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제가 어느 교회를 다닐 적에 그 교회 목사님이 '영적'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 나의 설교가 영적인 설교이다.
- 우리 교회내가만이 영적인 교회이다.
처음에 저는 저 말이 맞는 말인줄 알았고 교회생활도 참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영적이라는 말에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집에서 혼자 '영적'이라는 단어의 개념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카페에 올라온 모든 글들을 섭렵하며 '영적'이라는 정의를 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결과
'영적(靈的)'이라는 것은
어떤 신비주의에서 비롯된 개념도 아니고
인간의 사유에 의하여 만들어진 결과도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을 뜻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연히 '영적인 삶'이라는 정의도 자연스럽게 내렸고요. 즉
영적인 삶이라는 것은 어떤 신비한 삶도 아니고 혼자 고고하게 사는 삶도 아니고
오직 영이신 하나님과 영이요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주신 말씀으로 사는 것이
영적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그 교회를 떠나고 나서 들린 뒷담화는 정말 많습니다.
내 교회를 나가는 순간 그 사람은 내 교인이 아니다 라는 말은 많이도 들었고
(모든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 양인데 우리가 누구의 교인인지...
목사는 단지 그리스도의 종일 뿐인데)
심지어 교회 앞길로 다니지도 말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토록 다정했던 교인들도 길에서 만나면 눈을 돌려버리고 성경에 대하여 물어 보려고 전화를 하면 '기도해 보세요'
라는 듣기좋은 말로 거절해 버리고 저는 이분들의 행동을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분!
박월산 권사님은 언제 보아도 다정히 웃으시면서 인사를 주고 받는데 그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도 아침일찍 교대근무를 하러 나오는데 박월산 권사님을 횡단보도에서 만났고 아주 밝게 웃으시면서
'출근하시는군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하며 인사를 해 주십니다. 권사님이라고 근심이 없겠습니까 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탓 하지 않고 항상 밝은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권사님이야 말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참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생각하며 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