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된 필즈상, 허교수 포함 모두 64명 수상
[‘수학 노벨상’ 한국계 첫 수상]
‘세계 3대 수학상’중 가장 오래돼
허준이 교수와 함께 필즈상 받은 3명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함께 2022 필즈상을 수상한 3명의 수학자. 왼쪽부터 제임스 메이나드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위고 뒤미닐코팽 프랑스 고등과학원 교수, 마리나 뱌조우스카 스위스 로잔연방공대 교수. 국제수학연맹 제공
필즈상은 국제수학연맹(IMU)이 만 40세 미만 수학자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상이다. 4년마다 개최지를 옮겨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시상식을 갖는다. 캐나다 수학자 존 찰스 필즈의 유산을 기금으로 만들어진 이 상은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노벨상에 수학 분야가 없는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제정자인 알프레드 노벨이 이론 위주의 학문보다는 실용 위주 학문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란 설이 가장 유력한다.
필즈상과 비견되는 수학상으로는 노르웨이 학술원이 2003년 제정한 아벨상과 이스라엘 울프 재단이 1978년부터 수여하고 있는 울프상이 있다. 이 3개 상을 ‘세계 3대 수학상’이라고 한다. 3개 상 중에선 1936년 첫 수상자가 선정된 필즈상이 가장 오래됐다.
필즈상 수상자는 국제수학연맹 소속 집행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수상자에게는 금으로 만든 메달과 함께 1만5000캐나다달러(약 152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필즈상은 매 대회마다 수상자가 최대 4명으로 제한된다. 대회가 열리는 해의 1월 1일을 기준으로 만 40세가 넘으면 안 된다. 수학계 난제로 유명한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한 영국의 수학자 앤드루 와일스는 나이 제한으로 1998년 필즈상 수상 기회를 놓쳤다.
5일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고등과학원 석학교수)를 포함한 4명의 수상자가 추가되면서 지금까지 필즈상을 받은 수학자는 64명이 됐다. 2018년까지 역대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를 살펴보면 미국(14명)과 프랑스(13명)가 가장 많다.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겸손하지만 연구엔 엄격” “중학생땐 소설 써”
[‘수학 노벨상’ 한국계 첫 수상]
지인들이 말하는 허준이 교수
허준이 교수(오른쪽)가 둘째 아들과 마주 보며 놀아주는 장면. 허 교수는 둘째가 이제 겨우 걷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저녁 먹고 같이 잠드는 반복 과정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고 했다. 국제수학연맹 유튜브 화면 캡처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지인들이 기억하는 허 교수는 글을 잘 쓰고 겸손하고 따뜻하면서도 집중력과 재능은 최고 수준인 보기 드문 수학자다.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함께 박사과정을 밟은 김재훈 KAIST 수리과학과 교수에 따르면 허 교수는 음식 주문시간도 아까워 손님 없는 식당을 찾는 ‘지식 흡입가’다. 김 교수는 “2009년 9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일리노이대 수학과 건물인 알트겔드홀 지하 컴퓨터실에는 항상 종이와 프린터 토너가 부족했다”며 “매일 수백 장씩 논문을 프린트하는 한 학생 때문이었는데 그가 바로 허준이였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그렇게 인쇄한 논문을 모두 꼼꼼히 밑줄을 치며 읽고 그 종이에 본인의 생각을 적어 뒀다고 한다. 글씨체도 화려했다.
김 교수는 “한번은 포커를 치는데 허 교수 본인의 패가 나빠 먼저 죽고는 남은 사람이 베팅하는 시간 동안 가방에서 논문을 꺼내 읽었다”며 “물건을 사는 데 드는 시간이 아까워 가격을 비교하지 않고 무조건 제일 비싼 물건을 사는 등 본인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에는 전혀 가치를 두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복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허 교수가 서울대 수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을 때 지도교수였던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허 교수는 연구도 뛰어나지만 완벽한 강연과 수려한 글쓰기까지 갖춘 보기 드문 수학자”라며 “겸손하고 따뜻해 모두의 존경과 사랑을 이끌어내는 한편 자신의 연구에는 한없이 엄격해 모든 게 철저히 확인되기 전까지 밤잠을 설치는 완벽주의자”라고 평가했다.
허 교수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박준택 씨를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친구라고 소개했다. 한 공기업에 다니고 있는 박 씨는 허 교수에 대해 “준이는 중학생이 하룻밤 사이 썼다고 믿을 수 없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소설을 발표했다”며 “준이가 당연히 글 쓰는 사람이 되리라 믿었다”고 말했다. 서울 방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수중학교를 다니던 허 교수는 예술에 빠져들었다. 시와 소설처럼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것에 열중했다.
박 씨는 “뒷산에 올라 세계를 관찰하다 내려와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전날 작곡한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헬싱키=김미래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