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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봄의 법칙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을 바라보자"
https://youtu.be/b3xqskK0rAU?si=BLBNsbuVS1ksB0SG
바라봄의 법칙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을 바라보자"
말 씀:“창세기13:10~18“
교 독 문:1번, 시편 1편
부 르 심:로마서13:11~14
찬 송:28(28), 266(200),359(401),246(221)
기 도: 1)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2)거룩한 성 새루살렘 열두 진주문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3)데려감을 당하게 하소서
4)자유통일 자유대한민국 내년 총성 200석, 주사파척결, 성령충만 부흥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었습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러 말하였습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세기13:8~9)”
롯이 눈을 들어 바라본 땅과 아브람이 바라본 땅은 차이가 있습니다.
롯은 눈을 들어 무엇을 바라본 땅은 무엇입니까?
아브람이 눈을 들어 바라본 땅은 무엇입니까?
1.롯이 눈을 들어 바라본 소돔과 고모라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는 두 가지의 눈을 들어 바라봄의 법칙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롯이 눈을 들어 바라봄과 다른 한 가지는 아브람이 눈을 들어 바라봄입니다.
먼저 롯이 눈을 들아 바라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세기13:10)”
1>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세기12:1)”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아비의 집을 떠났지만
아직 한 가지 떠나지 아니한 것이 있었습니다.
아직 떠나지 아니한 것은 친척인 조카 롯을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롯이 떠나지 아니함으로 일어나는 것은 다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창세기13:7)”
여호와의 말씀대로 하면 다툼이 없습니다.
떠나지 아니함으로 다툼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미지근한 하나님 말씀의 순종은 다툼이 일어남을 알아야겠습니다.
예수께서 촛대사이를 다니시면서 보시고 가장 싫어하는 교회를 말씀하셨습니다.
미지근하여 책망만 있고 칭찬이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요한계시록4:15)”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한 미지근함으로
떠나지 아니함에 일어나는 것은 다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내에 분쟁이 일어나는데는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는 미지근함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미지근함을 가장 싫어 하십니다.
차든지 더웁든지 분명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미지근함은 상하기 쉽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차든지 더웁든지 하여 분명하게
눈을 들어 바라봄이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차든지 더웁든지 하여 분명하게 할 때에 주님의 음성을 들어
문을 열어 예수님과 더불어 먹는 식사가 될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더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3:20)“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였거든
다툼에 머물러 있지 말고 담대하게 떠나게 해야 할 줄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있는 곳이 본토 아비 집이면
떠나는 담대한 결단이 되기를 바랍니다.
별세란 이 세상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저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별세신앙이 되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떠나는 변화의 휴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는 별세신앙을 가짐으로
항상 천국을 바라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롯이 육의 눈으로 바라본 소돔과 고모라
롯은 스스로 눈을 바라봄은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을 들어 바라봄에는 롯 같이
스스로 바라봄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바라봄이 있습니다.
롯의 바라봄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스스로 바라봄입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어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창세기13:10)”
사람이 수평으로 바라봄과 하나님이 바라보게 하시는
수직적 바라봄은 전혀 반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 없이
수평으로 바라보다가 죄악으로 멸망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수직적 바라봄의 말씀이 되어
인생이 영생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을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11:1)"
믿음은 바라봄의 실상입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 스스로 눈을 들어 바라봄은
현상의 세상에 속한 미혹이 될 수 있습니다.
마귀가 항상 바라보게 함은 실상이 아닌 현상입니다.
마귀가 뱀으로 위장하여 하와에게 바라보게 하는 것은
실상의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미혹으로 바라보게 하는 선악과입니다.
선악과는 실상이 아닌 현상을 바라보게 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 아닌 마귀로부터 오는 미혹의 타락에 초점이 있게 함을 알아야겠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세기3:6)”
마귀가 하와에게 바라보게 한 나무는 오르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입니다.
이것을 스스로 바라보게 하는 바라봄의 법칙으로 그 속에는 독소가 있는 것은
마귀의 법칙으로 죄와 사망의 법칙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바라봄의 법칙은 마귀의 법에 걸리는 독소를 가지는 타락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라보는 바라봄의 법칙이 되어
십자가를 바라보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8:1~2)”
3>스스로 바라본 육신은 의인 열 명을 전도할 수 없음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 소돔과 고모라의 현상은 보기에
온 땅에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죄악이 심히 중하였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 살려고 가족들을 데리고 들어갔지만
여호와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과 불로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창세기19:13)”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의 땅에 앞으로 7년 환난이 시작될 것인데
머물러 있을려고 하면 안됩니다.
속히 오실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공중들림 받는 휴거가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속히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되어야겠습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계시록22:20~21)”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멸할 것을
숨기지 아니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창세기18:17)”
아브라함은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려고 작정하실 때에
롯과 그 가족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어느 정도 의인이 있으면
멸하시지 않으실는지 여호와의 마음을 떠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창세기18:22)”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본즉 아브라함에게 방문하는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 편에 선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여 몸을 땅에 굽혀(창세기18:2)”
아브라함이 이 세 사람을 영접하여 대접하였습니다.
그 세 사람들 중 두 사람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할 두 천사였습니다.
한 사람은 구약성경에 나타내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예수님과 독대하여 구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몇 명 정도가 되어야 멸함을 당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지 예수님의 의중을 물어보았습니다.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창세기18:23)”
아브라함이 의인 50부터 시작하여 의인 10명까지 낮추어
예수님의 의중이 어떠하신지 그 마음을 최대한 떠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창세기18:32)”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 조차 없음을 알았습니다.
의인 1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으신다는데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얼마나 관영한지
의인 10명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롯이 가족을 데리고 간 소돔과 고모라가 에덴 동산 같고 애굽 땅 같아 보였지만
타락할 대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는 믿음으로
난 의인 10명도 전도가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롯과 그 가족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가나안 땅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타락의 문화에 동화되고 변질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세의 오늘날 누구와 가까이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가나안 땅이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여 들어간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도 없고 10명도 전도가 안되어
오히려 변질되고 동화되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겠습니다.
롯과 그 가족들은 소돔과 고모라에 동화되고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소금의 성질을 가지고
빛으로 변화되어 지상최대의 증발 사건 휴거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이사야60:1)”
2.눈을 들어 바라본 동서남북의 가나안 땅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창세기13:14)”
롯은 스스로 바라본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심으로 바라보는 동서남북의 가나안 땅입니다.
1>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을 바라봄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바라보는 변화의
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 되기를 바랍니다.
롯이 스스로 바라본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동화와 변질은 멸망이었습니다.
이 세상만 바라보다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함을 당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롯의 처를 생각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눅17:32)
롯의 처는 뒤돌아본고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생명 없는 소금기둥이 되지 말고 생명의 부활로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여 올라가는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은 신부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2)”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신부가 단장한 모습의
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으로
동서남북의 진주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말씀하신
것처럼 영광의 광채 속에 열두 진주문으로 들어가도록
우리를 위하여서 예비하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계21:13)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요한계시록21:21)”
사랑하는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성을 바라봄으로 변질되어 동화되지 말고
오직 가나안 땅의 의미를 가지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변화의 휴거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보는 십자가의 생명나무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세기13:17)”
사랑하는 여러분, 종은 세로이고 횡은 가로입니다.
가나안 땅의 세로로 행하여 바라보고 가로로 행하여 바라봄으로
만나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봄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린도전서1:18)”
마귀는 가장 싫어하고 가장 두렵고 가장 없애고 싶은 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마귀가 바라보게 하는 것은 십자가의 생명나무가 아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입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바라보게 하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불과 유황이 있는 지옥에 있게 하는 것이 최종 목적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믿는 자가 롯의 스스로 바라봄이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의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것처럼
오늘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오직 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광채 속에 열두 진주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마귀는 오르지 미혹당하는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마귀는 가장하여 호시탐탐 선악과를 바라보게 함으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실과를 먹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한일서2:16)”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종과 횡으로 행하여 즉 세로와 가로가 만나는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되게 하십니다.
나무 십자가를 바라봄의 실상이 알고보니까 생명나무입니다.
생명수의 강 좌우에 생명 나무의 열두 가지 실과를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아멘.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러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요한계시록22:1~2)”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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