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에 현금을 넣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예 지갑 없이, 휴대전화 케이스에 신용카드 한 장만 넣고 외출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에선 신용카드(또는 체크카드) 한 장이면 버스·지하철을 탈 수 있고,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실 수 있으며, 퇴근할 때 수퍼마켓에서 장을 볼 수 있다. 편의점에서 850원짜리 생수 한 병 사는 것도 카드만 있으면 된다. 현금이 필요할 때는 노점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정도다.
중국은 더욱 혁신적이다. 신용카드 없이 스마트폰만 있으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심지어 노점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지불한다. 중국은 ‘현금 없는 경제’에서 앞서가고 있다. 비결은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 알리페이(支付寶)와 위챗페이(微信支付)다.
알리페이는 알리바바(阿里巴巴)의 관계회사인 앤트파이낸셜(蟻金服)이 모회사다. 위챗페이는 한국의 ‘카카오톡’처럼 중국의 국민 모바일 메신저인 ‘위챗’의 간편결제 서비스다. 알리바바·바이두(百度)와 함께 중국 3대 IT 기업인 텐센트(Tencent·腾讯)가 서비스한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서비스로 중국에선 노점상도 고액권을 바꿔줄 잔돈이 필요 없게 됐다. 고객이 노점에 붙어 있는 QR코드를 스마트폰의 알리페이·위챗페이로 읽은 뒤 앱상에서 대금을 지불하면 된다.
중국에서 모바일 결제가 빠르게 확산된 것은 역설적으로 결제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위안화 위폐가 많아 시장 상인들이 고액권을 받으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감별해야 했다. 신용카드 보급도 더뎠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 계좌에 돈이 있으면 스마트폰 앱에 직불카드를 등록해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가 등장하자 중국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다.
미국 모바일 결제 규모 1년새 40% 증가
현재 알리페이 사용자는 4억5000만명에 달한다. 알리페이는 10년 후 이용자를 20억명으로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 모든 중국인이 알리페이를 이용하더라도, 수억명의 외국인 가입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해외로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알리바바 계열 앤트파이낸셜은 2015년 인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원97커뮤니케이션즈’에 투자했다. 이 회사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 회사 ‘페이티엠(Paytm)’을 보유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또 지난해 11월 태국 CP그룹 온라인 결제 자회사 어센드머니홀딩스와 제휴했다. 올해 1월엔 미국 송금 업체 머니그램을 인수했다.
중국의 모바일 결제 시장은 미국의 50배 규모로 커졌다. 시장조사기관 아이리서치에 따르면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주도한 중국 모바일 결제 시장 규모는 지난해 38조위안(5조5000억달러·약 6300조원)에 달했다. 반면 포레스트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모바일 결제 시장 규모는 1120억달러(약 127조원)에 그쳤다.
미국도 성장 속도는 빠른 편이다. 포레스트리서치는 지난해 미국의 모바일 결제 시장이 2015년보다 39% 커졌다고 분석했다. 미국 모바일 결제 시장은 애플페이와 구글의 안드로이드페이, 삼성페이, 페이팔 등이 나눠 갖고 있다.
다만 애플페이는 별도의 NFC(근거리무선통신) 단말기가 필요하고, 삼성페이도 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기기가 있어야 한다. 중국처럼 노점에서도 완전히 현금을 대체하는 수준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유커 많은 명동, 모바일 결제 급속 보급
카카오, 알리페이와 韓 시장 확대 노려
plus point
2월 23일 오후 3시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커피 전문점에 중국인 관광객(유커·遊客) 2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영어로 커피를 주문하고, 스마트폰을 계산대의 점원에게 내밀었다. ‘위챗페이’를 이용해 커피값을 지불하겠다는 의사였다.
점원이 고객의 스마트폰 위챗 앱의 바코드를 리더기로 읽자, 곧바로 결제가 완료됐다. 점원 임모씨에게 위챗페이를 얼마나 사용하느냐고 묻자 “중국인 중 3분의 1은 위챗페이로 커피값을 낸다”라고 했다.
한국에 관광 오는 중국인이 늘면서 지난해 중국인 입국자는 826만명을 기록했다. 2015년보다 34.3% 늘어난 수치다. 이들이 쓰고 가는 돈은 상당하다. 신한카드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은 한국에서 카드로만 8조3000억원을 결제했다. 1년 전보다 46.2% 늘어난 액수다.
중국인 관광객과 함께 중국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도 한국에 따라 들어왔다. 중국인이 많이 들르는 명동엔 알리페이·위챗페이로 상품을 살 수 있는 상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인들이 알리페이·위챗페이를 한국에서 사용하면 원화나 해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가 없어도 중국에 있는 것처럼 결제할 수 있다. 환전 수수료 부담이 적고, 현금 분실도 예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알리페이는 중국 외 70여개국에 8만개 가맹점을 두고 있다. 이 중 한국 가맹점은 백화점·면세점 등을 포함해 3만2000여개다. 중국 외 지역의 가맹점 중 40%가 한국에 몰려 있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도 모바일 결제 서비스로 유커 잡기에 나섰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부터 백화점·면세점·아웃렛·할인점(이마트)·편의점(위드미)·커피전문점(스타벅스)에 위챗페이로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또 알리페이 결제 시스템도 갖춰나가고 있다. 중국인 관광 트렌드가 단체 관광에서 자유 여행(싼커·散客)으로 바뀌고 있는 점을 감안, 이들의 쇼핑 편의를 높여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알리페이는 카카오와 손잡고 한국 시장에서 기반 확대를 노리고 있다. 카카오는 알리페이를 서비스하는 앤트파이낸셜이 카카오페이에 2억달러(약 230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라고 최근 밝혔다. 카카오는 간편결제 등 핀테크 부문을 별도 법인 ‘카카오페이’로 오는 4월 분사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투자가 완료되면 앤트파이낸셜은 카카오페이의 2대 주주가 된다.
카카오와 알리페이의 제휴로 한국과 중국 관광객들은 양국에서 편리하게 모바일 결제를 사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현재는 중국 은행에 계좌가 없는 사람은 알리페이를 이용할 수 없지만, 앞으로는 한국인이 중국 상점에서 카카오페이로 알리페이 결제망을 이용해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중국인이 한국에 와서 물건을 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