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여행2 - 교토 동북쪽에 무로마치막부에서 세운 긴카쿠지(은각사)를 구경하다!
2024년 9월 18일 부산 김해공항에서 딸과 손주까지 7명이 탄 16시 30분에 출발한 에어 부산
항공기는 동해 바다를 건너 18시에 일본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하는데 우린
비지트재팬웹을 하지 않은지라 입국장에서 종이 입국신고서를 작성한후 입국심사를 받습니다.
짐을 수하물로 부친 경우에는 어차피 컨베이어 벨트에서 만나는지라 시간은 차이가 없지만, 다시
세관신고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입국해 출발층으로 올라가 밖으로 나가니 도로에 우리가
미리 예약한 일본 렌터키 회사 직원을 만나 도로비등으로 2만엔 디포짓을 내고는 차를 인수합니다.
일본에서는 차는 좌측통행이라 운전대가 우리나라와는 달리 오른쪽에 있는데다 밤인데도 사위는 이미
2번을 일본에서 차를 몰아본 경험이 있으니.... 유심칩을 넣은 휴대폰을 켜서 구글맵에 접속해 교토
의 호텔 인근 주차장 주소를 입력하니 한국말로 안내가 나오니 1시간 반을 달려서는 무사히 도착합니다.
고조거리와 가와라마치 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주차장에 차를 넣고는 인근에 교토 레시 스테이 브릭스
RESI STAY BRiX 에 체크인후 슈퍼에서 장을 봐서 밥을 해서 먹고 자고는 다음날인 2024년
9월 19일 아침에 다시 차를 몰고는 북쪽으로 올라가 긴카쿠지(은각사) 인근 주차장에 차를 넣습니다.
오르막길은 긴카쿠지통으로 기념품점과 음식점이 빽빽하게 늘어선게 볼만한데 언덕을 올라 긴카쿠지
(은각사) 절로 들어가는데 입구는 'ㄹ' 모양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진입로인지라 좁은 공간을
실제보다 더 넓게 느끼게해 관객들이 주변의 풍광을 오래 감상하면서 이동하게끔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입장료는 성인은 500엔이고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300엔이라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가니
듣던대로 모래로 여러 가지 형상을 표현 했는데 그중에서도 압권은 "후지산" 이라.....
백두산이 우리민족의 마음에 성산이라면, 후지산은 일본인들의 성산이면서도 친숙한 산입니다.
백두산은 668년 고구려가 망한후 통일신라의 국경선이 황해도에서 원산이니 남의나라 땅이 되었는데
청나라 강희제는 백두산이 시조 누르하치가 태어난 "만주족(여진족) 의 발상지" 라며 1677년 장백산
지신 (長白山之神) 에 봉해 제사를 지내고는 1712년에 국경을 정하자고 요청하며 목극등을 파견합니다.
조선 숙종은 함경감사 이선부와 참판 박권을 보냈으나 두사람은 문신이라 말을 타지 못하니 도중
에 주저앉고.... 백두산에 오른 것은 수행군관인 이의복, 조태상에 통역들이니 천지를 보고
백두산 남쪽 4km 지점에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으니 한국인이 백두산에 오른건 1,044년 만입니다.
오늘날 서울 시민을 비롯해 한국인들은 평소 자기 집에서 백두산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시즈오카등 동해도 사람들은 물론이고.... 도쿄 시민들도 맑은 날에는
자기 집에서 후지산이 보이는지라 우리보다 저 산에 훨씬 더 친밀감을 느끼나 봅니다?
백두산은 BC 2세기 편찬된 중국 山海經(산해경)에 不咸山(불함산)으로 기록된후 한나라 시대에 개마대산,
위진 남북조시대에 태백산과 도태산으로 이후 백산, 삼신산으로 불리다가 금나라 때 영웅산을 거쳐
長白山(장백산) 으로 불리웠으니.... 이는 여진어로 "골민샹기얀알린 (Golmin Šanggiyan Alin)" 곧
궤리만싸에아린(果勤敏瑢廷阿林) 을 한자로 옮기니 큰흰산(태백산) 또는 긴흰산(장백산) 으로 기록됩니다!
우리나라 기록에 백두산이 등장하는 시기는 조선때 편찬한 고려사가 처음인데, 그보다 앞서 일연의
삼국유사 권제3 탑상(塔像第四) 대산오만진신에 “이 산(五臺山 오대산) 은 곧 백두산(白頭山) 의 큰
줄기로 각대(臺)는 (불보살의) 진신이 항상 머무는 땅이다.” 에서 백두산이라는 명칭이 처음 보입니다.
백두산은 고려때 한번 기록된게 전부이니 고구려 시대는 당연히 기록이 없으며 고구려인들은 농사를 지으니
성곽 안이나 들판에 살았지만.... 말갈인들은 농사를 짓지않고 열매 채집과 사냥, 물고기 잡이에 가축을
키웠으니 산속에 살은지라 백두산 천지에서 장백폭포가 떨어져 북쪽으로 흐르는 송화강변에 살았으니
여진족들이 세운 금나라에서 자기 조상들의 탄생지 라고 여겨 제사를 지냈고 청나라가 이어받았던 것입니다.
휴대폰으로 구글맵에서 검색을 하면 절 앞의 언덕길 도로가 은각사통(銀閣寺通) 으로
나오지만 정작 긴카쿠지(銀閣寺 은각사) 라는 명칭이 보이지 않아 조금 당황
했는데.... 이는 절의 정식 명칭이 지쇼지(慈照寺, 자조사 じしょうじ) 이기 때문 입니다.
지쇼지(慈照寺 은각사) 의 정식 이름은 히가시야마지쇼지(東山慈照寺, 동산자조사)
이며 보통은 통칭으로...... 긴카쿠지(銀ぎん閣かく寺じ, 은각사) 라고 부릅니다.
긴카쿠지(은각사)는 일본 교토 사찰로 '킨카쿠지(金閣寺 금각사)' 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로쿠온지(鹿苑寺, 녹원사) 와 함께 선종 불교의 일파인
임제종 쇼코쿠지(相国寺, 상국사) 의 탑두사원(塔頭寺院)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헤이안 시대 조토지(정토사) 절이 있었지만 1467년부터 10년간 교토에서 벌어진 시가전 오닌의 난으로
교토의 절반이 불탔으니 절도 소실된 상태였는데 무로마치(아시카가) 막부 8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그 자리에 별장을 지어 거처할려고 공사를 시작했다가 끝을 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특히 은각으로 불리는 관음전은 할아버지 요시미츠가 세운 금각사의 금각을 흉내
내어 지었으니 히가시야마도노(東山殿) 라고 불렀으며.... 전체적으로는
요시마사가 좋아하던 절인 사이호지(西芳寺) 사찰을 상당 부분 모방했다고 합니다.
긴카쿠지 銀閣寺 는 1482년 무로마치시대의 지배자 아시카가쇼군이 키타야마의 킨카쿠지
를 모방했으니..... 누각의 1층에는 관음상이 있고 그 앞의 모래더미는
달빛을 감상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는데, 도구도 東求堂 는 국보로 지정 되었다고 합니다.
이 정원은 흰 모래로 만든 바다 긴샤단 (銀沙灘) 과 마찬가지로 흰 모래로 만든 모래더미
고게쓰다이(向月台 향월대) 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모래 정원은 긴카쿠와 더불어
긴카쿠지 명물로 소박한 긴카쿠(銀閣) 와 어우러져 정적인 아름다움 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고게쓰다이(向月台 향월대) 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밤에 달빛을 감상 하기 위해 만든 것
이라고 하는데 일반관광객은 밤 까지 이곳 절에 머무를 수 없어 그 풍취 를 느낄 수는
없으며..... 긴카쿠지銀閣寺(은각사) 절 전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으로 지정되어있습니다.
긴카쿠지는 히가시야마(東山 동산) 문화를 받아들여 선종의 선(禪) 정신에 입각해 세워진 건물이기 때문에
고요함과 간소함의 미를 가지고 있으며 아시카가 요시마사 사후 유언에 따라 사찰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쇼군(將軍 장군) 이 직접 거처한 적도 있는 만큼 무로마치 시대에는 중요한 사찰이었지만 막부가 기울어
감에 따라 쇠퇴를 면치 못했으며 1550년에는 교토의 다이묘인 미요시 나가요시와
마지막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 사이의 전투 도중 은각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모두 불타 버렸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니조성을 쌓는다고 정원의 돌들을 빼내간 적도 있으며 에도 시대 초기 복원된 모습이
오늘날 까지 유지되고 있다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입니다.
킨카쿠지(금까사) 와 다르게 긴카쿠지 누각은 은칠이 되어 있지 않으니.... 여기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요시마사가 훗날 은으로 씌울 계획이 있었다고 하지만 돈이 없어서 못하였다고도 하고, 다 지어지기
전에 요시마사가 죽어서 은박을 입히지 않았다는 설, 은박이 있었는데 떨어져나갔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2007년의 조사에 의하면 처음부터 은박을 입힌 흔적은 없었으며, 아울러 당시 불교 건축의
풍조를 생각하면 '은박을 입히려 했으나 돈이 없었다' 는 설도 사실일 가능성은 낮다고 본답니다.
연못을 돌아 올라가니 잘생긴 소나무들이 반겨주고, 쭉쭉 뻗은 스기목도 볼만한데,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은각사의 백미는 온 산을 뒤덮고 있는 “이끼” 들이니 아예 수십종의 이끼 표본들을 진열하고 있답니다.
절의 면적 자체는 작은 편이나 이끼와 소나무로 꾸며진 정원은 일본식 정원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하겠는데 울 마눌은 음지라 이끼가 많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독실한 기독교도라 불교 건축물에 대해서는 낮게 평가하는 것일까요?
모래로 물과 후지산을 형상화한 특유의 가레산스이 정원이 유명하며,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 누각
과 나무들의 어우러진 모습은 금각사 보다도 오히려 더 깊은 맛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는데 절 안에 긴카쿠(銀閣) 와 도구도(東求堂 동구당) 는 일본의 국보 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은각사의 누각은 1층은 쇼인즈쿠리(書院造)식이며 2층은 선종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통적인
헤이안 귀족양식이었던 신덴즈쿠리(寢殿造) 가 방이 없이 큰 공간에 천을 통해 공간을 나누고,
앉는 자리에만 다다미를 깔았다면, 쇼인즈쿠리는 방 전체에 다다미를 깔고, 문 등을
설치해 공간을 나누는 양식이니 현대의 일본식 저택은 쇼인즈쿠리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봄 벚꽃철과 늦가을 단풍철이며 여름철에도 아름답다지만 금년에는 이상 기후로 늦더위
가 계속되는지라...... 오늘은 무더위로 편안하게 거닐며 감상하는게 어려운가 합니다.
특히 이곳 절 부근의 히가시야마는 여름에는 덥고 습한 날씨이니 5월만 넘어가도 땅에서 열기가 올라
올 정도라는데..... 다만 겨울에도 운 좋게 눈이 올 때 간다면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하계(3/1~11/30)에는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영업하는데 4시 30분에 입장 마감입니다.
렌터카로 왔지만 버스로 오자면 교토역에서 5번, 17번, 100번 버스를 타고 긴카쿠지미치
(銀閣寺道)에서 내려서 걷다 보면 넓지 않은 길이 끝나는 곳에 수수한
긴카쿠지 문이 있으며 입장료는 500엔이며 카와라마치역에서는 32번 버스를 타도 됩니다.
긴카쿠지는 포켓몬스터에서 칠색조가 나오는 방울탑의 모티브이기도 하다는데...... 교토
에는 금각사와 은각사가 있듯이 동각사(銅閣寺) 도 있다는데, 정식 명칭은
기온각(祇園閣) 이며 특별개방을 제외하면 외부에 개방되지 않기에 인지도는 낮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