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조선불교유신론’
만해 한용운 스님의 조선 불교 유신론에 대해서 처음 들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국사 시간이었다. 그때 우리 학교의 국사 선생님은 대학 입시 밖에 아는 바가 없는 아이들 앞에서 당신이 정말 그 때의 불교 상황에 대해 답답해하며 이 책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 아마 당시 서울 어디에서는 각목이 난무하고 무슨 가처분 신청이니 하는 소송 건들이 지면을 장식하던 때였는가 싶다. 생각하니 그 선생님도 아마 불자셨거나 적어도 불교에 마음이 기우신 분이었던 것 같다.
요약해 핵심을 가르쳐 주며 강조하신 몇 가지 이야기가 내 머리 속에 선명하게 남아 언젠가 원전을 한 번 읽어 보리라 했었는데 대학 도서관에서 대충 한 번 훑은 적은 있지만 어쩐지 그 때는 더 이상의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그런데 한 가지, 요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잊을 만하면 한국의 교육에 대해 치켜 주곤 하지만 그게 정말 한국의 교육 상황이 바람직하고 본받을 만하다고 해서 한 말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너무 순진하거나 아둔한 것 같다. 몬도가네 같은 한국 사람들의 학벌열을 교육열로 잘못 알고 있거나 어떤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리 말하는 거겠지. 어쨌거나 우리는 춘향전을 읽지 않고 춘향전에서 나옴직한 예상 문제를 외웠으며 논어를 만져본 적이 없이 논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외웠으며 삼국유사를 냄새 맡은 적 없이 삼국유사에 관해서만 외워야 했다. 조선불교유신론의 내용은 출제 될 법한 항목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러고도 수십 년이 지난 얼마 전에야 태고사 도서실에 들렀다가 진짜 조선불교유신론을 빌려와 다시 읽게 되었다. 물론 현대어로 갈음한 산뜻한 판본인데 한문투성이의 세로글로 된 원본이 합본 되어 있어 책의 삼분지 일을 차지한다. 원본은 완전 한문으로 된 서문과 국한문 혼용인 본문까지 통틀어 80여 쪽이 되는데 크지 않은 분량의 이 책이 나오자마자 당시의 불교계는 물론 전 조선이 논쟁으로 떠들썩하였다. 요새말로 이 원전을 풀어쓴 나머지 부분은 한 150 쪽 쯤 된다.
본래 이 책이 처음 발간 된 것이 1913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백 년이 다 돼 간다. 그 사이에 우리글의 문체가 이렇게도 많이 변했다. 남 먼저 깨치신 선각자의 글이 이 정도니 다른 이들은 어땠으랴? 하지만 그런 고색창연한 문체를 떠나 그 내용을 훑어 보건대 이건 바로 요즘 우리들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생생하다. 작금의 한국 불교와 각 종단의 상황, 그리고 미주의 상황에도 거의 대부분이 해당 되는 이야기인데 이처럼 백 년 전에도 꼭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니 놀랍다. 그만큼 만해 스님의 문제 제기에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이 있다는 얘기도 되겠지만 다른 한 편 우리 한국 불교가 그 핵심적인 문제에 있어 멀리 못 나가고 여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되겠다.
만해 스님은 1879년에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05년에 스님이 되셨다. 그러다 한일합방이 된 3년 후에 이 책이 나왔다. 이듬해에는 ‘불교대전’을 펴냈으며 1918년에는 월간 불교 잡지 ‘유신’을 간행하셨다. 1919년 삼일 운동 때는 33인 중 용성 스님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했다가 모진 옥고를 치르셨다. 1926년에는 그 유명한 시집 ‘님의 침묵’을 펴내고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는 등 문학 활동을 하면서 ‘십현담주해’라는 책을 펴냈으며 1931년에는 ‘월간 불교’를 인수하여 속간하셨다.
여러 이야기 할 것 없이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변절하지 않고 오로지 중생과 민족을 위해 줄기차게 활동하면서 끝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은 인사가 만해 스님을 빼고 몇이나 더 될까? 일제의 위압과 왜색불교의 현혹 아래에서 갈피를 못 잡은 조선 불교계의 정신적 참상과 민망함은 날이 갈수록 이루 표현하기가 어려웠으니 어떤 면에서 그 끈질긴 후유증이 아직도 면면히 내려와 멀리멀리 암세포와 같은 뿌리를 뻗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책의 내용을 다시 한 번 훑어보자.
현실의 답답함이 묻어나는 머릿글을 지나 본문은 모두 열일곱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1장 서론부터가 운명론을 거부하는 울부짖음으로 들린다. 일을 이룸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나의 의지에 달려 있음이라.
다음 장으로 나아가 불교의 본질과 불교 사상의 핵심을 짚어 나가는데 그건 바로 불교의 낡은 틀을 깨트려 부수자는 제4장, ‘불교의 유신은 마땅히 파괴로부터’ 라는 통렬한 비판의 장의 전초가 된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게 바로 오늘 우리들의 얘기다.
바로 거론하신 것이 승려의 교육 문제인데 당시의 많은 승려들이 너무 지식이 모자라는데다 공부는 제대로 안 하고 논쟁만 하는 폐단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세 가지 시급한 제안을 하는데 그 첫째가 보통학을 시키자는 것으로 요새 말로 하면 기초 현대 학문, 교양 과정을 좀 이수 시키자는 것이다.
둘째가 사범학을 도입하자는 것인데 가르치는 법, 즉, 교수법, 목회법에 해당하는 것 같다. 혼자 깨우치고 알면 무슨 소용이 있나? 가르치는 방법을 모르거나 너무 서투르다면 없는 거나 별반 다르지 않다.
셋째가 외국 유학의 강조다. 인도에 보내 경과 논을 공부 시키자는 말은 근본불교에 대해 무지함을 지적한 것 같고 중국에 가서 조사들의 발자취를 찾고 배우라는 것도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는 길이겠다. 더구나 구미에 가서 타종교에 대해서도 배워 와 장점을 채택하라는 이야기는 앞을 내다본 혜안이다. 지금도 한국 불교는 시대와 세계화에 맞는 교육에 한참 미흡해 보인다. 법당을 늘려 짓는 일보다 사람 기르기가 더 급하지 않을까? 국내에서나 외국으로 공부하러 나가시는 스님들 학비는 어떻게들 마련이 되는지를 모르겠다.
진정한 참선에 대해서도 한 장을 할애하셨는데 말씀하시기를 옛사람들은 그 마음을 고요히 하였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 처소를 고요히 한다고 하였다. 사회 참여 불교의 면모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다음이 다소 과격해 보이는 염불당 폐지의 주장으로 상당한 논쟁을 촉발하였다. 쉽게 말해 복은 복대로 가고 죄는 죄대로 가는데 덮어놓고 염불만 하면서 정토왕생을 빈다고 될 일이냐, 인과를 무시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이름만 부르는 것은 거짓 염불이며 부처님의 마음을 염하여 내 마음으로 하고 부처님의 배움을 염하여 내 배움으로 하는 것이 참 염불이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맞는 말씀이긴 한데 좀 이상론으로 들릴 것 같다. 염불과 염불당이 현실에 있어서 엄연한 대중교화의 한 방편이므로 비록 거짓 염불일지라도 거기에 머무르지 말고 참 염불을 위한 징검다리로 삼아 정진한다면 문제가 풀릴 것이다.
절의 위치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하셨는데 산골짜기에 있지 말고 동네로 내려오라는 것이다. 몇몇 전통 산중 사찰만 남고 그 때 이 말 대로 해서 민중 속으로 파고들었으면 한국이 지금 찬란한 불교나라가 돼 있을 것이고 미국도 이렇지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절의 불상이나 탱화가 너무 여러 가지로 어지러우니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정리하라신다. 나한이니 칠성이니 시왕이니 신중이니 꼭 본래부터 불교에 있었던 것도 아닌데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불교에 처음 발을 디디는 이들이나 바깥에서 상당히 헷갈려 하고 오해도 많이 하는 부분이 이것이니 그냥 과격한 말씀으로만 치부하기엔 생각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불교의 각종 의식도 너무 어지럽고 많다고 하신다.
그리고 승려도 얻어먹지만 말고 스스로 생산하며 자립하라고 하신다. 승려로서 남의 덕에 얹혀살면 자연히 얕보이고 제 자리를 못 찾는 것이니 하나의 인간으로서도 인권을 회복하고 유지하려면 생산에 종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절은 숲과 땅도 많고 사람도 많은데 왜 놀리고 있냐는 말씀인데 경제적인 바탕이 너무나 피폐했던 당시의 사정을 반영하고 있기도 한 말씀이다. 지금은 상당히 다르지만 구태여 물질의 생산이 아니더라도 승가 본연의 과제인 참된 정신의 생산만은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 드디어 가장 민감한 뇌관을 건드린다. 승려의 결혼문제다. 속된 말로 숨어서 딴짓할 바엔 결혼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독신이 윤리적으로나 국가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안 되며 포교와 교화에도 불리하다는 것이다. 일리는 있지만 청정한 전통 교단의 전통을 뒤집는 원자폭탄과 같은 말씀이다. 어떻게들 생각하시는가?
내 생각엔 이제 좀 늦었지만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막다른 시점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비구 비구니 되려 출가하는 분이 너무 적다. 출가해서도 못 견디고 환속하는 분이 많다. 요즘 하나나 둘만 낳는 세상에서 자식을 승려로 만들려는 부모는 거의 없다. 천주교 쪽도 비슷한 사정이다. 이대로는 오래 못 간다.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한다. 무슨 대책인가?
사부대중이 아니라 육부대중이다. 비구 비구니와 우바새 우바이 중간에 결혼이 허용되는 남녀 성직자 계급이 있어 다리를 놓으면 된다. 기독교의 목사처럼 가정을 갖고서도 불교에 직업을 가져 일정한 역할을 하며 먹고 살 수 있는 계급을 길러야 한다. 그 이름이 전업 포교사라도 좋고 전법사나 다른 이름이라도 좋다. 지금부터라도 그런 쪽으로 가지 않으면 정말 대가 끊기거나 농어촌 신부처럼 스님도 온통 수입을 해 와야 하는 날이 머잖아 올 것이다.
사원 주지의 선거법에 대해서도 한 말씀. 요즘도 불미스런 얘기가 없지 않은 걸 보면 뿌리가 깊은 것 같다.
승려의 단결과 사원의 통할에 대해서도 한 장 씩을 할애하고 있는데 이 부분 별로 개선되지 않은 것 같다. 왜 그럴까? 불교의 개혁을 외면하고 방관하는 이들에 대한 스님의 분류는 넘길 수가 없게 만든다. 그냥 지나가려다 나 자신 반성의 의미로 소개한다.
그 첫째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깜깜한 혼돈파란다.
둘째가 바깥에 벼락이 쳐도 난 오브 마이 비즈니스, 내 짐만 챙겨 싸는 위아파다.
셋째가 한숨짓고 눈물짓는 것이 유일한 장기인 오호파다.
넷째가 남의 등 뒤에서 헐뜯고 비웃음만 흘리는 소매파다.
다섯째가 도대체 자기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며 남에게만 기대는 포기파다.
여섯째가 사실은 나몰라라 방관하면서도 겉으로는 늘 때가 안 되었다, 때가 되기를 기다리자고만 말하는 대시파다.
이렇듯 스님의 대표작인 조선불교유신론은 불교중흥에 대한 스님의 이론과 실천이 망라 된 최대의 불교시론이다. 요즘같이 버릇없고 안할 소리 못 할 소리 없는 세상에서 읽어도 속이 덜컥 하는 대목이 많은 글을 백 년이나 전에 발표를 하셨으니 당시 많은 이들의 심기가 불편하고 천하가 가히 소란스러웠겠다. 하지만 그 얼마나 현실에 낙망하시면서도 참된 불국토를 원력으로 갈구하셨으면 이런 글을 남기셨을까? 그리고 그러한 필생의 갈구에 따르는 당연한 부산물들로 해방을 한 해 앞 둔 1944년, 처참한 곤궁 속에서 쓸쓸히 입적하실 때까지 그 얼마나 부당하게 손가락질 받으며 주변으로부터 경원 당하셨을까? 다 너그러이 품고 가셨겠지만 그렇다고 후손 된 우리의 참회와 분발이 면제 되는 것은 아니다.
스님 가신 지 어언 66년, 스님의 꿈 가운데 많은 부분이 조금씩 현실화 되어 왔다.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불경은 우리말로 번역 되고 외국에서까지 스님이 되려고 찾아온다. 좌절과 실망스런 뒤집기는 이어졌지만 느리긴 해도 여러 면에서 개선과 개혁이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는 아직도 이런 책이 꼭 필요하고 널리 찾아 읽혀져야 한다는 데에 우리의 불행과 업보가 있고 못다 이룬 커다란 과제가 있다. 이 책에서 말씀하신 하나하나가 다 짓다 만 큰 가람이요 터만 잡아 놓은 대찰이요 서둘러 일으키고 마무리해야 할 중창불사다. 잡힐 듯 잡힐 듯 그 한 모퉁이 조촐한 불사들마저 자꾸 힘겨워 보이기도 하는 먼 나라의 한인촌, 그 쓸쓸한 세모의 밤을 거두며 이제 스님의 어투를 흉내 내어 허접스런 글을 맺는다. 이 머나먼 사바의 땅에서 새삼스레 조선불교유신론을 펼쳐 읽을 것인가? 고쳐 지을 것인가? 아니면 그 징허게도 생생한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 것인가?
<20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