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충주 장날이다. 어머님께 고기 구워드리고 헤진 신발 터덕거리며 저자에 나갔다. 아니 그 전에 아느 형님 식당에 들렀다. 벽에 걸린 소담스런 액자 하나 예쁜 글씨를 보니 가슴이 울컥! 참 정갈한 글씨이다. 눈을 호사스럽게 만든 장본인은 누구시던가? 아는 형님 집 식당에 걸린 글이다. <청사대구淸詞對句>라는 글에 나오는 내용이다. 글만 있고 뒷풀이를 안했다. 어머님과 얘기 나누다 댓바람에 확 찍었다. 華雨來時游魚樂 화우래시유어락 柳陰深處鳴禽多 류음심처명금다
봄비에 꽃피는 시절엔 고기도 즐거이 노닐고 버들숲 우거진 곳에 많은 새들이 우지짓네
바로 집앞 벙거지 모자에 머리털 희끗 날리는 아저씨, 아니 엉아들 모습. 70년도 중반 나는 장날 구경 가려면 시오리 길을 걸어서 어머니 손잡고 거닐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때였지. 늘 보리밥에 이밥(쌀밥)은 할아버지 생신 때 아니면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다. 시오리 길을 어머니 손잡고 오던 기억이 눈에 박힌다. 그 두메산골 강원도 화전민과 같은 밭두렁을 휘저으며 보릿단을 조그만 어깨에 지게를 지고 나르던 기억이 눈에 잡힌다. 역시 장날 저잣거리는 내 어린 시절 추억의 한 필름이다.
아주 어릴 적 보았던 향로, 곰방대 도자기 그리고 아주 작은 가마솥 등속이 보인다. 나는 아저씨께 양해를 구하고 오늘 사진 한 판 박았다. 아니 곰방대도 보입디다.
어릴 적 소죽 끓이면서 불을 붙이던 풍로도 보이고, 어머님이 콩 빻고 청국장 짓이기시던 자그마한 절구도 보인다.
장날 들어오다가 집 앞에 오래된 측백나무 하나 왜 그리 정이 가는지......, 나 어릴 적 아버님이 지 옆 향나무를 손수 전지 가위로 손질하시던 생각이 난다. 미끈하게 잘 자랐다. 지금도 고향 제천에 큰 아버지께서 돌보시는데, 아버지 정성만큼은 못하신가 보다. 훌쩍 자란 몸이 비대하다. 아버지는 늘 전지가위로 다보탑을 만드셨다. 집 뒤란에는 늘 측백나무가 울바자를 드리우고 겨우내 나는 측백나무에 깃든 새를 잡느라 후라쉬(후래쉬)를 들이대어 살상을 했다. 초등 2-4학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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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휘 기픈 나모 원문보기 글쓴이: 不二堂
첫댓글 참 정겨운 내용과 말씀 입니다...우리 모두 말씀과 같은 그런 아름다운 추억이 있지요. 눈물 날라 캅니다.
일가님 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