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넌 것을 자녀세대들에게 표징으로 삼기 위하여 돌 12개를 가져다 세웠습니다(수 4:5-8).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언약의 표징으로 산 돌이신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세우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언약의 자녀로 삼으시는 영원한 표징이요 산 증거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나도 지고 주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원하오니 나를 받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육신으로 행하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나의 불의함을 하감하옵시고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이 하루도 주의 은혜로 살기 원합니다.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6:15-23
제목 :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19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20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매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더라.
21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하니
22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하는지라.
23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 나의 묵상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한다.
주를 믿는다 하면서도 주의 손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믿음의 눈으로 보기보다 육신의 눈으로 보기를 좋아한다.
육의 눈으로 보는 것이 쉽다.
그러나 주님은 믿음의 눈을 뜨라고 말씀하신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의 눈에는 아람 군대가 성읍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것이다.
그리고 걱정이 앞선다.
“주인님, 큰 일 났습니다. 이를 어쩌면 좋아요?” 하고 안절부절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육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본다.
그의 눈에는 성읍을 둘러싼 아람 군대를 오히려 포위하고 있는 불말과 불병거를 탄 천사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엘리사는 그의 종 게하시의 눈을 열어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때 종의 눈이 열려 둘러싼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된다.
육의 사람들은 육신의 눈이 닫혀버리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엘리사의 기도로 아람 군대의 눈이 어두워지니까 그들은 소경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육신의 눈으로만 보고 살았던 그들은 육신의 눈이 멀자 산송장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육신의 눈이 멀었기에 그들은 엘리사를 통하여 선한 인도를 받을 수 있었다.
만약 육신의 눈이 멀지 않고 보았다면 그들은 죽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영의 눈, 믿음의 눈을 떠서 사역을 하는 목사였음에도 여전히 영적 믿음의 눈이 어두운 상태에서 육신의 눈만 열어 육신의 눈이 보는 대로 사역하던 자였다.
목사이기에 영의 눈으로 사역하여야 하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이를 위하여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영안을 열어달라고 기도했고, 기도가 안 될 때는 기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안을 열어달라고 하는 목적도 결국 목회의 성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목회의 초점은 항상 눈에 보이는 성공이었다.
사람들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남들 보기에 보란 듯 하고 그럴 듯하게 교회를 하고 싶었다.
사람들의 영혼에 대한 관심보다 외형적인 성공에 더 관심이 많았었다.
부교역자 시절에는 어린 한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기보다 숫자가 많이 모이는 것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많이 모이면 만족하고 내가 한 것인 양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러나 생각만큼 모이지 않으면 금방 낙심하여 어깨가 처졌다.
교회를 개척하고서 열심히 전도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전도, 즉 주님의 도를 전하는 전도가 아니라 그저 사람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 행한 일일 뿐이다.
내가 왜 교회를 하려는지 그 가치와 정체성도 알지 못하고 그저 소명 받았으니까 교회를 하고, 남들과 똑같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좋은 교회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블철주야 그렇게도 뛰고 또 뛰었다.
중간중간 참 숱한 역경과 고비들이 있었다.
그것은 주님이 나의 육신의 눈을 멀게 하시는 것이었고, 주님이 이끄시기 원하시는 주님의 사인이었다.
그것을 깨닫고 잠잠히 육신의 소경이 되어 머물렀더라면 주님의 인도함을 받았을 것이다.
아람 군대가 눈이 멀어 꼼짝 못할 때 엘리사의 인도를 받아 잘 먹고 잘 마셨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나에게 주신 복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눈 먼 상황을 벗어나기 위하여 몸부림치며 기도하였다.
주님이 주신 기회를 영안을 열어 믿음으로 보지 못하니 더욱 영적 만신창이가 되어갈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주님은 복음으로 찾아 오셨다.
그리고 장사복음을 듣게 하셨다.
목사로써 부끄럽지만 그 때 장사복음을 처음 들었다.
성경에 다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많이 언급된 장사복음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만이 전부인 것으로 알았다.
무덤에 장사되는 것은 그저 지나가는 잠깐의 과정으로 치부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간과했던 무덤이 나에게 그토록 중요한 복음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장사복음을 통하여 그동안 찾아왔던 고난들이 모두 주님이 무덤으로 초청하신 손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런 상황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 해결되었지만, 나는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고 만 것이다.
무덤에서 생명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 무덤의 자리가 바로 육신의 눈이 멀고 영의 눈이 열리는 자리이다.
그것을 알기까지 참 많은 대가를 지불했다.
하지만 늦게나마 그 복음을 알고 깨닫게 된 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복이다.
이제는 목사가 된 이유와 목회의 정체성을 잘 알고 있다.
목회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기에 촌음을 아껴서 복음을 전하려고 한다.
설교단에서도 생명 없는 말,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생명을 주는 복음을 전한다.
그것만이 양들을 살리는 길이요, 그들에게 참 생명을 주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복음의 목적은 생명을 얻는 것이다.
복음은 고난이다.
전하는 자도 고난이요, 듣는 자도 고난이다.
그러나 이 고난이라는 무덤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
이 자리는 육신의 눈이 어두워지는 자리이다.
잠시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그러나 그 자리를 통하여 생명을 얻을 수 있기에 넉넉히 감당할 수 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주께서 주시는 고난은 우리를 죽이기 위한 고난이 아니라 회복시키고 살리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주신다.
하나님의 심판이 옳다고 인정하는 순간, 심령에 나도 알 수 없는 평화가 찾아온다.
그것은 주님이 주신 고난의 무덤이라는 사인이다.
고난을 주님이 주신 심판으로 인정하고 말씀 앞에서 내 자신을 비추어 죽기에만 합당한 자임을 깨달을 때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고난 중에도 말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저 나 혼자 당하는 재앙이 되고 마는 것이다.
육으로 사역하던 나에게 이런 복음을 깨닫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육신의 눈이 어두워진 것이 내게는 복이다.
그래서 영안을 열어 믿음으로 주를 보게 하시고 목회의 참된 정체성과 가치를 알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제는 듣든지 안 듣든지 복음을 전한다.
복음을 전하기에 고난은 끊임없지만 그러나 그런 고난 중에도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을 들은 성도들이 한 사람 한 사람씩 말씀 앞으로 나오며 변화되는 모습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이런 은혜가 날마다 충만하길 기도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육으로 사역하던 자를 주님은 심판하셨나이다.
그 심판은 나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새롭게 회복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진리를 깨닫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과 대가를 치렀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참 복음을 알고 복음으로 행할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내일 수요일에 상해할렐루야교회 설립 20주년 기념예배를 드립니다.
거기서도 복음을 전할 예정입니다.
전하는 자나 듣는 자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셔서 큰 은혜의 역사가 있게 하시고 모두가 복음을 위한 군사들이 되게 하소서.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고난의 무덤에서 눈 뜬 동기생이오~~
동기생으로 쳐주시니 그저 황공무지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