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정시는 남쪽으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함경북도 회령, 무산, 종성과 이웃하고 있다
인구가 28만명이 살고 있으며 조선족이 60%정도.
한국독립운동의 요람이며, 한국선조의 숨결이 배여 있는 이곳 용정시
일본이 청일전쟁 후 간도협약을 맺고 청나라에 넘겨주기 전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땅이었다.
일제 치하에 나라를 되찾겠다고 고향과 처자식을 떠난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독립운동가 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민족주의 교육의 산실이며 저항시인 윤동주(1917-45)를 비롯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배출한곳이다
문화 유적으로 비암산의 一松亭, 시인 윤동주의 묘, 반일 의사자들의 묘 등 이 있으며 최근엔
현대적 도시로 급성장 하고 있고 백두산 관광기지로 각광받고 있다
암흑기 조선민족문학의 등불을 밝히고 독립운동을 펼친 주요사람을 살펴보면
1 심련수(1918. 5. 20 ~ 1945. 8.8)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
러시아, 연해주의 용정에서 소학교, 중학교를 나와 일본 도꾜에 가서 고학, 귀향 후 용정 인근에서 교편생활을 하다 광복을 앞두고 용정으로 오다가 일제의 총칼에 의해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뜸
생전에 대지의 봄, 지평선. 국경의 하루밤, 들불, 어제와 오늘, 지구의노래 등 시 240여 편,
그 외 소설, 산문, 일기 등을 발표 윤동주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이었으며 암흑시대
중국 조선민족문학의 등불로 되고 있음
2. 저항시인 윤동주(1917. 2~ 1945. 2)
길림성 화룡면 명동에서 출생 1931. 3월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32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
1935년 9월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평양 숭실중학고에 진학하였다.
이후 학교가 폐교되는 바람에 용정에 돌아와 광명중학교에 입학하였고 1938년, 4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 문학부에 입학한다.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인 1942. 4월 일본 도꾜의 립교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10월에
교도의 동지사대 영문과로 옮겼다
재학 중 유학생들과의 회합의 기회에 민족독립사상을 고취한 죄로 1943. 7.19 일경에 체포되어
2년 실형의 언도를 받고 후꾸오까 형무소에 수감되어 옥살이를 하다가 1945. 2월 16일
해방의 모습도 보지 못한 채 28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함
유작으로 유명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별혜는 밤 등의 시가있다.
3. 이상설(1869~1917)
1905. 을사보호조약체결 후 서울을 떠나 상해로 갔다가 1906년 9월에 용정에 도착.
다음해 1907년 3월 고종의 밀서를 받고 이준과 함께 화란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참석,
그후 연해주에서 한일합방 반대를 위한 성명회란 반일단체를 세워 활동하다가
1917, 봄 48세의 일기로 병사함
4. 김좌진, 홍범도 장군의 청산리 전투
1920. 10월 일제침략군이 독립군에 대해 이른바 경신난 대토벌 감행하였다.
이에 토벌군의 토벌을 피하고 새로운 반일 근거지를 찿아 백두산 기슭으로 이동하던
김좌진장군의 북로군 정서군과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이 합세하여 일본군과 전투를 벌려
20여 분만에 200여명의 적의 중대를 전멸시킨 전투
용정시의 모습
시 가운대 해란강이 흐른다
비암산 정상
비암산에서 네려다 본 광활한 평야
그옛날 우리의 영토인데.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
비암산 정상에 있는 일송정 기념탑
일송정은 정자모양의 소나무를 뜻함
일송정 소나무
일송정 소나무는 당시 선구자의 노래가사라하여
일본이 한민족의 혼을 잘라버리기위해 톱으로 잘랐는데
가지가 계속퍼져 결국 뿌리에 독약을 주사하여 죽였으며
1931.3.12 용정시 인민정부가 한국인의 도움을 받아 백두산에서 17년된 소나무를 다시심고
정자를 세웠다는데 그 후에도 계속죽었답니다.
1991년 조선족이 소나무를 한그루를 옮겨와 심었으나 또죽어
이듬해 3. 18일 재차심어 성공 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하네요 .
윤동주의 시비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기를
대성중학교는 대성 유교의 공교회에서 꾸린학교로 1921. 10월 8일에 창립,
일제의 탄압과 경제난으로 폐교등 우여곡절을 걷다가 45. 9.12 두 번째로 개교되어 오다가
46. 9. 16일 인근 5개의 중학교와 합병되어 길림성 용정중학교로 개칭
지금은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전시관에는 용정중학교 역사와 일제시대때 항일운동을 펼친 인물
심련수, 윤동주 시인과 이상설 선생의 일대기가 있다
조두남 작곡의 선구자에 나오는 용두례우물터
이 우물터는 용정이라는 지명을 갖게된 배경이 됨
두만강 하류로 갈수록 강폭이 넓어지네요
두만강은 700리라 하죠.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르는건 압록강
동쪽으로 흐르는건 두만강이라하죠 중국에선 도문강이라고 부르고...
두만강하류는 대체로 강폭이 넓고 물이 깊으며 물고기가 많다고 하네요
오늘도 소리없이 역사를 뒤로하고 조용히 동해로 흘러가는 두만강
두만강아 너는 아느냐 우리민족의 한이서린 절규를......
유엔세계공원
뒤철망쪽이 러시아땅이랍니다 나도 철망사이로 들어갔으니 러시아땅도
밟아보았네요
두만강 끝자락에 있는 방해각입니다 이곳까지 개방되었죠
토자패는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있지않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고위층은 관람이 가능한데 군의 허가를 맡아야한다네요
망해각에서 바라본 러시아 북한(강왼쪽이 러시아, 오른쪽이 북한)
이지역은 중국, 러시아, 조선의 교전지역입니다
중국이 이지역을 이겼더라면 동해로 진출할 수있었는데 하면서 후회한다고 하네요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것이 동해랍니다
왼쪽편으로 산이 멀리보이는데 이산은 이순신장군이 초임군관시절
주둔했던 녹둔도라고 하네요
지금은 러시아 영토
북한의 두만강 홍이리와 러시아의 하산을 연결하는 철도
북한의 나진-선봉지구를 연결하는 중요한 철도입니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화물차
세관 같기도 하고.........
두만강다리(도문교)옆에 조그만 집이있네요
실향민이 지어놓은듯,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으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도문교 건너 북한 마을이 보이네요
두만강(도문강) 옆 북한마을
농사짖는 모습이 보이는데 수확중 70%는 국가에 내고 30%만 농민의 몫이라고
참으로 불쌍하네요
첫댓글 아! 일제강점기 선열들의 독립운동 흔적이 서린 유적지를 다녀오셨군요. 광복회를 통해 몇번 다녀온 바로 그 곳이라 감회가 큽니다. 일송정의 소나무 그 때도 시들어 있었는데 잘 이식되어 보기 좋네요. 뒤이어 게재될 기행문도 기다리겠습니다.
자세한 글 올리기전 먼저보았네요
건강하시죠. 만난지 오래 되었네요
용정시 편을 올렸습니다. 보고 들은것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올렸기에 잘못이 있을수 있습니다
잘못이 있더라도 이해해주시길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하셨던 곳,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신 감회가 크셨겠습니다. 사진으로 현장을 보노라면 서리서리 맺힌 한들과 용맹성들이 묻어 있는 듯 합니다. 가보기 힘든 곳을 찾아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행가 김동일씨 좋은곳 소개해주시어 감사합니다.
참으로 좋은 구경 잘했습니다.
우리민족의 얼이서린곳 잘소개해주셔서 감사핮ㅂ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