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진달래
오영수
아버지 따라 소록도 가던 길에
애기 문둥이가 따먹어 더 서러웠던 꽃
우리 손으로 일군 독립이 아니라
어부지리로 얻은 광복이기에
민족진영 사람들은 해방된 땅에서
일왕에 충성하던 매국노들에게 핍박을 받아야 했다
민족반역자들이 반공을 빙자하여
목숨을 부지하려던 그 혼란의 시기에
이데올로기의 격전장이 되었던
그 질곡의 땅 지리산 자락에 붉디붉은 참꽃이 혼불로 핀다
형제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어 돌아서야 했던
여수 14연대 군인들
제주 4, 3 민중항쟁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해야 했던 그들은
문수골로 들어가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총 맞아 죽었다
산등성이에 몸을 숨기고
누가 맞을지 모른 체 마구잡이로 방아쇠를 당겨
서로에게 증오를 퍼붓던 그 밤
두견새는 밤새 피를 토하며 울었기에
산하에는 핏빛에 물든 두견화가 눈물로 피었다
흐르고 흐르고 흘러
설움도 곰 삭혀질 만큼의 한 갑자의 세월이 흘러서야
그들의 백골은 진토가 되어
지금은 처처에 무리꽃으로 핀다
동병상련 아린 마음은
토벌군과 산사람의 혼이 한 뿌리에 엉겨
서로의 한을 얼싸안고 상생의 진혼굿판을 벌인다
이제 그들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더 이상 다투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못 이룬 통일의 꿈을 이대로 저버릴 수 없기에
갈라진 민족이 하나가 되는 노둣돌이 되기 위해
진달래는 오늘도 지리산자락 자락마다 꽃을 피운다
염원을 피운다
진실의길 중에서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