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뱀처럼 생기고 또 실제로 뱀이 많아서 사량도(蛇梁島)라 불린다는 통영 앞바다에 있는 서로
마주보는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섬, 사량도(윗섬과 아랫섬).
사량도는 지리적으로 남해군 창선도와 통영시 미륵도의 중간쯤에 자리한다.
1.5km 가량의 거리를 두고 이웃한 상도와 하도로 나뉘어 있다.
면적은 아랫섬이 더 크고, 인구는 윗섬이 더 많다.
그래서 면사무소가 있는 곳도 윗섬이다.
지금은 두 섬을 잇는 다리공사가 한창이다.
사량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크게 등산객과 낚시꾼의 두 부류로 나뉜다.
최근에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각광을 받고 있는 지리산(397m)이 솟아 있는 윗섬의 진촌 선착장에는 등산객들이, 아랫섬의 읍덕 선착장에서는 낚시꾼들이 많이 내린다고 한다.
이 조용하던 섬에 지난 금요일에 난리가 났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섬사람들을 위해 펼치는 섬마을 콘서트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음악 애호가들이 몰려든 것이다.
또한 부인인 영화배우 윤정희씨가 동행하는 찾아가는 섬마을 콘서트는 점점 사람들의 관심사로 자리매김해갔다.
우리나라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 앞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쪽빛 바다에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사량도가 아름다운 것은 옥녀봉에 걸리는 노을빛에 취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며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가슴에 음악을 품고 살기 때문이다.
섬마을 콘서트를 알게 된 것은 지난 해 우연히 TV를 시청하다 연평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백건우씨를 보았다.
북한군의 포격으로 인한 주민들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섬에서 클래식 음악을 접하기 힘든 섬마을 주민을 위한 그의 찾아가는 콘서트는 그당시 그곳 섬마을 주민들한테는 한없는 마음의 위안을 주었고, 음악회를 알고 찾아온 관광객들에게는 진한 감동을 주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그의 출생지는 부산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바다를 보면 고향을 찾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올 해에도 지난 3일에 울릉도에 이어서 7일에는 통영 사량도에서도 섬마을 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을 며칠 전 신문을 통해 알았다.
현충일에 이어 샌드위치 휴가를 얻어 긴 남도여행을 시작했다.
오직 바다 밖에 모르고 살아오던 섬사람들 곁으로 음악 나눔을 위해 찾아온 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도 바다가 주는 情이 그리웠을 것이다.
백건우선생은 말한다.
“가장 때 묻지 않은 곳이 섬입니다.
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섬과의 만남이 그리웠습니다.
섬사람들과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음악으로 순수한 대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음악이 나의 언어이니까요“.
오후 6시 반부터 행사장에 입장할 수가 있었다.
삼천포항에서 배를 놓치고, 부리나케 고성 용암포선착장으로 내달아 겨우 막배를 탔다.
40여 분을 달려 사량도 하도(아랫섬)에 도착했다.
선착장에는 미리 와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으며, 이내 통영 가오치항에서 출발한 제법 큰 임시 배가 도착하니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사량도에 이만큼 많은 이들이 일시에 모인 적이 없었다고 해삼/멍게 와 생선회를 파는 조그만 식당 아주머니는 말했다.
“아주머니~ 장사가 잘 돼서 좋겠습니다~”하니,
“아이구, 내는 마 저 사람보고 장사하는게 아입니데이~
그저 이곳 사람들 상대로 하는겝니데이~....“
아무튼 일시적인 대박이 났으니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맞다, 이곳 섬사람들은 백건우씨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게 당연할 지도 모른다.
다만, 그의 부인인 영화배우 윤정희씨는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나도 배우 윤정희씨를 볼 수도 있다는 소박한 희망을 가져보았다.
사량도 아랫섬 덕동에 해가 지는 섬과 바다를 배경으로 마련된 무대.
유월의 태양은 한낮을 불사르다 상도(위섬) 지리산 준봉들 뒤로 사라지고
서서히 어두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수많은 청중들의 환영을 받으며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청중들의 눈과 귀가 한 곳을 집중했다.
그가 잠시 기도하는듯 머리를 숙였다.
순간 섬은 고요했다.
그 적막을 깬 것은 피아노의 첫 음률이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8번 다단조 작품번호 13 “비창”의 1악장이었다.
2천 여명의 청중들은 서로가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을 할 필요조차 못 느끼며 거장이 펼쳐가는 음악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떤 때는 가냘프게, 어떤 때는 피아노를 부스기라도 하듯 강렬하게
건반을 두드렸다.
조금씩 정화와 평화를 실감하다가 어느 순간엔 절정을 맞는다.
클래식을 알든 모르든 칠순에 가까운 세계적인 피아노 거장과 섬마을 사람들 그리고 그의 연주를 감상하러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마음이 순간순간
하나가 된다.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바다엔 불을 밝힌 어선들이 떠있고, 조명이 비쳐지는 무대 위엔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 한대만이 더욱 까맣게 선율을 토해낸다.
느리게 빠르게 가냘프게 그리고 어떤 때는 아주 강렬하게....
베토벤의 비창 중간쯤 2악장 아다지오 칸타빌레의 낯익은 선율이 흐르자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허밍을 해본다.그리고 다시 쇼팽의 야상곡, 이어진 리스트의 베네치아와 나폴리에서 곤돌라를 젓는 여인, 칸초네 그리고 마지막 타란텔라의 연주곡을 마치고 그는 두 손을 번쩍 하늘로 치켜든다.
1시간 여동안의 그의 섬마을 콘서트는 이렇게 장엄하게 막을 내렸다.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와 탄성이 울려 나왔다.
이어서 여기저기에서 앵콜! 앵콜!을 외쳐댔다.
하지만 그는 무대에 다시 올라와 정중히 작별 인사를 하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여운이 짙게 남는다.
사람들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파란색 써치라이트 불빛만이 요란하게 밤하늘을 향해 춤을 추었다.
2년 전 가을에 억새가 춤추는 경남 울주군 신불산(1,260m) 간월재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奇人 임동창 연주회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
순수음악과 비순수음악의 차이라고나 할까?
확실히 분위기와 느낌이 달랐다.
임시 배가 곧 떠난다고 승선을 재촉하는 안내 방송이 계속 이어졌다.
600명이 한꺼번에 탈 수 있다는 마지막 배, 민박집 주인의 픽업을 기다리며 여객선 터미널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마치 1.4 후퇴 때 흥남부두를 떠나는 피난민 후송선을 보는 듯했다.
그랬다.
나는 그날 밤 사량도 섬에 남아 있었다.
아시아를 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보았다.
아니 그의 연주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대자연을 무대로 삼기 위해 넘어야할 난관도 많았을텐데...
특별히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를 극복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그가 이겼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紙가 피력했듯이
“백건우는 경이로웠다”
-옮겨온 글-
첫댓글 잘 읽었어요...
멋진 공연장이 인상 깊네요.
사량도를 가고 시퍼
이색적인 섬 마을 콘서트 멋지네요...
사랑도 환상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