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록
문정희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제 몸속에 살고 있는 새를 꺼내 주세요>(1990)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자기반성적, 고백적
◆ 특성
① 유사한 문장 구조를 활용하여 시상을 전개함.
② 담담한 어조를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을 드러냄.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비망록 →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 둔 것, 또는 그런 책자.
* 1연 →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에 대한 자기 반성이 담겨 있다. 화자 자신의 현실에 대한 회한의 심정이
담김.
* 가난한 식사 앞에서 / 기도를 하고 / 밤이면 고요히 /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 소박하고 겸허하게 자신의 삶을 반성하며 살아가고픈 시적 화자의 소망이 나타나
있다.
* 기도, 일기 → 반성하는 삶, 화자가 추구하고자 했던 자기 성찰적 삶
*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 소박하고 겸허하게 살고 싶었던 시적 화자의 소망과는 달리, 빈번이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한 실수를 보이는 화자의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 구겨진 속옷 → 화자의 소망과는 다르게 전개된 현실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표현
*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 시적 화자에게 사랑하는 사람인 '너'는 '별'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 별 →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 사랑하는 사람
*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 시적 화자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기에 '돌'처럼 아픈 응어리를
가지고 허둥거리는 삶을 살아왔음을 고백적으로 드러낸 부분이다.
* 돌 → 후회와 가슴속 응어리
◆ 제재 : 화자의 자기 반성
◆ 주제 : 나보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픈 소망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남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
◆ 2연 :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된 화자의 현실
◆ 3연 : '별'처럼 소중하게 여겨지는 사랑하는 사람
◆ 4연 : '돌'처럼 응어리진 삶을 살아온 화자의 모습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였으나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된 화자의 고백과 자기반성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심지어 화자는 '별'처럼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기에 그로 인한 후회가 '돌'처럼 가슴에 아프게 박혀 있다고 말한다. 화자가 그러한 삶을 살아 왔기에 '허둥거리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시의 제목이 '비망록'인 것도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을 기록하며 다시는 그러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화자의 다짐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화자의 인식
시적 화자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삶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 중에서도 화자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기에 화자에게는 '돌'처럼 아픈 가슴속 응어리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즉, 이 시는 '별'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인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인 것이다.
◆ 유사한 통사 구조의 반복과 의미 강조
이 시의 전개상 특징 중 하나는 1, 2연에서 '~이 되고 싶었는데, ~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라는 통사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화자의 소망과 현실을 동시에 나타낸 구절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화자의 회한과 반성이 더욱 강조된다고 볼 수 있다. 즉, 1연에서는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라는 진술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화자의 회한을 강조하였고, 2연에서는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라는 진술을 통해 반성하는 삶을 살지 못한 화자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 문정희의 시 세계
내적 독백과 욕망의 언어를 통해 내면의 자아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그의 시에는 동물과 식물과 인간이 다양하게 소통하고, 자연과 여성에게 잔존하는 폭력과 대립 구조를 감각적인 시어로 지적한다. 또한 남성중심주의 비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인이 연구하고 있는 여성주의적 인식을 시에 담았다. 문정희의 여성주의적 사유는 타자로 물러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고 도전하여 여성성을 재발견하려는 인식이다. 이러한 여성성의 재발견은 주로 자연에서 인식되었다. 즉, 문정희의 시에는 자연과 인간, 즉 생태와 몸과 언어의 다양성을 파악하고 극복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전반적으로 드러난다. 그의 태도는 여성의 상생 의식과 모성과 다산성을 통한 실천 방향으로 나타난다.
[작가소개]
문정희[ 文貞姬 ] : 시인, 수필가
출생 : 1947. 5. 25. 전라남도 보성
소속 : 동국대학교(석좌교수)
학력 :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현대문학 박사
데뷔 : 1969년 월간문학 시 '불면', '하늘' 당선
수상 : 2015년 제8회 목월문학상
2015년 제47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문학부문
경력 :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부 석좌교수
작품 : 도서, 기타
<요약> 문정희는 시를 통해 세계 자체를 직유 또는 은유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자신의
감정과 연결시켜 표현하였다.
1947년 5월 25일 전남 보성 태생. 진명여고를 거쳐 동국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진명여고 재학 중 첫 시집 『꽃숨』(1965)을 발간했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불면」과 「하늘」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후 『문정희 시집』(1973),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1984), 『아우내의 새』(1986), 『그리운 나의 집』(1987), 『제 몸속에 살고 있는 새를 꺼내어 주세요』(1990), 『남자를 위하여』(1996), 『오라, 거짓 사랑아』(2001),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2003),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2004), 『나는 문이다』(2007), 『찔레』(2008) 등 많은 시집을 냈다. 그리고 1975년 시극집 『새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시는 낭만주의적 정신을 기본 색채로 하고 있으며, 청순한 감각과 명징한 언어로 형상화되었다.
그의 시적 태도는 “아니어요. 작은 햇살에도 얼굴 부끄러운/ 풀꽃 같은/ 사랑 하나로// 높은 벽에 온몸 부딪고/ 스러지고 싶어요”(황진이의 노래 1)에서 보여주듯 세계 자체를 직유 또는 은유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자신의 감정과 연결시켜 표현하였다. 그리하여 “~이다”, “~되다”, “~싶다”의 유비적 세계에 대한 서정적 인식을 바탕으로 사랑, 부끄러움, 고뇌, 자유, 슬픔의 센티멘털한 감정을 정감있게 그려내는가 하면, 「감자」,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남한강을 바라보며」 등에서처럼 설화적 모티프를 현실과 결부시켜 그려내기도 하였다.
<학력사항>
진명여자고등학교
동국대학교 - 국어국문학 학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수상내역>
1969년 작품명 '불면' - 월간문학 신인상에 「불면」과 「하늘」이 당선
작품명 '하늘' - 월간문학 신인상에 「불면」과 「하늘」이 당선
1975년 작품명 '새떼' - 현대문학상
<작품목록>
꽃숨, 문정희시집, 새떼,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대,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아우내의 새, 그리운 나의 섬, 우리는 왜 흐르는가, 찔레, 너의 들판에 바람꽃으로
제 몸 속의 새를 꺼내주세요, 오늘 같은 날, 나는 머리를 자르고 싶어요
우리가 서로를 알지 못했던 시간, 남자를 위하여,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무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정희 [文貞姬]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