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1]혹시 ‘종이컵 사랑’을 아시나요?
<찬샘별곡 Ⅱ-108>이란 대작(?) 시리즈를 끝낸 날짜가 5월 27일(1회 23년 10월 31일)이니, 일주일만에 컴퓨터 책상에 앉았다. ‘별곡 Ⅲ’ 시리즈를 시작하며, 다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농촌지역도 나름이겠지만, 우리 고향은 이름 모르는 산새의 노랫소리(울음소리?)가 새벽, 아침을 연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게 새소리가 아닐까. 표기하지 못할 말이 없다는 한글이래도 저 소리는 어떻게 쓸 재간이 없다. 겨우 쓴다는 것이 ‘뻐꾹 뻐꾹 뻑-뻑국’ ‘종달새가 포오롱 난다’ 아니면 ‘(솥이 적다고) 소쩍 소쩍’ 정도가 아닐까. 어떤 새의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홀딱 벗고, 홀딱 벗고’라 하는 것같아, 그냥 새이름을 ‘홀딱 벗고 새’라 정해버렸다. 하하.
벌써, 어느새 유월이 된 지 나흘째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도 훌쩍, 금세 가버렸다. 신록의 아름다움, 황홀함을 조금 즐기려하면 가버리는 세월이 야속하기도 하다. 아카시꽃 내음이 풍기는가 하더니, 이제 냄새가 야리꾸리한 밤꽃이 피기 시작한다. 우리집 꽃밭에도 작년 광주의 S누이가 선물한 넝쿨장미가 꽃을 피웠다. ‘장미 한 송이’ 어쩌고 하는 노랫말이 생각나는데, 다 알지 못해 부를 수가 없다. 그리고, 내 앞에 장미(옆지기)도 없으니 허전할 따름이다. 예전에는 뜸북새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볼 수가 없다. 지독한 농약 때문일 터. 서울 가신 오빠가 고무신을 사준다고 했다던가, 그것이 이미 전설이 된 지 오래이다.
그래도 제비는 온다. 사랑채 편액 위에 지으려 지푸라기들을 물어나르기에 비닐로 막아놓았더니 주방 처마밑에 제비집을 지었다. 제비새끼들의 짹짹짹 소리를 들은 게 얼마만인가. 그 노오란 새끼들 주둥이에 차례차례 먹이를 넣어주는 제비의 엄마 아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우리집에 집을 지은 것은 좋은 일일 듯하다. 새끼를 아직은 낳지 않은 듯하나, 속으로 빌었다. 제발 새끼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라! 정성껏 붕대를 감아주리라. 혹시 아는가? 로또라도 점지해줄지? 흐흐. 아무튼, 봄날은 갔고 여름이 왔다는 이야기이다.
요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하루에 한번 뒷산 저수지에 간다. 삼각 새우망을 걷으면 민물새우(토하?)가 스무 주먹도 더 나온다. 산 새우(전라도 표준말로는 새비이다)를 깨끗이 씻어 냉동실에 바로 얼리거나, 4시간만 건조기로 돌리면 빛깔도 예쁜 말린 새우가 된다. 어제는 처음으로 애호박을 썰고 말린 새우를 넣어 국을 끓여 먹었다. 옆지기가 해준 국맛하고는 어림짝도 없지만, 그래도 먹을만 했고, 셀프 요리를 했다는 자부심이 컸다. 하하. 새우가 잡게 된 것은 서울의 친구가 10만원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새우망 1개에 5500원, 새우밥(미끼) 1개에 2천원.
마구 잡히는 새우들을 어떻게 할까? 오일장에도 거의 나오지 않는 귀물貴物이거니와 별미別味일 터, 동네 집집(20여가구)이 종이컵으로 하나씩 나눠주기 시작했다. 다음엔 인근 친구와 지인들에게 종이컵 하나씩을 안기기 시작했다. 말린 새우를 전주 등에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주는 재미가 쏠쏠했다. 멀리 장성, 정읍에 사는 형님들을 만날 기회에 드리는, 여지없이 나의 소박한 선물이다. 벌써 50컵이 넘었다. 종이컵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지는 예전에 미처 몰랐다. 서울친구 덕분에 나의 부지런함을 조금 보태니 칭찬이 쏟아진다. 그렇다. 무엇이든 친인척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 조건없이 주는 선물(정성)은 좋은 일이고, 적선과 적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했는데, 하다보니 습관이 된 듯하다. 오수에 사는 꽃집 여사장 책상 위에 말없이 몇 번 종이컵(산새우, 말린 새우, 앵두, 보리수열매)을 놓고 왔더니, 전화가 왔다. 다음 종이컵엔 무엇이 담겨있을지 궁금하다며, 이런 사랑은 얼마든지 해도 좋겠다고 한다. 예쁜 여사장은 열심히 사는 4년 후배의 아내이다.
장독대에 5년 전 내 귀향을 기념한 셀프선물로 앵두나무 한 주를 사다심었는데, 3년 전부터 섹시한 빛깔의 앵두가 천지비까리로 열리고 있다. 나 혼자 어떻게 먹을 것이며, 또 그게 무슨 재미일 것인가? 하여, 등장한 게 또 ‘종이컵’이었다. 그제는 가족묘지 옆에 부처님이 그 아래에서 해탈했다는 보리수나무를 새삼스레 발견했다. 그 열매를 우리는 ‘포리똥’이라 불렀는데,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 거짓말이 아니라 푸대로 한 가마도 더 딸 것같았다. 예전엔 맛이 떨떠름했는데, 제법 달짝지근한 게 일삼아 먹을 만했다. 종이상자에 하나 가득 따가지고 와 종이컵 10여개에 담았다. 모닝차에 싣고 나눠주기에 바쁘다. 옆지기 생각이 나 작은 플라스틱박스에는 앵두를, 큰 것에는 포리똥을 채곡채곡 담아 택배를 보냈다. 다음날, 앵두를 아침에 샐러드에 넣어 잘 먹는다고 전화가 왔다. 기쁘고 좋은 일이다.
종이컵에 담을 수 없는 밭작물이 양파와 마늘이다. 지난해 심어놓은 덕분에 엊그제 마늘을 몽땅 캐, 50통씩 묶어 처마 밑에 매달아놓았더니 6접 하고도 플러스이다. 양파는 별로 거름도 안했는데 애기 머리통만하다. 여동생들이 오면 마늘 한 접씩과 양파 10여개씩을 앵길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요게 시골 사는 맛이 아니면 무엇이랴. 지(제) 몸뚱아리(몸) 쬐금만 움직이면, 땅이 있으므로, 이런 값진 수확을 거둘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이고 감사할 일인지를 모르는 자들이 대도시에서는 태반일 것이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련만, 한마디로 ‘짜안헌 마음’이 든다. ‘별곡 Ⅲ’ 시리즈 1편은 이렇게 “종이컵 사랑을 아시나요?”로 시작된다. 굿 데이Good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