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지난 한 주간 이 종의 걸음을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어젯밤 베트남으로 돌아와 말씀 앞에 섭니다.
불안과 초조함으로 보낸 한 주간이었지만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와도 함께 하시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신실하신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보혈로 오염된 나의 영을 씻어 정결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서기 원하오니 나를 장악하여 주소서.
멕시코 멕성신학교에 복음생명세미나를 위하여 떠난 주의 종들을 붙들어 주시고 전하는 자나 듣는 자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소서.
이들이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신실하신 우리 주님을 신뢰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8:1-6
제목 :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1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주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7년 동안 임하리라 하니
2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의 가족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7년을 우거하다가
3 7년이 다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돌아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4 그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하며 이르되 너는 엘리사가 행한 모든 큰 일을 내게 설명하라 하니
5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의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하니라.
6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설명한지라. 왕이 그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이르되 이 여인에게 속한 모든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의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 하였더라.
* 나의 묵상
왕상 19장 15-18절과 21장 17-29절에서 엘리야의 예언대로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까지 하나님의 손길은 쉬지 않고 일하신다.
이미 하나님의 심판은 확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한 편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7장에서 사마리아 성의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예언대로 성취됨을 보여주셨다.
마찬가지로 8장에서는, 큰 맥락에서 아합 왕가의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활동하며 일하심을 보여준다.
오늘 본문 이후에 나오는 내용은 아합 왕가를 심판하기 위하여 엘리사의 예언대로 하사엘이 아람 왕 벤하닷을 죽이고 왕이 되는 사실 또한 보여준다.
이러한 심판의 전야에도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구원의 손길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수넴 여인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왕하 4장에 등장했던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말을 신뢰한 결과 7년 기근을 피할 수 있었고, 또한 그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기업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큰 물줄기를 바꾸시면서 역사의 흐름을 이끌어 가시지만 그 속에서 주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섬기는 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손길을 펼치신다.
(레 26:44) 그런즉 그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땅에 있을 때에 내가 그들을 내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고 그들과 맺은 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그를 심판하시지만, 그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여인의 후손을 약속하시고 또한 그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신다(창 3:15, 21절).
가인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하신 심판이 임하지만 또한 그에게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도록 구원의 표를 주기도 하신다.
에녹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알고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로 짓고 세상을 향하여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시지만, 또한 노아를 준비시키셔서 구원의 손길을 이어가신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에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성(城)과 대(臺)를 쌓고 자기들의 이름을 하늘에 내려고 하는 교만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흩어버리는 심판을 행하신다.
그러나 그 심판에 대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나타내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심판하시나 아주 멸하지 않으시는 것은 창세전 영생 주시기로 약속하신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교만하고 패역한 이들을 심판하시지만, 그들 중에서도 겸손하고 거룩한 이들을 구원하셔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의 물줄기를 이어가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을 해놓고 가만히 앉아서 관망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서 애굽에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원하셨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다.
하나님은 당신을 계시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은 원문대로 번역을 하면 ‘나는 ~ 이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만물 안에 속한 어떤 존재물로도 규정할 수 없고 제한을 받지도 않으시는 만물을 초월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나는 ~ 이다’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에히예 아쉐르 에히예’인데 이 이름 안에는 사람에게나 다른 존재물에게는 사용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되는 ‘하야’동사가 사용되었다.
하야동사는 1인칭 미완료로써 그 특징은 3가지가 있다.
첫째는 존재이다.
이는 1인칭 미완료이므로 항상, 영원의 의미를 가진다.
둘째는 생성이다.
하나님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건을 생성하시기도 하고 사람을 붙여서 그 일을 이루어가시는 것이다.
셋째는 활동이다.
하나님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관망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일하시고 활동하시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모세에게 하나님 당신의 이름을 ‘나는 ~ 이다’로 계시하신 것은, 나는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너와 함께하면서 너를 통하여 출애굽의 모든 사건을 일으키고 친히 활동하시겠다는 말씀이다.
나는 이러한 ‘하야’의 하나님을 오해한 자였다.
하나님은 심판하시지만 또 다른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창세전 언약을 중단 없이 이루어 가신다.
그러나 나는 창세전 하나님의 언약도 모르고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도 알지 못하였다.
그저 단순히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나를 잘 되게 하는 수종자 정도로만 생각하였던 것이다.
창세전, 만물 위의 세계를 모르니 신앙의 뿌리가 끊임없이 흔들렸다.
나의 신앙의 근거는 창세전이 아니라 땅에 근거한 신앙이었다.
그래서 아들의 생명을 받아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끝없이 땅의 것을 추구하고 만물 안에 있는 존재물을 향유하는 자였던 것이다.
그러니 어려움이 오고 고난이 닥치면 그 의미도 모르고 그저 고난의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 되고 만 것이다.
다행히 기도를 통하여 상황이 해결되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양하지만, 상황 해결이 잘 안 되면 신앙은 곤두박질을 치고 만다.
하나님은 나를 떠나셨는가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절망과 낙심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
이것이 나의 평신도 때의 신앙의 모습이었고 목사가 되고 나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목사가 돼서는 나의 상황만 아니라 성도들의 상황 해결을 위해 부르짖는 기도자요 그들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목사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고난으로 초청하신 주님의 뜻을 모르고 단지 상황 해결만을 위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겠는가?
언약 안에서 고난의 중심에 나를 초청하셨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고 나는 그 고난이라는 무덤에서 잠잠히 머무르며 말씀 앞에서 주님과 함께 성소를 지어나가야 했다.
하지만 나는 전혀 이런 복음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 막무가내로 주님의 바지가랭이를 잡고 늘어지며 목 놓아 부르짖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던 나에게 하야의 주님이 찾아오셨다.
기도해서 응답 받으면 좋고, 응답받지 못하면 그저 그런가보다 하면서 넘어갔던 나에게 진짜로 주님은 참된 것을 응답하셨다.
그것은 바로 복음이다.
어리석고 허물 많은 나를 친히 찾아오셔서 당신의 생명을 주기 위하여 복음으로 찾아오신 것이다.
그 주님은 지금 이 시간 존재로 찾아 오셨으며 나를 세우고 아들의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친히 고난을 통한 사건을 생성하시기도 하고 사람을 통하여 일을 하기도 하셨다.
이들은 나에게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또한 복음을 들려주셨다.
하나님은 결코 가만히 앉아서 관망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나의 구원을 위하여 친히 활동하시고 역사하셔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다.
복음이 아니었더라면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하나님의 이 창세전 언약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약속이 오늘 나에게 실재가 되어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오신다.
오늘도 아버지와 아들의 영광을 이 시간을 통하여 맛보고 누린다.
그 주님께 나의 찬송을 올려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창세전 언약의 주님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막연히 두렵기만 한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구원을 위하여 존재로 찾아오시며 생성하시고 친히 활동하시면서 그 약속을 이루시는 하야의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나는 불의하나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 없기에 그 언약은 영원한 언약입니다.
이제는 그 언약을 신뢰하며 주의 자녀된 자로 살기 원합니다.
나의 죄로 인하여 죽기에만 합당한 자로써 주께서 죽음에 넘기셔도 아무 할 말이 없는데 이런 나를 살리기 위하여 당신은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나이다.
이제는 나도 주님과 연합하여 십자가를 지며 무덤에 장사되어 주님의 장사에 연합되었나이다.
무덤의 3일은 완전합니다.
그 시간이 나에게 필요하오니 잠잠히 주님과 말씀으로 성소를 지어 깊은 교제가운데 거하게 하소서.
이를 멀리하지 말게 하시고 오직 말씀으로만 주님께 나아가 성령으로 교제하는 자 되기 원합니다.
높임을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