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첫째 주 그룹큐티나눔
체념이 아닌 자족의 지혜
전도서 4:1-6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어둔 밤 쉬 되리니(찬송 330장, 구 370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 봅시다.
12월의 주제는 ‘불확실한 시대를 사는 지혜’입니다(1주 ‘체념이 아닌 자족의 지혜’, 2주 ‘자기 한계를 아는 지혜’, 3주 ‘하나님을 아는 지혜’, 4주 ‘사랑을 실천하는 지혜’). 전도자는 살아서 학대받는 자보다 죽어서 안식을 누리는 자가 더 행복하다고 합니다. 또한 과도한 노동과 일의 성공은 시기와 경쟁의 결과일 뿐, 한 손으로 평온을 얻는 것이 두 손으로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수고보다 더 낫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수고가 헛되니 아예 손을 놓고 살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작은 일에도 자족하며 안식의 열매를 맺으라는 뜻입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전도자는 세상에서 부당하게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을 보며 깊이 탄식합니다(1-3절).
1)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이 더 가엽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1절)?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기 때문이다.
전도자가 보기에 이 세상의 불의는 이중적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무고하게 압제받는 것도 불의한 현실이지만 그 불의한 상황에서 그 누구도 그 무고함을 풀어주려 하지 않는 현실은 더 불의하다. 원래 구약의 사상은 힘없고 비천한 자들을 무시하고 학대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구약의 사상은 고아나 과부, 객(나그네), 레위인 같이 땅이 없어서 사회 구조적인 가난을 경험해야만 하는 자들을 위해 공동체가 책임을 졌다(참조. 레 19:9-10; 신 11:18-19).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돌보시는 공의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을 때 그런 약한 자였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처럼 정치·사회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돌보라고 말씀하신다(참조. 레 19:34; 25:39-43). 그러나 어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지고 힘있는 자가 약한 자를 착취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전도자는 이런 불의한 사회 현실에 대해 탄식하고 있다.
2) 전도자는 왜 살아 있는 자보다 죽은 자가, 죽은 자보다 출생하지 않은 자가 더 복되다고 합니까(2, 3절)?
전도자는 이 세상에서 부당하게 학대받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지고 사랑과 긍휼의 정신이 증발한 점에 대해 탄식한다. 이런 불의한 세상에서 사람이 고통받고 사느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훨씬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도서에 나오는 대표적인 염세적인 표현이다. 전도자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염세적 삶을 찬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불의한 삶의 현실에 대한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강조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나눔 1 전도자는 인권이 유린당하는 현실을 보며 한탄했습니다. 오늘날 발생하는 학대와 억압은 무엇이며 그 일을 당하는 사람들의 형편은 어떨지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가 어떻게 학대를 막고 학대당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자’가 되어 줄 수 있을지 나눠 봅시다.
2. 과도한 욕심을 부리며 경쟁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4-6절).
1) 전도자가 사람의 모든 수고와 성취가 헛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4절)?
사람의 모든 수고와 성취가 시기와 경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수고’(히, ‘아말’)는 ‘노력하다, 힘쓰다’를 의미하고, ‘재주’(히, ‘키쉬론’)는 ‘기술, 성공, 유익’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모든 수고와 성취가 헛되다’는 것은, 사람이 세상에서 자기가 가진 재능과 기술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여 얻은 성공이라 할지라도 헛되다는 의미다. 이렇게 모든 수고와 재주가 헛된 이유는 사람의 성공이 타인에게 시기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수고를 통해 획득한 성공이 사실은 무한 경쟁이라는 쳇바퀴 속에서 끝없는 수고만 남길 뿐이기 때문이다. 나의 성공을 타인이 질투하고, 나 역시 타인의 성공을 시기하면서 서로 경쟁하다 서로 힘만 빠지는 꼴이다. 진정한 행복은 무한 경쟁을 통해 탈진하는 게 아니라 작은 성취라 할지라도 그것에 자족하며 기쁜 마음을 갖는 것이다.
2) 전도자가 인용한 옛 지혜자의 경구는 무엇입니까(5절)?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자기의 몸만 축낸다’는 말의 원문 직역은 ‘자기의 살을 먹는다’이다. 즉, 우둔한 사람, 게으른 사람은 자기 파멸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말이다. 전도자가 당시 유행하는 이 경구를 사용하는 이유는 염세주의적 자세를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한탄만 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자는 자기 인생을 파멸시키는 것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굉장히 균형 잡힌 시각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인생이 고통스럽고 힘들지라도 아무 소득 없는 무한 경쟁의 헛수고에 빠지지도 말고, 그렇다고 인생을 염세적으로 비관하며 자기 한탄만 하는 게으른 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3) 전도자가 새롭게 주장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6절)?
두 손 가득히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한 손에 평온의 열매를 소유하는 게 더 낫다.
전도자는 사람이 인생을 비관하는 염세주의자도 되지 말고 그렇다고 의미 없는 헛수고로 인생의 행복을 물거품으로 만들지도 말라고 한다. 그렇다면 전도자가 내세우는 대안은 무엇인가? 6절에서 그는 ‘한 손에 평안이 가득한 것이 두 손에 수고가 가득한 것보다 낫다’라고 한다. 즉, 모든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하되 너무 욕심껏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공만을 위해 욕심내어 일하는 것은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일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삶에서 고난의 현실을 인정하되 그 속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간다. 즉, 무한 경쟁에 빠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게으르지도 않으면서 자기 일에 자족하며 행복을 추구한다.
나눔 2 전도자는 경쟁심과 시기심 때문에 수고하는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잘살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목적으로만 일하는 삶이 어째서 헛된 것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동기와 목적으로 일해야 할까요?
나눔 3 전도자는 ‘두 손’을 가득 채우려는 수고는 헛되고 일손을 놓은 채 ‘아무 손’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하면서, ‘한 손’만 채우며 평온하게 사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이 세 부류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 나는 어느 부류에 가까운지 이야기해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타인과 경쟁하며 과도하게 욕심을 부리기보다 적당히 소유하며 평온한 삶을 누리게 하소서.
공동체 _ 각종 학대를 막고 학대받는 자들을 위로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