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명 : 2026 이응노미술관 기획전 '이종수- Clay, Play, Stay'
유형 : 대전 전시회
날짜 : 2026년 1월 16일(금)~3월 22일(일)
장소 : 이응노미술관 2,3,4전시장
문의처 : 이응노미술관 042) 611-9802
기타 : 개막행사 : 2025년 1월 16일(금) 15:00 / 이응노미술관 로비
■ 기획의도
흙은 땅의 기억을 품고 있고, 불은 그 기억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이종수(1935–2008)는 흙과 불이라는 두 요소를 매개로,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자연을 손끝의 여정으로 담아왔다. 그의 작업은 지역의 토양과 기후, 그리고 평생 붙잡아 온 재료의 숨결 위에서 형성되었으며, 이번 도예전은 그러한 물질적 토대와 그 바탕에 깔린 정신과 미학적 토양을 함께 비춘다.
이종수의 도예에는 흙이 지닌 물성과 그에 내재한 시간의 감각을 존중하며, 불과 공기의 작용을 신중히 살피는 태도가 담겨 있다. 그는 제작 과정에서 나타나는 유약의 흐름이나 소성 중의 변화, 표면 질감의 차이를 하나의 결과로 받아들이며 재료와 과정이 함께 만들어 내는 상태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러한 접근은 작품마다 서로 다른 표정을 부여하고, 도자기 표면에 시간과 환경이 스며든 흔적을 남긴다. 그의 작품은 형태를 완결하는 기술이라기보다, 흙이라는 물질과 장기간에 걸쳐 이어진 관계의 축적에 가깝다.
한편 그의 작업은 전통 도자의 형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지나치게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조형적 유연함을 보여준다. 비례의 미묘한 변화나 표면의 불균질한 처리, 형태의 완만한 일탈은 작업에 긴장과 여백을 동시에 부여한다. 이러한 특성은 전통의 계승이라는 틀 안에서 동시대적 감각을 반영하며, 그의 기물을 장식적 대상이 아니라 사용과 감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형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러한 태도는 자연을 ‘그려내는 대상’이 아니라 기운과 리듬이 흘러가는 장(場)으로 받아들였던 고암 이응노(1904–1989)의 예술관과도 은연중에 공명한다. 이응노는 서예와 회화가 한 뿌리에서 나온다는 동아시아 미학의 감각을 바탕으로, 붓질을 ‘형태의 복제’가 아니라 움직임과 호흡이 남긴 흔적으로 확장해 왔다. 그의 문자추상과 군상 연작에서 보이는 자유로운 필치와 생동하는 기운은, 화면을 정교하게 통제하기보다 행위가 만들어 내는 밀도에 신뢰를 두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이종수의 도예 역시 이러한 인식과 유비해볼 수 있다. 이종수는 흙과 불, 공기와 시간이 서로 작용하며 만들어내는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며, 결과를 미리 규정하기보다 제작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변화를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의 작품은 완벽한 통제를 지향하기보다, 재료와 과정이 함께 형태를 만들어가는 방식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두 작가는 먹과 종이, 흙과 불처럼 각기 다른 재료를 다루면서도, 재료가 지닌 성질과 흐름을 존중하고 그에 응답하는 태도를 공유한다. 형태는 계획의 산물이 아니라, 재료와 행위가 맞물리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길어 올려진다.
전시명 《Clay, Play, Stay》는 이종수의 작업 세계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Clay는 그가 평생 천착해 온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흙이며, Play는 손과 시간, 불의 리듬 속에서 형태를 시험하고 조정해 온 지속적인 탐구의 과정이다. Stay는 그렇게 축적된 시간이 머물러 남긴 자리로, 완결된 오브제가 고정된 순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표면과 형태에 겹겹이 스며든 감각의 층위를 가리킨다.
이종수의 도예에서 형태는 단번에 결정되지 않는다. 만들고, 고치고, 다시 세우는 반복 속에서 조형은 서서히 윤곽을 얻으며, 그 과정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반복은 조형적 실험인 동시에, 흙이라는 물질과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온 한 작가의 삶의 태도를 드러낸다. 《Clay, Play, Stay》는 흙으로부터 시작된 작업이 결국 머무름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며, 이종수 도예가 지닌 물질적 깊이와 축적의 의미를 조용히 드러낸다.
이러한 ‘머무름’의 개념은 작품의 차원을 넘어, 작가의 삶과 지역의 시간으로 확장된다. 2026년은 이종수의 전 생애를 거쳐 간 대전에 ‘이종수 도예관’이 첫 삽을 뜨는 원년으로, 이번 회고전은 그 출발점에서 이종수의 작업을 다시 또렷하게 기억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지역의 토양과 기후 속에서 형성된 그의 조형 언어는 이제 한 장소에 머물며 축적될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흙과 불, 숨과 시간이 겹겹이 쌓인 그의 도자기 앞에서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시간이 어떻게 하나의 형상으로 축적되어 왔는지를 다시금 바라보게 될 것이다. 전시를 통해 이종수의 조형 언어가 더 넓게 발굴되고 깊이 있게 논의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전시 구성
2전시장 : 불의 작용, 표면에 남은 시간
불과 비의도성의 미학은 이종수 도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태도이자 조형 원리이다. 작가는 현대적 가스가마를 거부하고, 직접 흙벽을 쌓아 올린 오름새가마에 불을 지피는 방식을 고집하며 작업을 이어왔다. 그에게 가마는 단순한 제작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자연의 힘이 정면으로 맞닿는 장소였다. 가마 속의 불길은 인간의 계획과 계산을 끝내 벗어나는 영역이며, 그 안에서 유약은 흘러내리고 응결하며, 때로는 작품 자체가 갈라지고 스며들어 매번 다른 표정을 남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들은 동일한 조건으로는 결코 반복될 수 없고, 매 소성은 하나의 사건처럼 고유한 시간을 통과한다.
이종수는 이러한 결과를 통제되지 않은 실패나 우연적 변수로 간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불의 작용과 재료의 반응이 만들어내는 비의도적 생성의 흐름을 작업의 중심으로 받아들이며, 인간의 의도와 자연의 개입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자신의 조형 언어를 정련해왔다. 그의 도자 표면에 남은 균열과 번짐, 색의 미묘한 변조는 작가의 손길만으로 완성된 흔적이 아니라, 불과 흙, 시간과 열이 함께 개입한 결과이자, 자연과의 공모 속에서 태어난 형상이다. 그래서 그의 도자는 완결된 형태이면서도 언제나 과정의 기억을 품고 있으며, 각 작품은 하나의 사물이기 이전에 한 번의 소성과 기다림이 축적된 기록이 된다.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는 작품 하나하나에 남은 흔적을 통해 가마 안에서 발생한 미세한 변화와 긴장, 그리고 인간의 의지가 자연의 섭리와 맞닿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비의도성은 부차적인 요소나 장식적 효과가 아니라, 작품의 존재감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동력으로 작동하며, 이는 이종수가 평생에 걸쳐 선택해온 삶의 방식이자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작업하고자 했던 그의 범자연주의적 세계관과 깊이 맞닿아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형성된 이종수 도자 세계의 근원적인 긴장과 깊이는 불길이 남긴 자국처럼 표면에 드러나며, 불과 흙이 만나 만들어낸 숨결, 시간과 기다림이 스며든 흔적을 따라가는 경험은 그의 도자가 지닌 조용하지만 단단한 미학, 곧 자연스러움 속에 깃든 격조를 다시금 사유하게 할 것이다.
<겉터진 항아리>, 2007, 점토질, 28x29cm
<겨울열매>, 2001, 점토질, 50x49cm
3전시장 : 해학과 변주: 흙과 불 사이의 웃음
이종수의 도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미학 중 하나는 해학과 변주이다. 그의 도자기는 완벽한 대칭이나 규범적 비례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비틀린 형태, 균형에서 살짝 벗어난 곡선, 거칠고 불균질한 표면을 통해 흙과 불이 만들어내는 우연의 흔들림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여기서 드러나는 ‘미묘한 일탈’은 결함이나 미완이 아니라, 재료와 과정이 개입한 흔적으로서 나타나는 유머이자 인간적인 따뜻함이다.
그는 전통적인 도예 기법을 엄격히 고수하면서도, 동일한 형식의 기물을 반복적으로 제작하며 그 안에서 끊임없는 변주를 시도한다. 곡선의 미세한 흐름, 비례의 차이, 유약의 번짐에 따라 하나의 형식은 매번 다른 표정을 획득한다. 이러한 차이는 작가가 모든 것을 통제한 ‘설계의 산물’이라기보다, 흙과 불, 바람의 반응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그의 도자기는 규칙보다 리듬을, 완결보다 과정성을 드러내며, “도자는 불의 예술이며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그의 말처럼 시간이 겹겹이 스며든 결과물로 선다.
이번 전시는 이종수의 작업 세계에 자리한 해학성과 자유로운 변주의 미학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우리는 작품 하나하나의 차이를 따라가며, 동일한 형식 안에서 발생하는 우연과 변화,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웃음과 따뜻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종수의 도예는 엄숙한 조형 언어를 넘어, 삶의 불완전함을 긍정하고 함께 나누는 예술의 가능성을 다시 묻는다.
<비둘기 한 쌍>, 2005, 점토질, 32x16x24cm
<잔설의 여운>, 1996, 점토질, 43x37cm
4전시장: 공명(共鳴)- 필치와 기운, 흙과 불의 화답
마지막 전시장은 이응노와 이종수, 두 거장의 예술 세계가 매체를 넘어 조우하는 공간이다. 비록 이들이 다루는 질료는 먹과 종이, 흙과 불로 서로 다르지만, 자연을 정복하거나 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기운과 리듬이 흐르는 장(場)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두 작가의 예술적 태도는 깊은 유사성을 지닌다. 이응노가 붓질을 통해 신체의 호흡과 기운을 화폭에 남겼다면, 이종수는 흙과 불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조형의 일부로 수용했다. 두 작가 모두 재료와 행위가 빚어낸 생생한 흔적을 신뢰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예술 세계는 매체의 경계를 넘어 공명한다. 이들에게 예술이란 완전한 통제 아래 놓인 계획의 결과가 아니라, 재료의 성질에 응답하며 시간 속에서 서서히 형성된 축적의 산물이다. 여기서 마주하는 도자와 회화는 완성된 순간 멈춰버린 오브제를 넘어, 표면 아래 스며든 감각과 시간의 층위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머무름의 미학’을 보여준다.
전시 《Clay, Play, Stay》는 흙이라는 근원에서 출발해 유희와 탐구의 과정을 거쳐 깊은 울림에 이른 이종수의 반세기 여정을 조망한다. 이번 도예전은 과거의 작업을 되짚는 데 머무르지 않고, 2026년 대전에 건립될 ‘이종수 도예관’의 착공을 앞둔 시점에서 지역의 기후와 토양 속에 뿌리내린 그의 조형 언어를 동시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한다. 이제 이종수의 도자기는 일시적인 전시의 순간을 지나,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물며 축적될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흙과 불, 숨과 시간이 응축된 작품들 앞에서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시간이 하나의 형상으로 만나 이루는 깊이를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이번 전시가 이종수의 조형 세계를 더욱 폭넓게 발굴하고, 그가 남긴 자연스러움의 격조를 일상의 맥락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문화가 모이는 곳 "대전공연전시" http://www.gongjeo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