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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31일 수업자료(1)의 살롱 이야기를 읽으시면,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반드시 읽어 보십시오.
***프랑스의 계몽주의 인물들
*1. 백과전서파
백과전서파는 백과전서를 지은 18세기 프랑스의 일련의 지식인 그룹을 말한다.
18세기 프랑스 계몽 시대에, ≪백과전서≫의 집필과 간행에 참가하였던 계몽사상가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가톨릭교회와 절대 왕정에 반대하는 개혁을 지향하였으며, 이성적ㆍ합리주의적 태도로써 근대적인 지식과 사고 방법을 전파하여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디드로, 달랑베르, 볼테르, 케네, 마르몽텔(Marmontel, J.)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영어의 백과전서(Cyclopaedia)를 번역하고 개정(改訂)·증보하는 일을 맡은 디드로는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프랑스인을 위해 전통적 제도와 편견(偏見)에 대한 투쟁의 무기로 새로운 백과전서를 계획했다.
많은 집필진의 협력을 얻어 1751년 제1권을 출판하였으나 이성을 주장하고, 신학과 로마 가톨릭교회와 절대 왕정에 대한 비판이 강하였기 때문에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아 1759년에 발행 금지를 당하였다. 그러나 디드로는 독력으로 잘 이겨내 1772년까지 본문(本文) 19권, 도표(圖表) 11권의 대사전을 완성하였다. 이 백과전서는 여러 사상가들이 집필하였기 때문에 전체로서의 사상적 통일은 결여되어 있으나 계몽사상의 발전, 특히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준비라는 점에서 큰 역할을 하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2. 드니 디드로(1713년 ~ 1784년)
프랑스의 백과전서파를 대표하는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이다.
달랑베르와 함께 18세기 계몽철학 사상을 집대성한 기념비적 저작 《백과전서》 편집자이자 철학, 소설, 희곡, 미술비평 등 다방면에서 수많은 저작을 남긴 계몽주의의 대표적 문필가이기도 하다. 파리 제 7대학의 별명으로 그의 이름이 붙어있다.
칼장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직자로 만들려 하였으나 끝까지 거부했다. 그는 루소의 친구가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 빈곤에 시달렸다. 아버지가 반대한 저학력에 신분도 낮고 지참금도 없는 안 안네트와 결혼함으로 아버지와 의절했다.
32세에 거의 극빈 상태에서 살고 있을 때 백과전서의 편집을 맡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달랑베르의 도움을 얻고, 또 몽테스키외·루소·케네·뷔퐁 등 180여 명의 집필자를 동원하였다. 이 <백과전서>는 18세기의 새로운 학문·사상·기술을 집대성하고, 인간적인 지식의 모든 부분을 모아 놓은 책으로 그의 최대의 업적이었다.
백과전서 편집에 매달리면서도, 자신의 저작도 내놓았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기독교 비판으로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많은 저작이 있으나, 가난했다. 디드로는 폐색전증으로 1784년 7월 31일에 파리에서 사망해 Église Saint-Roch에 묻혔다. 그의 머리카락 일부가 예카테리나에게 보내져서 러시아 국립도서관에 보존되어있다.
3. 몽테스키외(1689-1755)
1748년에 《법의 정신》을 발표하였는데, 이 책에서 그는 법학 연구에 처음으로 역사 법학적, 비교 법학적, 사회학적 방법을 적용하여 법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법의 정신》은 당시 정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최초로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으로 권력을 나누는 삼권분립설, 입헌 군주 제도론 등을 전개하는 한편, 전제주의를 극력 공격하면서 법은 각국의 여러 환경에 적합한 고유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인권 선언과 미국 헌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4. 볼테르(1694-1778)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작가이다. 《샤를 12세의 역사》, 《루이 14세의 시대》, 《각 국민의 풍습·정신론》, 《캉디드》 등이 대표작이다.
사상
1. 로마 가톨릭교회 비판
로마 가톨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하고, 탄압하던 개신교도 종교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
캉디드, 랭제뉘 등 풍자소설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예수회의 부패와 부도덕을 공격했다.
2. 백과전서파를 적극 지지했다.
뉴턴 등이 세운 자연과학의 법칙을 신보다 위에 두었다
3. 역사도 똑똑히 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 근대 역사의 선구자이다.
그의 역사서 ‘루이 14세 시대’는 많은 사료를 바탕으로 서술했다.
파리 공증인 집에서 출생하였다. 문신론적인 귀족과 시인이 모이는 탕풀이라는 문학살롱에 나갔다. 문학을 하고 싶었으나 아버지는 강력하게 법조인이 되라고 했다
귀족에게 엄청 두들겨 맞고, 불평등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영국으로 갔다. 1729년 귀국하였다. 그는 영국의 자유로운 체제를 칭송하고, 프랑스의 전제정치를 비난했다. 당국의 탄압으로 애인인 샤틀레 후작 부인의 영지에 10년 간이나 틀어박혀 작품을 썼다.
디드로의 『백과전서』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철학자로서, 작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평생 왕성한 활동을 벌인 볼테르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지만, 프랑스 대혁명은 보지 못하고 1778년 5월 30일에 죽었다.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들어가는 팡테옹에 안치되었다.
<캉디드>
캉디드(Candide, ou l'Optimisme)는 프랑스의 작가 볼테르가 1759년에 쓴 철학적 풍자 소설이다. 당시의 지배 계급이었던 로마 가톨릭교회 예수회와 종교재판소 등 성직자들의 부패상을 묘사해 큰 파문을 일으킨 작품이다.
또한 볼테르는 주인공인 순박한 캉디드를 통해서 철학사상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도 한다.
캉디드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순진한’, ‘순박한’이란 뜻이다. 볼테르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럽에서는 대단한 문제작이며 훌륭한 작품으로 최근에도 많은 연구 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세상을 낙천주의로 볼 것인가 아니면 비관주의로 볼 것인가를 화두로 던지고, 끝까지 이 두 이데올로기의 반복을 기저에 깔고 있다. 이는 당대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던 철학사상을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인 것이다.
우선 이 작품은 주인공 캉디드를 내세워서 낙천주의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말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그 대답은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시점에서야 알게 될 것이다.
캉디드, 그는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이다. 그의 여정을 추적하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어리석음에 실소를 자아내게도 한다. 그러면서도 천주의를 유지한다.
줄거리는 생략합니다.
줄거리에서 캉디드는 비관적인 일에 부딛혀도 여전히 낙천적이다. 그래서 낙천주의가 유보되지만 이후에도 당하는 일마다 비관적인 상황들뿐이다. 그러면 이 소설은 낙천주의를 비판하고 비관주의를 옹호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 소설은 어떤 철학의 편을 드러내지 않고, 독자에게 그 판단을 유보하며 끝을 맺고 있다.
5. 장 자크 루소(1712-1778)
제네바에서 시게공의 아들로 태어나서,생후 5일에 어머니가 죽다. 10세 때 아버지 가출로 삼촌 밑에서 자랐다.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떠돌다 귀족 여인과도 사귀었으나 툇자묵고 23세의 하녀와 결혼했다. 이때 작곡도 하고, ‘학문예술론’을 출판했다.
1762년에 출판한 ‘사회계약론’에서 인민주권의 이론을 완성하였다. 권력 행사의 정당한 이유를 다수결로 정한다.
신 엘로로이즈, 에밀, 특히 신 엘로로이즈가 파리에서 크게 성공한다
에밀과 사회계약론은 18세기를 대표하는 대작이 되었다
저술로 인한 탄압이 가해졌다.
그 후로 그의 최대의 문학적 걸작 《참회록》과 《루소는 장자크를 이렇게 생각한다》 등은 만년 작품으로 사후에 발표되었다.
루소는 삶 자체도 그렇거니와 철학자체도 평등이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평등에 골몰했다. 루소는 모든 사회악과 사회갈등의 근원이'경제불평등'에 있다고 단언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사회문제가 만연해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이를 '일반의지론'으로 풀어나갔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세상에 널리 알려진 루소의 이 명언은 일반적으로 문명이 아닌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로 이해되고 있지만 그 정확한 진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사회속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함으로써 그 철학의 본질을 유추할 수 있게 해주는데, 루소는 문명을 거부한 것이 아니고 자유롭고 평등하지 못한 문명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자연철학자도 아니고 사회계약론을 쓴 민주주의자이자 사회철학자인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는 자연의 중층적 의미도 새기지 않을 수 없다. 자연(natura)은 서구어로 본성이라는 의미도 있는 만큼 인간의 천부적 자연권인 자유와 평등의 보장을 무엇보다 강조한 것으로 볼 수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 말을 통해 자연의 낭만성과 야성이 아니라 평화롭고 자유로운 평등한 사회의 원형을 복원할 것을 세상에 강력히 주장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특색은 18세기적인 사회 윤리를 가장 독창적으로 탐구한 점에 있으며, 근본 사상은 "자연은 인간을 선량·자유·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사회가 인간을 사악·노예·불행으로 몰아넣었다"라는 명제로 요약된다.
그가 쓴 모든 저작도 이 원리에 기초하여 개인과 사회를 회복하는 방법을 나타낸 것이다. 그의 영향은 철학·정치·교육·문학 전반에 걸쳐 깊이와 넓이에 있어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문학적 지위는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자 볼테르와 함께 19세기의 대표적 작가로서, 계몽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이다.
《에밀》
장자크 루소가 쓴 교육서이다. 생전에 출간된 다섯 권에서 에밀이라는 가상의 소년을 등장시켜 이상적인 시민을 교육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루소는 인간을 교육하는 주체로 자연, 인간, 사물의 3자를 들어, 사람의 능력을 내부로부터 발전시키는 것은 자연의 교육이고, 이 교육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은 인간의 교육이며, 우리가 접촉하는 주위의 사물에 대한 경험을 얻는 것은 사물의 교육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교육이 서로 모순될 때에 그릇된 인간이 형성되고, 조화를 이루고 동일한 목적에 집중될 때에 사람은 비로소 완전한 교육을 받게 된다고 보았다.
루소는 교육을 소극적인 것으로만 보아, 교육이 적극적으로 사람의 발육에 간섭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자연에 맡기고, 인위적인 영향을 가하는 것을 피하는 교육을 뜻한다. 그러므로 교육은 도덕이나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마음이 악이나 옳지 못한 정신에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은 교육방법상 중요한 계기를 이루었다. 즉 그는 자연적인 교육방법을 강조했다. 어린이들에게 그들의 생리상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는 반면, 모든 간섭을 자제할 것이며, 운동을 자유롭게 시키고, 자발적으로 활동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루소가 주장한 교육관을 요약하면
첫째, 교육의 목적은 도덕적 자유, 즉 자유와 규율, 의지의 독립성과
사회정의를 양립시킬 수 있는 인간을 형성하는 데 있다.
(도덕에 너무 얽메지 말라는 말이다.)
둘째, 교육은 기존 문화의 전달에 의해 미래의 생활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생활 실천을 통해서 인생의 선과 악에 가장 잘 견딜 수
있는 인간을 형성해야 한다.(?)
셋째, 교육내용의 선택도 지식의 체계에 대신하여 생활의 원리가 중시된다.
즉 수공적(手工的) 작업이 중시되고, 생산활동의 교육적 의의에 대한 올 바른 이해가 촉구된다.
넷째, 어린이의 성장·발달의 각 단계는 각기 고유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교육방법은 그 고유한 성격에 맞추어 결정되어야 한다.
(*루소는 자기가 낳은 아들 4명을 직접 양육하지 않고 모두
보육원에 맡긴다. 그래서 보수 성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무지무지 욕을 한다.)(맡긴 게 아니고 버렸다고 말한다.)
*《신 엘로이스》는 루소의 서간체 장편소설이다.
원제는 〈줄리 혹은 신 엘로이스〉이며 귀족의 딸 줄리와 평민출신 가정교사 생푸레의 사랑 이야기이다. 무대는 레반 호반이다. 제목은 중세의 아벨라르와 엘로이스가 주고받은 서간에서 딴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정열적이며 참신한 이 소설은 당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서간체이고, 낭만주의 경향의 소설로서, 프랑스 문학사에 많이 언급함으로 여기에 올렸습니다.)
**몽테뉴가 제시한 새로운 문학 양식 — 수필의 탄생이다.
이성을 존중하고 생활의 경험을 통해(성찰이라는 형태) 세계를 이해한다.
순수한 통찰 ----> 순수한 의식이 딘다.
수필에 대한 몽테뉴의 말
“수필은 어떤 이념이나 진리에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즉 해답을 얻자는 것이 아니고 해답을 찾아가는 그 자체이다. 철학이 특별한 세계관을 추상적이고, 개념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면, 수필은 추상적이지도 않고, 개념적이지도 않다. 개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질문을 하는 것이다. 관련이 있는 사물이나 인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질문하는 것이다.”
**디드로는 백과전서파의 중심인물이다.
문힉분야에서는 그가 쓴 수필 형식의 ‘라모의 조카’를 많이 말한다.
라모의 조카는 상식없는 짓거리를 하면서 (우리도 자기 멋대로 하는 연예인을 영혼이 있는 연예인이라면서 — 영혼은 개코로) 돈 많은 부르주아지에 빌붙어 사는 족속이다. 하는 일이라고는 자신의 삶을 가식없이 바라보고, 사회의 중심인물인 부르주아지를 욕한다.
라모의 조카를 만나 대화를 나눈 철학자는 도덕주의자의 입장이다. 룸펜 같은 라모의 조카와의 대화에서 서로 자기 주장만 하느라 답을 찾지 못하고 헤어진다. 답이 없는 성찰이고, 대화였다
계몽주의 문학은 기존의 관행에 의문을 제시하면서도, 정답을 찾아 낸 것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