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해서 책방 서가에 비치해 둔 지 며칠, 몇 주일이 지난 책을 이제서야 집어들어 읽었다.
1주기가 가까워 오는 시기에 도무지 책을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곳곳에서 추모 행사가 열리고 한바탕 언론이 시끄러웠던 주말을 지나고 오늘에서야 책을 읽었다.
김초롱 씨의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글은 작년 가을쯤 인터넷에서 읽고 많이 울었던 글이다.
이번 책도 그랬다.
살면서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내 모습'이 늘어가는 것이 갑갑하다.
2001년 9월 11일(내 기억 최초의 참사지만 이 때는 굉장히 어렸다),
2014년 4월 16일의 나는 킨텍스에서 행사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점심 시간에 잠시 켜 본 휴대폰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가 나오길래 큰일이군. 근데 전원 구조라니 다행이네, 했다.
2022년 10월 29일에서 30일로 넘어가는 새벽, 나는 새벽 네 시, 다섯 시가 되도록 잠을 자지 못하고 계속 트위터 화면을 새로고침하고 있었다.
어디서 본 말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이태원 사건이 (안 그래도 절망스럽고 우울한) 한국 젊은이들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참사 피해자, 또는 참사 생존자, 참사 유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놀러 나갔다가 죽은 모습으로 돌아온 게 내가, 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공포와 절망이라고.
사고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수십 수백 명이 죽는 '참사'로 커지는 것은 대개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아무래도 그날 거기를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너무 후회돼요."
그리고 이어진 상담사의 대답은 내게 첫 치료의 문을 열어주었다.
"아니에요. 그날 거기를 가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 맞아요. 놀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겁니다."
2011년쯤, 아침에 등교하며 횡단보도를 건너다 눈앞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119에 전화를 걸었는데 놀라고 경황이 없어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몇몇 사람이 치인 사람들에게 CPR을 했는데 나는 더듬거리며 사람이 치였는데 빨리 와 달라는 말만 반복하다 전화를 끊었다.
내 옆의 어떤 언니가 'ㅇ대 앞 00방향 횡단보도인데, 사람이 2명 차에 치였다. 의식이 없다.'라고 정확히 얘기하는 걸 들었다.
그 때 전화를 걸어서 제대로 말을 못하던 게 너무 죄책감이 들었는데 그 이후로 1년 정도 자꾸 비슷한 악몽을 꾸었다.
친구들이 차에 치이고 나는 전화를 걸고 항상 목에서는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꿈이었다.
내가 힘들고 무섭다고 했는데 아빠가 답답하다고 화를 내면서 그게 대수냐고 아빠는 어렸을 때 눈 앞에서 친구가 기차에 치여 죽었다고 윽박질렀다.
(10년도 더 지났는데 하나도 안 까먹고 다 남아 있다. 가족이 뭐가 힘들다고 할 때 절대 윽박지르고 짜증내지 말자.)
교통사고 목격도 그 정도인데 사회 교과서에 나올 법한 참사 한가운데서 살아 나온 사람이야 어떨지 차마 상상하기조차 미안하다.
그냥 정말 죽지 않고 살아서 이야기 들려 주는 것만으로 고맙다고 전해 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머리말에서 이 책을 왜 쓰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대목에서 이미 눈물이 났는데 이상하게 힘도 같이 났다.
다른 사람에게 책을 읽어 보라 권할 때 꼭 짚어 주고 싶은 대목이라 부득이하게 조금 긴 부분을 인용한다.
그러니까, 장일호 기자의 <슬픔의 방문>을 읽은 김초롱 씨가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에서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고,
그 기록을 또 우리가 읽고 다시 일어서서 일상을 마주할 기운을 얻게 된 것이다.
슬픔과 고통은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그 괴로운 순간을 모두가 '자원화'하여 다른 사람과 나누지는 않는다.
그렇게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도록 힘들게 꺼내어 다듬고 손질한 고통이 누군가에게는 또 삶을 이어갈 힘이 된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사람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돌이켜 보면 나도 처음 내 우울증 증상을 자각할 수 있었던 건 대학생 때 중증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던 친구 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중증이었음에도 병원에 다니며 좋아졌던 그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좋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물론, 완치가 없는 병이기 때문에 여전히 기복을 갖고 살고 있다. 나도, 그 친구들도.)
그 친구들이 나한테 그렇게 병원으로 가는 연결고리가 되었듯이 이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새 그럴지 모르지.
(혹시 모르셨던 분들, 저는 2017년부터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남의 고통을 돌아보고 공감하고 바뀌어 나가려 노력하는 게... 유가족이 늘어나면서는 더이상 아니었으면 좋겠다.
5/18 유가족과 세월호 유가족에 이제는 이태원 유가족까지 더해진 모습을 보며 너무 울적하고 슬프다.
누구나 유가족이 되고 싶어 되는 사람도 없고, 정치적으로 싸우고 싶어 싸우는 사람도 없다.
관련해서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171쪽부터 183쪽까지 이어지는 모습은 A3로 인쇄해서 사방팔방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나는 참사를 향한 사회적 인식이 이렇게 일률적이고 납작한 이유는 '인간을 이해하려는 마음 결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넓은 세상에, 이토록 다양한 사람이 살아간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안타깝게도 처음 열린 공청회에 참석한 사람 중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현장에 없었으니 당연히 이태원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2030세대 문화나 요즘 젊은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무엇을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알고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짚고 참사의 진짜 원인에 접근해가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애꿎은 막말만 난무했다. (...)
군중 밀집 문제는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왜 이태원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 예상하지 못했을까? 나는 이태원과 젊은 세대 문화를 향해 품고 있던 왜곡된 시선과 편견이 작동했다고 본다. 이태원은 그들에게 그저 '젊은 애들이 놀기 좋은 곳'이었다. 그렇게 이태원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놀기 좋은 곳'이라는 벽으로 가려버리고 나니 이태원에서 군중 밀집 문제가 일어날 수 있으니 미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
보신각 타종 행사를 해도 군중 밀집 관리에 들어가고, 각종 행사와 시위가 있어도 군중 밀집 관리에 들어가 기동대를 배치한다. 그런데 왜 유독 이태원과 그날의 사고 시그널은 놓친 것일까. 나는 우리 사회가 다른 세대에게, 다른 연령대의 인간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 없이 세상에 그저 자신이 사는 방식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다양성에 관심이 없고 아예 알려고 하지 않는 그 태도가 문제였다. 참사는 그 행사가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일상인지 몰랐던 무지함의 결과가 아닐까.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나는 이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할로윈이 인기 있는 이유는 가족이나 노동 걱정 없이 온전히 '놀이'로 즐길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설이든 추석이든 다른 공휴일이면 귀성길이니 제사니 친척이니 집안일이니 대학취직결혼출산걱정이니... 가 되어 명절이 명절이 아닌 스트레스가 되지만 할로윈은 그런 것 없이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날이라고.
외국 명절이니 뭐니 흰눈 뜨고 보는 사람들은 아마 그런 생각은 안 해 봤을 것이다.)
책을 집어들고 읽는 데까지만도 시간이 걸렸는데 속에 감춘 이야기를 글로 쓰기까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저 김초롱 씨에게 고마울 뿐이다.
그리고 그냥 ... 앞으로도 하루하루 같이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힘 낼 필요까진 없고, 얼굴도 모르는 사이지만 그냥 이 한국 여기 어딘가에서 함께 살아서 하루하루 일상을 그냥 살았으면 좋겠다.
김초롱 씨도, 다른 생존자 분들도, 유가족과 친구들과 소식 듣고 아파한 많은 사람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