世諸佛)>도,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뿐만 아니라
과거(過去) 부처님이나 또는 현재(現在)나 미래(未來)나
모든 부처님이 삼세제불 아닙니까.
삼세 모든 부처님도 역시 - 다만 아까 말한 보살뿐만 아니라 -
이와 같이 피안에 이르는 영생에 이르는 지혜인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삼세 부처님도 또한 똑같이,
<의반야바라밀다(依般若波羅密多)>고로,
역시 피안에 이르는 영생에 이르는 반야에 의지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반야(般若)에 의지해야 씁니다.
반야가 무엇인가?
반야는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해탈의 지혜,
모든 것을 바로 보는
지혜란 말입니다.
바로 보는 지혜 이것이 반야입니다.
또한 바꿔서 말하면, 모두 텅 비어서 우리가 보는 이러한 현상들이다 비었다고 보는 지혜란 말입니다.
바로 보면 다 비었다고 보는 것이니까.
마치 전자현미경을 쓰고 보면 전부 전자로만 보이듯이
부처님의 안목, 부처님의 눈으로 본다면 우주가 텅 비어서 부처님의 광명만
가득 찬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참답게
옳은 것입니다.
전자현미경을 쓰고 보면 전자나 원자로만 보이듯이
번뇌가 떠나버린 부처님의 청정한 안목으로 본다면
천지우주가 부처님의 청정미묘한 광명으로만
가득 차 있단 말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참답게
바로 보는 것입니다.
삼세(三世) 모든 부처님도 역시 아까 보살과 마찬가지로
반야바라밀 즉 말하자면 영생에 이르는 피안에
이르는 그러한 반야에
즉 지혜에 의지한 고로,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아름다울 아(阿)자, 클 아(阿)자, 김맬 누(耨), ‘누’자인데
지금 모다 ‘아뇩다라’ 합니다만 사실 이 발음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원래는 ‘누’ 자입니다. 인도 음도 역시 ‘누(nu)' 그래서 누인데,
아름다울 누(耨), 많을 다(多), 비단 라(羅), 석 삼(三),
이것도 아름다울 막(藐), 석 삼(三), 또 보살 보(菩), 이끌 제(提),
이것이 이끌 제인데 인도의 '보디(bodhi)', 인도 말로 해서
‘보디’라고 하는데 부르기 사나우니까 ‘보리’라고 발음합니다만,
역시 한문으로 본음은 ‘제(提)’ 자입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것은 무슨 뜻인고 하면
무상정편지(無上正遍智)·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라,
없을 무(無)자, 윗 상(上)자,
위없는(최상의, 비할바 없는) 정편(正遍)이라,
바를 정(正), 두루 편(遍), 지혜 지(智), 위가 없이 바르고 보편적인
그러한 지혜, 따라서 부처님의 참다운 지혜, 다시 위없는 -
다시 비교할 수 없는 또는 모든 지혜가 다 포함된 지혜가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입니다.
따라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완전히 증득(證得)하면
부처 아닙니까.
성인(聖人)이고 말입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와 같이 얻는다.
삼세제불도 반야바라밀다 즉 피안에 이르는 영생에 이르는 지혜에 의지하는 고(故)로,
그 지혜가 무엇인가?
아까 말한 제법(諸法)이 공(空)한 오온(五蘊)이
다 공(空)한 지혜란 말입니다.
하여튼 이것을 머리에 딱 두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래야 혼미가 안 온단 말입니다.
제법이 공한 지혜, 제법이 공한 실상,
그것으로 본다면 아까 말과 같이 보살도 그런 지혜에 의지한 것이고
삼세제불도 역시 그와 같은 제법이 공한 지혜를 의지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무상도(無上道)를 성취한단 말입니다.
<고지(故知)>라, 고로 알아라, 고로 알지라.
이와 같이 보살이나 부처나 제법이 공한 지혜에 의지해서
무상(無上) 도리(道理)를 성취했으니까 그대들은 알아라.
어제도 말한 바, 이것은 부처님께서 지혜제일(智慧第一) 지혜가
수승한 사리불(舍利弗)한테 말한 법문입니다.
지혜가 수승한, 같은 제자도 아무리 신통은 많이 하지만
지혜가 수승하지 못하면 이런 법문은 알아먹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지혜가제일 수승한
사리불 존자한테 이런
법문을 했단 말입니다.
고로 알아라.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密多)>,
이와 같이 피안에 이르는, 해탈에 이르는, 성불하는 지혜는 이것은
<시대신주(是大神呪)>요,
이것이 바로 큰 신통스런 하나의 주문(呪文)이란 말입니다.
주문이라는 것은, 가사 ‘옴마니반메훔’도 주문 아닙니까.
하여튼 우리 인간의 말로
해서 표현할 수 없는
신비(神秘) 부사의 (不思議)
한 뜻을 갖춘 짤막한 글, 이것이 주문입니다.
보통 말로 해서 뜻을 표현한 것이 아니단 말입니다.
하나의 리듬이나 음으로
해서 심수오묘(深邃奧妙)한
무량의 뜻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문인데, 반야심경
즉 말하자면 이와 같이 제법이 공한 자리를 볼 수 있는 이런 지혜가 바로 큰
그런 모든 신통을 다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주문이고,
<시대명주(是大明呪)>요,
이것이 모든 지혜를 밝힌 하나의 주문이며, 명주(明呪)며,
<시무상주(是無上呪)>요, 이것이 또한 위가 없는 주문이란 말입니다.
그야말로 참 다라니가 많이 있고 여러 가지 별별 복잡한 주문이 많이 있지만
그런 주문 가운데서 ‘제법(諸法)이 공(空)했다’ 하는,
‘오온(五蘊)이 공(空)했다’ 하는 좋은 주문은 없단 말입니다.
이것은 위없는 주문이며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며, 이것이 무등등(無等等)이라,
없을 무(無), 같을 등(等), 그럽니다.
같음이 없는 주문이란 말입니다.
동등한 것이 없단 말입니다.
이것이 최상이기 때문에 이와 버금할 수 있는,
이와 맞먹는 주문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등등은 동등한 주문이
없단 말입니다.
<능제일체고(能除一切故)라>,
능할 능(能), 제할 제(除), 한 일(一), 끊을 체(切), 괴로울 고(故), 일체의 고통을 다 제거한단 말입니다.
‘내 몸이 귀중하다’, ‘네가 귀중하다’, ‘내 자식이다’,
‘누구다’, ‘모두 재산이 좋다’, 이런 것 때문에 고통이 있는 것인데,
이 몸뚱아리 이것이 다 비었다고 생각할 때는
고통이 있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사실은 그런 것이 없는 것이
고 우리 중생은 거꾸로 보는 것입니다.
전도몽상(顚倒夢想)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능히 일체의 인생고를 다 제거하는지라, 따라서
<진실불허(眞實不虛)>라, 진실로 참되고 헛되지
않는단 말입니다.
오온(五蘊)이 개공(皆空)한 지혜(智慧)가 참되고 헛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지혜입니다. 진실불허라,
<고설반야바라밀다
(故說般若波羅密多呪)>,
고로 반야바라밀다 즉 말하면 피안에 이르는 성불하는 지혜의 주문을,
주문을 압축해서 이렇게
지금 까지 말한다고 하면
그 뜻입니다.
즉 말하자면 지금까지 배워 온 반야심경의 진리를 말입니다.
하나로 딱 뭉쳐서 주문으로 표현한단 말입니다.
반야심경의 그런 이와 같이 많은 진리를 다 모아서
하나의 주문으로 압축해서 표현한다고 하면,
<즉설주왈(卽說呪曰)>,
곧 지금 말하는데, 곧 주문으로 말하면,
<아제아제(揭帝揭帝) 바라아제(波羅揭帝)
바라승아제(波羅僧揭帝) 보디사바하(菩提娑婆訶)>라,
이것은 들 게(揭)자인데, 들 ‘걸’이라고도 합니다.
이것도 역시 인도 말을
그대로 음역하기 위해서
이런 한문자로 한 것이고,
같은 음도 한문 투로 하는 것과 우리가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와 같이
모두 딱 안 맞아버렸지만
하여튼 지금 우리가 여기서 들먹이면.......
아제아제(揭帝揭帝) 바라아제(波羅揭帝)
바라승아제(波羅僧揭帝) 보디사바하(菩提娑婆訶)라,
들 게(揭), 임금 제(帝), 할미 파(婆), 이것은 ‘파’인데 ‘바’라고 발음합니다.
반야바라밀도 역시 ‘파’자인데 음편(音便)되어서 ‘바’라고 발음합니다.
그 다음 비단 라(羅), 중 승(僧), 보리 보(菩), 끌 제(帝), 세상 사(娑),
할미 파(婆), 꾸짖을 가(訶), ‘사바세계’라고 할 때는
우리가 사는 번뇌에 때 묻은 세계를 사바세계라고 합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디사바하!
반야심경의 전부 뜻을
하나의 주문으로 압축하면
결국은 이렇게 표현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불교에서 오종불번(五種不飜)
그래서 짤막한 말에 의미가 함축성이 많아가지고
다섯 가지 종류는 번역하지 말라는 법칙이 있습니다.
가사 인도에만 있고 중국
에는 없는 것이라든가
또 이와 같이 아주 심수오묘해서
간단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주문은 번역하지 말라는 법칙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번역을 아니 하지만 사람들이 하도 호기심이 있어놔서
번역을 억지로 시도를 많이 했단 말입니다.
어떻든 여러 가지 한 경우가 있으나,
‘아제아제’는 ‘돌아가세 돌아가세’, -
돌아간다는 것은 내내야 진리의 바다 진리의 고향이 되겠지요.
‘바라아제’는 어디로 가는가 하면 ‘영생의 고향으로 가세’,
‘바라승아제’ 이것은 ‘모두 다 함께 영생의 고향으로 가세’,
‘보디’ 이것은 ‘진리’ 아닙니까.
‘사바하’는 어떤 주문에나 보통 붙어 있습니다.
‘도를 성취한다.’
다시 정리하면 ‘돌아가세 돌아가세, 영생의 고향으로 가세, 모두 함께 가세.’
그렇게 해서
무상대도(無上大道)를 무상대도가 사바하인데,
‘사바하’고 ‘보리’인데, ‘무상대도인 보리를 성취하세.’
이렇게 풀이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것저것 많이 보고서 그 가운데서 제가 느껴서 내일 좋은 대문(大文)으로 한 것이니까
꼭 이것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만,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세 돌아가세, 영생
의 고향으로 돌아가세,
다 함께 가세, 위없는 진리를 성취하세!’ 이렇게 되겠습니다.
여러분들, 공양시간이
되어서 공양 들어야지요.
반야의 지혜, 앞서 말한 오온개공(五蘊皆空)의
지혜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보는 것은
거꾸로 보는 것입니다.
참다운 지혜
이것은 오온(五蘊)이 비어있는, 오온은 정신과
물질 아닙니까.
정신과 물질은 다 비어 있는 것입니다.
참말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
비어있지만 다만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청정미묘(淸淨微妙)한 자비(慈悲)나 지혜(智慧)나 행복(幸福)이나 그런 것이 가득 찬, 온전히 가득 찬 그 자리가 즉 말하자면 불성(佛性)이란 말입니다.
텅 비어 있지만 사실은 불성
이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우주(宇宙)에는 불성뿐만 있는 것입니다.
중생(衆生)은 그걸 못 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것을
많이 외운다 하더라도
그냥 외우기만 해서는 별로 공덕이 없습니다.
우리 관념상(觀念上) 천지우주는 텅 비어 있는데
다만 불성만이 충만(充滿)해 있구나!
이와 같이 느끼면서 관세음보살
(觀世音菩薩)님이나
아미타불(阿彌陀佛)이나 외셔야 씁니다.
참말로 있는 실상(實相)은 방금 말마따나 텅 비어서,
우리가 보는 것은 비어 있는 것인데
다만 허무(虛無)하게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어 있는 실상 그것은 청정미묘(淸淨微妙)한
부처님의 광명(光明)이란 말입니다.
그런 우주에 충만한, 내 몸 가운데나 어디에나 우주에는
충만한 부처님의 미묘한 광명,
그 가운데는 지혜도 행복도
다 들어 있습니다.
그 무한의 광명을 이렇게 이미지(image)로 생각하면서
부처님의 명호(名號)나
또는 화두도 하고
염불도 하고 주문도 외운단 말입니다.
이렇게 해야만이 그때는, 참말로 우리가 그런 광명,
부처님의 불성과 하나가
된단 말입니다.
부처님의 불성 광명과
하나가 된단 말입니다.
이것이 가장 속 빠른 공부 방법인 것이고,
그렇게 한다면 그때는 자기 스스로 머리도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지고 더 예뻐
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부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