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w Life, 야밤의 행복
‘행복은 마음으로 짓는다고 합니다. 작은 마음으로 짓는 작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16년 전으로 거슬러 2005년 7월 1일에 ‘작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법무사사무소를 개업하면서 내건 캐치프레이즈 문장이 그랬다.
정작 삶이 행복해서 그리 내건 문장이 아니다.
그때가 내 나이 쉰일곱 되던 해였는데, 그때까지의 내 삶의 경험에 비추어 깨달은 바가 그래서, 미래를 향해서 나도 그리 하고 내 주위도 그리 하기를 바라서 지어낸 문장이었다.
일단 마음 작정을 그리하고, 그 작정을 캐치프레이즈라는 이름으로 주위 두루 알게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공개를 하다 보니, 내 하는 처신이 그 문장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실의 삶은 그러하지 않아도, 겉으로는 행복한 척하고, 그렇다고 말로도 증거하고는 했었다.
내 스스로 생각에도 가증스러웠고, 주위에서도 그렇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늘 행복을 입에 올렸다.
그래서 이런 말을 곧잘 했다.
‘어제도 행복했고, 오늘도 행복하고, 내일도 행복할 것이고, 아까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고, 있다가도 행복할 것이다.’
내 그 말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데는 그리 많은 세월이 필요하지 않았다.
처음 작정한 그때로 두 해의 세월이 지나 2007년 12월에 맏며느리를 맞아들이면서, 행복을 향한 내 꿈을 현실로 다가오고야 말았다.
그 이후로, 이제 갓 첫 돌을 넘긴 손자 서율이를 볼 때까지, 내게 있어 행복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2021년 12월 20일 월요일인 바로 엊그제 일이다.
저녁나절 해서 문득 한 생각을 일으켰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으로 울상을 짓고 있을 서초동 단골집 ‘서초불쭈꾸미’집에서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손님이 되어봤자 어차피 나와 아내 둘뿐이지만, 그래도 주인인 김수선 여사에게 작은 위로는 될 것 같았다.
아내가 동의를 했고, 아내가 평소 가까이 지내는 김옥련 여사를 끌어들여서 셋 손님으로 그 집을 찾았다.
이왕 도울 바에야 좀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세꼬시로 주문을 했고, 그것을 안주로 삼아 술판을 벌였다.
주인인 김 여사와 그 집 종업원까지 끼어들게 해서 술잔을 돌렸고, 안주에 젓가락질을 하게 했다.
김 여사의 얼굴에 빨간 홍조가 끼어들기 시작했고, 그 끝에 이렇게 내게 그 속내를 털어놓기까지 했다.
“오라버니, 참 고마워요. 오늘은 정말 팍 쓰러져서 펑펑 울고 싶었는데, 오라버니가 따뜻한 마음으로 찾아주셔서 이렇게 판을 벌여주시니, 제가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행복의 고백이었다.
그 고백을 듣는 나 또한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취기 또한 깊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그 취기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
화장실 가는 척 하면서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나 감당이 안 돼요. 먼저 빠질 테니, 실컷 놀다 오세요.’
영문 모르는 아내한테, 내 그렇게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는, 혼자서 터덜터덜 야밤의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한때의 단골집이었던 생맥주집 ‘럼보트’를 끼고 돌아, 옛 살던 아파트인 월드메르디앙 아파트를 끼고 골목 언덕길을 올랐다.
3년 전으로 거슬러, 고액의 이자 감당이 부담스러워 처분했던 아파트였다.
비교적 싼 값으로 처분했지만, 그때 처분하지 못했으면 그 이후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서 경제적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는데, 그 위기를 면할 수 있었으니 그 또한 행복하다 아니할 수 없었다.
그렇게 들어간 집이었다.
막 잠들려 하는데, 메일 한 통이 수신되고 있었고,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이 수신되고 있었다.
확인해봤다.
놀라운 메일이었고, 놀라운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메일은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김지수 친구의 둘째 딸인 수현이가 띄워 보내준 것으로 일전에 동생 준석군 혼사에서 내가 찍어준 사진과 동영상에 감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카카오톡 메시지는 우리 고향땅의 폐선 된 기차역인 불정역 명예역장으로 성악가인 바리톤 최들풀이 띄워 보내준 것으로 슈베르트 작곡의 ‘송어’ 그 노래가 담긴 음악파일이었다.
다음은 수현이의 메일 그 전문이다.
김약국 둘째딸 김수현입니다. 뜻밖의 메일이라서 미처 확인 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평안하신지요? 집안의 대소사를 기록해주시는 큰아빠 덕분에 저희 집안에 추억이 많이 생깁니다. 큰아빠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웃음이 가득하신 모습이 떠올라 제가 앞으로 어떻게 나이가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저에게 큰 귀감이 됩니다. 올 겨울이 유난히 춥게만 느껴집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두루두루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큰아빠.//
정성스레 쓴 내용도 그렇고, 나에 대한 호칭을 ‘큰아빠’라고 한 것도 그렇고, 나를 참으로 행복하게 했다.
그 메일을 챙겨 읽으며, 최들풀이 띄워 보내준 ‘송어’라는 노래도 같이 들었다.
스르르르 어느 순간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내게 있어, 야밤의 행복이었다.
첫댓글 '큰아빠!" 호칭에 번쩍 신호가 오네!
멋진 이연에 축하를 보내여!
서초불쭈꾸미 사장님! 힌 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