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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론이 다시 힘을 받기 시작했다. 2022년 2월부터 2년 6개월째 교전 중인 러-우크라 사이에 그동안 여러 차례 협상론이 나왔지만, 우크라이나 측이 직접 러시아와의 협상 의지를 표명한 게 이전과는 가장 큰 차이다. 개전 1개월여 뒤인 2022년 4월 우크라이나가 이스탄불에서 가조인된 평화협상 합의안(이하 이스탄불 평화안)을 걷어찬 뒤(푸틴 대통령의 표현), 끊어졌던 두 나라의 직접 대화가 재개될지 관심이다.
우크라이나가 협상 의향을 표명한 것은, 나라 안팎의 분위기가 불리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미국의 11월 대선 전망이나 전황, 서방의 군사 지원, 국내 여론 등 어느 하나 우크라이나에게 유리한 구석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러시아군의 철수와 빼앗긴 영토의 수복, 러시아의 전쟁 배상 등 소위 젤렌스키 대통령의 ‘평화 공식 10개 항’에 따른 협상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기에는 주변 여건이 당초 기대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2022년 3월 이스탄불에서 열린 러-우크라 평화협상. 연설자는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사진출처:페이스북
양국 간에 대화가 끊어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전쟁 종식에 대한 기본 인식및 기준, 방향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평화 공식 10개 항'을 기본 축으로 두고, 러시아는 '이스탄불 평화안'을 바탕으로 대화 재개를 원했다. 그러나 좁혀지지 않는 그 간극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벌어졌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6월 스위스에서 서방진영을 중심으로 평화정상회의를 여는 등 자국 평화안에 대한 여론몰이에 나섰고, 러시아는 이에 맞서 부분 점령한 우크라이나 4개주(도네츠크, 루간스크, 자포로제, 헤르손주)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완전 철수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러시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크라이나와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우크라이나는 '푸틴 대통령과는 협상하지 않겠다'는 법안을 제정한 뒤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국제사회의에서 나온 여러 차례 휴전 제안에도 “러시아에게 군을 재정비할 시간을 준다"며 거부했다.
◇ 우크라이나 협상으로 기우나?
이같은 노선에 기류 변화가 감지된 것은, 지난 13일 트럼프 전 대통령(공화당 대선 후보)이 대선 유세 중 불의의 총격을 당하면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즉각 트럼프 후보에게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데 이어 15일에는 “제 2차 평화정상회의를 오는 11월 열겠다"며 러시아의 참석을 촉구했다. 또 19일 트럼프 후보와 가진 전화 통화에서 “전쟁 종식을 위해 협력 방안을 논의하겠다”고도 했다. “우크라이나에 부당한 협상을 강요하면 ‘루저(패배자)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트럼프 후보의 강력한 협상 중재 의지에 반발했던 태도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24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최근 제2차 평화정상회의의 틀 내에서 러시아와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여러 자리에서 천명했으며, 연말까지 뜨거운 전쟁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지를 표명했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드미트리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중국에서 왕이 외교부장과 만나 "러시아가 아직 진지하게 협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는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협상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알렸다.
미 CNN 방송은 우크라이나의 이같은 기류 변화를 "어려운 전황 뿐만 아니라 트럼프 후보의 승리 전망과 향후 서방의 대우크라 지원에 대한 불확실성과도 연관된 것"으로 풀이했다.
베이징을 방문해 왕이 외교부장과 악수하는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사진출처:중국 외교부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러시아와의 협상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의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키예프(키이우) 방문과 뒤이은 스위스 평화정상회의 분위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5월 15일 키예프에서 우크라이나 고위관리들과 회담한 뒤 바에 들러 기타를 메고 'Rockin' In The Free World'라는 노래를 연주했다.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직전에 발표돼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노래다. 외신은 '블링컨 장관의 깜짝 공연'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함께 한다는 메시지' 등으로 전달했지만, 우크라이나 소셜 미디어(SNS)에는 난리가 났다. "하르코프에는 러시아 공세가 계속되고, 우크라이나 전역에는 정전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지난 6개월간 무기 지원을 끊었던 미국의 외교 책임자가 한가하게 바에서 노래나 부르고 있다"는 실망감이 터져나왔다.
블링컨 장관은 또 우크라이나 방문을 결산하는 자리에서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러시아와 협상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미국은 어떤 경우에도 키예프를 지원할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이 협상에 진지하고 관심을 보인다면, 우크라이나도 이에 반응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이날 알려진 푸틴 대통령의 중국 신화통신 인터뷰 내용에 대해 논평한 것이지만, 우크라이나의 협상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푸틴 대통령은 신화통신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의 철수 없이)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중국 평화안을 기초로 협상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안은 우크라이나나 서방 측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미 뉴욕 타임스(NYT)도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몇 달 안에 평화 협상을 시작하고 최전선에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며 "양측이 어느 시점에는 1953년 한국 전쟁과 비슷하게 휴전협상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몇 달이 결정적이라는 인식이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도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했다.
페트로 파벨 체코 대통령도 "우리는 현실적이어야 한다"며 "가까운 미래에 우크라이나가 피점령 영토를 탈환하거나,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전쟁을 중단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확대를 요구한 유럽 정치인 중 한명이었다.
미 백악관은 러시아의 모멘텀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궤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미 뉴욕 타임스 기사 웹페이지/캡처
◇요동치는 우크라이나 민심
6월의 스위스 평화정상회의를 불안하게 지켜본 우크라이나의 민심은 지난 8일 러시아의 키예프 대규모 공습을 계기로 '이제는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쪽으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러시아 미사일이 키예프 아동병원을 때려 많은 아이들이 다친 게 결정적이었다.
스트라나.ua는 11일 수십만, 수백만 구독자를 지닌 우크라이나 인플루언스들이 아동병원 피격 후 "어떤 수단으로든 이제는 전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며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 후 보복을 다짐하고 '승리할 때까지 싸우자'는 그간의 반응과는 달랐다"고 보도했다. 전쟁을 계속하면 더 많은 아이들과 사람들이 죽어나기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호소로 들렸다고 했다.
구독자 수가 160만 명에 달하는 블로거(인플루언스) 이바노-프란코프스카 율리야 베르바(Ивано-Франковска Юлия Верба)는 "세계는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권력은 나라를 강탈하고 있다"며 "가족과 사람들의 삶이, 계획과 희망이 무너지고 있다"고 썼다. 또 22만여명의 구독자를 지닌 밀라 바라예바(Мила Бараева)는 "아이들이 죽지 않는다면, 이 전쟁에 어떻게 멈출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며 "이제 그만하자. 정치적 게임으로 아이들이 더 이상 죽어나가는 것을 못보겠다"고 호소했다. "우리는 좀 더 현명해져야 한다", "우리는 극복할 거야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언제요? 우리나라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라는 인플루언스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들은 일각에서 “크렘린에 동조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러시아의 선전 매체에 동조하는 유명 인사들을 '피스 메이커'(Миротворец, Peacemaker)로 분류하는 반러시아 사이트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SBU)는 이들 중 일부를 소환,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에 쇼크를 받았다며 전쟁 중단을 촉구한 한 인플루언스의 글/캡처
우크라이나의 반러 사이트 '피스 메이커'/사진출처:스트라나.ua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바뀐 민심은 여론조사에서도 반영됐다.
스트라나.ua(7월 23일)에 따르면 키예프국제사회학연구소(KIIS)가 지난 5∼6월 우크라이나 국민 3천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32%가 '가능한 빨리 평화를 달성하고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 영토를 포기할 수 있다'고 답했다. '전쟁이 더 오래 계속되더라도 영토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답변은 여전히 55%로 절반을 넘었지만, 그 비율은 1년전(2023년 5월, 84%)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영토를 일부 포기할 수 있다'는 답변은 개전 이후 늘 10% 이하였으나, 지난해 5월 10%, 12월 19%, 올해 2월 26%로 급증했다. 그러더니 32%까지 올라간 것이다. 인플루언스들의 잇따른 전쟁 중단 촉구와 우크라이나인들의 소극적인 조사 응답 방식 등을 감안하면 이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게 스트라나.ua의 분석이다. 특히 여론조사가 러시아 점령지역의 주민들과 외국으로 떠난 피란민을 제외하고, 순순하게 우크라이나 정부 통제 하에 있는 주민들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되는 대목이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이제는 전쟁을 끝내자'는 쪽으로 흐르고 모양새다. 스트라나.ua와 rbc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자 51명은 지난 13일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자"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의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전쟁 당사자들과 유엔, 유럽 의회, 로마교황과 그리스 정교 총대주교 등에 보낸 서한에서 전쟁 종식을 위해 △즉각 휴전 △수감자및 인질 석방 △평화 협상 개시 등 3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성명은 "앞으로 연말까지 백만 명이 죽거나 다치고, 아프리카의 기아와 유럽의 난민, 지구촌 환경 문제는 더 악화할 것"이라며 “모든 문제의 해결을 미래 세대의 판단에 맡기고 전쟁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서명자 중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외에도 물리학상 (2022년 수상자 로저 펜로스, 블랙홀의 비밀 연구), 의학상(1993년 수상자 리처드 로버츠, 분할 유전자 발견), 문학상(2015년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등이 포함됐다.
◇ 러시아군의 우위, 바뀌지 않는 전황
우크라이나 전황도 확연히 러시아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최근 "하르코프(하르키우)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세로 우크라이나에는 방어를 위한 좋은 선택지가 거의 없어졌다"고 전했고, 차소프 야르 등 돈바스 주요 전선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은 계속 후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패주 소식에, 군 수뇌부에 대한 비판은 물론, 군부내 불협화음도 불거지고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도네츠크 남동쪽 네타일로보-쿠라호보 전투에서 우크라이나 방어부대인 제59 기계화보병여단이 큰 손실을 입자, 부대 의료진이 15일 여단장이 범죄에 가까운 오판과 명령으로 많은 부대원이 희생됐다고 직격했다. 이에 알렉산드르 시르스키 총참모장(합참 의장격)이 "현장으로 조사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언론인 안나 잘루즈나야는 지난 13일 "우크라이나군의 24개 기계화보병여단의 여단장들이 해임됐다"면서 "군최고 지휘부는 개별 여단에게 '거의 환상이나 다름없는 임무'를 부여한 뒤 현실적으로 불가함을 토로하는 지휘관들을 직위 해제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에서는 방어 실패를 현지 방어군 지휘관에게만 돌리는 시르스키 총참모장의 인사 결정에 대한 비판이 자주 올라오고 이다.
지난 2월 발레리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경질에 앞장선 최고라다(의회)의 마리야나 베주글라야 의원은 "시르스키 총참모장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생각은 하지 않고, 우리가 러시아군을 이길 수 없다"며 "휴전할 생각만 하고 있다"며 공격했다.
일각에서는 새 동원법 제정이 너무 늦었다며 새 동원 병력이 최전선에 도착하는 8~9월까지 우크라이나군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군사 전문가들의 평가(미 NYT 포함)도 적지 않다. 또 새동원령을 피해 해외로 탈출하는 대규모 남성들로 우크라이나 국경지대가 무법지대로 변한다는 한탄도 나왔다.
동원령을 피해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다가 체포된 우크라이나 남성들/사진출처:스트라나.ua
안드레이 뎀첸코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 대변인은 지난 6월 "불법적인 해외 탈출이 범죄 단체들의 가세로 더욱 대담해지고 있다"며 "수십명을 태운 트럭이 국경지대에서 적발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우리는 매일 그런 사람들을 적발하고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동원 대상자(25세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어 루마니아로 도피한 우크라이나인은 개전 후 지금까지 2만3천여명에 이른다고 라디어 리터티가 지난 10일 보도했다. 몰도바 국경수비대 측도 지금까지 3만3천여명의 우크라이나인이 불법 입국했다고 밝혔다.
◇약발이 떨어지는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
대러 경제제재의 약발이 떨어져가는 것도 우크라이나에게는 고민거리다. 미국의 코카콜라와 스타벅스 등이 철수를 선언한 러시아에서 상표 등록을 재신청했고(6월 14일 베도모스티 보도), 우크라이나용으로 생산된 서방의 가전제품들이 러시아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보쉬와 필립스, LG 등이 우크라이나 소비용으로 생산한 가전제품을 지난 5월부터 러시아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들 제품은 터키와 폴란드, 발트해 물류망을 통해 러시아로 배송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5월 28일 서방의 주요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을 당장 떠날 생각을 바꿨다고 보도했다. 2022년에는 러시아 시장을 떠나는 것이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정말로 떠나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30년 동안 4~5개의 공장을 지은 서방 주요 기업들이 러시아 당국의 까다로운 철수 조건에 '투자액의 10%만 챙겨 나가는데 대한 불안감이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서방의 주요 기업들이 철수 계획을 접고 러시아 시장에 계속 남아 있는다면, 서방의 대러 제재조치는 앞으로 '빈 껍데기'만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방 정부의 철수 압력과 철수에 따른 현실적인 고민 사이에서 기업들은 계속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에게는 나쁘지 않는 시나리오다.
◇ 협상론의 현실성은?
우크라이나가 협상으로 방향을 튼다고 해도, 조만간 러시아와 협상 테이블을 차릴 전망은 그리 크지 않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 키예프와의 협상을 시작하기 위한 두 가지 전제 조건을 제시했다. 점령지 4개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군대의 철수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철회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이를 거부한다면 "유혈 사태가 지속되는 것은 그들의 정치적, 도덕적 책임이 될 것"이라고 선수를 쳤다. 2022년 3월의 이스탄불 평화안보다 훨씬 강경한 조건이다. 영토 문제에 관한 한, 이스탄불 평화안은 양국 정상이 러시아군의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철수 문제를 담판짓고, 크림반도는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따라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전제 조건을 수락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반대로 우크라이나가 11월로 구상 중인 2차 평화정상회의에서 러시아와의 협상 근거를 마련하더라도 푸틴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 리가 없다.
우크라이나가 기대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모든 전선에서 다시 유리한 고지를 장악하거나, 미국이나 중국 등 제 3국의 압력(혹은 설득)에 푸틴 대통령이 마음을 바꾸든가, 둘 중의 하나다. 안타깝게도 러시아군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전황이 조만간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나 중국이 푸틴 대통령의 마음을 바꾸려면, 그에 맞는 당근을 제시해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중립화를 포함한 유럽의 새 안보 지도를 제시하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풀어야 한다. 민주당 대선후보까지 사퇴한 바이든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트럼프 후보는 당선될 경우, 24시간 내 전쟁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의 당선이 확실한 것도 아니고, 설사 당선되더라도 미국 외교 정책의 급진적 전환이 말처럼 되지는 않는다.
중국은 현 전선에서 휴전하고 평화협상을 갖자는 자체 평화안을 지니고 있다. 널리 퍼져 있는 한국전쟁과 같은 종전 시나리오다. 키예프가 이에 동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의 최근 협상 발언이 전략적인 차원에서 나왔다는 분석도 있다.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개발국가)에서 나오는 협상 요구(특히 중국)에 대한 단순 응답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는 평화를 원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이에 반대하고 평화정상회의 참석을 거부한다'는 자락을 깔기 위한 정지작업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협상 테이블이 차려질 가능성은 더욱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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