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 췌장염과 만성 췌장염은 임상적으로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만성췌장염 환자가 음주 후 악화된 경우에는 급성 췌장염의 임상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더욱 구분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급성 췌장염과 만성 췌장염은 서로 다른 질환으로 분류되고 취급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모든 순서에서 이 두 질환을 따로 따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 췌장은 우리 몸 어디에 있나요?
췌장은 이자라고도 불리는 소화를 담당하는 장기입니다. 위, 소장, 간 및 담도 등 대부분의 소화에 관련된 장기는 복벽 앞부분에 있지만, 췌장은 신장(콩팥)과 같이 복벽 뒤에 위치하는 후 복막 장기로서, 상복부의 위와 척추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성인 췌장의 무게는 80mg 정도이고 길이는 12-20cm 정도로 마치 혀 모양으로 옆으로 길게 누워 있는 모양입니다. 췌장의 머리 부분은 십이지장에 둘러 싸여 있습니다.
췌장에서 만들어진 췌장액은 췌관을 타고 유두부를 통하여 십이지장으로 흘러내려 옵니다. 이때 십이지장에 있는 유두부로는 췌장액뿐 아니라 아래 그림에서와 같이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 (쓸개물)도 같이 배액이 됩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는 담즙과 췌장액은 유두부에 있는 근육 조직에 의해 내려오는 길이 나뉘어져 있어 서로 섞이지는 않습니다.
2. 췌장은 어떤 일을 하나요?
췌장이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우리가 먹은 음식을 소화시키는 소화 효소를 분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췌장의 외분비 기능이라고 합니다. 췌장을 이루는 세포 중 선방세포(acinar cell)라는 곳에서 10가지 이상의 소화 효소를 만들어 우리가 먹은 음식에 포함된 탄수화물, 단백질 및 지방을 분해하게 됩니다.
이들 소화 효소는 우리가 식사를 하면 그 음식이 신호가 되어 소장에서 소화 효소를 분비하게 하는 호르몬을 만들고, 이 호르몬이 선방세포에서 소화 효소 분비를 하게합니다. 선방세포에서 분비된 소화 효소는 췌관을 타고 흘러 내려와 췌관 끝에 있는 유두부를 거쳐 십이지장 안으로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음식과 섞여 이 안의 여러 영양 물질이 소장에서 흡수 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주는 소화작용을 일으킵니다.
두 번째 기능은 우리 몸의 혈액 내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이나 글루카곤 같은 혈당 조절 호르몬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들 호르몬은 랑거한스 소도(langerhans gland)에서 만들어 지고 소화 효소와는 달리 췌장에 분포하는 혈액으로 분비됩니다. 이를 췌장의 내분비 기능이라고 합니다.
3. 췌장염은 어떤 병인가요?
췌장염은 크게 급성과 만성으로 나눕니다. 급성 췌장염은 췌장염을 앓았다 호전되면 췌장이 정상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고, 만성 췌장염은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췌장 손상으로 췌장의 조직학적 변화를 정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췌장염을 말합니다. 하지만 만성 췌장염 환자에서도 증상이 나타날 때에는 급성 췌장염에서와 비슷한 증상을 보여 실제로 임상에서 급성과 만성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만성 췌장염이 많이 진행되면 복부 초음파 검사나 (ultrasonography, US), 복부 전산화단층촬영 (computed tomography, CT)으로 쉽게 진단이 가능하고 심한 경우에는 단순복부 방사선촬영에서도 췌장부위의 석회화가 관찰되기도 합니다.
1) 급성 췌장염은 어떤 병인가요?
급성 췌장염은 주로 술이나 담낭, 담도(담즙이 내려오는 길)에 있는 담석이 원인이 됩니다. 알코올이 췌장 세포를 어떻게 망가트리는지는 아직 확실히 모릅니다. 아마도 술이 췌장 세포막에 손상을 주어 세포안의 수분을 빼앗고 세포 안의 칼슘 농도를 증가시켜 췌장 세포를 죽게 만든다고 추측합니다. 또 사람마다 췌장염을 일으킬 수 있는 알코올 양도 다릅니다. 술이 약한 사람이나 남자보다 여자가 음주로 인한 췌장염 발생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술이 센 사람도 평소보다 많은 술을 한꺼번에 마시면 췌장염이 초래 됩니다.
담석이 췌장염을 일으키는 기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담관 끝에 있는 유두부는 담즙 뿐 아니라 췌장액이 십이지장으로 흘러나오는 관문입니다. 유두부는 담즙과 췌장액이 적절히 흘러나오게 조절하고 십이지장의 음식이 담관이나 췌관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조여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근육 조직으로 된 괄약근의 형태 입니다. 그런데 담도에 생긴 조그만 담석이 담관 끝의 유두부에 걸려 박히게 되면 담즙 뿐 아니라 췌장액의 흐름도 막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췌관의 압력이 올라가 이 압력으로 췌장 세포가 깨져 췌장염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와 같이 급성 췌장염의 원인은 1/3이 술, 1/3이 담석 그리고 나머지 1/3은 매우 다양한 원인이 있습니다. 기타 원인으로는 담도 췌장의 내시경 시술 합병증, 췌장의 선천적인 해부학적 기형 및 여러 약제 등이 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췌장 세포 안의 소화 효소를 포함한 췌자아액이 십이지장이 아닌 췌장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급성 췌장염이라고 합니다. 췌장염이 경미할 때는 췌장이 붓는 정도이고, 췌장액이 췌장을 싸고 있는 췌장막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췌장염이 심한 경우에는 췌장막 밖으로 췌장액이 새어 나가 주변 조직을 녹이고 흘러나온 췌장액이 물주머니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 물주머니를 가성낭종(pseudocyst)이라고 부릅니다. 이 물주머니는 저절로 사라지기도 하지만 일정 기간후에도 없어지지 않거나, 농양 혹은 출혈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면 치료를 해 주어야 합니다.
췌장염은 앞서 말한 술이나 담석 같은 원인을 제거하면 대부분 저절로 좋아 집니다. 하지만 열 명에서 한 두 명 정도는 중증의 췌장염으로 진행합니다. 이런 경우는 췌장의 가성낭종뿐 아니라 췌장 자체에 혈액 순환이 안되어 췌장 실질 조직이 썩는 경우(괴사, necrosis)도 있습니다. 이러한 합병증이 초래되면 사망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심한 경우 호흡부전을 유발하여 사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증의 급성 췌장염은 내과 질환 중에서도 사망률이 10-15%에 이르는 매우 위험한 질환으로 여겨집니다.
2) 만성 췌장염은 어떤 병인가요?
만성 췌장염의 원인은 80%가 술입니다. 특히 장기간 많은 양의 음주를 한 사람에서 잘 발생하는데 이 질환 역시 음주에 의한 췌장 손상 정도에는 개인차가 큽니다. 만성 췌장염도 알코올이 어떻게 췌장 세포에 영향을 미쳐 초래되는지에 관하여는 확실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단지 급성 췌장염과는 달리 췌장 세포가 파괴되는 것 보다는 술에 의하여 췌장액 안의 단백질 양이 많아지고 끈적끈적하게 되어 ‘단백전(protein plug)’을 형성하고, 이것이 췌장 흐름을 방해하여 췌장 세포의 위축과 췌장의 섬유화가 진행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진행된 췌장의 병변은 급성에서와는 달리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점차 변화가 진행될수록 췌관이 좁아지면서, 췌관 안에 췌석이라고 하는 돌이 생기기도 합니다. 또한 이러한 췌관의 좁아짐과 췌석은 췌장액의 흐름을 막아 급성 췌장염에서 보는 가성낭종을 형성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