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송 : 438장(내 영혼이 은총 입어)
기도 :
본문 : 마가복음 15:21
제목 : 내 부모, 내 자녀
아버님의 기일에 어머님의 추도예배도 함께 드리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부모님의 추도예배에 참석하신 가족 여러분께 주님의 큰 복이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지 못해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세상살이가 힘들다는 것이겠지요.
저는 궁평리로 이사를 오고 나서 나름대로 아주 단순한 주제를 가지고 깊이 생각을 해 왔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길면 30년, 짧으면 몇 년의 남은 삶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하는 문제였습니다. 저는 그 문제를 확실하게 정해 놓고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아들의 자랑스러운 아비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적어도 제 아들에게는 존경받는 아비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아들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저 아들이 바로 양미동 목사의 아들이라고 불리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이지만 제 아들이 양미동 목사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나름대로 아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아들이 그 부담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기도하고 기대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제 아들이 누구의 아들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제가 누구의 아비로 불리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아들이 양미동 목사의 아들로 불리는 것 보다, 제가 양준열의 아비로 불리기를 정말 소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큰 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래서 저는 그것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어 여러분들의 자녀가 누구의 자녀라는 이름으로 불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를 축복해 주셔서 결국에는 여러분들이 누구의 부모로 불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와 같은 복된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가는 오늘 본문에서 구레네 시몬을 소개하면서 앞에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알렉산더와 루포라고 쓴 것을 보아, 저들은 당시에 모든 사람이 설명 없이 알 수 있는 유명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제 소원이 바로 제가 그렇게 불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양준열과 아비인 양미동 목사' 얼마나 근사한 일입니까? 지금은 양미동 목사의 아들 양준열로 불리고 머지않은 날, 늙어서는 양준열의 아비인 양미동 목사로 불린다면 저는 제 인생을 감히 성공한 삶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어떻게 그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억지로 이기는 하지만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가 그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좁은 길을 걸으며, 주님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으려고 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앞에서 우리가 함께 생각한 그 엄청난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오늘 추도예배 설교의 핵심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엄청난 복을 위하여 우리가 억지라도 져야할 십자가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 주위에는 어려운 이웃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제가 하고 있는 사역은 장애인 사역입니다. 제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더 장애인의 사역에 헌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제가 장애인이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입니다.
장애인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만이 주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장애인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은 분명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주님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인 장애인들을 섬기기 위하여 헌신하고 있습니다.
가까이 있는 어려운 이웃이나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작은 나눔이라도 할 수 있다면,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삶이며 그와 같은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구레네 사람 시몬이 받았던 그 놀라운 복을 주실 것이라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버님 생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입니다. 아버님께 대드는 엄청난 사고를 저질렀습니다. 울면서 아버지가 무섭다는 것이었습니다. 호랑이 같은 아버지가 무서워서 같이 있기도 싫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만 생각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했습니다. 그날 밤, 아버님은 약주를 벌콰하게 드시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불렀습니다. 고양이 앞에 쥐처럼 아버님 앞에 무릎 꿇고 앉았습니다. 그때 아버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노무 새끼야! 호랭이가 지 새끼 잡아 묵은 거 봤냐? 아무리 사나운 호랭이라도 지새끼는 안 잡아 묵어!”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마디 하셨습니다.
“너가 지게에 무건 등짐을 지고 가고 있는데 앞에 누가 자빠져 있으면 지게 바쳐놓고 그 사람부터 살펴보고 괜찮으면 그냥 가고, 그 사람이 많이 안 좋으면 그 사람부터 돌봐 줘라. 그라고 너가 3일 굶다가 밥이 생겨서 막 밥을 묵을라고. 할 때 누가 와서 밥 좀 달라고 하면, 다 주지 말고 반을 덜어서 줘라. 그래야 둘 다 노무 집 담을 안 넘은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냥 아버님이 무서워서 무슨 말을 하셨는지도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예수를 믿고 장애인 사역을 하던 어느 날 아버님과 있었던 그날이 영화처럼 생생하게 제 머릿속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아버님의 말씀이 어쩌면 예수 믿노라 고백하는 저보다 더 멋지고 근사했습니다. 나눔 사역을 하면서 수시로 아버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사람들에게도 그 말씀을 들려줍니다. “제 아버님이 이런 분이셨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올 여름은 무척 더웠습니다. 8월 1일부터 3일까지 소록도 한센병력자들께 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열심히 땀 흘리며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밤에는 뜨거운 찬양과 기도와 말씀의 시간들이 있었지만, 전 결코 그들에게 봉사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봉사를 갔다가 더 많은 것을 가슴 가득히 가져왔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은 사실입니다.
소록도 봉사를 다녀와서 벌려놓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록도 한센인들이 다니는 북성교회에 화장실이 열악하여 화장실을 건축해 드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돈이 없기 때문에 모금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자오쉼터를 위해서는 모금운동을 못했지만, 왠지 소록도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모금운동을 해야겠다는 성령님의 강한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지금 인터넷을 통하여 십시일반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내년 5월 31일까지 1,500만원은 거뜬하게 모아지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십시일반 모금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은 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직장에서 월급 받고 생활하는 지극히 평범한 분들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위하여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살아 갈 때 하나님은 틀림없이 오늘 우리가 생각한 복을 주실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와 같은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자녀는 누구의 자녀라 불리는 복을 받게 될 것이고, 그와 같은 마음과 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후에 누구의 아비 누구의 어미라 불리는 복을 받게 될 줄로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 드린 누구의 부모가 되며, 누구의 자녀가 되는 복을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나름대로 여러분의 십자가를 감당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억지로라도 주님의 십자가를 지려고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구레네 사람 시몬과 같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감당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보다 더 큰 복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 중에 그와 같은 복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실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