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친다. 불광불급 不狂不及
책의 원제는 ‘신독,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다’. 필자는 조윤재로 그의 책은 ‘다산의 마지막 질물’을 읽었으나, 신독을 다시 집었다. 愼獨은 우리 조상들이 늘 마음에 담고 행하던 수행의 문구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일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몰입했다는 것이다. 한국사에도 ‘불광불급’ 즉 미쳐야 미친다는 몰입의 과정을 실천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필자는 허균,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김득신 등 역사에 획을 그었던 지식인들을 모두 미쳤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학문에 몰입해 일가를 이루었다. 주장하나, (필자의 포커스로 본 것이고 다른 포커스로 보면 다른 인물들이 등재될 것이니) 생략한다. 즉 세상에는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일은 없다는 마음가짐을 통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지적 성취를 이뤘다.
신독은 스스로 정직해지는 것이 첫째다. 잘못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거나, 다음에 해야지 미루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꿈이 있다면 올바른 뜻과 바른 마음을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신독은 자신에게 그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검증하는 과정이 둘째다. “부는 집안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한다. 마음은 넓어지고 몸이 편안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뜻을 성실하게 한다.” 신독은 그 시작이자 근본이다. 다산은 신독이란 인간관계에서 타인을 속이고 피해를 주는 음험한 행동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체면과 평판을 생각한다, 하지만 보는 눈이 없을 때는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예사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보내는 간절한 기도처럼 침묵하라. 말이 많으면 곤란한 일이 자주 생기므로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보다 못하다. 공부란 삶의 모든 순간마다 생각을 놓지 않는 것이다. 마음은 생각한다. 생각을 하면 얻지만, 생각이 없으면 얻지 못한다. 맹자는 “몸의 큰 부분을 따르면 대인이 되고, 작은 부분을 따르면 소인이 된다.” 가르친다. 큰 부분이란 마음이다. 이유는 마음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사람은 강하다.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도 힘이고, 나 자신을 이기는 것이 진정으로 강함이다.
“대체로 천하의 만물이란 지킬 것이 없지만, 오직 나만은 지켜야 한다. 내 밭, 내 집은 지킬 것이 없다. 누가 지고 도망갈 자가 있겠는가? 그러나, 나라는 성품은 달아나기를 잘해서 일정한 법칙이 없다.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유도해도 떠나고, 위험과 재화가 겁을 줘도 떠나고, 새까만 눈썹에 하얀 이를 가진 미인의 요염한 모습만 봐도 떠나간다. 한번 가면 돌아올 줄 몰라 만류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 ‘나’보다 더 잃어버리기 쉬운 것은 없다, 어찌 실과 끈으로 매고 빗장과 자물쇠로 지키지 않는가.” 다산이 큰형 재실에 쓴 ‘수오재기’ 글의 일부다.
낡은 껍데기를 새로운 껍데기로 바꾸듯 성장하라.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러가 되기 위해 1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특출나서가 아니라 최소 1만 시간을 꾸준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면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내용이다. 요즘은 지식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다. 만 권의 책을 읽지 않아도 방안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스승을 자부하며 활동한다. 진정한 능력과 선한 마음으로 배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순전히 자기 이익과 돈벌이를 위해 사람을 현혹하는 예도 많다. 그들의 특징은 돈, 명예, 출세를 다 시켜준다고 주장한다. 이들을 무조건 맹신하면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온고지신을 초학자는 “옛글을 익혀 새 글을 아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대개 옛글을 익히면 그 가운데에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어 자기가 몰랐던 새로운 것을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을 이른다”라고 정조 임금은 말했다. 인간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산도 옮기는 끈기다. 노끈으로 톱질해도 나무를 자를 수 있고, 떨어지는 물방울로도 돌에 구멍이 난다. 사람들은 거의 성공할 무렵에 실패하고 만다. 일을 시작할 때의 마음과 같을 수 있다면 실패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막바지에 이르면 지치기 마련이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가장 버거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가늠해 본, 사람만이 삶에 솔직해진다. 2011년 죽은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축하 연설에서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라는 말 역시 오늘날 천재로 불리는 이가 깨달은 인생의 통창이었을 것이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가리켜 우리는 ‘살아간다’라고 한다. 기회는 자신의 가능성을 깨달은 사람에게만 다가온다. 세월을 보내는 데에도 방법이 있다. 강태공은 그 무엇으로도 방해받지 않기 위해 바늘이 없는 낚싯대를 던졌다. 오직 강물만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렸다.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고, 낚싯대에 마음을 두면, 아름다운 여인이 바람에 춤추듯 맴돌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달마대사가 면벽하고 있을 때와 같다.
하루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로 이어진다. 윗사람으로부터 신임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다. 친구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하면 윗사람으로부터 신임을 얻을 수 없다. 어버이게 정성스럽지 않으면, 친구로부터 신임을 얻을 수 없다. 어버이를 따르는 데는 방법이 있다. 자신을 돌이켜 정성스럽지 않으면 부모에 효성스러울 수 없다. 자신에 정성스럽게 하는 방법은 선에 밝지 못하면 자신을 정성스럽게 할 수 없다.
나의 벗은 나 자신이다. 이덕무는 대부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그는 지혜가 있었다. 바로 자신을 친구로 삼는 것이다. “눈 온 날 새벽, 비 내리는 저녁, 좋은 벗이 오지 않으니, 누구와 이야기를 나눌까? 시험 삼아 내 입으로 읽어 보니 내 귀가 듣는구나. 내 팔로 글을 쓰니 이를 감상하는 것은 내 눈이로구나. 나의 벗은 바로 나이니 다시 무엇을 원망햐라” 그는 서얼로 서른아홉에 검서관이 된다. 관직에 나가기 전에 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추위는 한서로 버티고, 배고픔은 맹자를 팔아서 가족의 끼니를 때웠다. 친구 유득공에게 자랑하자, 유득공도 좌씨전을 팔아서 함께 술을 마시고 희희낙락했다.
친구란 당신과 나를 우리로 변화시키는 존재다. 친구란 내가 고꾸라졌을 때 내려다보며 손을 내미는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옆으로 넘어져 함께 일어서 주는 존재다. 우정이란 만나기 전보다 더 낫게 헤어지는 것이다.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오니 괴로움이란 즐거움의 뿌리다.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나오니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다. 다산이 유배지로 가니 관리는 자신의 앞날에 지장이 올까 멀리했고, 백성도 괴롭혔다. 밤낮으로 홀로 보내야 했다. 그때 ‘병마우후’ 이중협이 찾아왔다. 다산의 덕과 학식을 사모했기 때문이다. “날마다 편지를 주고받고, 조각배를 타고 뱃놀이를 하거나, 한 필의 말을 타고 봄놀이를 즐기기 위해 거르는 달이 없이 자주 찾아왔는데, 이와 같이 한 지가 삼 년이 되었다.” 다른 임지로 떠나는 이중협은 다산을 위로하고, 다산은 친구를 위로한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남은 반드시 이별의 순간이 있고, 헤어짐도 반드시 만날 기약이 있다.
이름으로 힘껏 불러주는 친구가 없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진짜 친구는 갚을 수 없는 빚을 지우지 않는다. 즉 부모가 살아계실 때는 벗을 위해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말로 전해질 정성이라면 굳이 말로 전할 필요가 없다. 즉 진실한 마음으로 조언하고 잘 인도하되, 그래도 할 수 없다면 그만둘 일이지, 스스로 치욕을 당하지는 말라는 말이다. 허물없이 말을 건네는 데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미덥지 못하다. 하지만 정작 실천은 생각하지 않는다. 식언- 食言은 즉 자기가 한 말을 먹어 버리는 사람이다. 당연히 돌아서면 능란하게 뱉어낸 말을 쉽게 잊어버린다.
지나온 마음에서 내가 갈 길을 듣는다. 생의 고비를 겪고 나면 마음의 소리가 열린다. 우리는 생의 한복판에 이르러서야 그동안 길을 헤맸음을 깨닫는다. 시험받아 본 적 없는 삶은 무덤과 같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내리려 하면 큰 고난을 먼저 준다는 것이다. 과거는 돌아보고, 미래는 준비하며, 현재를 살아가라.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가난하면서도 남에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그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겁게 살고 부우하면서도 예의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무릇 군자의 행실이란 평온한 마음으로 수신하고, 검양하는 마음으로 덕을 함양하는 것이다. “夫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 제갈량의 계자서 머리글이다. 위 가르침을 8자로 줄이면 ‘담박명지 영정치원’ 澹泊明志 寧靜致遠이다. 안중근 의사가 평정한 마음과 분명한 뜻이 있기에 죽음을 목전에 둔 참혹한 환경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 휘호로 남겼다. 바다마저 집어삼키는 폭풍 속을 헤칠 때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되는 존재가 있다. 바로 배를 지휘하는 선장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4.10.19.
신독,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조윤재 지음
비즈니스북스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