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여름날의 산골은...
2022년 7월 28일 목요일
음력 壬寅年 유월 삼십, 그믐날
이제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들었다.
아침 안개가 온사방을 휘둘러 자욱하여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틀림없이 한낮엔 덥지싶다.
한시간 남짓 걷기운동을 하다보니 자욱했던 안개가
걷히고 동녘 하늘에 환한 햇살이 퍼지기 시작한다.
상쾌한 공기가 이내 뎁혀지는 느낌이 들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운동을 마칠 시간이다.
아내는 아침식사를 준비하러 들어가고 촌부는 혼자
밭으로 향한다. 고추밭고랑 사이를 둘러본 다음에
호박밭에 가서 기다란 장대를 들고 잎파리 사이를
뒤적뒤적 호박이 열렸는지 찾아본다. 방울토마토가
익었는지, 오이는 얼마나 달렸는지, 노각은 조금 더
컸는지, 색깔이 바뀌기 시작한 파프리카는 언제쯤
따게 될지 살피고 집으로 들어온다. 매일 아침으로
산골부부가 하루를 여는 모습은 이렇다.
산골집은 겨울날 눈꽃을 포함하여 사시사철 내내
언제나 꽃이 피어있다. 봄부터 꽃이 피고지고 있어
항상 꽃과 함께하는 즐거운 일상이라고 해야겠지?
오늘 아침에도 걷기운동을 나가려고 현관을 나와
맑은 아침공기를 들이키면서 기지개를 켜다보니
가장 먼저 장독대 앞의 알록달록 예쁜 백일홍꽃이
눈에 들어오고, 그 옆 마당가 곳곳에 키가 엄청 큰
꺽다리 금꿩의 다리가 밝은 자주색의 꽃을 피웠다.
현관 옆쪽 창가에 지지대를 세워놓은 꼭대기에는
하얀 으아리꽃이 화관을 세워놓은 것처럼 예쁘게
피어 주인의 마음을 기쁘게, 즐겁게 하여 고맙다.
이렇게 온갖 꽃들과 함께하는 산골살이는 남다른
혜택이며 보람이며 즐거운 일상이 아닐까 싶다.
아침에 운동을 나가거나 저녁무렵 우편물이 왔는지
확인하려고 카페앞 우체통에 내려가다보면 어떻게
인기척을 눈치챘는지 길냥이 모녀가 중앙통로까지
쫓아와 먹이를 달라고 냥냥거리며 마중을 나온다.
길냥이 모녀이긴 하지만 거의 집고양이가 다 되었다.
그래도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는다. 먹이를 먹거나
단지내 곳곳을 돌아다닐때는 지나가도 우리 부부가
주인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밥달라고 쫓아다니고 먹이 가지러 안으로 들어가면
안에까지 쫓아들어오는 것을 보면 분명 알고있다는
증거겠지 싶다. 어쩌다보니 길냥이를 기르게 되었다.
아내가 새끼낳은 길냥이가 불쌍하다며 먹이를 주게
되면서 시작된 것이다. 벌써 3~4년이 되었지 싶다.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길냥이를 거둔다는 것 또한
산골살이에서 할 수가 있는 보람이 아니겠는가?
어제 저녁무렵 밭고랑에 방치해둔 호스를 걷었다.
지난 5월 중순이후 6월까지 한달 넘게 이어졌던
가뭄에 물주기를 하느라 꺼냈던 것인데 걷었어야
했는데 혹시 장마철이 지나가고 또 가뭄이 들까봐
그냥 밭고랑에 내버려두고 걷어놓을 생각을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물주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뒤늦게 걷어야만 했다. 그런데 다음해
꺼내게 되면 또다시 똑바로 풀기가 쉽잖을 것 같아
생각을 했다. 그냥 적당히 걷어놓으면 꼬이는 것은
틀림없는 것이라 아예 걷을때 제대로 해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았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플라스틱 박스를 이용하는 걸
생각한 것인데 아주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낸 같다.
그런데 해놓고 보니 너무 없어 보이는 것 같긴 하다.
아무러면 어떤가? 내가 편하면 좋은 것이지!
요즘같은 시기에는 무더위에 입맛이 떨어지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밭에서 언제나 싱싱한 채소를
뜯어다 먹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상추, 쑥갓
같은 잎채소는 장마철에 녹아없어져 값이 꽤 비싼
모양인데 우리 밭에는 아직도 생생하게 잘 자라고
있다. 다만 이제 거의 끝물에 가까워 쫑대가 나온
것도 있긴 하고 간간이 짓무른 잎사귀도 생겼으나
아직은 뜯어 먹을 만큼은 싱싱하다. 어제 점심무렵
장에 나갔다가 와서 아내가 날씨도 더운데 간단히
상추쌈으로 점심을 해결하자고 하며 밭에서 상추,
쑥갓을 뜯고 오이, 풋고추를 조금 따오라고 했다.
아내는 강된장을 보글보글 끓이고 떡갈비 두 조각
굽고 무짠지 냉국을 만들어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저녁에는 점심에 남은 강된장, 무짠지 냉국에 굴비
두 마리를 구웠고 꽈리고추찜, 가지나물, 풋고추로
해결했다. 여름날에 이 정도 밥상이면 괜찮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 아내는 대충 차린 밥상이라서 많이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의 말 끝에 촌부가 한 말은,
"백수에게 이 정도 밥상이면 오감타 아인 가베!"
라고 말을 해놓고 아내와 둘이서 껄껄껄 웃었다.
첫댓글 진수성찬 입니다~ㅎ
즐거움이 가득한 나날을
응원 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자연마트에서 장을 보시고
천연의 재료로 맛있는 식사를 하시는 촌부님!
겨울에는 눈꽃으로 사시사철 꽃밭에서 사시고
그중에 제일은 사모님과 일상속 마저도 꽃이니
이또한 소학행이 아니겠습니까?
두분의 아름다운 행복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