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장마 중에도 햇볕이 쨍쨍한 시간이 있으니 감사합니다.
마냥 꿉꿉할 것들을 바짝바짝 말릴 수 있는 시간이니
마치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와도 같습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3.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4.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5.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해 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6.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8. 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9.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10. 가서 성읍 문지기를 불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서 보니 거기에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하는지라
(본문 주해)
3~5절 : 이 사건과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나병 환자들이 등장한다.
원래도 나병이 걸리면 공동체에서 함께 살 수 없다. 그들은 성이 포위당한 시점에도 성 밖에 있어야 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판인 나병환자들이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적진에 들어간다. 항복한 자신들을 적군들이 살려주면 살고 죽이면 죽는 것뿐이다.
그런데 해 질 무렵,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적진으로 나아갔는데, 이상하게도 텅 빈 진영이었던 것이다. 적들이 한 명도 없이 다 도망가 버린 상태였다.
6~7절 : 아람 진영이 텅 빈 이유에 대해 열왕기 기자가 설명한다.
아람 군대는 환청을 듣고 이스라엘이 용병으로 산 헷 족속과 애굽의 왕들이 합세하여 자기들을 공격한다고 오판하였다.
바로 해질 무렵, 네 명의 나병환자가 아람 진영으로 갈 때이다.
주님께서는 아람군대로 하여금 엄청난 군대가 몰려오는 소리를 듣게 하심으로 그들이 무기도 장막도 그대로 두고 다 도망가 버렸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서, 그들의 생각을 어리석게 만든 것이다.
8~10절 : 나병환자들은 처음에는 굶주림을 해결하고 물건을 훔치는데 정신이 팔렸다. 그러다 이 기쁜 소식을 속히 사마리아 성에 알리기로 결심한다. 만일 날이 밝기까지 지체하면 자신들에게 벌이 임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우리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다. 오늘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날이다. 이것을 전하지 않고 내일 아침 해 뜰 때까지 기다린다면, 벌이 오히려 우리에게 내릴 것이다. 그러니 이제 왕궁으로 가서, 이것을 알리도록 하자."”(9절, 새번역)
이들은 그 밤에 성으로 가서 성읍 문지기에게 그 소식을 전하였다.
(나의 묵상)
난데없이 문둥병자들이 등장한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판인 문둥병자들이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적진인 아람진영으로 투항하러 나아갔더니 텅 빈 진영인 것을 확인하게 된다.
양식과 물자는 그대로 있고,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곳이니 문둥병자들은 신나게 먹고 마시고 은금과 의복을 감춘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람군대로 하여금 연합군을 결성하여 쳐들어오는 큰 군대 소리의 환청을 듣게 하셔서 그들이 너무 놀라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도망가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때 텅 빈 적진에 쌓인 모든 것을 누리는 문둥병자들에게 주님께서 새 마음을 주신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문둥병자들을 살려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그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이와 같은 일을 하나님께서는 내게도 행하셨다.
나를 구원하여 주시고, 복음을 전하는 자로 행하게 하신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해도 되고 말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꼭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의무감으로만 해야 하는 경직된 마음이 아니라, 성령께서 전하고 싶은 마음을 불일 듯 일게 하심으로 되어지는 일이다.
주님께서는 문둥병자들에게 주신 마음을 바울 사도에게도 주셨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새번역)
바울 사도의 ‘부득불, 어쩔 수 없이’ 하는 표현은, ‘억지로,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또는 ‘벌을 받을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전하지 않으면 배길 수 없는 불붙는 마음인 것을 나는 이해한다.
그것은 또한 주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주신 마음이기도 하다.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 하고 결심하여 보지만, 그 때마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렘20:9)
복음이 아닌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괴로움은 너무도 크다.
복음을 모르는 자는 복음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이, 자기만족만 주는 말이라면 언제라도 ‘아멘!’ 한다. 그런 상황을 보고 듣자니 마음이 너무 괴롭다. 하지만 내게도 있었던 그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며 불평의 입술을 닫고 나지막이 주님만을 부른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입술을 열게도 하신다.
복음을 말하고 싶어 불붙는 마음을 나에게도 주셨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곳, 또 복음의 교제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기를 원한다. 현재 상황이 비록 답답할지라도 장차 복음이 선포되어질 곳이면 역시 기대를 가지고 달려가야 할 것이다.
죽었던 내게 거듭난 새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이야기, 그 감사에만 머물지 않고 십자가의 군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게 하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내게는 끝없이 이어지니, 이것이 내가 받은 복이다.
어제 고 허운석 선교사님의 설교에 하신 ‘군화 신은 신부’라는 표현이 마음에 꼭 와 닿았다.
선교사님만 군화 신은 신부가 아니라, 나도 복음의 군사로서 군화를 신은 주님의 신부가 되길 소망한다.
오늘도 군화 신은 주님의 신부로서 만나는 이들에게, 불붙는 마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문둥병자들의 입에 아름다운 소식을 담게 하신 그 은혜를 제게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진리의 세계가 무한하여 제가 다 알진 못하지만
지금 제게 부어주신 그 은혜의 복음을 아낌없이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복음을 전하다가 더 깊은 은혜를 받게 하옵소서.
예쁘게 단장한 것으로만 그치는 신부가 아니라,
언제 어디든 복음을 위해서 달려갈 수 있는 군화 신은 신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