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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2 나는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도 이와 똑같은 말을 전하였다. "여러분들은 바빌로니아 왕의 멍에를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겨서 살아 남도록 하십시오.
27:13 주님께서, 바빌로니아 왕을 섬기지 않는 백성은 전쟁과 기근과 염병으로 죽이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찌하여 임금님과 임금님의 백성은 그와 같이 죽으려고 하십니까?
27:14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바빌로니아 왕을 섬기지 않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그들이 여러분에게 하는 예언은 거짓입니다.
27:15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않았는데, 그들은 거짓으로 내 이름을 팔아 예언한다. 너희가 그 말을 들으면, 내가 너희를 쫓아낼 것이며, 너희는 그러한 예언자들과 함께 멸망하고 말 것이다' 하셨습니다."
27:16 그리고 나는 제사장들과 이 모든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 주가 말한다. 너희는, 주의 성전의 기구들이 이제 곧 바빌로니아에서 되돌아올 것이라고 하는 너희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말아라. 그들이 너희에게 하는 예언은 거짓이다.
27:17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빌로니아 왕을 섬겨서 살아 남도록 하여라. 어찌하여 이 도성이 폐허가 되어야 하겠느냐?
27:18 그러므로 그들이 예언자들이라고 한다면, 정말로 그들이 주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차라리 그들은 주의 성전과 유다 왕궁과 예루살렘에 아직 남아 있는 기구들을 더 이상 바빌로니아에 빼앗기지 않게 해 달라고, 만군의 주에게 호소해야 옳을 것이다.
27:19 (나 만군의 주가 기둥과 놋바다와 받침대와 아직 이 도성에 남아 있는 기구,
27:20 곧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귀족을 예루살렘에서 바빌로니아로 붙잡아 갈 때에 남겨 두었던 것들에 관하여 말하겠다.)
27:21 참으로 주의 성전과 유다 왕궁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 기구를 두고,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27:22 그것들도 바빌로니아로 실려 가서, 내가 찾아올 때까지 그냥 그 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그리고 그 후에 내가 그것들을 이 곳으로 다시 옮겨 올 것이다."
◈ 주해
1. 예레미야는 “결정된 심판이 집행되지 않도록” 심판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였다.
1) 그러나 성전에서 예배만 드리면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말씀을 전해왔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예레미야를 붙잡아 사형에 처하려고 고발한다.
2) 장로 몇 사람은 미가 선지자가 심판의 말씀을 전하자, 히스기야 왕과 모든 유다가 주님의 은혜를 간구함으로 재앙을 면했다고 하면서 예레미야를 변호한다(렘 26:19).
3) 죽음을 각오하고 심판의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는 장로들과 아히감의 도움으로 그를 죽이려는 백성의 손에서 벗어난다.
2. 시드기야 4년에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대항하기 위한 연합체를 구성하려고 주변 나라의 사신들을 예루살렘으로 부른다.
1) 바벨론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할 때, 예레미야는 열국의 사신들에게 모든 나라가 한동안 바벨론의 멍에를 맨다는 말씀을 전한다.
2) 이방 나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하나님이 “나의 눈에 드는 사람, 나의 종”이라고 하며, 그의 지배를 받으라는 것을 말씀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3) 우리는 언약을 떠난 나, 징계하시는 하나님보다는 불의한 인생채찍과 막대기를 주목하면서, 그들을 통하여 징계 받는 것을 거부한다.
4) 다윗처럼 심판을 받아들이고 의를 기초로 다시 세워지는 자는 인생채찍이나 심판의 방법에 매이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인다.
3. 먼저 주변의 사신들에게 바벨론의 멍에를 매라고 했던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와 유다 백성들에게도 바벨론의 멍에를 메라고 선포한다.
렘 27:12 나는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도 이와 똑같은 말을 전하였다. "여러분들은 바빌로니아 왕의 멍에를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겨서 살아 남도록 하십시오.
27:13 주님께서, 바빌로니아 왕을 섬기지 않는 백성은 전쟁과 기근과 염병으로 죽이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찌하여 임금님과 임금님의 백성은 그와 같이 죽으려고 하십니까?
1) 언약을 떠난 시드기야와 백성들이 사는 길은 바벨론 왕을 섬기는 것이다.
2) 만약 바벨론을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이 전쟁과 기근과 염병으로 죽이신다.
4. 그런데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언약을 떠난 시드기야와 백성들은 바벨론을 통한 심판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1) 그 첫 번째 이유는 이방 나라를 통한 심판을 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심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우상을 섬기는 이방 나라를 섬기라는 말을 듣고 싶지가 않다.
2) 두 번째 이유는 거짓 선지자들이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되지 않는다”고 하였고, 시드기야와 백성들은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5. 거짓 선지자들과 그 말을 듣는 자들은 함께 멸망하고 만다.
27:15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않았는데, 그들은 거짓으로 내 이름을 팔아 예언한다. 너희가 그 말을 들으면, 내가 너희를 쫓아낼 것이며, 너희는 그러한 예언자들과 함께 멸망하고 말 것이다' 하셨습니다."
1) 거짓 선지자들은 바벨론에게 빼앗긴 여호와의 성전 기구가 속히 돌아온다고 하였다.
2) 여호와의 성전 기구는 B.C.605년(단 1:1-2)과 B.C.597년에(왕하 24:13) 바벨론이 탈취해갔다. 그리고 B.C.586년에 성전파괴 시에 마지막으로 탈취된다(21-22절; 52:17-23).
3) 이 성전 기구들은 하나님이 정한 기간(70년)이 지난 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22절, 29:10 참고).
6. 이 거짓 선지자들은 당시에는 합법적으로 선지자 역할을 했던 국정 선지자들이다.
1) 28장에서 하나냐는 국정 선지자의 대표로 나서 성전기구가 속히 돌아오는 것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선포한다.
2) 유다에서 합법적인 그는 거짓 선지자로 엄중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죽임 당한다(28:17).
7. 예레미야는 다시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을 섬겨서 살아남으라고 경고한다.
27:17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빌로니아 왕을 섬겨서 살아 남도록 하여라. 어찌하여 이 도성이 폐허가 되어야 하겠느냐?
8. 19-22절은 예루살렘 성전에 남아 있는 기구들에 대한 말씀이다.
1) 지금 남아 있는 성전의 기구들은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여고니아)과 유다의 유력한 자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갈 때 가져가지 않는 것들이다(왕하 24:11-13).
2) 아직 남아 있는 성전 기구들도 다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며, 하나님이 그것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릴 것이다.
3)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지금은 회복과 형통을 이야기 할 때가 아니라, 심판을 받아들여야 살 때임을 알라고 거듭해서 경고한다.
9.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나라 바벨론을 섬겨야 산다는 것은 백성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신학과 대립한다.
1) 예레미야의 선포는 매국노의 선동처럼 들리고, 언약 백성에게 이방 나라를 섬기게 하는 거짓 선지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2) 도리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벨론을 섬기지 않을 것이라는 거짓 선지자, 다수의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백성들이 듣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3) 심판을 거부한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백성들은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빼앗긴 성전 기구들이 속히 돌아오며, 바벨론으로부터 건짐 받을 것을 기대하였다.
10. 누가 재앙을 선포하고, 누가 평안과 미래와 소망을 선포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1) 당연히 예레미야는 재앙을 선포하고, 거짓 선지자들은 평안과 미래와 소망을 선포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수의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받았다.
2)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바는 예레미야의 말씀 즉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임으로 바벨론을 섬기는 것이 평안이요 미래요 소망이라는 것이다.
렘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1. 하나님의 말씀과 나의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그때의 백성들처럼 우리도 오해한다.
1) 언약백성에게는 언약적 복과 언약적 저주가 함께 선포되면서, 복과 저주, 생명과 사망을 택하라고 하셨다.
2) 그러므로 언약 백성에게 저주와 사망이 임하는 것은 그들이 저주와 사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저주와 사망으로 끝나야 할 그들에게 심판을 통한 구원과 회복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4) 그러므로 내가 언약적 복과 저주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였는지를 알아야 예레미야의 말이 진리인지, 거짓 선지자들의 말이 진리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
12. 또한 백성들이 심판의 말씀을 듣고 히스기야처럼 회개하고 주의 은혜를 구하였다면 재앙이 돌이켜 질수도 있었다.
1) 히스기야는 매우 신실한 하나님의 왕인데도 회개하며 주의 은혜를 구했다.
2) 아이러니한 것은 신실한 자들은 심판을 받아들이는데, 불의한 자들은 심판이 없고 형통만을 기대한다. 의로운 자들은 회개하는데, 악한 자들은 회개 없는 복을 기대한다.
13. 사랑의 하나님이 이유 없이 백성들을 징계하고, 이방 나라 바벨론을 섬기라고 할 이유는 당연히 없다.
1) 그러나 언약을 떠남으로 저주와 사망을 선택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인생채찍과 막대기로 징계하시고, 그로 인하여 다시 복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
2) 내가 성경에서 말씀한 저주와 사망의 길을 선택했으면서 하나님은 복과 생명을 줄 것이라는 기대는 거짓 예언이며, 이를 듣는 자는 거짓 선지자들과 함께 멸망한다.
3) 내가 언약적 복과 생명을 선택했다면, 복과 생명을 기대하는 것은 옳다.
14. 지금 백성들이 사는 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임으로, 나보다 불의하고 나보다 우상을 숭배하고 나보다 포악한 바벨론, 즉 하나님이 택한 인생채찍을 섬기는 것이다.
1) 그 재앙(심판)을 선포하는 목적은 재앙 자체가 아니라 평안과 미래와 소망을 주기 위함이다.
2) 안타까운 것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심판이 복음이며 생명을 주는 말씀임을 아는 자, 이해하는 자, 받아들이는 자가 적었다.
3) 그들이 듣기에 어려운 말씀이었고, 우리가 듣기에도 어려운 말씀이다.
15.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 그 보혈의 은혜는 복음이고,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는 복음이다.
1) 그러나 언약을 깨뜨리고, 완악한 우리를 심판하심으로 우리를 낮추어 말씀으로 살게 하시려는 심판의 말씀도 (장사)복음이다.
2) 저주와 사망을 선택하여 가고 있는 나를 생명과 복으로 돌이키게 하려는 복음이다.
3) 바벨론을 섬기라는 거북한 말씀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복음이며, 평안과 소망의 길임을 아는 마음, 지혜가 있기를 원한다.
16. 수술하지 않고 낫고자 하는 바램은 인지상정이다. 공부한 것보다 좋은 성적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인생의 여정마다 행운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1) 그러나 예레미야처럼 정확히 상황을 진단받고 현재의 상황을 직면하고, 수술받기로 결정하고, 수술을 가장 잘 받는 것이 가장 지혜롭다.
2) 주님의 초월적 능력과 인도를 구함은 옳다. 그러나 주님은 가장 현실을 직면하고, 직면된 상황에서 하나님께 나아와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다.
◈ 나의 묵상
현대 한국 사회는 어떤 형태의 채벌도 법적으로 죄가 되며 처벌을 받는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조롱을 받아도 채벌할 수 없다. 최근에는 손흥민 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에서의 채벌로 시끄럽다. 나름 이유가 있지만, 이런 시대에 바벨론 왕을 섬기라는 징계가 복음이요 사랑이라는 말을 알기는 더 어려워졌다. 이전에는 폭력도 있었지만 사랑의 매라는 개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랑의 매가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의 매던, 사랑의 매던 폭력으로 법적인 죄가 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징계가 사랑이며, 멍에를 매는 압제가 복음이 되는 길을 아는 방법은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사랑의 매를 알아도 심판이 복음이 되고 생명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말이다.
하나님이 종아리 몇 대만 때린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가혹해도 너무 가혹하다. 그 포악한 바벨론의 압제를 받아들이라니, 그 무슨 개(?) 소리야!라고 할 만하다. 급기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을 살라니, 그것을 어찌 징계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너무 지나친 폭력일 뿐이다. 광야 체험 40시간은 징계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광야 40년이라니...그것도 악평한자는 광야에서 죽는다는데 그것이 어찌 징계이겠는가?
그것이 구약의 성경에만 있다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지금도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 가혹한 심판을 집행하신다. 물론 나의 죄와 교만에 비하면, 결코 징계는 심하지 않다. 그러나 나의 깊은 죄악, 완악한 교만, 심판을 거부하는 마음을 제외하고 하나님의 징계만을 보면 하나님이 해도 해도 너무하신다. 어떻게 이렇게 가혹한 방법으로, 어떻게 이렇게 긴 세월을 심판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인지는 유다 백성과 동일하다.
그러나 나의 죄악이 얼마나 깊으며, 나의 교만이 얼마나 하나님을 반역하며, 나의 완악한 마음이 얼마나 하나님의 심판을 거부하고 예레미야 시대의 백성들처럼 끝까지 복과 생명만을 기대하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긍휼과 자비와 함께 베풀어지는 눈물 나는 매다. 영원함 멸망에 처하지 않기 위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사장시키지 않기 위한 하나님의 긍휼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기 위한 마땅한 처방이다.
그러나 그 놀라운 사랑과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부패하고 거짓된 마음이 있다. 그래서 십자가로 나아가며, 성령께서 마음 눈을 열어 주시기를 간구한다. 십자가 복음만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장사복음, 심판의 복음도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임을 아는 마음을 구한다. 하늘의 지혜가 있고, 계시를 구한다. 다메섹에서 빛으로 오셔서 눈 멀게 하신 것이 지극한 은혜와 사랑이다. 요셉을 13년간 노예와 감옥에 두신 것이 은혜와 사랑이고, 모세를 미디안 광야에 두신 40년이 은혜와 사랑이다. 주님을 알면, 그분의 은혜를 알면, 그분의 부르심을 알면, 그 모든 것은 지극한 은혜와 사랑이며 생명이 된다.
나를 향한 사랑이 확증된 그 십자가에서, 바벨론을 섬기라는 말씀을 듣는다. 인생채찍, 부당하고 교만한 그를 섬기를 말씀을 듣는다. 나를 낮추고 인생채찍과 막대기로 징치하시는 주님을 본다. 저주와 사망으로 향하는 나를 돌이키게 하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 묵상 기도
주님, 오늘날 폭력의 매던 사랑의 매던 무조건 범죄라고 하는 그 어리석음이 제 안에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행하는 폭력적인 징계와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랑으로의 징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가 제 안에 있습니다.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아는데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일까 보냐고 하셨습니다. 주님, 주님을 알고 저를 알게 하여 주십시오. 인생채찍과 막대기에 주목하는 무지를 깨뜨려 주시고, 징계하시는 주님의 눈과 마음을 보게 하시고, 징계받아 돌이켜야 하는 나의 죄와 교만을 보게 하옵소서. 평안을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에게는 평안이 없고, 재앙을 말하는 예레미야의 말에 평안과 미래와 소망이 있음을 아는 지각을 열어 주십시오. 수술하지 않고 낫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나의 상태를 안다면 수술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고통과 댓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지혜를 주십시오. 국내외 선교지와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댓가 없이 생명의 역사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님의 생명으로 행함으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도록 도와 주십시오. 복충학당의 교사들, 비유의 제주사역과 대학로 공연, 복생의 멕시코 사역, 상무백석교회의 사역가운데 주님의 생명과 겸손과 사랑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남아공의 교회와 방정규 선교사님, 이스라엘과 신철호 선교사님, 레바논과 유누라 선교사, tnf의 리더쉽과 사역, 말레이시아와 길재형 선교사님, 네팔과 가지 수먼 코이랄라 선교사님을 주의 성령께서 붙잡아 생명과 겸손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