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남자 3대의 풋살경기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석곤
앞집 홍 선생님 댁에서는 먼저 음식조리 냄새로 내일이 추석이라는 걸 알린다. 추모관에 모신 부모님 성묘를 가려면 우리도 음식 장만을 서둘러야 할 텐데…. 전주에 사는 큰며느리가 전(煎) 부칠 식재료를 준비해오느라 정오가 넘어서야 다 만났다. 집안이 시끌벅적하다. 지난여름 가족휴가 때 만났으니 겨우 한 달이 더 지났을까? 손주들은 반가와 서로 붙잡고 장난을 치는데 몸집이 커지니 집이 더 들썩들썩 움직인다.
우리 집 추석 음식 조리는 전 부치기와 송편 빚기 그리고 쇠고기 갈비 재우기 등이다. 올해는 재료를 준비 못해 송편을 안 빚는단다. 아들며느리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서운했다. 어릴 때 추석엔 할머니와 어머니는 시루떡을 쪘다. 시루에 쌀가루를 놓고 켜켜이 팥고물을 넣으면서 떡을 안친 다음 그 켜 사이에 어린 칡잎을 깔았다. 팥고물시루떡 맛에 칡잎 향이 스며들어 배가 불러도 자꾸 먹고 싶었다. 고향을 떠나온 뒤 언제부턴가 송편으로 바뀌었다.
해마다 아내와 며느리들이 전을 부치기 시작하려면 손주들을 데리고 나가 놀다 오는 것은 아들들의 몫이다. 오늘도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송천동에 있는 풋살(futsal) 경기장으로 가려고, 3시에 예약을 했다. 손녀 슬아와 태이는 집에서 논다고 했다. 막둥이 며느리는 태중 손자인 태건이와 노느라 전 부치기를 구경해야 할 성싶다.
남자들은 싸준 간식을 가지고 풋살 경기장을 찾아갔다. 실내 인조 잔디 전용구장이다. 풋살화와 공은 무료다. 특히 큰 도로 건너편에 산이 온통 녹색 옷을 입고 우릴 바라보고 있어 기분이 상쾌했다. 성인 5명이 한 조가 돼 벌이는 구장이다. 우리는 4명이 한 조인데다 어린이가 있어 공간이 넓어 맘에 들었다. 사용료가 비싸지만 푹 쉬면서도 풋살을 실컷 할 수 있어 좋았다.
발에 맞는 풋살화로 갈아 신으니 선수같았다. 어린이용은 없어 아쉬웠다. 바로 편을 나누었다. 둘째아들, 손자 슬우와 이현, 내가 한 편이고, 다른 편은 첫째와 막둥이아들, 손자 채운이와 태산이다. 나이 차가 60년이 넘은 3대가 어우러진 간이축구가 시작됐다. 각자 축구 실력을 드러내 서로를 더 알아가는 친교의 시간이라 즐겁다.
지금 집에서는 전을 부치느라 한창일 게다. 수선을 피우는 손자들이 없으니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맛있는 전이 되리라. 전이 부쳐질 때 냄새보다 고부(姑婦)간, 동서(同壻)간 나눈 이야기가 더 고소하지 않겠는가? 슬아와 태이는 단 둘만의 오붓한 시간이라 사촌 자매간 정이 두터워지리라.
축구 열기는 뜨거워졌다. 고함과 웃음소리로 풋살장이 시끄럽다. ‘막아’, ‘드리볼’, ‘패스’ ‘슛’ 등 소리는 쉴 새가 없다. 고등학생 슬우는 공을 몰고 가 슛하는 기능이 뛰어났다. 혼자 많이 뛰어다니다 보니 지쳐 벌렁 두러 눕기도 했다. 농구 선수가 장래 꿈이라고 한 초등학생 채운이와 이현이도 잽싸게 뛰어다니며 공을 받아 패스를 정확하게 해주었다. 태산이는 유치원생인데 몸이 민첩했다.
이현이가 갑자기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만지며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상대방이 찬 공에 맞은 게다. 깜짝 놀랐다. 혹시 거시기가 맞았으면 어떨까? 다행히 거기는 아니라 한숨을 놓았다. 통증을 참으며 눈물을 닦고 뛰기 시작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태산이도 머리를 맞았지만 안 울었다. 몸이 지치지도 않은지 공을 잘도 따라 다녔다. 그런데 골키퍼를 하다 토라져 주저앉아 울음보를 터트리고 말았다. 자기 팀이 지고 있으니까 화가 난 게다.
태산이는 돌아가며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손자들만 2차전을 하라니까 슬며시 들어 주었다. 슬우, 태산이와 채운, 이현이 대결이다. 아빠들은 코치를 하느라 더 바빴다. 넷이라 얼마 못가 그만 두고 말았다. 간식을 먹으며 서로 축구 재능을 칭찬해 주느라 웃음꽃을 피웠다. 우리 3대는 불편한 관계가 아니라 축구로 작은 보름달이 된 것 같았다.
다시 3차전 편을 나누었다. 큰 아들과 막둥이아들 가족, 둘째아들 가족과 나로 정했다. 시계를 봐 가며 익숙해진 기량으로 안간힘을 다해 공을 차니까 제법 경기다워져 흐뭇했다. ‘경기의 승부 욕심은 형제, 사촌, 부자, 조손간이 필요 없었다.’ 라는 말은 우릴 두고 한 말 같다.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윤극영 작사 작곡인 동요 ‘설날’의 첫째 둘째단 가사를 바꿔 흥얼거려진다.
‘까치 까치 추석날은 내일이고요/ 우리 우리 추석날은 오늘 이래요(생략)’
올해, 우리 집 남자들의 추석날은 내일이 아니라 추석 앞날인 오늘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2019. 9. 14.)
※풋살(futsal) : 정식 축구장의 1/4 정도 되는 공간에서 5명이 한 조가 되어 벌이는 간이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