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그녀는 자정 무렵에 왔습니다. 내가 20대일 때 30대였고, 내가 30대일 때 40대였던 그녀...지금은 50대 초반의 중년 여인이 되어있는 그녀가 그 밤, 내 목마른 외로움에게 한줄기 물이 되어주기 위해, 하루일을 끝낸 지친 몸으로 늦은 방문을 했었습니다.
그녀는 예쁘장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아주 작은 여자입니다. 그 작은 체구의 여자가 한 손에는 붉은 와인 한 병을, 다른 한 손에는 막 만들어 왔다는 피자 한 판을 들고 15층 엘리베이터 저 안쪽으로부터 언제나처럼 소녀같은 미소을 지으며 나에게로 와주었습니다.
오랜 쓸쓸함에 표류하고 있던 나의 외로운 영혼은 잠시 고개를 접고, 그녀가 가져온 와인과 피자, 그리고 피클로 얼마만인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우리의 술상을 차렸습니다. 잠시 내 눈에 눈물이 어리는 걸 그녀가 보았을까요...
그녀와 나는 열 한 살이라는 나이차가 납니다. 20대 중반, 내가 다니던 대학 앞 어느 레스토랑에서 주인여자였던 그녀를 첨 보았지요. 화장이나 치장에는 무관심한 듯 여가 시간엔 언제나 책을 읽고 있던 그녀...그래요, 그녀는 책벌레였습니다.
'전혜린'이 그녀와 나를 친구로 만들어 주었다고 해야할 것 같아요. 무채색 옷들로 온몸을 무장하고 다니며 수심깊은 표정으로 그곳을 드나들던 내게서 그녀는 전혜린을 보았다 했고, 어느 날인가는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말없이 손에 안겨 주기도 하였지요.
그렇게 책으로 맺어진 인연은 지금껏 지속되어 왔고 나이를 초월한 친구사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아직도 내게 존댓말을 씁니다. 말하자면 우린 그닥 편안한 친구관계는 아닌 것인데요, 그건 그녀도 나도 워낙 조심성이 많은 성격의 소유자들이라 그럴겁니다. 하지만 그 '나쁘지만은 않은 불편함'이 우리의 우정을 오래도록 유지시켜 줄 것임을 나는 믿습니다.
그녀는 내 20대 때의 열정과 30대 때의 좌절, 그리고 40대인 지금의 절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 첫사랑의 역사를 지켜본 산 증인이며, 이후의 좌절과 절망을 고스란히 바라본 유일한 사람인 것이지요. 입을 열면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야무진 그녀이지만 대체로 말수가 적은 편인 그녀는 결코,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으로 '나'를 견뎌내 준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거실바닥에 마주보고 앉아 와인잔을 기울이며 함께 추억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나의 쓸쓸함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는 그녀의 쓸쓸함을 이야기했습니다. 40대인 나는 세월이 어서 흘러서 모든 욕망들로부터 자유롭고 싶다고 했고, 작년에 폐경을 맞았다는 그녀는 50대가 되어도 절대 편안하진 않다는 말을 했습니다.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는 말을 그녀가 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린 둘다 외로웠던 게지요.
와인 한 병이 다 비어가는 사이 시계는 두 시를 지나고, 세 시를 지나고...네 시경에야 나란히 몸을 누인 그녀와 나는 잠 속으로 스르르 빠져들어 갔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의 동침(?), 누군가와 더불어 자는 모처럼의 잠...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더군요. 그렇게 그 밤은 알딸딸하게 풀어지다가 새벽이 오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짧고도 아픈' 잠을 잤습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를 되뇌이다가,
'사랑 없는 빈집에 나는 쓸쓸하게 놓여져 있네...' 중얼거리기도 하다가 이내...잠이 들었죠.
첫댓글 이스리에 취해 깊게 들던 잠....새벽녘에 갈증에 일어 났건만 그노므 고양이 짝을 찾는 소리에 새벽에는 뒤척거리다 말았다우......가을은 이눔들도 뭔가 찾는 계절 같네요!
그 외로움을 감히 이해할 수있을지...느껴도 다르겠지요?...30대든 40대든 50대든 달라지는건 없드라구요...지금까지 그렇게 바래면서 지내온 거에요..어떤 만족을..... 그러면서 또 좋아 질거야 하며...
감히 말하자면 인생은 외로움과 합께하는거 같아요 그래도 와인병 들고 찾아와 한잔기울이며쓸쓸함을 나눌수있는 벗이 있어 부럽습니다........
^*^..비워도 비워도 비울수가 없고 비워지지도않으며 ,채워도채워도, 채울수가없고 채울수도없는 허한 40대의 비애...모든욕망으로부터 탈출은 구도자들의 해결할수없는 끊임없는화두인걸....그냥 그렇게 흔들리는 배에 몸을 맡기소서..
그나이에.사랑과.우정을겸한.좋은사이.영원히.함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