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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운 효주는 다이아나가 한 말들을 곰곰이 되새기었다.
어찌보면 자기보다 더 어려운 싱글의 삶을 살아온 것 같았다 . 당차고 거침없는 모습도 강열하게 떠오르며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모습이 뇌리에 깊히 박히고 있었다 .
말로만 듣던 강철 같은 여자.
그러면서 함께 울어 주는 여자.
부러운 생각 보다 그 모진 세월을 이겨낸 그녀가 존경스럽고 우러러 보이기까지 했다.
거기에 비하면 자신은 뭔가 ?
지금껏 나를 위해 단 한 시간이라도 살아 본적이 있는가 ?
아까 거울 앞에서 본 자신의 모습이 너무 처량하고 한심스러웠다.
화장품 하나 덜덜 떨며 못사고 매장의 화장품가게에서 날짜가 다 지나가는 샘플 몇개씩 얻어 바르고, 신발 한 켤레도 세일이 끝나면 남는 만원짜리 구두를 사 신었던 자신이었다.
모든것을 아껴야 하고 그것은 자식들의 학비며 교통비. 용돈으로 모두 들어 갔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 왔기에 두 아이들이 사람 구실이라도 할 수 있겠거니 위안이 되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자신을 돌아 볼 기회는 찾지도 않았고 한번도 시도해 볼 수도 없었다.
🍁🍁
까맣게 잊혀졌던 날들이 떠오른다
" 효주야 . 이번 토요일에 시간 좀 내거라 "
그녀의 언니가 출근 길에 잠시 들렀다.
" 네 ? "
" 너의 고모가 중매를 한다고 하더구나 "
그녀는 수도권 작은 도시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곳의 유치원 보조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언니는 일찍 시집을 가서 벌써 큰 애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
효주의 부친은 효주의 혼인이 늦어지는것 같아서 늘 조바심을 부리고 있었다
그녀 역시 부친의 뜻에 따라 한 두번 맞선을 보려했지만 상대가 부친의 마음에 들지 않아 없었던 일이 되었다.
이번에 고모로 부터 사진을 받아 든 부친은 남자의 모습에 흡족해 하였다
" 그럼 남자라면 허우대가 있어야지. 그래야 처자식 먹여 살리는데 걱정이 없는거야 ~ 암"
중앙통의 다방에서 남자를 만났다.
그녀의 일생에 첫 남자였다.
워낙 순진한 탓도 있었지만 엄격한 부친의 보호와 감시탓에 여자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 흔한 빵집 미팅 한번 못해 본 그녀였다.
앞에 앉은 남자는 고모의 친구 되시는 분의 조카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서울의 조그마한 무역상에서 일을 한다고 하였다.
대기업은 아니더라도 장래가 무척 밝은 직업이고 또 월급도 제법 많다고 하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둘만이 데이트를 하였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보았다.
꽃이 만발한 공원도 거닐었다
제법 맛이 있다는 한식집에서 그 비싼 불고기도 먹었다.
그리고 처음 만난 것처럼 마지막으로 다방에도 갔다.
언제부터인지 그녀는 남자의 손에 손목을 꼭 잡혀 있었다
그녀도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살게 되면 어떻게 어떻게 하고 싶다고 말을 하였다.
효주는 이 남자와 결혼을 하면 자신의 어머니가 그러하였던 것 처럼 남편을 보필하고 자식을 훌륭히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
또 그것이 최고의 선인줄로만 믿고 있었다.
그렇게 석달을 만나고 지내다 혼인 날짜을 잡고 양가 부모와 가족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여기까지는 세상 어느 남녀와 다를 바 없는 일반적인 코스였다.
그런데 첫날 밤 그녀는 너무 큰 고통을 당하였다.
첫날 밤의 남녀의 치루어야 할 행사가 무언가 맞지 않는 톱니 같았다.
남자의 손길은 그녀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 남자는 남자대로 힘들어했다.
연애 시절에 남자는 그녀를 안거나 손이 가슴으로 오거나 할 때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었다 .
달콤해야할 신혼의 첫날밤이 괴로운 밤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서로 무언가 안 맞아서 그랬거니 했지만 두 남녀의 성에 대한 無知내지는 부족한 경험에서 오는 마찰이라 생각했다.
남자도 괴로워하는 여자를 이해하고 사랑의 표현을 억제하였다
그래도 여자는 이년 만에 딸아이를 낳았다.
양가에서는 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좋아 하였다.
그리고 이태가 지나서 둘째 영웅이를 낳았다.
그리고 차츰 남자의 행동이 달라져갔다.
효주는 남녀의 관계가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그들의 주위에서 그러한 문제로 도움을 주고 받을만한 사람들이 없었다 . 오죽하면 그런 일을 의논할 친구도 없었으니 말이다.
남편의 직장은 서울이었다
바쁜 탓인지 늦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가 외박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
효주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아버지도 늦는 일이나 일 때문에 야근을 할 때면 어머니가 아버지의 외이셔츠며 양말을 곱게 개어 미리 준비를 하시는 걸 본적이 있었다.
남편의 그녀의 기둥이었다.
매달 가져다 주는 월급을 쪼개어 살림을 맞추고 또 이웃 면에 사는 시댁을 들러 용돈을 드리고 아이들 뒷바라지에 모든 것을 쏟았다.
가까운 친정도 못 들르는 때가 많았다.
어쩌다 시장통에서 엄마를 만나면 고깃근이며 생선 한토막이라도 나누어 엄마의 시장 바구니에 담아 드렸다.
아버님 좋아 하시는 걸로 골라서 담아 드렸다
효주는 그 이상의 세상일은 전혀 알지 못했다 큰 아이 은설이가 학교를 입학할 때 쯤이었다.
남편은 요즘 며칠에 한번씩 집에를 들렀다
" 여보 . 다음 주 일요일이 아버님 생신이세요 "
" 응 그래 ?"
" 네 . 어떻게 준비 할까요 .? "
" 뭘 ? 그냥 돈이나 챙겨드려요. 돈 오만원만 봉투에 담아 드려 "
시아버지 생신 날에도 남편은 집에 오지 않았다.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을 다녀왔다
남편이 없으면 불안하다
아이가 한 밤중에 아프거나 할 때는 정말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안집 아주머니에게 딸 아이를 맡기고 밤길을 달려 병원 문을 두드리기도 했었다
남편이 없는 사이 아이가 아픈 것은 자신의 탓이려니 생각했다 .
그즈음 이상한것은 남편이 집에 올때마다 옷이 항상 깨끗하고 말쑥했다 .
그녀는 남편의 옷을 빨아서 다리고 그이가 오면 항상 입고 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두었었다.
" 여보 . 옷이 왜 이렇게 깨끗해요 ?"
남편은 머뭇거리다 당황한듯 근처 세탁소에서 옷을 세탁해서 입었노라고 얼버무렸다.
어느날 남편이 집에 왔다
오랫만에 가족끼리 한자리에 앉는 저녁식사였다.
아이들이 제 아빠에게 가까이 가지를 못했다
제법 붙힘성이 있고 애교쟁이인 딸아이도 남편의 무릎 근처에도 가지를 않았다
그것도 그럴것이 밤이 되야 찾아오고 아이들이 깨기 전 이른 아침에 출근을 하니 아이들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어색하고 낯을 가릴 수 밖에 없었다.
효주는 남편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마치 자신의 잘못인것만 같았다 . 저녁이 끝나고 자리를 깔고 잠자리에 누웠다.
아이들은 벌써 잠이 들었다.
밤이면 아직 엄마품에서 떨어지지 않는 영웅이를 억지로 떼어 놓고 재웠다.
남자는 여자의 몸을 더듬었다
" 역시 돌덩어리야 "
남편이 혼잣말 처럼 뱉어냈다
" 네 . 뭐라구요 ?"
" 아냐 아냐 . 우리 여보 예쁘다고 "
그녀는 순간 어둡고 불안한 기운이 스쳐감을 느꼈다.
남자는 여자에게 짙은 애무로 사랑을 표시하였다.
불안한 마음은 그녀를 꽁꽁 얼게 만들었다 .
살이 닫는 부분이 뜨거워지기는 커녕 차갑게 식기만 하였다.
그래도 남자는 기어이 자기의 할 일을 마쳤다.
알수없는 불안감은 그녀를 혼돈스러운 밤으로 끌고 갔다.
여자의 육감은 참으로 날선 비수처럼 위험하다.
남자는 새벽이 되자 아침식사도 거른채
집을 나서고 말았다 .
젊은 부부들은 아침이면 잘 다녀오라 키스도 해주던데 . 효주는 그날 아침의 허전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었다.
빛도 없고 어둠도 없고 안개속을 끝없이 방황하는 자신이 떠올랐다.
효주는 그날 언니를 불렀다.
할 말이 있다고 꼭 들러달라고 간절하게 부탁의 전화를 넣었다.
" 그래 ? 나도 제부가 이상하구나. 그런데 왜 여지껏 한마디도 하지 않았니 ?"
자초지종을 듣고난 언니는 그녀에게 힐책하듯 물었다.
" 언니. 우리 엄마처럼 살아가는게 가장 옳은 길인줄 알고 있잖아."
" 이런 . 답답한것 같으니 "
"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 "
다음날 효주는 아이들을 언니집으로 보내고 남편이 근무하는 서울로 올라갔다.
과수원이며 벌판이었던 전철 길 주위로 집들이 들어서고 아파트들이 키를 재며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복숭아꽃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먼지 풀풀나던 그 예전의 동네의 모습은 어디론지 사라져 가고 있었다.
여의도의 한 곳에는 소위 오퍼상이라는 작은 무역상들이 몰려 있었다.
공중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자리에 없었다.
출장중이라 조금 늦는다는 답만 돌아왔다.
점심이 지났으니 기다리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상가의 유리창 건너에는 늘씬한 마네킹들이 화사하게 맨몸을 거침없이 들어 낸 모습으로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진감색 유니폼을 입은 여자 몇이 웃으며 화장품 냄새를 짙게 퍼뜨리며 지나간다.
유리창엔 허름한 옷차림의 여자가 서있었다
ㅡ 후드득 .후드득 ㅡ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효주는 용기를 내어 남자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찾아 들어갔다.
" 저 ~ 안녕하세요 ?"
사무실에는 젊은 남자 하나와 여직원 하나가 그녀를 빤히 쳐다 보았다
" 어딜 찾아오셨지요 ?"
" 네 . 김 00 씨 부인되는 사람입니다 . 애들 아빠를 만나러 왔습니다 "
두 남녀는 동시에 눈이 둥그래졌다.
" 네. 김과장님 부인이시라구요 ?"
젊은 남자는 다시 물었다.
" 네 . 저의 남편되는 분이세요 "
남자는 비에 젖은 그녀에게 수건을 건네 주었다.
젊은 남자는 효주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물었다.
" 김과장님 사모님이 정말 맞으세요 ?"
" 네 . "
효주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나 싶었다.
" 아 . 김과장님이 오늘 부산으로 출장을 가셔서 며칠 동안 못 오십니다. "
효주의 가슴에 큰 돌덩이가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멀고 힘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남편은 그녀를 근처 중국집으로 불러 내었다
딸아이는 제 아빠의 눈치를 보는것 같았다
나 어린 아들은 짜장면을 얼굴에 범벅을 하며 먹고 있었다.
남자는 안주와 술을 시켜 자기가 따라 마셨다.
" 여보 미안해 . 엊그제 다녀 갔다면서 "
" 네 . 마침 언니 심부름으로 나갔다가 ..... "
그녀는 슬쩍 거짓말을 하였다.
가슴이 뛰었다. 정말 지금껏 십년이 넘게 살아 오면서 거짓말이라고는 한번도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
" 내 할 말이 있어"
중국술 두 잔을 거푸 마신 남자는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쓸어 올리며 한참을 머뭇거리던 남자는 말을 던졌다 .
" 우리 이제 헤어집시다 "
무슨 말인지 알수가 없었다. 혹 잘못 들었나 싶었다.
" 우리 이만 헤어지자구요 "
" 네 ? "
" 나 그동안 당신을 속이며 살아 왔어. 결혼전부터 사귀던 사람이 있었어 "
순간 세상이 멈춘듯 했다.
꿈을 꾸고 있는듯 했다.
그때 옆에 있는 은설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왜 울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제 아빠를 보면서 닭똥같은 눈물을 펑펑 흘려대고 있었다 .
남자는 집안의 강요로 맞선을 보게되고 그녀를 만났지만 사귀던 여자에 대한 사랑도 놓칠 수 없었다. 남녀관계의 맺고끊음이 무르고 흐릿했던 남자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이 여기까지 흘러오게 된 것이다 .
안개 속을 걷는것 같았던 불안의 끝이, 안개가 걷히면서 실체가 바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효주는 그대로 돌처럼 굳고 말았다
속에서부터 덜덜 떨려 오고 있었다.
" 오 ~ 아버지 "
" 마음 정리되면 연락해요 "
건조하고 차가운 한마디만 남기고 남자는 일어섰다.
" 아냐 . 아냐 . 꿈일거야 "
효주는 꼬박 밤을 새웠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도 없었다
몸은 덜덜 떨려오고 고통의 아침해가 밝아왔다
" 뭐야 ? 이런 쳐 죽일 놈의 새끼 "
언니는 불같이 화를 내었다
" 이 바보 멍충이 같으니 그걸 . "
" 언니 . "
그녀의 언니는 당장 아버지에게 달려가려고 하였다 .
" 안 돼 . 언니 "
그녀는 언니를 한사코 말렸다.
" 아버지한테 그런 말 하면 안되. 아무도 몰라야 해. 나 하나 때문에 아버지나 어머니가 상처입으셔도 안되고 다른이들한테 손가락질 받게 해서도 안되 , 언니 이 일은 언니만 알고 있어 "
언니는 하루사이에 변해버린 몰골의 동생을 바라보다가 그만 통곡을 하였다 .
두 자매는 그렇게 통곡을 하였다.
며칠후 남자에게 연락을 보냈다.
남자는 서울 변두리에서 작은 전셋방 하나 얻을 돈을 주었다 .
효주는 아이들은 자기가 꼭 키워야한다고 절대 못 데려간다고 처음부터 못을 박았다. 남자는 되려 안심하는 눈치였다.
" 개새끼 ......"
효주는 입속으로 뇌까렸다
믿고 사랑했던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효주의 부탁대로 친정을 함께 갔다
회사가 옮겨서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하직 인사를 하였다.
눈물이 나오는 것을 이를 악물고 참았다.
언니는 그녀를 꼭 끌어 안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는 남자의 등을 두드리며 효주와 아이들을 부탁하였다
" 김서방 . 집안의 기둥이 든든해야 그 가정이
화목하고 아이들도 잘 자라는거야. 나는 믿네 .김서방 "
그녀의 기둥은 이미 다 썩어 쓰러진지 오래였다.
삼양동 산비탈동네.
대문 없는 집들이 더 많은 집에 전세 오만원에 부엌 딸린 작은 방 하나를 얻었다.
될 수 있으면 아무도 모르는 멀리 떨어진 곳.
어떤 연고 하나 없는 곳을 찾다가 이곳을 찾아왔다 .
갑자기 변한 환경에 아이들도 기가 죽어있었다
제 어미 효주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부모님이 계시는 곳만해도 기댈 언덕이라고 마음이 놓이곤 했었는데 , 마치 황량한 벌판에 버려진것 같았다.
아이들이 잠이들면 좁은 마당으로 나와 밤하늘을 바라 보았다.
까만 하늘엔 숱한 별들이 저마다의 빛을 뽐내고 있었다.
눈물이 주루르 흘러 내렸다.
이곳으로 온지 한 달이 되어 갔다.
먹을 식량이며 전기세며 잡비를 내고 나니 수중의 돈이 바닥을 들어내고 있었다.
시장통으로 내려갔다.
순대국집에서 사람을 구하는 종이를 보았다.
정말 귀한 자리였다.
효주는 딸에게 일렀다.
" 은설아. 엄마 내일부터 일하러 가야 해요.
학교 다녀 오면 영웅이 잘 데리고 놀아야 해. 누가와도 문 열어 주지 말고"
다행이 눈치있는 은설이는 언덕 하나 넘어 있는 학교를 곧잘 다녔다.
입술을 꼭 다물고 초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딸을 꼬옥 안아 주었다 .
아이들 아침을 먹이고 학교를 보내고 출근을 하면 밤 여덟시나 되어야 집으로 돌아왔다.
기름끼 끼어있는 뚝배기와 식기를 설거지하고 야채를 썰고 김치를 담그는 주방에서의 일은 힘든 일을 안해본 효주에게는 벅차고 힘든 노동이었다.
점심시간은 근처의 세타공장의 요꼬공들이 와서 밥을 먹고 저녁엔 집으로 올라가는 노가다꾼들의 술추렴 시간이었다.
천성이 꾀부릴 줄 모르는 그녀는 충직하게 일을 하였다.
덕분에 아이들은 굶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많은 월급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은행에 저축을 할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인것은 아이들이었다.
하루 종일 비어있는 어미의 빈자리를 잘 메우고 있었다.
언덕을 오르다 효주는 아이들 생각을 하면 피곤이 쌓인 육신에도 힘이 솟았고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세월은 흐르고 계절은 물레방아처럼 돌고 돌았다
설이 다가왔다 .
부모님 생각이 들었다
매년 명절이면 늙어가시는 부모님이 생각났지만 얼굴을 들고 찾아 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꼭 찾아 뵈어야 한다는 마음만 독하게 쟁이고 있었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번듯한 대문이 달린 집의 큰 방으로 이사를 하였다.
물론 전세였지만 은설이가 육학년이 되던 해에는 작지만 방이 두개씩이나 있는 집으로 옮겼다.
언니에게서 편지가 왔다.
한번 찾아 가겠노라 답신을 보냈지만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꿈속에 나타났다.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자신을 그리워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 얘들아. 할아버지 할머니 뵈러가자 "
세월이 흐르면서 부모님에대한 불안감과 죄책감이 가슴을 베이게 했다.
더 늦으면 안 될것 같았다.
아이들도 자기 아버지와 엄마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또 그런 이유로 외가와 끊어지는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아이들은 겉으로는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낌새를 금새 알아 볼수 있었다.
" 저 애들도 얼마나 보고 싶었을꼬 "
아이들에게 새옷을 입히고 새 신을 신기고 아버지께 드릴 선물로 굵은 인삼 한 채와 어머니가 입을 한복 한 벌을 샀다.
그분이 좋아하시는 옥색으로 제법 비싼값을 치루었다.
부모님집으로 가기 전날 밤.
머리맡에 놓아둔 선물 보따리를 몇번이고 다시 매만지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첫댓글 3부는 언제 나와요? ㅎ
수정 작업 끝났으니 조간으로 ?
잘봤습니다.
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