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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그분의 거룩함 앞에 나는 얼마나 큰 죄인인지?
공동체 생활 안에서, 매일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성숙하고 균형 잡힌 자아 의식은 어떤 것인지 자주 고민하게 됩니다. 너무 지나친 자기 비하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족하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를 각별히 사랑하시니, 나도 나를 존중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너무 지나치게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모습도 정말이지 봐주기 힘든 꼴불견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데, 본인만 스스로를 아주 높이 평가하며 자화자찬한다면, 그 얼마나 웃기는 꼴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중요한 것이 균형잡힌 시선이요 한쪽으로 과도하게 지우치지 않는 조화로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제자 직분의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지침을 가르치십니다. 요점은 제자들 자신의 신원에 대한 명확한 인식, 그리고 겸손의 덕을 지니라고 가르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루카 복음 17장 10절)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제자는 종이라는 것, 제자로서의 사도직 수행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그에 따른 보상이나 특별대우를 바라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어떤 사람들, 참으로 봐주기 힘들고, 견디기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업적을 한껏 부풀려 과대 포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으로서의 근본, 원초적 결핍, 태생적 나약함을 잊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특징이 마치 이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들, 불과 20년 30년 세월이 흘러 정신을 차려보면, 자신의 육체는 아무 볼품없이 모습으로 차갑고 황량한 들판에 누워있을 것입니다. 영혼은 저 세상 어딘가에서 초조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도 꼭 쥐고 있던 재물들은 사방천지로 흩어져버렸을 것입니다. 남겨놓은 글도, 명성도 순식간에 잊혀질 것입니다. 그리도 자부심을 느꼈던 소중한 저서들은 킬로그램당 얼마씩에 팔려 고물상 한켠에 쌓여있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니 이 세상에서 뭔가 대단한 인물, 엄청난 존재가 되고자 발버둥 치는 모습들이 얼마나 가소롭고 한심한 일이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 스스로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 지금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사실 하느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허영심, 자만심, 하늘을 찌르는 교만함을 버려야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영적·육적으로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위쪽에서부터 오는 은혜요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내가 지금 뭔가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 덕분이라는 것을 늘 고백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의 위대함 앞에 나는 얼마나 미소한 존재인지? 그분의 거룩함 앞에 나는 얼마나 큰 죄인인지? 그분의 무한하심 앞에 나는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 나는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늘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제자직 수행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자이기 때문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행복보다 겸손
저는 인생의 목표를 행복으로 여기고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후회가 없습니다. 그 방향이 제가 사제가 되도록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까지 본인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니 난처합니다. 여기서 더 구체적인 방향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어떤 종에 밖에서 일하다가 집에 돌아오니 주인이 자신에게 식사 시중을 들라고 하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주인이 종에게 고마워해야 하겠냐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의 집에서 일하며 한 끼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입니다. 그러니 하인은 학대하지만 않는다면 주인에게 자신을 종으로 써 준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서열을 정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2012년 5월 20일 방영된 동물농장에서 오토바이를 쫓는 개 뭉치가 방영되었습니다. 뭉치는 하루 종일 동네 슈퍼 앞에 앉아 있다가 오토바이만 지나가면 그 앞을 가로막고 마구 짖어댑니다. 그런데 사실 뭉치가 쫓는 오토바이는 단 한 대뿐이었습니다. 다른 오토바이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 오토바이는 슈퍼 앞쪽에 있는 한 마트의 배달용 오토바이였습니다. 처음엔 경쟁 마트의 오토바이기 때문에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슈퍼 앞에서 매일 지키고 있었지만, 그의 집은 따로 있었습니다.
실제 그의 공격 상대는 오토바이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마트에서 기르고 있는 누렁이 때문이었습니다. 1년 전에 누렁이에게 서너 번 물린 적이 있어서 누렁이가 무서워서 그 마트까지는 가지 못하고 그 마트의 오토바이에 괜한 화풀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복수를 계획한 것이 어언 1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뭉치는 기회를 노렸다가 오토바이와 동행하는 누렁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누렁이도 화가 나 뭉치를 덮쳤고 순식간에 싸움으로 번졌습니다. 뭉치는 누렁이의 힘에 못 당하면서도 끝까지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떼어놓아서 간신히 뭉치가 큰 상처를 받지 않았지만, 여전히 뭉치는 끝까지 싸울 기세였습니다.
결국 전문가들이 왔습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뭉치가 자신의 서열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뭉치와 누렁이가 자유롭게 싸울 공간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이제 누렁이와 뭉치는 입과 발에 보호대 등을 착용하고 철창으로 만든 좁은 공간에서 싸움을 벌이도록 놓아두었습니다. 결국 승자는 누렁이가 됐고, 뭉치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뭉치가 다시는 집을 나가 슈퍼로 가지 않고 모든 것을 잊고 편안하게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의 아버지는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결국 전쟁에서 패하고 죽고 맙니다. 그가 아버지에게 반항하게 된 것은 그의 동생 타마르 때문입니다. 타마르의 이복 오빠 암논이 타마르를 탐하고 버린 것입니다. 이에 분노해 압살론은 타마르를 죽였습니다. 그런데 다윗는 압살론을 유배 보냅니다. 다윗에게는 모두가 자녀였지만, 압살론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압살론은 다윗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압살론이 죽었을 때 다윗은 한없이 슬퍼하였습니다. 압살롬이나 타마르나 암논은 다 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자녀들끼리 죽고 죽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압살론은 다윗의 자비를 이해했어야 합니다. 그 자비 앞에서 겸손해질 수 없자 이 모든 사단이 벌어진 것입니다.
소금인형은 자신을 알기 위해 많은 곳을 여행했습니다. 소금 광산을 지나 소금 사막을 넘어 소금 염전에 다다랐습니다. 염전 앞에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소금인형은 멈칫하며 바다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니?” 바다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들어와서 보렴.” 그래서 소금인형은 바닷속으로 첨벙첨벙 들어갔습니다. 들어갈수록 자신이 녹아내리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점이 녹기 전에 소금인형은 경탄하며 외쳤습니다.
“아. 이제야 내가 누군지 알겠군!” 소금인형은 바다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 바다가 아니면 소금인형이 누구인지 알려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소금인형은 바다와 가까워질수록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바다가 아니었으면 자신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면 겸손해집니다. 그러나 압살론은 그럴 줄 몰랐습니다. 그의 목적이 겸손이 아니고 자신이 믿는 행복이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성 블라디미르는 아버지의 폭정대로 형제를 죽이고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폭정은 물론이요, 일부다처제를 주장하며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페룬(Perun)이라는 최고 신을 포함하여 여러 신을 숭배했는데, 그 신에게 특히 헌신했습니다.
몸이 아프니 겸손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접할 수 있는 모든 종교를 접해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다 성 소피아 성당의 위엄을 본 신하들의 말에 그는 가톨릭교회에 귀의하기로 결심합니다.
서기 988년에 블라디미르는 크림 반도의 그리스 도시인 케르소네수스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가 침례를 받기 전에 눈병이 있었다고 하며, 전설에 따르면 그가 침례를 받고 물에서 나올 때 눈병이 기적적으로 치료되었다고 합니다. 이 경험은 블라디미르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고, 그리스도교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결국 성인이 되었습니다.
압살론은 겸손에서 출발했지만, 아버지 앞에서 교만해졌습니다. 그러나 블라드미르는 교만함으로 시작하였지만, 하느님의 자비 앞에서 겸손해졌습니다. 각자 행복해지자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겸손해지는 길을 택했던 블라디미르를 본받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2012년 5월 20일 방영된 동물농장이란 프로그램에서는 오토바이를 쫓는 개 뭉치가 방영되었습니다. 뭉치는 1년 동안 자신을 물었던 이웃집 개에 대해 복수를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다 둘이 한 우리 안에 싸우도록 붙여놓았을 때 뭉치는 싸움에서 밀린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집 앞에 나타나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행복하게 삽니다. 불행의 시작과 끝은 교만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완전한 행복과 천국의 길은 겸손임을 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루카 17,7-10: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 주인과 종 사이의 관계에서 종이 주인의 명령대로 했다 해서 주인이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9절) 하신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나서 겸손할 줄 아는 자세를 가지라 하신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가지 일만을 시키지 않으신다. 살면서 많은 일을 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참으로 봉사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다. 우리 자신을 앞자리에 내세워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섬기는 일을 제법 잘했다 하더라도 할 일을 했을 뿐이니 뽐내지 않아야 한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모습, 그것이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존중할 줄도 알고 자기 직분과 위치가 주는 권위를 드러내야 할 때 분에 넘치는 충동도 꺾을 줄 안다. 교만하지 않으며 만용을 부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기가 노력하여 얻은 영광이나 명예와 권세도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인 다른 이들의 도움이 되기 위해서 주어진 것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위해 사용할 줄도 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여라.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10절). 입으로 영광을 떠드는 자들은 덕행을 실천하여도 그것으로는 아무런 은총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온갖 덕을 실천하더라도 그것을 자랑삼는 사람은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고 말며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주님 앞에 자신을 무로 돌릴 줄 아는 자세도 가져야 하겠다. 우리는 마당을 쓸 때 빗자루를 이용하고 쓸고 난 뒤에는 그 빗자루를 좋은 자리에 고이 모셔두는 것이 아니라, 문 뒤 한적한 곳에 세워 둔다. 즉, “주인이 필요하여 나를 쓰셨고 이제는 내가 할 바를 했으니 내가 차지할 곳은 이곳입니다.” 하는 것과 같다. 주님 앞에 그리고 우리의 이웃 앞에 또한 겸손한 봉사자의 모습을 가지도록 하여야 한다. 이것이 스승이신 주님께서 당신의 삶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2024년 11월 12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잘 적응되는 곳이 소셜 미디어 공간입니다. ‘친구’라고 불리는 유사 사촌이 이 안에 있습니다. 여기에는 멋진 모습만 있지요. 명품 가방을 옆에 두고 커피 마시는 사진, 근사한 호텔이나 풀빌라에서 수영하는 사진, 값비싼 외제 차 앞에 선 사진 등 멋진 모습이 가득합니다. 이 사진을 보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 배가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은 정답이었습니다. 그래서 2017년 페이스북 측은 ‘페이스북을 수동적으로 사용하면 정신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남들의 삶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보다 자기만의 삶을 살면 됩니다. 행복이란 남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텔레비전도 잘 보지 않고, 소셜 미디어 공간에는 묵상 글 올릴 때만 사용하니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볼 수 없습니다. 저의 글에 댓글을 많이 쓰시는 것 같은데, 이 역시 전혀 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찾아보지 않으니, 관심도 사라집니다. 하지만 많은 이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중독성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해야 세상을 잘 알 수 있을까요? 오히려 사용하지 않아야 고립감이나 배제감을 느끼지 않게 될 것입니다.
문명을 이용하면 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편한 것이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문명에서 멀어져야 더 편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주님께서 주시는 이 세상 안에서의 기쁨과 행복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요?
세상 것이 아닌 주님께 집중하는 삶이 필요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종은 마땅히 주인에게 시중들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제대로 시중들기 위해서는 주님께 집중해야 하고, 주님의 뜻을 철저하게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데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자기 기준으로 바라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주종의 관계로 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우리를 벗이라고 말씀하셨고, 당신의 생명까지도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시는 분이 아닙니까? 따라서 오늘의 말씀은 주님께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통해서만 진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행복을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진짜 행복입니다.
오늘의 명언: 목표는 우리가 의식하고 지향하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에드워드 비컨).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
만물의 주인께서
우리 앞에 계시는 줄을
알고 있는 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쓸모없는 종으로
살고 있다네.
우리가
아는 척
잘난 척
우쭐거리는 것은
우리 앞에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늘 겸손하게 그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어
나의 말과 행동들이
스스로 낮아지고 상대방을
높여줄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나를 드러내기 보다는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겸손되이 고백할 수 있는 이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아직도 우주최강 악덕기업주인 하느님께서
수확할 것이 많다고 하시는데
제 눈에도 수확할 것이 항상 많습니다.
전 파견된 사람일 뿐이니
겸손되이 그저 시키는 일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맘이 늘 편하고 행복합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우리는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며 경건하게 살고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말씀입니다.2,1-8.11-14
사랑하는 그대여,
1 그대는 건전한 가르침에 부합하는 말을 하십시오.
2 나이 많은 남자들은 절제할 줄 알고 기품이 있고 신중하며,
건실한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지녀야 합니다.
3 나이 많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몸가짐에 기품이 있어야 하고,
남을 험담하지 않고, 술의 노예가 되지 않으며,
선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그래야 그들이 젊은 여자들을 훈련시켜,
남편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며,
5 신중하고 순결하며, 집안 살림을 잘하고 어질고 남편에게 순종하게 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6 젊은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신중히 행동하라고 권고하십시오.
7 그대 자신을 모든 면에서 선행의 본보기로 보여 주십시오.
가르칠 때에는 고결하고 품위 있게 하고
8 트집 잡을 데가 없는 건전한 말을 하여,
적대자가 우리를 걸고 나쁘게 말할 것이 하나도 없어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하십시오.
11 과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12 이 은총이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줍니다.
13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해 줍니다.
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며,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7-10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