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벨라루스가 미국, 독일, 슬로베니아 등 서방 측과 조만간 스파이 등의 혐의로 복역중인 수감자(죄수) 교환을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매체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슬로베니아 TV 채널 N1은 31일 "슬로베니아가 러시아와 수감자 교환의 일환으로 자국에서 스파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러시아인 2명을 추방한다"면서 "앞으로 몇 시간 안에 러시아, 벨로루시, 독일, 미국 등 여러 국가 간에 수감자 교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추방되는 러시아인은 류드비그 기쉬 - 마리아 로자 마이예르 무노스라는 아르헨티나 부부로 위장한 아르춈 둘체프와 안나 둘체바(Артем Дульцев и Анна Дульцева)다.
슬로베니아 정보기관 측은 이 부부의 체포 당시 “러시아는 결혼한 부부 (스파이)를 가끔 해외로 보내는데, 그들은 신분 세탁을 위해 유아기에 사망한 외국 국민의 출생 증명서를 차용한다"고 폭로했다.
러시아 교도소/사진출처:novyny.live
N1의 수감자 교환 보도가 나오기 전, 러시아에서도 반체제 인사 무르자 카라 등 적어도 7명의 유명 수감자들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서방과의 수감자 교환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31일 "러시아는 반체제 인사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한 혐의로 수감 중인 유명 인사 최소 7명을 다른 교도소로 이감한다는 이유로 빼돌렸다"며 "서방과의 스파이및 수감자 교환을 준비하는 신호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러시아의 인권변호사 파벨 파블로프도 "유명 정치범이 동시에 행적이 불분명한 것은, 그들을 해외로 내보내기 위해 한 곳으로 모으는 과정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러시아 측의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에반 게르시코비치 특파원에 대한 '비정상적으로 빠른 유죄 판결'에 이어 나왔다.
교환 대상자로 추정되는 러시아 수감자는 일리야 야신 전 모스크바 지방의회 의원과 인권 운동가 올레그 오를로프, 최근 옥사한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세운 반부패재단의 우파, 톰스크 지역 책임자인 릴리야 차니셰바와 크세니아 파데예바, 예술가 알렉산드라 스코칠렌코, 러시아와 독일 이중 국적자인 케빈 리크 등이다.
인권운동가 오를로프(위)와 야신/사진출처:위키피디아
야신은 자치단체장으로 근무 중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한 혐의로 징역 8년6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오를로프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인권단체 '메모리얼'을 이끈 러시아의 대표적인 인권운동가다. 스코칠렌코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마트에서 가격표를 '반전 구호'로 갈아끼운 혐의로 체포됐다. 서방에서는 이들을 부당하게 구금된 정치범으로 여긴다.
이외에도,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러시아 반정부 인사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도 행방이 묘연하다. 그의 변호인은 31일 전날부터 이틀 연속으로 그를 면회하기 위해 교도소 병원을 찾아갔지만 연거푸 면회를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러시아 연방교정국(FSIN)에 문의한 결과, 그가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다른 곳으로 이송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로 이감된 교도소는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러시아와 영국 이중국적자인 카라-무르자는 2015년 2월 크렘린 인근에서 피살된 야권 정치인 보리스 넴초프 전부총리의 측근이자 언론인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했다가 지난해 4월 2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수감중에도 워싱턴 포스트(WP) 등에 논평을 기고한 공적을 인정받아 2024년 퓰리처 상의 논평 부문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건강이 좋지 않은 그는 7월 초 검진을 위해 교도소 병원으로 이송됐다.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징역 16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미국 해병대 출신의 폴 휠런도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그의 변호사가 인테르팍스 통신에 밝혔다.
스파이 혐의로 징역 16년형을 선고받은 게르시코비치 WSJ 특파원과 허위 정보를 유포한 죄로 징역 6년6월형이 내려진 자유유럽방송(RFE/RL) 소속 알수 쿠르마스헤바도 교환 대상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크렘린과 주러 미국 대사관은 교환 여부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다.
게르시코비치 WSJ 특파원의 법정 출두 모습/사진출처:텔레그램 @ASTRA
그러나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7월) 17일 러시아와 미국의 정보 당국이 수감자 교환 문제로 연락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도 지난 2월 터커 칼슨 전 폭스뉴스 앵커와 가진 인터뷰에서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수감중이던 나발니를 서방 국가(독일)와 교환하기로 합의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그는 나발니 사망 며칠 전에 이 교환을 승인했다고 확인했다.
교환 상대로는 체첸 출신 그루지야(조지아) 지도자를 살해한 혐의로 독일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바딤 크라시코프 전 연방보안국(FSB) 장교를 암시했다. 미 CNN은 지난 2022년 러시아 측이 (교환을 통해) 그의 석방을 희망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앞서 벨라루스 외무부는 지난(7월) 20일 사형선고를 받은 독일 국적의 리코 크리거(30)에 관해 독일 정부와 협의중이라고 말했다. 크리거는 6월 24일 열린 비밀 재판에서 테러와 용병 활동 등 여러 죄목으로 총살형을 선고받았다고 벨라루스 인권단체 비아스나가 밝혔다. 크리거는 독일 적십자사의 의료진으로 일하고 있다가 지난해 11월 벨라루스에 체포됐다고 한다. 그도 이번 수감자 교환에 포함될 것으로 확실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