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삼 문 (成三問)
* 百日紅 / 백일홍
昨夕一花衰(작석일화쇠) : 어제저녁 한 송이 꽃이 떨어지고
今朝一花開(금조일화개) : 오늘 아침에 한 송이 꽃이 피어서
相看一百日(상간일백일) : 서로 일백 일 동안 바라보니
對爾好衡盃(대이호형배) : 내 너를 대하며 기분 좋게 한 잔 하리라.
成三問(1418~1456)이 좋아한 백일 홍 배롱나무꽃,
단종이 청령 포로 귀양 가고 난 뒤에 배롱 나무꽃을 바라보며 술을 들면서
단종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성삼문은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출생한 충청도 홍주 지금의 홍성 군 흥북면 외가에서 태어났다.
삼문이라고 지은 이름은 성삼문 어머니가 삼문을 낳을 때, 하늘에서 "낳았느냐?" 하고
세 번의 소리가 들려서 삼문(三問)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7세에 생원 시에 합격했으니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그 뒤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문과 중시에 장원 급제하면서 벼슬 길에 오른다.
수양 대군이 조카 단종을 귀양 보내고 용상에 올랐으니 그 용상(龍床)의 자리를 본래 주인에게 찾아주고자
계획한 일이 김질 의 배반으로 무산(霧散)되고, 아버지 상승과 세 동생, 네 아들과 서자, 모두 참형(斬刑)을
당했다.
성삼문은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지는 거열형으로 38세에 생을 마감했고, 그의 일족 중에 남자는 모두 죽었다.
함께 죽은 사육 신 중에 박 팽년 후손이 살아남아 숙종 때 신원이 회복(恢復)되어 사육신의 제사(祭祀)를
지금도 모신다고 한다.
세종대왕은 아들 문종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생각에 금지옥엽 어린 손자 단종을 걱정하면서
집현 전 엘리트 학사들에게 단종을 도우라고 부탁했는데, 그들은 육신이 처참하게 망가져 죽으면서
세종대왕과의 약속(約束)을 지킨 사육 신!
그 이름 만고(萬古)의 충신으로 천추(千秋)에 이어가고 있다
성삼문은 형장(刑場)으로 가면서 절명 시(絶命 詩) 한 수를 남긴다.
* 絶命詩 / 절명 시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 둥둥둥 울리는 북 소리가 내 목숨 재촉하는구나
回首日欲斜(회수일욕사) : 머리 돌려 바라보니 서산에 해는 지고
黃泉無一店(황천무일점) : 황천 길에는 주막 집 하나 없다는데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 오늘 밤은 누구 집에 묵어 갈꼬"
성삼문은 처형 장으로 끌려갈 때 어린 딸 효옥이 수레를 따라오면서 울자,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내자식은 다 죽을 것이고, 너는 딸이니까 살 것이다”라며 달래고는,
집안의 종(從)이 울면서 술을 올리자 몸을 굽혀 마신 후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 몸이 죽어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 산 제일 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되었다가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
죽음을 앞두고도 꺾이지 않는 절의(節義)의 기개(氣槪)가 듣는 이의 마음을 절로 숙연(肅然)하게 한다.
이 시는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 묘역의 성삼문 각비에도 적혀 있다.
궂은비가 멈추고 잠시나마 햇볕을 마주하니 시절은 여름 한가운데 와 있네.
저 꽃이 피기를 멈추면 가을이 오겠지.....
- 펌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