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진 명당자리에는 그에 따른 전설과 설화가 많이 있듯이 이곳 준경묘도 조선왕조 건국과 관련된 유명한 백우금관(百牛金棺)의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안사가 전주에서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로 피신와 자리를 잡고 산 지 1년 만에 아버지(이양무)의 상(喪)을 당하게 된다.
이안사는 아버지 묘 자리를 구하려고 이산 저산 산등성이를 넘어 사방으로 헤매고 돌아다녔으나 마땅한 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마침 활기리 노동(盧洞) 산마루에 이르러 몹시 고단하여 나무 밑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한 도승이 동자승과 함께 나타나 주위를 두루 살펴 인적이 없음을 확인한 뒤 한 곳을 가리키면서 "대지(大地)로다 길지(吉地)로다"하는 것이었다.
이안사가 나무 밑에 앉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도승은 이어서 말하기를, "이곳이 제대로 발복하려면 개토제(開土祭)에 소 백(百)마리를 잡아서 제사를 지내야 하고, 시신을 금관(金棺)에 안장하여 장사를 지내야 한다. 그러면 5대손 안에 왕자가 출생하여 기울어 가는 이 나라를 바로 잡고 창업주가 될 것이다. 또한 이 땅은 천하의 명당이니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하는 것이었다. 동자승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더 있다가 그들은 다른 곳으로 길을 떠났다.
자신의 귀를 의심한 이안사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생각에 골몰하였으나 가난한 살림살이에 소 백 마리를 어디서 구하며, 더구나 금으로 만든 관은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 부친의 묏자리를 명당에 쓰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형편상 어쩔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안사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궁여지책을 찾아내게 되었는데, 소 백(百) 마리는 흰 소 한 마리로 대신하고 금관은 귀리 짚으로 대신하면 될 것 같았다.
흰 소를 한자로 쓰면 백우(白牛)이므로 숫자상 일백 백자와 발음이 통하게 되어 백우(百牛)가 될 수 있고, 귀리짚은 같은 황금색이므로 금관과 의미가 통할 것이라 판단하였다. 마침 처가에 흰 얼룩소가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 처가에 간 이안사는 밭갈이 할 일이 있다며 흰 소를 잠시만 빌려 달라고 하여 소를 끌고 노동(盧洞) 산마루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처가에서 빌린 흰 소를 잡아서 제물로 사용하고, 부친을 넣을 관은 귀리짚으로 대신하여 아버지의 장사를 치루었다.
첫댓글 많은 자료 참 좋으네!
감사!
추억이 새롭다네.
이렇게 올려 주니 고마워요
역시 학자님이다르네
고맙네
정말 대단한 소나무숲을 봤네.
우리 마누라가 전주 이씨이니,
거기 한 번 데불고 가봐야겠네.
좋은 소식,
고맙게 보고 가네.
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