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애인/김중일
아주 오래전에 고드름처럼 자라는 열매가 있었다, 그건 잠든 시인을 안고있는 애인의
눈꺼풀에 매달린 눈물, 불현듯 시인의 정수리로 뚝뚝 떨어질 뾰족한 운석, 시인이 한숨
많은 애인을 끌어안자 가슴 가득, 울음 참는 들숨처럼 스며드는 한숨의 애인, 오늘도 시
인은 애인에게 보여줄 시를 썼다, 시를 받아든 시인의 애인은 한숨을 폭 쉰다, 이 시는 당
장 읽지 않으면 금세 녹아서 사라져버리겠지, 두 손이 부재의 기억으로 끈적이고,
기도를 멈출 수 없게 완전히 달라붙어버리겠지, 시인의 애인은 시인을 먼저 살다 간 사람,
시인이 이제 살다 갈 사람, 한달 전에도 백년 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사람은 여기 있다,
오늘도 시인의 애인은 시인의 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창 밖에는 막대사탕같이 꽂힌
세상 모든 꽃송이를 초여름의 태양이 혼자 다 녹여 먹으며, 한자 한자 시를 읽고 또 고심하는
시인의 애인을 본다, 있잖아 내내 묻고 싶었는데, 시는 왜 쓰지, 시인이 말한다,
나도 그런 시, 네게 무작정 읽히는 시, 불가피한 시가 되고 싶다고,
시인의 애인은 잠든 시인의 그림자로 매일 밤 드나든다, 시인의 꿈속, 구석구석 애인의 체온
이, 어디를 가든 시인보다 먼저 시를 찾아 헤맸던 애인의 메모가 적혀 있다, 시인이 가진 고독
의 주머니가 희생자의 주먹을 넣은 것처럼 불룩해졌으면 좋겠어, 코앞에 펼쳐놓은 공기 위에
한자 한자 새겨져 불가피하게 읽히는, 이해할 필요 없는 시들이 세상을 무작정 가득 채웠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